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앤조이>는 지금까지의 표절 반대 운동을 돌아보고, 앞으로 이 운동이 어떻게 이어져야 할지를 논의하는 좌담회를 열었다. 패널로 나온 양희송 대표, 이성하 목사, 김진규 교수, 신현기 대표, 맹호성 이사는 두 시간의 좌담회 동안 표절 반대 운동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2015년 상반기, 한국 신학계와 신학 출판계는 '표절' 문제로 떠들썩했다. 유수의 신학자들이 표절 의혹에 휘말렸고, 이미 대여섯 명의 굵직한 학자들이 잘못을 시인했다. 이 문제는 지금도 계속 페이스북에서 이성하 목사(원주가현침례교회) 등 다수의 목회자·신학생·평신도가 가입한 '신학 서적 표절 반대' 그룹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뉴스앤조이>는 7월 13일, 지금까지 표절 반대 운동이 걸어온 과정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방향을 모색하는 좌담회를 열었다. 표절 반대 운동을 지속해 온 이성하 목사(원주가현침례교회), 학계의 김진규 교수(백석대학교 구약학)와 출판계의 신현기 대표(IVP), 그리고 해외 저작권사 입장을 대변할 맹호성 이사(저작권 에이전시 '알맹2')가 패널로 한자리에 모였다. 사회는 청어람ARMC의 양희송 대표가 맡았다. 패널들은 두어 시간의 논의에서, 독자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장외 운동 성격의 표절 반대 운동을 평가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했다.

표절 고발자들의 소회, "우연치 않게 시작했는데…온갖 위협에 시달렸다"

좌담회를 시작하며 패널로 참가한 이성하 목사와 김진규 교수의 소회를 들어 봤다. 이 두 사람은 각각 김지찬·송병현 등 내로라하는 신학자와, 한국의 대표적인 초대형 교회인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의 표절 문제를 제기한 이다.

양희송: 먼저 이성하 목사와 김진규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표절 문제를 제기하게 된 동기는 무엇이었는지, 하고 나서 당사자와 주변으로부터 어떤 반응을 받았는지 말해 달라.

이성하: 처음에는 페이스북 그룹 '번역이네 집'에서 오역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다가 오역 문제가 나온 김에 표절도 한번 찾아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내가 알고 있던 건 이한수 교수와 양용의 교수 정도였다. 처음 두 분에 대한 검증을 시작했는데, 일이 생각지도 못하게 커졌다. 두 교수 얘기를 공개하자 여기저기서 제보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제보들을 하나씩 확인하면서 나도 놀랐다. 분량도 너무 많고, 표절의 수준과 정도가 심했다. 그렇게 한 명 한 명 시작한 게 지금까지 다룬 것만 여덟 명, 아직 조사하지 않은 것까지 합치면 두 자릿수에 이른다.

이 일을 해 오면서 여러 가지 반응을 접했다. 당사자 중에는 반성하는 입장을 표명하고 책을 절판시킨 사람도 있고, 처음에 아니라고 하다가 결국 인정한 사람도 있었다. 문제가 된 출판사와 저자들이 영업 방해와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겠다는 얘기도 직·간접적으로 많이 들었다. 어떤 분은 나를 고소하려고 변호사 비용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고, 다른 한 사람은 소송을 위해 증거 자료를 모으고 있다는 말도 들었다.

▲ 이성하 목사는 독자 중심의 문제 해결을 강조했다. 그는 학자들과 출판사들이 좀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독자의 불만을 수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김진규: 나의 경우도 페이스북에 쓴 글이 발단이었다. 2012년 6월 글을 하나 썼던 게 이슈가 되고 문제가 커졌다. 그러자 교회에서 이 문제에 대해 사과하도록 압력을 행사해 왔다. 나는 그 교회가 분란에 휩싸이지 않도록 조사위원회에 찾아가서 사과까지 했다. 그런데 여러 사람이 나를 명예훼손죄로 고소하겠다는 위협을 해 와서, 그 목사의 논문을 직접 조사해 봤다. 논문을 읽으면서 상당한 표절의 흔적들을 발견해, 증거 자료를 사진으로 찍어 그 목사에게 보내면서 회개하시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 목사가 나에게 침묵을 지켜 달라고 요청을 했다. 나는 교회가 내부적으로 문제를 잘 해결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그때 표절을 조사했던 조사위원장에게도 표절의 증거자료를 보냈다. 나중에 조사위원회가 당회에 더 자세한 보고서를 올리면서, 그 목사의 표절 사실이 누군가에 의해 언론에 유포되었다.

