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을 뜻하는 영단어 Plagiarism은 라틴어 Plagiarius에서 유래했다. 이 뜻은 '유괴범(kidnapper)'이라는 뜻이다. 남의 아이디어를 훔치는 것이 곧 남의 자식을 훔치는 것과 같다고 여긴 것이다. 신학자들은 한 발 더 나아가 표절을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행위'로 보기도 한다.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표절은 제8계명을 어기는 행위'라고 가르치고 있다.

신학교 교수들의 표절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뉴스앤조이>는 6월 4일 총신대학교의 김지찬 교수를 시작으로, 신학자들의 표절 문제를 내보내고 있다. 현재까지 거론되고 있는 신학자는 모두 6명이다. 김지찬 교수의 경우 그의 대표 저서 <요단강에서 바벨론 물가까지: 구약 역사서의 문예적-신학적 서론>(생명의말씀사) 곳곳에서 명백한 표절의 흔적이 발견됐다. 김 교수는 아직까지 입장 표명을 유보하고 있다. (관련 기사: 16년간 잘나갔던 신학생들의 교과서, 표절 논란) 나머지 교수들도 대부분 입장을 안 밝혔거나 표절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문제가 제기된 6명의 신학자 중에는 고개를 숙인 이들도 있다. 에스라신학대학원대학교의 양용의 교수(신약학)와 성결대학교 전정진 교수(구약학)가 그들이다. 이들은 둘 다 한국성서유니온선교회(성서유니온)의 <어떻게 읽을 것인가> 시리즈를 집필했는데, 이 책들이 문제가 됐다. 양용의 교수는 <하나님나라 어떻게 읽을 것인가>, <마태복음 어떻게 읽을 것인가>, <마가복음 어떻게 읽을 것인가>, <히브리서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전정진 교수는 <레위기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썼다.

"문제의 소지가 있는 글쓰기...앞으로 배워서 고치겠다"

먼저 문제가 된 것은 양용의 교수다. 3월 18일, 페이스북 그룹 '번역이네 집'에 '양용의 교수가 표절을 했다'는 내용의 글을 이성하 목사(원주가현침례교회)가 올렸다. 이 목사는 양용의 교수가 쓴 <마가복음 어떻게 읽을 것인가>가 양 교수의 스승인 리처드 토마스 프란스(R.T. France) 교수의 책을 상당 부분 베꼈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이 목사는 다른 저서 <마태복음 어떻게 읽을 것인가>, <하나님나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도 비슷한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양 교수는 2005년에 쓴 <마태복음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썼다. 2014년에는 프란스 교수의 <마태복음> 원서가 기독교문서선교회(CLC)를 통해 한국어로 번역됐다. 그런데 <마태복음>의 한국어판을 접한 이들이 이 책의 내용이 양 교수의 <마태복음 어떻게 읽을 것인가>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두 책의 문장을 대조해 보자.

두 책의 내용은 번역상의 차이가 있을 뿐 크게 다르지 않다. 내용이 비슷해도 인용 표기를 했으면 모르겠는데, 양 교수는 별다른 인용 표기도 하지 않았다. 양 교수는 프란스 교수의 글뿐만 아니라 다른 신학자들의 글 역시 출처를 제대로 밝히지 않고 썼다.

문제가 불거지자 양용의 교수는 3일 만에 입장을 발표하고 사과했다. 다만 그는 악의적으로 남의 글을 가져다 쓴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사과문을 통해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쉬운 주해서 수준으로 글을 써 달라는 부탁이 있었고, 책에서 각주를 가급적 적게 해 달라는 부탁이 있었다. 때문에 프란스 교수의 글을 책의 필요에 맞게 과감히 단순화하거나 재기술했다. 하지만 불편한 마음을 느끼신 모든 분들에게 송구한 마음이다. 앞으로는 같은 실수를 안 하도록 유념하겠다"고 했다.

양용의 교수는 <뉴스앤조이> 기자와의 통화에서 좀더 상세하게 입장을 밝혔다.

"서문에 밝혔다시피, 책을 쓸 때 다른 신학자들의 도움을 받았고 많이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얘기하고 그 사람들의 이름과 책을 명기했다. 그러나 그렇게 했다고 해서 그 사람들의 글을 인용 없이 내 마음대로 쓰겠다는 건 아니었다."

▲ 양용의 교수는 3월 20일 입장을 내놨다. 양 교수가 SNS를 하지 않는 관계로 성서유니온 담당자를 통해 대신 입장을 밝혔다. 내용의 핵심은 '문제 제기에 대해서는 수용하겠으나 일방적으로 표절로 몰아가지는 말아 달라'는 것이었다. 그는 앞으로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하겠다고 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사과문 전문을 볼 수 있다.

