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열심히 연구하고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얻어 낸 독창적인 생각을, 자기 것처럼 가져다가 포장해서 파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신학계도 마찬가지다. 여태껏 살펴본 표절 의혹 교수들이 대부분 그런 방식으로 남의 것을 가져다 썼다. 다른 학자 글 중에서 중요한 부분이나 핵심 부분을 가져와서 그럴싸한 단어로 문장만 조금 바꾼다. 그러고는 포장을 달리해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책을 팔았다.

최근 표절 의혹을 받고 있는 여러 신학교 교수 중에서 이번에 소개할 사람은 송병현 교수다. 그는 미국 시카고에서 트리니티복음주의신학교(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를 졸업하고 1997년부터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구약학을 가르쳐 왔다. '<엑스포지멘터리> 시리즈'라는 제목으로 총 22권의 구약 해설서를 출판했다. 이 책은 목회자와 평신도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늘 주석 판매 부문 상위권에 랭크되었다. 송 교수는 CGNTV에서 이 책을 교재로 강의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지난 4월부터, 페이스북 '번역이네집' 그룹에서는 <엑스포지멘터리> 시리즈(국제제자훈련원)를 둘러싸고 표절 논쟁이 한창이다. 송 교수의 책에서 출처 표기가 없는 도표가 발견된 것을 시작으로 여러 부분에서 표절 의혹이 불거졌다. 어떤 점이 문제인지 시간 순으로 알아보자. 

드러난 본문 표절 정황에 "인용 원칙 따랐다" 반박

▲ 송병현 교수가 지은 <엑스포지멘터리> 시리즈(국제제자훈련원)이 표절 논란의 중심에 있다. 이성하 목사가 송 교수의 책에서 다른 학자의 글을 표절했다는 정황을 제시하자, 송병현 교수는 <엑스포지멘터리>는 자신이 새로 만든 장르이기 때문에 자신이 정한 인용 원칙을 존중해 달라고 했다.

처음 문제를 제기한 건 이윤석 목사(남서울교회)다. 지난 4월, 그는 김지찬 교수의 책 <요단강에서 바벨론 물가까지>와 송병현 교수의 책 <엑스포지멘터리 룻기 에스더>에서 똑같은 도표를 발견했다. 번역이네집에 비교를 요청했다. 둘 다 출처 표기는 없었다. 

그동안 교수들의 표절 사실을 지적해 온 이성하 목사가 이번에도 총대를 멨다. 문제가 불거지고 며칠 후, 그는 송병현 교수에게 개인적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자신이 발견한 표절 부분을 공개하기에 앞서 송 교수가 먼저 잘못을 시인하고 책임 있게 사건을 해결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송 교수는 글을 정리 중이라면서 "기다리세요"라는 짧은 대답을 남겼다. 

3일 후, 송병현 교수는 번역이네집 그룹에 본인 이름으로 원고지 50매 분량의 해명을 올렸다. 그런데 해명 내용이 문제의 본질을 벗어나고 있었다. 이성하 목사는 책의 내용을 베꼈다고 '표절 사실'을 지적했는데, 표절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고 '인용 표기의 원칙'만 설명했다. 

<엑스포지멘터리> 시리즈에서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은 인용 원칙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은사들에게 배운 원칙을 바탕으로 인용 여부를 결정한다고 했다. 특히 누구나 알 수 있는 기정사실이라든지, 이미 학계에서 보편화된 지식 등은 따로 인용 표기를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이 해명 글에는, 그가 주장한 인용 원칙에 문제를 제기하는 댓글들이 주를 이뤘다. 미국에서 같은 학교를 졸업했다는 한 목사는, 송 교수가 제시한 인용 원칙이 현재 트리니티복음주의신학교에서 통용되는 표절 기준에 위배된다고 했다. 특히 이미 누군가가 출판한 저작물이라면 반드시 각주를 달고 출처를 밝혀야 한다고 했다. 

송병현 교수의 긴 답변에도 많은 사람들이 분개한 것은, '표절을 했는가'에 대한 질문에는 직접적인 답을 회피했기 때문이다. 대신 송 교수는 <엑스포지멘터리> 시리즈가 성경 주석 분야에서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장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이 문제 삼는 인용 방법이나, 각주 유무는 책의 장르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 같다고 했다. 