표절 사실이 인터넷에 공개되면서 사건의 내력이 일파만파 퍼지게 됐다. 이 일 때문에 나는 3년 넘게 수많은 공격을 받았다. 온갖 비난과 거짓말, 유언비어와 언론을 통한 거짓·왜곡·불법 보도에 시달렸다. 나는 문제가 드러난 이상 한국교회의 신뢰도가 떨어지지 않도록 바람직한 방향으로 잘 해결되기를 원했다.

출판사, 절판 및 독자 보상 먼저 하긴 하는데…현실적인 어려움도

양희송: 출판계 쪽의 이야기도 들어 보자. 출판사 또한 표절 문제의 또다른 당사자다. 독자들에게는 보상해야 하고, 저자들에게는 보상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다. 독자와 저자 사이에서 발생하는 현실적인 문제들은 무엇이 있나.

신현기: 우선 나의 의견이 출판사 전체의 입장이 아니라는 걸 말씀드리고 싶다. 표절이 발생한 경우, 저자는 독자와 출판사에게 책임이 있고, 출판사는 독자에게 책임이 있다. 출판사는 우선 자체적으로 표절 여부를 판단하되, 저자에게 표절 여부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고, 절판과 회수는 물론 독자들을 위한 보상 조치 등을 서둘러야 한다. 그리고 나서 저자에게 피해 보상을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저자에게 보상을 받기가 쉽지 않다. 저자에게 보상할 의지가 있다 하더라도 보상할 능력이 없으면, 모든 비용을 출판사 홀로 부담할 수밖에 없다. 저자에게 보상할 능력이 있더라도 보상할 의지가 없다면 소송을 통해서 보상을 받아 내야 한다. 그러나 분초를 다투어야 하는 출판사 업무의 특성상 지난한 소송 과정을 진행해 가기란 쉽지 않다. 결국 출판사가 모든 부담을 지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특히 재정 형편이 어려운 출판사일 경우 출판사 존립마저 어려워질 수 있다. 그러나 독자에 대한 책임과 스스로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출판사로서는 재정적 부담을 질 수밖에 없다.

양희송: 출판사가 저자의 원고를 다듬으면서, 일정 정도 표절을 거를 수 있는 가능성은 없나?

신현기: 출판하려고 할 때, 먼저 계약서에 '제삼자의 권리를 침해하면 민형사상 책임이 있다'는 조항을 반영하고, 이 사실을 저자에게 분명히 알리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또 표절에 대한 출판사 나름의 분명한 기준을 갖추어야 한다. 편집 과정에서 편집인의 관련 지식이나 독서 경험을 바탕으로 표절을 걸러 내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인간의 기억에는 한계가 있다. 표절 검사 프로그램을 활용할 수도 있지만, 기계적·기술적 점검일 뿐이고, 데이터베이스도 턱없이 부족하며, 정확한 방법도 아니다.

표절을 거르기 위해 출판사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어떤 글이 남의 글을 베낀 '장물'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밝혀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계약서를 제대로 쓰고 저술 과정에서 저자를 잘 안내하는 것이 중요하다. 저자의 글이 온전히 저자 자신의 글이라는 신뢰가 있어야, 출판사는 편집 본연의 일에 매진할 수 있고 그래야 출판의 질이 올라간다.

하지만 밝혀진 표절에 대해서조차 출판사가 표절 사실을 인정하지 않거나 후속 조치에 소홀하거나 심지어 표절 판정 여부를 저자에게 떠넘기면서 스스로 판단하지 않는다면, '무능한 출판사' 혹은 '장물아비 출판사'라는 오명을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 IVP 신현기 대표는 출판사 또한 독자들에게 최우선적인 대응을 취해야 한다고 했다. 출판사가 떠안아야 할 고충이 여러 가지 있지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독자의 입장이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양희송: 표절 문제는 남의 재산을 허락 없이 가져다 썼다는 점에서 저작권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맹호성 이사는 저작권을 다루는 입장에서 이번 표절 문제를 어떻게 보는가. 또 외국 출판사들은 어떻게 보고 있나.