성결대학교의 전정진 교수도 양용의 교수의 경우와 비슷하다. 그의 저서 <레위기 어떻게 읽을 것인가>가 그의 스승 고든 웬함(Gordon Wenham)의 책 <레위기>를 대부분 그대로 가져왔다는 게 문제였다. 이것도 <레위기> 원서가 2014년 부흥과개혁사를 통해 한국어로 번역되면서 수면 위로 드러났다.

다만 전 교수의 사례는 다른 교수들의 문제처럼 공론화되지는 않았다. 양용의 교수 문제가 불거지며 몇몇 사람들이 '(전정진 교수의) 레위기도 문제가 많다'는 말을 했다. 이성하 목사가 전 교수에게 '<레위기 어떻게 읽을 것인가>도 문제가 많다'는 내용의 메일을 보냈고, 전 교수가 대응한 것이다.

논란이 커지기 전에 전정진 교수가 먼저 나섰다. 그는 저서에 인용을 제대로 하지 않은 문제가 있다고 인정했다. 전 교수의 입장도 양용의 교수와 비슷했다. 그도 책 서문에 "(웬함 교수가) 본서의 저술에 관심을 가지고 격려하시며 교수님의 책을 대폭 인용하는 것을 관대하게 허락해 주셨다"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일반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일일이 출처 표기를 하거나 각주를 달지는 않았다고 했다.

전 교수는 어쨌든 이런 논란이 발생한 건 모두 자신의 잘못이라고 인정했다. 전정진 교수는 <뉴스앤조이> 기자와의 통화에서 "다른 이를 가르치는 교수로서, 책을 쓸 때 엄격하게 하지 못한 점은 잘못한 것이다. 하나님 앞에 부담스러운 심정이고, 힘들다. (이런 일이 벌어진 와중에) 내가 다른 사람들 앞에 서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 싶다. 여러 사정상 강의도 하고 설교도 계속해야 하는데, 이것들을 감당하는 것이 엄청난 부담이다"고 했다.

그는 신학대학원 채플 시간에 학생들과 동료 교수들 앞에 자진해서 사과했다. 당시 채플 설교를 맡았던 남오성 목사(일산은혜교회)는 "몇몇 사람 이외에는 (표절 문제가 불거진 것을) 잘 모르는 상황이었는데 전정진 교수님은 대단히 적극적으로, 받는 사람이 당혹스러울 만큼 사과를 하셨다. '굳이 그렇게까지 하셨어야 하나' 생각이 들 정도로 미안함을 표시하시고는 허리를 숙이셨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성서유니온, "문제 도서 절판·보상 조치하고 다른 책들도 문제 여부 검토하겠다"

표절 논란에 휩싸이면 출판사로서도 난감할 수밖에 없다. 출판사의 위상에 흠이 생길뿐더러, 금전적으로도 많은 부분에서 손해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성서유니온도 이번 문제가 불거지기 직전에 인쇄를 했던 새 책들까지 포함해 수천 부가 넘는 책을 폐기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출판사가 일일이 표절 여부를 확인하면서 책을 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고, 일이 벌어진 뒤 '공범'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기도 한다. 이번 <어떻게 읽을 것인가> 논란에서도 '책에 각주를 최대한 쓰지 말아 달라'고 저자들에게 요청한 부분 때문에 출판사에서 표절을 조장한 것 아니냐는 의심도 받았다.

성서유니온 출판국의 천서진 팀장은 "<어떻게 읽을 것인가> 시리즈가 나온 지 오래됐고, 당시 기획자들 중에 현재 출판국에 남아 있는 사람이 없어 정확한 상황을 알기는 어렵다. 다만 각주가 많이 달리면 평신도 독자들이 부담스러워했던 점을 고려해 저자들 본인의 언어로 이해하기 쉽게 풀어 달라는 뜻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성서유니온은 문제 발생 초기 이렇다 할 해명이 없었다. 때문에 늑장 대응이나 은폐 의혹을 받기도 했다. 천 팀장은 "사실 양 교수의 표절 문제가 거론됐을 당시 출판국이 가장 바쁜 주간이었다. <매일성경> 마감 주간이라 다른 업무는 거의 못 한다고 봐도 무방한데, 하필 그때 사건이 발생했다. '양 교수와 성서유니온이 뒤에서 음모를 꾸민다, 대답을 회피하고 시간을 질질 끈다'는 추측이 난무했지만, 그런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했다.

