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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많은 시간이 지났다. 민규로선 이해하기 힘든 한 가지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것도 암울하게.

'이곳이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이기 때문에 파렴치함을 넘어선 범죄가 가능하다는 말인가. 그 말을 들은 민규는 오직 한 가지 의문을 풀고 싶은 욕구에만 집착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또한 그러한 자신을 믿기 어려워했다. 이러한 집착은 평소 민규가 추구해 왔던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민규는 자기 자신의 삶과 신앙에서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을 무한 신뢰했다. 결국 그 사랑의 빛에 의한 최종적인 만인 구원을 지지해 왔다. 모든 이들이 하나님의 따스한 손길에 의해 본래의 창조 목적이 회복될 것으로 믿어 온 것이다. 민규가 생각한 만인구원론은 어떤 면에선 다분히 낭만적 성격을 갖고 나타나곤 했다. 구원의 영역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있는 것이기에 인간의 판단이 개입될 여지는 없다. 하지만 구원을 향한 하나님의 의지는 분명 모든 이들을 위한 것이다. 그렇기에 민규는 모든 이들의 실제적 구원을 말하는 의미가 아닌 하나님 구원 의지의 최종적 범주로서 만인구원론을 지지했던 것이다.

민규는 그러한 만인 구원의 낭만적 관점에서 사람들을 대해 왔다. 원죄의 고통으로 인해 타락하고 더렵혀진 인간이지만 양심과 윤리,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근간의 의지로 인해 결국 신의 사랑을 깨닫는 길이 열릴 것으로 믿어 온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최근 찾아온 붕괴의 징후가 민규 자신에게 날카로운 사랑의 잣대를 들이밀기에 충분했다. 하나님이 그토록 사랑하던 사람들의 심장에 자신이 가슴 아픈 비수를 꽂고 말았다는 사실이 그랬다. 그 사실이 민규의 마음 안에 파고드는 순간 민규는 자신의 주관이 점점 흐릿해지고 있음을 느꼈다.

더욱이 사람이 사람을 상대로 짐승보다도 못한, 아니 짐승과 비교하는 것조차 수치스런 파렴치한 죄악을 서슴없이 저지르던 가학적 쾌락주의자들의 무정한 눈빛을 목격한 민규는 과연 저런 존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이 땅에 태어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 모습은 그야말로 역사 속에서만 보아 왔던 악마의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슨 뜻으로 이런 말을 한단 말인가. 교회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니? 교회이기 때문에? 민규는 그 말의 진의를 듣고 싶었다. 한영호. 그에게 직접.

주일 11시 예배가 끝나자마자 민규는 점심 식사도 거른 채 그대로 한영호의 뒤를 따랐다. 한영호가 직접 자신을 따라오라는 말은 없었다. 그렇다고 자신을 따라오는 민규를 막지도 않았다. 그렇게 민규는 한영호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결국 그가 운영하는 한의원까지 따라나섰다.

일요일의 한의원 입구는 셔터가 굳게 닫혀 있었다. 먼지가 한 가득 쌓인 한의원 문을 열고 한영호가 먼저 그 안으로 들어갔다. 따라 들어온 민규는 약간은 낯설고 어색한 풍경을 목격했다. 마치 오랫동안 한의원 문을 닫아 놓은 것처럼 한의원 내부 공간은 황량해 보였다. 카운터의 표지판도 조각난 채 빚이 바랬고, 한낮임에도 불을 켜야 할 정도로 어두웠는데, 그나마 등 몇 개는 깜빡거려 보는 이를 어지럽게 했다.

한영호는 한의원 진료실로 들어가지 않았다. 커다란 파티션이 설치된 공간으로 들어섰다. 민규도 따라 들어섰고, 한발 들여놓는 순간 그곳이 이곳, 한의원 공간에서 유일하게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느낌은 그야말로 강력했다. 천장 높이까지 한 가득 쌓여 있는 책들은 한눈에 봐도 신학 서적들이 전부였다. 그 외에 성경을 주석한 주석들, 정식 출간되지 않은 제본된 종이 묶음들도 한 가득 쌓여 있었다. 서재인지, 연구실인지 알 수 없는 두 평 남짓한 공간인 그곳에 작은 책상이 눈에 뜨였다. 그 책상 위에도 수많은 서류와 종이들이 한 가득 쌓여 있었다. 바로 몇 시간 전까지도 이곳을 다녀간 흔적이 느껴졌다.

바깥 한의원보다도 더 어두웠지만 한영호는 불을 켜지 않았다. 한의원 실내에서 켜둔 형광 불빛이 조심스럽게 내부 공간 안으로 스며들어 한영호와 민규, 서로의 얼굴을 희미하게 비쳐 주었다.

자리에 앉은 한영호가 커다란 서류 뭉치를 민규에게 건네주었다. 서류는 몇 장 펼쳐 볼 것도 없이 그 성격과 목적이 명확했다. 피의자 김인철의 기소를 준비하는 증명 서류들이었다. 서류 안에 담긴 내용들은 민규가 잠깐 보았던 내용보다 훨씬 더 끔찍하고 악랄했다. 아동 성학대는 기본이고, 학대를 이기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원생을 신애원 뒤편 야산에 묻은 사체 유기 의혹까지 구체적으로 적혀 있는 내용이었다.

서류를 중간까지 지켜보던 민규는 끝내 마지막까지 보지 못하고 덮었다. 그때였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주체하기 힘들어 하던 민규에게 한영호가 오랫동안 지속되던 침묵을 깨고 말문을 열었다.

- 왜 기소하지 않느냐고 묻고 싶으신 거죠?

- 예…

- 김정은 선생의 말했을 답과 거의 유사할 겁니다. 기소 자체가 성립이 안 된다고 하더군요. 증거불충분. 그게 왜 그런지 아십니까?

- 왜 … 그러죠?

- 이곳이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 묻고 싶었습니다. 교회이니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게 맞습니까?

민규의 궁극적인 질문에 한영호는 단호했다.

- 그렇습니다. 교회, 그중에서도 권력의 배후에 선 종교라면 권력을 주무르는 데 탁월한 샤먼으로 기능하는 법입니다. 그건 목사님께서 더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 제가요?

- 저는 목사님의 논문 215페이지 여섯 번째 줄 두 번째 단락을 가장 인상적으로 기억합니다. 이교의 배후에 숨은 신을 찾기 위해, 그리고 그 신이 진정 자신이 숭배하는 야훼 하나님이 분명한지 입증하기 위해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 했다. 그것은 곧 종교 권력의 배후를 파헤치고 이를 무력화시키는 가장 효과적이고도 충격적인 신앙 행위다.

이번에도 한영호.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민규의 논문 일부를 낭독했다. 민규는 그 순간 할 말을 잃어버렸다. 교회이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해선 안 되는 것이었다. 교회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 모든 파렴치한 범죄가. 교회이기 때문에.

다시 깊은 침묵이 흘렀다. 그 사이 민규가 망연한 눈길로 한영호를 바라보았다. 그런 민규에게 한영호가 한마디 남겼다. 무겁고 단호하게.

- 목사님이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이 악몽을 끝내려면 그래야만 합니다.

(계속)

*'나쁜 하나님'은 주 3일(월, 수, 금) 업데이트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