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경숙 씨의 표절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됐다. 한 네티즌은 신 씨가 표절한 것으로 의심받는 내용을 재치 있게 패러디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 냈다. 사람들은 표절 사실 자체보다 출판사와 저자가 눈치만 보며 내용을 부인하는 데에 더 격분했다. (네이버 뉴스 갈무리)

6월 16일, 소설가 이응준 씨가 인터넷에 "신경숙이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을 베꼈다"며 신 씨의 표절 문제를 고발했다. 신 씨가 그의 작품 <전설>을 쓰면서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 내용을 가져다 썼다는 것이었다. 당장 한국 문학계가 들썼였다. 대상이 유명 작가 신경숙이기에 파장이 컸다. 언론사마다 신 씨의 표절 사건을 앞다투어 보도했고, 해당 기사에는 수천 건의 댓글이 달렸다. 신 씨가 "그런 책(<우국>)은 알지도 못한다"고 반응했지만, 이 문제가 제기된 게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 알려지며 일은 더 커졌다.

표절 자체도 충격이었지만 사람들을 더 분노하게 한 건 해당 책을 출판한 '창비'의 입장이었다. 한국 문학을 대표해 왔고, 한국의 지성을 상징해 온 창비가 "두 작품의 유사성은 전체 작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며 신 씨를 두둔하고 나선 것이다.

출판 권력과 유명 작가의 '침묵의 카르텔' 실체가 드러났다며 많은 사람들은 격분했다. 소설가 고종석 씨는 자신의 트위터에 "이게 다 신경숙 씨가 창비에 벌어 준 돈 탓이다. 창비는 한때 거룩했던 제 이름을 돈 몇 푼과 맞바꿨다"며 창비의 무책임한 태도에 분노했고, 이어 “창비의 입장은 독자들을 돈이나 갖다 바치는 호구로 봐 왔고, 앞으로도 호구로 보겠다는 뜻”이라는 말도 했다.

한국 신학계도 올 상반기 유명 신학자들의 '표절 문제'로 들끓었다. 3월 초 이한수 교수(총신대학교)를 시작으로 양용의(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김지찬(총신대학교), 송병현(백석대학교), 이필찬(이필찬요한계시록연구소), 이성훈(방배아름다운성결교회), 박철우(나사렛대학교) 등의 학자가 표절 의심을 받았다.

신학자들과 출판사 일부는 문제를 시인하고 보상 의사를 밝혔는가 하면, 문제가 없다는 곳도 있는 등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뉴스앤조이>는 이들이 반응을 내놓기까지 어떤 속사정이 있었는지, 신학자와 기독교 출판계는 어떤 관계였는지를 알아봤다.

저자의 입만 바라보는 출판사들

대체로 출판사들은 표절 문제가 발생하면 저자의 입장에 따라 결정하겠다고 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저자가 어떻게 나오는지를 기다렸다. 저자가 '표절이 맞다'라고 하면 절판 등 해당 책에 대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송병현 교수의 <엑스포지멘터리>를 낸 국제제자훈련원은 6월 3일 자사 블로그를 통해 입장을 발표했다. 국제제자훈련원은 공지를 통해 거의 저자의 입장을 그대로 대변했다. 문제가 된 부분은 새로 인쇄해 스티커를 붙이는 등의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이었다. 앞으로 논란이 생기면 저자와 상의하여 대응 방법을 모색할 것이라고 했다. 국제제자훈련원 관계자는 <뉴스앤조이> 기자와의 통화에서 "별다른 추가 입장이 없어 인터뷰하기 어려운 점을 양해해 달라"고만 말했다.

<HOW 주석> 시리즈를 출판한 두란노서원의 경우도 비슷하다. 두란노서원의 관계자는 <뉴스앤조이> 기자와의 통화에서 현재 문제가 제기된 '시편'과 '다니엘'은 저자의 입장을 반영해 조치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시편 저자가 잘못을 인정하고 절판 요청을 해 와서 출판사 내부적으로도 절판하기로 결정했다. 그렇지만 다니엘 부분을 쓴 저자는 '각주도 넣었고, 표절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입장을 전달해 왔다. 저자가 그렇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어떻게 조치를 하나"라고 말했다.