맹호성: 저작권 에이전시 입장에서 인용 부호 한두 개 누락한 정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나 재산상의 침해가 발생할 정도로 저작물 도용이 있을 경우에는 문제가 된다. 해외 몇몇 저작권사에 저작권 침해를 판단하는 기준이 어떻게 되는지 문의해 봤다. 존더반(Zondervan)과 토마스 넬슨(Thomas Nelson) 출판사가 속한 하퍼 콜린스 출판 그룹(Harper Collins Christian Publishing)에서는 표절 분량이 전체의 5% 정도 되면 눈감아 주지만, 10% 정도 되면 과도한 저작권 도용으로 문제를 삼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아마 다른 곳도 5%부터는 문제로 인식하고, 국내 출판사들에게 재산상 손해배상을 청구하게 될 거다.

2009년 국내에 선례가 있었다. 국내 출판사가 내는 잡지 중 10년 동안 해외 저작물을 그냥 갖다 쓴 게 있었다. 그 잡지가 저작권을 침해한 비용이 억 단위가 넘었는데, 결국 그 출판사는 그 돈을 전부 해외 출판사들에 지불했다. 지금 국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해외 출판사는 아마 그때를 참고해 이번 문제가 대충 어떻게 돌아갈 것인지 감을 잡고 있다고 보면 된다.

논란이 될 만한 표절 판정은 '전문가에게', 보상 등 사후 처리는 일단 '先 조치 後 논의' 해야

양희송: 표절 여부를 가려내는 문제, 그리고 판명 이후의 처리 문제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눠 보겠다. 일단 표절 여부를 가려내는 게, 일반인 입장에서는 학술적이고 난해한 문제일 수 있다. 실제로 학계나 출판계에서 어떤 절차와 어떤 기준을 가지고 표절을 가늠하는가.

김진규: 표절을 판정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표절을 판정하는 기준은 국제법과 국내법이 상이하고, 국내에서도 교육부와 각 학교의 법이 다소 다르다. 먼저 직접 인용의 경우, 인용 부호를 적어도 네 단어에서 여덟 단어까지 연속된 글을 인용할 경우에는 인용 부호를 붙이고 주(註)를 다는 게 국제적인 관례다. 국내에서는 이게 상당히 완화돼 있다. 서울대 같은 경우는 연속 두 문장까지는 인용 부호를 달지 않아도 표절로 규정하지 않는다. 또 주로 학문적인 글에서는, 불가피한 경우 외에는 직접 인용 대신 간접 인용을 하도록 돼 있다. 자기 말로 패러프레이즈(paraphrase)하라는 것이다. 대신 그것도 피인용자의 독특한 아이디어에 해당하면 반드시 주를 달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반 지식에는 주를 안 달아도 된다. 달면 오히려 일반적으로 알려진 지식의 출처를 특정인에게 돌리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대신 일반 지식인지 아닌지는 전문가가 판단해야 하는 부분이다. 그래서 사실 이 문제는 전문성을 빼고 논할 수 없는 영역이다.

이런 이유로 가급적이면 표절 판정은 전문가들에게 맡기는 게 좋다. 표절 판정 기준과 절차는 교육부 훈령을 참고하면 될 것 같다. 교육부에서 '연구 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을 2014년 발표했다. 여기에는 표절 의혹을 받는 사람에 대해서 그가 연구를 수행한 공적 기관(대학교나 연구 기관 등)에서 표절 검증을 실시하고, 그 결과를 교육부에 보고하게 되어 있다. 표절 제보자와 표절 피의자를 보호할 수 있도록 해 뒀고, 제보자와 피의자가 신분 노출 등의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법적으로 막아 주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조사 위원으로 적어도 전문가가 50% 이상 참가해야 하고, 30% 이상은 소속 기관 사람이 아닌 외부인이 들어오도록 돼 있다. 

표절 관련해서는 교육부가 관련 규정을 잘 만든 것 같다. 내가 보기에는 교육부 규정대로만 하면 합법적으로 논란을 마무리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개인이 표절 여부를 판정하는 건 공신력이 없기 때문이다. 나중에 전문가가 봤을 때 표절이 아니라고 결론 나기라도 하면, 인터넷에 글 쓴 사람들이 명예훼손으로 걸릴 수 있다. 이런 부작용 때문에 정당한 절차에 따라 하는 게 좋다. 출판사도 공적인 결정이 내려지면 거기에 따르면 된다.