'엑스포지멘터리'(Exposimentary)는 엑스포지터리(Expository·해설)와 코멘터리(Commentary·주석)를 합친 말이다. 송 교수는 엑스포지멘터리가 본인이 개척한 성경 주석의 새로운 분야라고 했다. 하지만 이미 영미권에서는 많이 통용되는 장르다. 영미권에서 출판되는 책들은 해설서라고 하더라도 철저하게 각주를 달고 인용 표시를 했다. 송 교수는 엑스포지멘터리가 새로운 장르라는 이유로 인용 원칙도 직접 정했지만, 이는 여전히 '본문을 표절했는가'에 대한 적절한 답이 될 수 없다. 

1차 출처 글 확인도 안 하고 한 것처럼 써

이성하 목사는 송병현 교수의 해명 글이 올라온 다음날인 4월 21일, 송병현 교수가 다른 학자의 글을 표절했다는 증거를 제시했다. 그가 제시한 자료들을 살펴보자. 

▲ 첫 번째 사진은 앤더슨의 논문에서 발췌한 것이다. 그리고 아래 사진 중 왼쪽은 송병현 교수의 책에 나오는 내용이고, 오른쪽은 케네스 매슈스의 책에 나오는 내용이다. 자세히 보면 송병현 교수는 앤더슨의 논문을 참조했다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매슈스의 책을 그대로 옮겨 온 것이다.

이 두 사진 중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송 교수가 첫째 문단에 (cf. Anderson)이라고 표기해 놓은 부분이다. 그는 참조 표시에 1차 출처인 앤더슨을 언급했다. 송 교수 자신이 앤더슨의 논문을 찾아보고 위의 내용을 발견해서 쓴 것처럼 포장했다. 그러나 이성하 목사는 이 부분이 케네스 매슈스(Kenneth Matthews)가 쓴 <뉴어메리칸주석>을 베낀 거라고 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에서다. 

앤더슨의 논문에는 송 교수가 첫 문단에 쓴 해설이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송 교수가 직접 해설을 쓴 것일까. 아니다. 매슈스의 주석에 그대로 나온다. 송 교수는 매슈스의 주석을 보면서 해설과 구조 분석을 복사해 왔고, 그 부분에 인용 표시가 되어 있던 앤더슨의 논문을 참조 표시로 넣은 것이다. 자신이 직접 확인한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다. 

송 교수가 매슈스의 주석을 베꼈다고 하는 또 하나의 근거는 구조 분석에서 찾을 수 있다. 매슈스가 앤더슨의 구조 분석을 인용해서 자기 책에 쓸 때, 그는 앤더슨이 쓴 것과 똑같이 쓰지 않았다. 중간 부분에 살짝 변화를 줬다. 그러나 송 교수는 그 부분을 인지하지 못한 채, 앤더슨의 것이 아닌 매슈스의 구조 분석을 그대로 자신의 책에 옮겨 왔다. 앤더슨의 것과 매슈스의 것이 어떻게 다른지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1차 출처를 읽은 것처럼 인용하는 것은 '학문적 허영'이라고 주장하는 전문가가 있다. <표절론>(현암사)의 저자 남형두 교수(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는 저술가가 자신이 접한 2차 출처(매슈스)를 배제하고, 접하지도 않은 1차 출처(앤더슨)만 기재하는 경우는 인용과 관련하여 가장 대표적인 학문적 허영 사례라고 했다. 

인용 표기해도 베낀 것은 베낀 것

송 교수가 나름대로 뚜렷한 인용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데 '설마 표절을 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앞으로 소개할 내용은 위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인용 원칙과 별 상관없는 내용이다. 남의 글 중 일부를 그대로 번역해서 자기 글 사이에 끼워 넣었다. 그러면서 원저자의 이름을 빼고 자신이 쓴 것처럼 포장했다. 아래를 보자. 

▲ 송병현 교수(왼쪽)는 프리드먼이 쓴 글(오른쪽)의 한 문단을 그대로 번역했다. 그는 번역하는 과정에서 프리드만이 쓴 글을 자신이 쓴 글처럼 둔갑시켰다.

실수로 보기에는 이상한 점이 있다. 저 정도로 한 문단 전체를 번역해서 쓰는 것은 송 교수가 제시한 인용 원칙 중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책의 내용이 누구나 알 수 있는 내용도 아니고, 기정사실화되어 있는 정보도 아니다. 누구의 글인지, 어디서 온 글인지 분명하게 알 수 있었지만, 송 교수는 문단 끝에 (Friedman)이라고 쓰는 것이 전부였다. 글을 번역하면서 본문의 'I'를 '필자'로 바꾼 점도 고의적으로 보인다. 원문에서 'I'는 분명히 프리드만을 지칭하는 것이지만 송 교수는 자신을 지칭하는 말로 변경했다. 