두란노서원은 "직접 전화를 걸거나 메일을 보내는 독자들의 의견은 수렴하고 있다"면서도 "'표절반대' 등 일부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일일이 대응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표절반대'에 글을 올린 이지성 전도사는 "시편 부분은 표절을 인정하지만, 다니엘 부분은 표절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게 저자들의 입장"이라는 내용이 담긴 두란노서원의 메일을 19일 공개했다.

두란노서원은 문제가 된 책들에 대한 보상 조치에는 난색을 표했다. 두란노서원 관계자는 기자에게 "별도의 보상 조치까지 어떻게 할 수 있나. 추후에 문제 된 책들을 재집필해서 출간하면, 독자들을 위한 서비스 차원에서 문제 도서와 교환해 줄 계획을 갖고 있다. 책 산 사람들도 그걸(등가 교환 등 별도 보상 조치) 목적으로 산 거 같진 않다"고 말했다.

3월 초, 성서유니온도 양용의 교수와의 협의를 거치고 나서 입장을 발표했다. 처음에는 표절이 아니라는 뉘앙스로 입장을 냈던 성서유니온은 불과 3일 뒤 양 교수의 입장이 나오자 일주일 만에 입장을 전향적으로 바꿔 절판과 보상 조치를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페이스북 그룹 '표절반대' 등을 통해 제기된 문제를 보면, 비교적 표절 정황이 뚜렷해 누구든지 표절 여부를 판가름하기 쉽다.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은 근거 자료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도 표절이 아닐 수 있다며 저자의 입에서 나오는 '확인'을 기다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독자 입장에서는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다. 문제가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를 위해 현직 기독교 출판사 관계자들의 말을 들어 봤다.

표절은 저자가 하고, 배상은 출판사가 하고?

A 출판사 관계자는 결국 '돈 문제'가 크다고 했다. 표절이 제기되면 재고는 모두 폐기 처분해야 하는 등 금전적인 손실이 막대하게 발생한다. 책이 얼마나 잘 팔리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이 손실액은 적게는 1,000~2,000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에 이른다.

법적으로 이 피해액은 저자가 전부 부담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출판 계약을 할 때, 출판사와 저자는 다음과 같은 계약을 맺는다. 이번에 표절 문제가 된 한 출판사와 저자 간 계약서 내용 일부다.

"제7조(저작물 내용상의 책임) 
갑(저자)은 본 저작물의 내용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함으로 말미암아 을(출판사)에게 손해를 끼쳤을 경우에는 그에 대한 책임을 진다."

대부분의 출판사가 '표절 등 저자의 기망으로 인한 발생한 손실'에 대해서는 저자가 법적 책임을 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저자가 이 손해를 감당하는 경우는 드물다. 우선 저자가 그 액수를 감당할 만한 경제적 여건이 안 되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출판사가 알아서 감당해 주기를 바란다는 게 A 출판사 관계자의 말이다.

B 출판사 관계자는 "이번에 우리 출판사에서 낸 책의 표절 문제가 나오자, 저자는 우리와 협의도 없이 책을 절판하고 보상 조치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가 그 모든 비용을 다 감당할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런 저자의 태도는 '출판사에서 뒷감당을 다 해 줄 것이니 독자들은 걱정하지 말라'는 것과 다름없다"고 했다.

또 다른 이유로, 저자가 나서서 표절 문제를 인정하기 전에 출판사가 선제 조치를 취하거나 하면 저자의 심기를 더 불편하게 해 '돈을 못 받아 내는' 상황이 나온다는 것이다. 더구나 다른 잠재적 저자(앞으로 책을 쓸 이들)들이 '이 출판사는 저자를 보호해 주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해 신간 도서를 내는 데도 어려움이 생긴다고 했다.

한편으로는 저자 입에서 표절이라는 말이 나와야 법적 책임을 안 진다는 이유도 있다. B 출판사 관계자는 "세간에서 제기한 표절 문제와 달리, 이게 법정으로 가면 판단 기준이 좀 달라지는 부분도 있다. 만약 법적 다툼에서 표절로 볼 수 없다고 판결 나면, 우리는 소송 비용에 이미지 추락까지 추가로 감당해야 한다"면서, "그래서 저자가 시인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라고 했다.