▲ 김진규 교수는 기독교 학계가 세상 학계보다 못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했다. 교육부가 만들어 놓은 지침에 따라, 공정하고 엄격하게 표절 판정 및 징계해야 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양희송: 김진규 교수님은 교육부 지침에 따라 처리하는 게 제일 깔끔한 방법이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공적 기관의 심사 문제는 잠시 후 좀 더 논의해 보도록 하겠다. 표절 판정만큼이나 발견 이후의 문제도 중요하다. 출판계 쪽에서는 사후 처리를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맹호성: 해외 저작권사 입장을 대변하는 에이전시로서, 기본적으로 출판사에 주로 요구하는 건 절판 조치다. 책이 계속 팔리고 있으면 해외 저작권사들과 법적 분쟁으로 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상당수 출판사들은 협조적으로 나온 상태다. 나와 저작권사 모두, 일이 더 이상 커지지 않았다면 좋겠다는 입장이다.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통보받은 것들을 보면, 성서유니온, 이레서원, 두란노 등 표절 논란이 된 도서의 출판사들은 전부 절판 조치를 했다. 현재 생명의말씀사만 입장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단, 국제제자훈련원은 예외다. 송병현 교수가 출판사를 직접 차리고 재고를 가져가서 계속 팔기로 했기 때문에, 이제 국제제자훈련원이 아닌 송병현 교수가 차린 출판사와의 문제가 됐다.

신현기: 그러나 검토해야 할 게 하나 있다. 계약 기간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출판사는 표절로 판정했으나 저자는 표절을 부인하는 경우, 출판사가 독자적으로 절판 조치를 취하면 저자로부터 소송을 당할 가능성이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맹호성: 저자의 동의 없이 그냥 절판하는 것은 분명히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 다만 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지금까지의 사례들에서는 저자가 내키지 않더라도 불가피하게 절판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 그리고 전체적이든 부분적이든 표절을 인정했기 때문에 절판 조치에 동의한 것으로 본다.

이성하: 어떤 분이 저에게 "당신 때문에 출판사 손해 본 게 1억 원이 넘는다"고 했다. 절판하면 그렇게 손해를 보는데 출판사가 어떻게 그렇게 어려운 조치를 취했겠나, 또 학자들이 자기 책 절판되기를 바랐겠나. 표절 문제가 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거다.

양희송: 이런 상황에서는 출판사가 먼저 절판 등의 상황 정리를 하고, 사후 발생하는 이견이나 분쟁은 알아서 처리해야 하지 않나.

맹호성: 일단 그렇게 하는 게, 과도한 저작권 무단 도용으로 인한 저작권상 재산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 참석자들은 '표절 인정' 이상의 확실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박수 쳐 주고, 표절 인정한 사람들에게 존경 어린 시선을 보내는 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사과'했다고 박수 쳐 주고 끝? 확실하게 조치할 수 있는 '새로운 기구' 있어야

양희송: 표절 반대 운동은 독자 운동, 소비자 운동의 측면이 강하다. 독자가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일단 표절 도서 때문에 독자들은 오히려 원서의 번역본을 접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 책을 표절해서 짜깁기한 한국 학자들의 권위가 높기 때문이다. 표절 도서가 대우받는 분위기가 만연하게 될 때 독자들의 수준이나 국내 출판 상황이 안 좋아질 수 있지 않나.

이성하: 요즘 문제 되는 분들은 어떻게 보면 고생했던 세대보다는 혜택받은 세대다. 지금 논란이 된 교수들은 한국교회 내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는, 아주 영악한 분들이다. 문제는 이 분들이 시대가 변했고 독자들의 눈이 밝아졌다는 걸 미처 모른다. '차세대 성서학자'라는 소리 들으면서 한동안 잘 나갔고, 강연 다니면서 여러 사람에게 존경받고, 심지어 한국교회 개혁의 기수로 나서 교계에 쓴소리 하던 분들이다.

나는 지금 이것을 한국 신학계 전체의 문제로 보진 않는다. 혹자는 "그렇게 하면 안 걸릴 교수가 누가 있겠냐"고 하는데, 나는 사람 단위로 보지 말고 책 단위로 보자고 한다. 예를 들어, 문제가 된 김지찬 교수님이나 양용의 교수님 같은 경우, 그분들의 박사 학위 논문은 아주 좋은 책이다. 문제가 드러나지 않은 책은 잠정적으로 표절이라고 보지 말고 좋은 책으로 봐 주고, 드러난 것만 갖고 얘기하자. "다 걸리는 문제 아니냐" 이렇게 싸잡지 말아야 한다.