이번 일로 성서유니온은 적지 않은 부담을 떠안았다. 대책 회의 끝에 성서유니온은 전정진 교수의 <레위기 어떻게 읽을 것인가>와 양용의 교수의 <마가복음 어떻게 읽을 것인가>, <하나님 나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마태복음 어떻게 읽을 것인가>, <히브리서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절판하고, 서점에 협조문을 보내 판매를 중지한 후 전량 회수했다. <레위기 어떻게 읽을 것인가>, <마가복음 어떻게 읽을 것인가>의 경우, 전국 122개 서점에서 4월 초부터 5월 말까지 도서 상태 여부와 관계없이 환불해 주거나 성서유니온의 다른 책으로 등가 교환해 주었다.

성서유니온은 앞으로 똑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 마련에도 나섰다고 했다. 천 팀장은 우선 <어떻게 읽을 것인가> 시리즈의 다른 책들도 비슷한 문제가 없는지 저자들에게 확인을 요청해 놓은 상태고, 문제가 있으면 추가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현재 집필 중인 저자들에게는 인용이나 참조 시 더욱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했다.

▲ 성서유니온은 4월 10일부터 5월 31일까지 <레위기 어떻게 읽을 것인가>와 <마가복음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구매한 독자들에게 보상 조치를 했다. 성서유니온은 다른 도서들에서도 같은 문제가 발생하면 추가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사과했다고 해서 면죄부 주어진 건 아니다..."표절은 표절"

이성하 목사는 양 교수의 사과 자체에 의문을 제기했다. 양용의 교수가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했다기보다 면피용 제스처를 취했다고 했다.

이 목사에 따르면, 양 교수는 처음부터 표절을 인정하지 않았다. 최초 이 목사가 문제를 제기했을 때 성서유니온을 통해 '쉬운 주해서 수준으로 글쓰기를 한 것이라 표절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성서유니온의 발표에 이성하 목사는, "해외 한 교수의 강의안을 그대로 가져다 쓰지 않았느냐"며 양 교수에게 개인적으로 연락을 취했다. 그러자 양 교수가 입장을 급히 바꿨다. 이처럼 성서유니온과 양용의 교수가 잘못을 시인하게 된 데는 진정성이 아닌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이 목사는 말했다. 

이 목사는 "양 교수가 프란스 교수 글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학자들의 글도 수없이 가져다 썼다"고 반박했다. 진정성 측면에서 양용의 교수의 사례와 전정진 교수의 사례를 다르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표절'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도 분명히 논란의 여지가 있다. 두 교수는 모두 출처 표기를 제대로 하지 않았지만, 표절은 아니라고 봤다. 의도적으로 자신의 생각인 양 가져다 쓴 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어느 부분이 원저자의 글이고 어느 부분이 글쓴이의 생각인지 알기가 어렵다면 표절로 볼 만한 소지가 있다. 지적재산권 전문가인 남형두 연세대학교 교수는 그의 저서 <표절론>에서 "직접인용이건 간접인용이건 타인의 표현이나 아이디어를 가져다 쓰면서 출처 표시를 하지 않고 자기 것인 양하면 표절에 해당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들은 일일이 다 출처를 표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모종의 관행에 따라 저술했다고 밝혔다. 양용의 교수는 "기존 한국 사회의 글쓰기는 출처 표기나 인용에 있어 다소 느슨했던 것 같다. 그런 공감대가 있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전정진 교수도 "제3자가 (표절 문제를) 걸면 걸린다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내 부족함과 잘못을 인정했다"고 말했다. 한 출판사 관계자도 "이전까지 (출처 표기에 대한 잣대는) 확실히 느슨했던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두 교수가 사과했다고 해서 이들에게 절대적인 면죄부가 주어진 건 아니다. 진정성 논란부터 시작해서, 표절 여부를 가리는 문제가 끝난 건 아니기 때문이다. 이와는 별도로 원서 출판사와 다툼이 발생할 수도 있고, 교수 신분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다만 이들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독자와 학교 구성원에게 사과하고, 출판사와 함께 도서 절판과 보상이라는 조치를 했다. 이들의 모습은 앞으로 계속될 신학교 교수들의 표절 논란에 하나의 선례가 됐다.

신학 교수들의 표절 논란 취재는 이성하 목사의 제보와 자료 준비로 시작되었습니다. 이 기사가 나간 뒤, 이성하 목사가 "양용의 교수의 사과 및 입장 발표가 '진정성이 결여된 면피용 행동'"이라고 지적하고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뉴스앤조이>는 충분히 일리가 있다고 판단해 추가 취재 후 그의 입장을 반영했습니다. (기사 수정 시각 6월 8일 0:20)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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