출판사 "표절 스크리닝 불가능이 정도라도 한국에 소개해 줘서 고맙다는 독자도 있어"

출판사들은 저마다 "사전에 표절 여부를 검사하는 것(스크리닝)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전문적인 신학 공부를 한 사람이 이 잡듯 봐야 알아낼 수 있을까 말까 한데, 현재 출판사에 그만한 인력을 배치할 여건도 안 될뿐더러, 그런 식으로 하면 1년에 책 한 권 정도밖에 낼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그런 식으로 책을 낸다면 출판사들은 모두 문 닫을 것이라는 말도 나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이번에 문제가 된 책들은 한국 신학계에서 이례적으로 잘 팔리는 책들이다. 이 책들이 서구 선진 신학들을 손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해 줘서다. 막스 터너(Max Turner), 리처드 보컴(Richard Bauckham), 고든 웬함(Gordon Wenham) 등 이름난 학자들의 신학이 한국 신학자들의 이름으로 포장돼 국내에 보급된다.

C 출판사 관계자는 "독자들 중에는 '이 정도 책이라도 우리가 볼 수 있게 해 줘서 고맙다'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평신도 대상으로 낸 신학 서적을 실제로는 목회자들이 더 많이 보고 있다. 그만큼 목회자들 수준이 낮다는 뜻인데, 한국 신학계 수준이 이러니 표절을 한 책이 나와도 수요가 자꾸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A 출판사 관계자도 "서구에서는 정말 대가들이나 주석을 쓰는데, 우리나라 학자들이 그 책을 가져다 자기 책으로 만들어 내니, 수준 높은 신학들이 어쨌건 한국에 보급되고 있는 탓이 크다"라고 말했다. 잘 팔리니 절판하기가 저자도 출판사도 여간 쉽지 않다는 말이다.

"독자 중심으로 대안 마련해야 기독교 출판계가 산다"

새물결플러스의 김요한 대표는 18일 <뉴스앤조이> 기자와의 통화에서 "출판사들이 의리와 정에 얽매여서 '소나기만 피하자'는 심정으로 대처해서는 안 된다"면서 출판사들이 먼저 자성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다만 이 일로 기독교 출판계가 위축되거나 혹은 기독교 출판계를 위축시켜서는 안 된다고 했다. 신학 서적 대부분이 적자를 면치 못함에도, 나름대로 한국교회에 기여한다는 마음으로 계속 책을 만드는 출판사들의 취지까지 무시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김 대표는 "한국 개신교 목사들과 신학생들의 90% 이상이 원서로 책을 읽는 능력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어쨌든 표절된 책으로라도 선진 신학을 접한 건 사실이다"라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표절을 정당화해서는 안 되지만, 출판사들의 의지마저 꺾이지 않도록 제도적인 보완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최초 표절 문제를 제기한 이성하 목사(원주가현침례교회)도 출판사들을 위한 출구 전략이 필요하다는 말에는 공감했다. 그러나 출구를 모색하는 방식은 진짜 피해자인 독자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표절 설교한 목사를 물러나라고 했을 때, 그 목사가 '그동안 내 설교로 은혜받았으니 감사한 줄 알라'고 말하면 그를 가만히 내버려 둬야 하나"라고 물으면서, 독자에게 피해 준 건 피해 준 대로 보상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 목사는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출판사는 피해자가 아니라 당사자"라면서 자기들이 피해를 입었으면 가해자(저자)에게 책임을 응당 물어야지, 왜 저자 눈치 보느라 독자들은 뒷전으로 미루고 있나"라고 말했다. 출판사가 사업 문제, 돈 문제 때문에 저자 입장만 살피면서, 출판사가 유지될 수 있게 해 주는 독자는 왜 무시하냐는 뜻이다. 이 목사는 "출판사는 계약서 상에 명시된 대로 저자에게 책임을 묻고,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독자들에게 피해 보상 조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독자들을 향한 출판사들의 책임 있는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해외 원서 출판사에 엄청난 규모의 손해배상을 할 수도 있다. 이미 2009년 국내 아무개 출판사가 저작권 침해 등으로 2억 원에 이르는 금액을 해외 출판사에 지불한 선례도 있다. 저작권 에이전시 '알맹2'의 맹호성 이사는 해외 출판사들이 국내 출판사들의 표절 문제를 인지하고 검토 단계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만일 국내 출판사들이 명확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해외 출판사와의 저작권 분쟁에 휘말릴 수도 있다. 현재 Baker Publishing Group, Eerdmans Publishing Co., HarperCollins Christian Publishing(Zondervan과 Thomas Nelson)등 3개 출판사가 검토에 착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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