김진규: 내 것이 아닌 것은 다른 사람의 것으로 인정해 주면 되는 건데, 안타깝다. 한편으로는 한국 땅에 표절이 이렇게 만연하게 된 것은, 표절한 사람에 대한 처벌 규정이 미비하다는 이유도 있다. 지난 3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사립학교법 개정안은, 징계 사유가 발생한 시점부터 3년까지는 처벌이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논란이 되는 것은 표절이 발생했을 경우에 '논문을 발표한 시점'을 기준으로 삼느냐 아니면 '표절이 발각된 시점'을 기준으로 삼느냐다. 서울대 같은 경우 논문을 발표한 날로부터 3년 이내에 표절로 밝혀지면 징계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럼 3년 지나면 표절이 아닌 게 되는가? 이 자체가 벌써 표절범에 대해 너무 관대한 것이다. 얼마 전 경희대 교수가 연구 논문을 표절한 게 걸렸다. 그 교수는 그 논문을 발표한 지 3년이 지났다면서 징계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런 식이면 대부분 다 징계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런 느슨한 징계 규율을 가지고 있어서는 제대로 컨트롤이 되지 않는다.

▲ 사회를 맡은 양희송 대표는, 표절 문제가 크게는 한국 독자들의 수준을 저하시키는 요인 중 하나라고 했다. 국내에 원서들이 번역되지 못하는 탓이다. 양 대표는 한국 학자들이 외국의 학문을 국내에 소개하는 '수입상' 노릇만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양희송: 문제를 접하는 독자들의 반응도 생각해 봐야 하지 않나. 표절 문제가 불거지면, 일단 독자는 굉장히 불쾌해하고 저자에 대해 분개하다가, 또 출판사가 절판하면 태도를 바꿔 박수 쳐 준다. 이런 것만으로는 '제대로 된 결과를 이끌어 냈다'고 볼 수 없지 않은가.

이성하: 문제를 조금 더 명확히 보자면, 지금 표절 문제를 제기해서 해결되지 않은 사람이 더 적다. 해결된 사람이 2/3가 넘고, 안 된 사람은 단 세 명, 김지찬·이한수·송병현 교수다. 이한수 교수 책은 그래도 절판 조치가 됐으니 예외로 하면, 두 명이 남는다. 표절에 대한 명백한 근거를 제시했을 때, 사과하고 절판 조치하는 비율이 80% 이상 되는 것이다. 시스템은 잘 가동되고 있고, 지속적으로 제보가 들어오고,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출판사·저자는 문제를 인지하고, 사과할 것은 사과하고, 절판하고, 미비하지만 보상 조치까지 하고 있다. 오히려 이렇게 안 하는 사람은 적다.

신현기: 해결되고 있다니 고무적이다. 그러나 사태를 무마하는 수준이 아니라,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독자 운동과 함께 표절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는 '공적 과정'이 중요하다. 한국 사회와 교계에 가장 부족한 부분이 바로 이 공적 과정이다. 표절 여부를 정확히 판정하는 공적 절차가 필요하고, 표절 판정이 나면 표절 당사자는 깨끗하게 표절을 인정하고, 합당한 징계를 받고, 징계가 풀리면 사안의 성격에 따라 적절한 위치로 복귀하는 공적 절차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서로의 감정을 건드리거나 인격을 모독하거나 소속 집단을 통째로 비난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표절자도 표절 문제 제기자도 모두 다칠 수밖에 없다. 이성하 목사가 그러한 이유에서 "사람 단위로 보지 말고 책 단위로 보자"고 했는데, 이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맹호성: 독자들은 표절 의혹을 받았던 교수가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면 존경스러워 한다. 인정하기 힘들지만 용기를 낸 모습,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다시피 하는 모습을 높게 산다. 하지만 거기에 열광하면서 갑자기 환영과 감사의 댓글을 다는 걸 보면 솔직히 배신감을 느낀다. 이런 부분에서 한계가 있다. 결국 표절한 사람들에 대해 어떤 조치까지 이루어지게 하려면, 독자 운동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현재까지 어느 연구 기관에서도 이 문제로 조사를 진행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 예를 들어 '신학 서적 표절 반대' 페이스북 그룹에 신학생들도 많이 있다. 그들 중에는 제보하는 학생도 있고, 통신원 역할을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 사람들도 공식적으로 학교에 가서는 별다른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고 수업 착실히 듣는다. 당장 이해관계가 걸렸을 때는 학생들도 가만있는 것이다. 교수들도 동료에게 칼질이 되는 것은 피하려 하는 분위기다. 학교나 학회 등 공적 기관에서 이걸 할 수 없다면,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같은 제3의 공공 기관에서 한시적이거나 장기적으로 문제를 정리하고 정화하는 역할을 해 주면 좋겠다.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이걸 정리하는 게 있어야지, 한 번 문제 제기하고, 사과하면 한 번 박수 치고… 그냥 그렇게 끝나면 안 된다.