국제제자훈련원, "정오표 게시하고 스티커 작업하겠다"

송병현 교수의 표절 문제가 불거지고 약 1주일 후인 4월 28일, 도서 출판 국제제자훈련원은 중간 입장을 발표했다. 문제가 된 엑스포지멘터리 시리즈를 3주 동안 출고 정지하고 시리즈 전체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독자들의 제보도 받겠다고 나름대로 열린 모습을 보였다. 

계속해서 마감 시한을 연장하던 국제제자훈련원은 6월 3일 최종 입장을 발표했다. 불분명했던 출처 표기와 관련해 저자가 수정 요청한 내용을 표로 제작해 출판사 블로그에 공지할 것이라고 했다. 각주가 누락된 것 중에 스티커로 보완할 수 있는 부분은 보완하겠다고도 했다. 출판사는 송 교수의 말을 빌려 다른 영미권의 주석들과 비교해 봤을 때, 그의 책이 각주와 참고 문헌의 표기법에 있어서 큰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출판사의 발표에는 그 어디서도 표절과 관련된 내용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송 교수와 출판사가 조금 더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 줄까 기대하던 사람들은 국제제자훈련원의 최종 발표에 실망했다. 그중에는 <엑스포지멘터리> 시리즈를 직접 구입해서 공부했던 평신도와 목회자들도 있었다. 주도적으로 표절 문제를 제기했던 이성하 목사(원주가현침례교회)는 현재 출판된 시리즈만 해도 22권으로 워낙 방대하기 때문에 출판사가 쉽게 포기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표절 논란이 지적 재산권 싸움으로 비화

송병현 교수가 제시한 인용 원칙이 타당하다고 하자. 그렇게 되면 본문은 부분적으로 베꼈지만 출처를 밝혔으니 별 문제 되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문제는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표절에 있어서 또 다른 개념이 등장하는 것이다. 송 교수가 한 행동은 '출처 표시를 갖춘 짜깁기형 저술'에 해당한다. 

남형두 교수의 <표절론>(현암사)에는 이와 관련한 내용이 조금 더 자세하게 나온다. 그는 책 348쪽에서 "출처 표시를 갖춘 짜깁기형 저술'은 저작권 침해형 표절(광의의 표절)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짜깁기를 했더라도 창작물이 편집 저작물임을 밝힌다면 괜찮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표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했다. <엑스포지멘터리> 시리즈의 앞 표지에는 '송병현 지음'이라고 써 있다. 

이런 이유로 송병현 교수의 표절 여부는 새로운 분쟁의 소지를 남겼다. 해외 기독교 서적을 한국 출판사들과 연결하는 저작권 중개인이 이 문제에 개입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저작권 에이전시 '알맹2'의 맹호성 이사는 송 교수가 해외 저자의 글을 무단으로 베껴 쓴 부분을 분명하게 파악해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벌써 해외 원작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송 교수와 같은 경우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문의하고 있다. 

맹 이사는 아무리 송 교수나 국제제자훈련원이 나름의 편집 기준을 세워 인용 표기나 각주가 누락됐다 하더라도, 남의 글을 그대로 베껴 쓰고 싶으면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송 교수가 여러 곳에서 베껴 온 글을 짜깁기해 자신의 이름으로 판매하고 있는 행위는 명백하게 상업적인 용도로 원저자의 글을 사용하는 것이다. 맹 이사는 해외 출판사와 저작권 무단 도용과 관련해 어떻게 대처할지 계속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맹호성 이사가 이야기하는 저작권 도용 문제가 어떻게 표절과 연관성이 있는지, 남형두 교수가 쓴 <표절론>의 한 부분을 인용한다. 

"이러한 저작권 침해형 표절도 표절(협의의 표절)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나무' 하나하나는 출처 표시를 달아 타인 귀속을 인정했지만, 전체 '숲'은 자기 이름으로 했다는 점에서 큰 틀에서 보면 타인의 저작물을 자기 것인 양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전형적 표절을 피하기 위해 출처 표시라는 외관은 갖추었지만, 실질은 표절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표절론>(현암사), 4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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