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봉호, <산을 등에 지고 가려 했네>(우리학교)
[뉴스앤조이-박요셉 사역기획국장] 손봉호 이사장(재단법인 교육의봄)의 회고록. 철학자이자 교육자인 손봉호 이사장은 말과 글에 머물지 않고 행동과 실천을 아끼지 않는 인물이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기독교윤리실천운동·공명선거운동시민운동협의회·밀알학교 등 여러 단체 설립을 주도했다. <산을 등에 지고 가려 했네>(우리학교)는 그가 어떤 신념과 태도로 이 같은 길을 걸어 왔는지 담담하게 보여 준다.
손봉호 이사장은 서울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미국과 네덜란드에서 각각 신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서울대·고신대·한국외대 등에서 교수로 지냈고, 기관·단체 이사장을 동시에 20개 이상 맡은 적도 있다. <국민일보>와 재단법인 교육의봄 홈페이지에 연재한 글을 엮어 책으로 냈다. 제목에서 산은 그가 어떤 대단한 이상과 뜻을 짊어지고 살았다는 의미가 아니다. 비록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 특히 우리 사회에서 약하고 고통받는 이들의 짐을 대신 "지려는 시도와 의도"로 살았다는 자기 고백이다.
책은 유년 시절부터 군 복무, 유학, 교수 생활, 시민운동까지 시기별로 나누어 구성돼 있다. 각 장의 글은 단문 중심이며, 대화하듯 쉽게 쓰였다. 전쟁과 배고픔으로 가난한 어린 시절, 유학 시절 장학금을 받기 위해 궂은 일을 도맡았던 경험, 환경 보호를 위해 학교 연구실에 에어컨을 사양하는 모습 등 저자는 구체적인 일화와 함께 자신이 걸어 온 길을 보여 준다. 그가 한국 사회에서 차지한 비중은 적지 않지만, 그는 자신의 업적이나 성취보다 삶의 태도를 말하는 데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
"전선이 북쪽으로 물러가자 동네로 다시 돌아왔는데, 폭격이나 대포로 죽은 사람보다 인민군이 묻어 놓은 지뢰를 밟아 죽은 사람이 더 많았다. 나의 친구 하나도 원칙적으로 사용되지 말아야 할 네이팜 폭탄에 희생되었다. 다시 개학한 학교로 가는 길가에는 온갖 종류의 총, 총알, 수류탄 등이 무수히 깔려 있었고,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적군과 아군의 시신들이 도처에서 썩고 있었다. 그리고 불에 탄 우리 집 안채는 그 뒤 다시 짓지 못한 채 경주로 이사 갈 때까지 온 식구가 좁은 방 두 개밖에 없는 사랑채에서 살았다." (제1부 내 어린 시절에는 '우리 집이 폭격을 당했다', 55쪽)
"그 원칙을 딱 한 번 어긴 것이 2004년에 동덕여대 총장이 된 것으로, 큰 실수였고 인생에서 가장 큰 흠이었다. 그전에도 세 대학에서 총장 제안이 있었고 그 뒤에도 두 대학이 요청했지만 모두 거절했는데, 동덕여대의 요청도 사양했으나 끝까지 버티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다. 마키아벨리의 세상 지혜를 너무 무시했고 어떤 교수가 지적한 '편협한 도덕주의'에 충실한 것이 화근이었다. 돈과 권한이 생기는 곳에서는 '그리스도인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양심'도 지킬 수 없음을 절감했다." (제4부 내가 받은 달란트 '공직 회피, 20개 이사장 자리', 249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