▲ 맹호성 이사는 "한국 신학계와 신학 출판계는 2015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만큼 독자 중심의 표절 반대 운동이 나름의 성과를 거두었다는 것이다. 그는 표절 반대 운동이 여기서 머물지 말고 제도적이고 조직적인 움직임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김진규: 인터넷상에서 의혹 제기하고, 표절 인정하고, 그러면 또 박수 쳐 주고, 이런 식보다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정말 표절이 얼마나 나쁜 것인지를 알게 해야 한다. 학계가 '표절을 반드시 근절하겠다'는 의지를 제대로 보이려면, 표절한 사람에 대한 공식적인 절차를 제대로 밟아야 한다. 공식 결정이 나면 결정에 걸맞은 징계를 내릴 수 있다. 만약 사과하고 아무런 징계 조치 없이 문제를 끝내면 또 표절할 수도 있다.

먼저 기독교 대학, 기독교 신학교, 기독교 학회가 도덕적인 면에서 세상보다 나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번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아무개 교수가 예일대 교수 논문을 베낀 적이 있었는데, 예일대 교수가 자신의 글을 표절한 부분에 대해 조사해 달라고 한국 '국제정치학회'에 연락했다. 학회가 조사해서 판정을 했고, 표절 판정을 받아들인 그 서울대 교수는 사임했다. 세상은 되는데 왜 기독교 학회는 안 되나. 이렇게 해서 '표절하면 해임도 될 수 있구나' 하는 두려움을 느낄 필요가 있다. 그래야 만연해 있는, 표절이라는 나쁜 관행이 이 땅에서 근절될 수 있지 않을까.

양희송: 이제 논의를 마무리하겠다. 표절 논란은 교계 전체의 문제인 만큼, 이를 전담할 하나의 기구가 필요하지 않을까. 시민단체나 학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면 여러 경로로 이런 제보를 받는다든지 할 수 있겠다. 그 기구가 처벌의 주체가 될 수 없겠지만, 출판사, 교회, 당사자, 교육부 등 관련 기관에 통보하는 등의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성하: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해외에는 표절하면 안 된다는 문화가 조성이 돼 있어 별도의 기구가 필요 없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문화가 없다. 지금 표절 반대 그룹은 한시적인 움직임이다. 이런 일들을 임의로 모인 개인들이 하는 것보다, 공신력 있는 집단에서 나서 주고, 학계가 공감하고, 신학자 자정 선언까지 해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그간 <뉴스앤조이>가 좋은 장을 만들어 줬는데, 다른 단체들도 나서서 도와주면 좋겠다. 임의로 모인 개개인들이 하기에는 너무 크고 힘든 문제다.

나름 격려가 되는 건 출판하기로 계약했던 교수들이 계약을 미루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각주 달고 다시 점검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것만으로도 지금까지 한 행동이 신학계에서 워치독의 역할은 한 것 같다.

양희송: 그간 진행 과정에서 격한 반응과 맘 상하는 일들이 있었는데, 이 과정을 통과하지 않았다면 표절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사안인지 인식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제는 이걸 제도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대안과 조직을 만들어야 할 시기가 도래한 것 같다. 여기 모인 분들도 기여해야겠지만, 바깥으로부터 더 많은 분들의 노력과 참여가 필요할 것 같다. 아무쪼록 교계 내에서 책의 저술, 표절 문제에 대해 2015년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 상징적인 시기로 자리매김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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