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나쁜 하나님' 소개의 말

오늘의 한국교회는 정치적 타락, 종교적 부패, 신학의 허약함으로 인해 파산 직전에 몰려 있습니다. 이는 명백히 신학, 신앙, 교회의 위기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 너머에 치유를 위한 열망 또한 숨 쉬고 있음을 부정해선 안 될 것입니다.

치유와 소생의 가능성을 경험하기 위해 오늘의 한국교회를 지배한 기복과 왜곡된 순수의 풍경을 동시에 전망하는 문학적 시도는 어쩌면 필연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이러한 시도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교회의 본령을 회복하는 사상적, 신학적 갱신 의지와 흐름을 같이한다고 확신합니다. <뉴스앤조이> 연재 소설 '나쁜 하나님'은 한국교회의 궤멸적 징후를 극사실적으로 해부하고 그 너머의 희망, 치유, 소망의 가능성을 함께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 소설가 주원규

35

율주시 경정 김상현은 민규와의 만남을 다음의 말로 마무리했다.

- 형. 나 사실 할 말이 있는데. 해도 돼?

- 말해.

- 사실 나 어제… 김인철 의원 쪽으로부터 전화 한 통 받았어.

상현은 머리를 매만지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한마디 꺼냈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민규의 표정은 자신도 모르게 일그러졌다. 순간 계단을 밟고 지하 식당으로 내려오는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민규의 시선은 오롯이 상현만을 향했다.

- 김인철 의원이 직접 했어?

민규의 질문에 상현이 한 번 세차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 미쳤어? 그 인간은 직접 전화 안 해.

- 왜?

- 그 인간처럼 산전수전 다 겪은 빠꼼이가 녹취라도 당하면 어쩔까 싶은 조심성이 없을 까봐. 그 밑에서 설거지하는 인간이 걸었지.

- 그래서. 뭐라고 하던데?

- 이번 주 안으로 형이 날 찾아올 거라고 말했어.

상현이 말끝을 흐렸다. 그 한 문장에 많은 내용이 담겨 있었다. 상현의 말이 민규의 귀에 오롯이 담겼다. 말은 귀에만 담긴 게 아니었다. 민규의 심장으로까지 농밀하게 파고들어 그를 아프게 했다. 점점 조여드는 영혼의 압박이 민규를 괴롭게 했다. 땅에 두 발 딛고 서 있는 것 자체가 이처럼 힘들고 버거운 일인지 처절히 실감하는 중이었다.

상현이 담배를 입에 물었다가 빼냈다.

- 참. 형은 목사지. 미안.

피우지 못한 담배를 그대로 쓰레기통에 버리며 상현이 말을 이었다.

- 형. 옛날에 <안개 마을>이란 소설 좋아했잖아. 기억나?

- …… ?

- 우리 교회 청년부 때, 휴게실인가 어디에 작은 도서관 만든다고 함께 밤새워 책장 만들고 했던 거 기억나? 그때, 형이 추천하던 책, 난 기억나는데. <안개 마을>.

민규도 당연히 기억하고 있다. 단편소설이었고, 그 소설의 배경과 이곳 율주의 새벽안개가 미치도록 닮아 있다는 것도. 상현도 그 사실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일러스트레이터 주원태

- 그 지독한 안개 말이야.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걷히지 않고 모호하게, 알 듯 모를 듯 베일에 가려져 있는 상태가 안정감 있게 느껴질 때가 있어.

- 그게 … 안정적일 수 있다고? 모든 게 가려져 있는데?

- 문제라는 건 말이야. 그것을 문제로 느끼고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에겐 문제가 맞는데 말이야. 그걸 고통이 아니라고 느끼는 이들에겐 문제가 아닐 수도 있어.

- 너. 그게 무슨 소리야?

민규의 되물음에 상현이 잠시 답을 망설였다. 약간은 난처해했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말을 멈출 분위기가 아니었다. 잠시 망설이던 상현이 민규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 형. 내가 나일론 신자인 건 인정하지만 말이야. 나도 다 알 건 알고 있어.

- 뭘 말이야?

- 형이 김정은 선생 버리고 정략결혼한 거 말이야.

순간, 민규의 숨이 막혔다. 때맞춰 민규가 스스로 담금질하고 길어 올리려 했던 공분도 멈춰버렸다. 민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민규의 창백하게 질린 얼굴을 보며 기세가 오른 상현이 타이르듯 민규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들려주었다.

- 오해하지 마. 난 형을 비난하려는 게 아니야. 난 그때도 그렇고, 지금 형이 스캔들 때문에 이혼당하고 와서 연봉 1억이 넘는 율주제일교회 담임목사 짓하는 거 전혀 문제 삼지 않아. 이런 원리와 같다고 생각해 줬음 좋겠어.

- … ?

- 신애원 애들 말이야. 그 애들 부모 본 적 있어?

그렇게 말한 상현이 한 걸음 더 민규에게 다가갔다. 중요한 것을 말하려는 순간, 상현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 그 부모들. 완전 개쓰레기야. 자식새끼 병신이라고 시설에서 때려죽이든 구워삶든 자기네들은 아무 상관없다고 각서에 공증까지 받아 간 새끼들이 부모란 것들이란 말이야.

- …

- 아무리 친고죄가 폐지되었다고 하지만 부모들도 버린 애들만 모여 있는 애들을 들쑤셔서 신애원 자체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으면 과연 누가 이득을 보는 걸까? 아무도 없어. 아이들조차 피해자야. 그 애들이 갈 데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

- 그게 무슨 소리야? 아이들은 자유를 얻을 수 있잖아.

- 순진하긴.

그때, 지하 식당 계단으로 내려오는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렸다. 구두굽 소리였는데, 어딘가 모르게 익숙하게 들어 온 소리였다. 그 사이 상현이 낮은 목소리로 경고하듯 말했다.

- 부모도 버리고 국가도 귀찮아하는 잉여들에게는 말이지. 자유가 아니라 구속이 더 절실한 거야. 형도 구속이 필요해 여기에 붙어 있는 거잖아. 안 그래?

- …

- 프로답지 못하게 이러지 말고 잘 있다 재기해요. 형. 난 진심으로 형을 위해서 하는 말이야.

상현의 말이 마무리될 때였다. 민규의 시선은 본능적으로 식당 입구로 향했다. 지하 계단 밑으로 내려온 한 남자, 고동식이 눈에 들어왔다. 고동식은 여전히 아무 표정이 없었다. 특별히 화가 난 것도, 어떤 반응을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냉정하고 차가운 눈빛이 도리어 민규를 얼어붙게 했다.

고동식이 내려온 걸 확인한 상현이 자연스럽게 식당에서 벗어났다. 그 사이 민규는 식당 자리에 다시 앉았다. 고동식은 여전히 입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민규의 몸은 자신도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떨렸다.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강한 오한이 밀려왔다.

(계속)

*'나쁜 하나님'은 주 3일(월, 수, 금) 업데이트됩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