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 17:5-10, 시 1, 고전 15:12-20, 눅 6:17-26
| 청어람ARMC가 '세속성자 주일예배'라는 이름으로 매주 예배문을 연재합니다. 청어람ARMC에서 구성한 필진이 교회력에 따라 본문을 선정하고, 묵상을 나누며, 기도 제목을 공유합니다. 연재는 해당 주일 이틀 전인 매주 금요일 발행합니다. - 편집자 주 |
날씨가 얼고 녹고 하는 동안 주현절 후 여섯째 주일입니다. 얼어붙고 굳어 있던 우리 마음을 따뜻하게 녹이시는 성령님 앞에 우리 자신을 열고 예배하는 주일이 됩시다.

| 본기도 |
지금도 살아 계시고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님, 우리는 여전히 죽음의 그늘에서 두려움과 불안 속에 살아가지만, 주님께서는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셔서 우리에게 우리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희망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희망에 잇대어 살아갑니다. 주께서 우리의 변치 않는 희망이요 보증이 되셔서 죽음을 넘어 영원까지 우리를 이끌어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찬양 |
주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나무엔) / 옳은 길 따르라 의의 길을(찬 516장)
시편 1편 1-6절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며, 2 오로지 주님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밤낮으로 율법을 묵상하는 사람이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함 같으니, 하는 일마다 잘 될 것이다. 4 그러나 악인은 그렇지 않으니, 한낱 바람에 흩날리는 쭉정이와 같다. 5 그러므로 악인은 심판받을 때에 몸을 가누지 못하며, 죄인은 의인의 모임에 참여하지 못한다. 6 그렇다. 의인의 길은 주님께서 인정하시지만, 악인의 길은 망할 것이다.
| 말씀 |
예레미야 17장 5-10절
5 "나 주가 말한다. 나 주에게서 마음을 멀리하고, 오히려 사람을 의지하며, 사람이 힘이 되어 주려니 하고 믿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 6 그는 황야에서 자라는 가시덤불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소금기가 많아서 사람이 살 수도 없는 땅, 메마른 사막에서 살게 될 것이다." 7 그러나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다. 8 그는 물가에 심은 나무와 같아서 뿌리를 개울가로 뻗으니, 잎이 언제나 푸르므로, 무더위가 닥쳐와도 걱정이 없고, 가뭄이 심해도, 걱정이 없다. 그 나무는 언제나 열매를 맺는다. 9 "만물보다 더 거짓되고 아주 썩은 것은 사람의 마음이니, 누가 그 속을 알 수 있습니까?" 10 "각 사람의 마음을 살피고, 심장을 감찰하며, 각 사람의 행실과 행동에 따라 보상하는 이는 바로 나 주다."
고린도전서 15장 12-20절
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아나셨다고 우리가 전파하는데, 어찌하여 여러분 가운데 더러는 죽은 사람의 부활이 없다고 말합니까? 13 죽은 사람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살아나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14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될 것입니다. 15 우리는 또한 하나님을 거짓되이 증언하는 자로 판명될 것입니다. 그것은,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일이 정말로 없다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살리지 아니하셨을 터인데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살리셨다고, 하나님에 대하여 우리가 증언했기 때문입니다. 16 죽은 사람들이 살아나는 일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신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17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헛된 것이 되고, 여러분은 아직도 죄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18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사람들도 멸망했을 것입니다. 19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이 세상에만 해당되는 것이라면, 우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잠든 사람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누가복음 6장 17-26절
17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오셔서, 평지에 서셨다. 거기에 그의 제자들이 큰 무리를 이루고, 또 온 유대와 예루살렘과 두로 및 시돈 해안 지방에서 모여든 많은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었다. 18 그들은 예수의 말씀도 듣고, 또 자기들의 병도 고치고자 하여 몰려온 사람들이다. 악한 귀신에게 고통을 당하던 사람들은 고침을 받았다. 19 온 무리가 예수에게 손이라도 대보려고 애를 썼다. 예수에게서 능력이 나와서 그들을 모두 낫게 하였기 때문이다.
20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너희 가난한 사람들은 복이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 21 너희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 너희가 배부르게 될 것이다. 너희 지금 슬피 우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 너희가 웃게 될 것이다. 22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고, 인자 때문에 너희를 배척하고, 욕하고, 너희의 이름을 악하다고 내칠 때에는, 너희는 복이 있다. 23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보아라, 하늘에서 받을 너희의 상이 크다. 그들의 조상들이 예언자들에게 이와 같이 행하였다. 24 그러나 너희, 부요한 사람들은 화가 있다. 너희가 너희의 위안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25 너희, 지금 배부른 사람들은 화가 있다. 너희가 굶주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 지금 웃는 사람들은 화가 있다. 너희가 슬퍼하며 울 것이기 때문이다. 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할 때에, 너희는 화가 있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예언자들에게 이와 같이 행하였다.
| 적용 질문 |
- 읽은 말씀에서 내 마음에 가장 선명하게 새겨진 한 구절은 무엇인가요? 왜 그렇게 느껴졌나요?
- 무언가를 기대했다가 실망한 순간들 혹은 기대조차 품을 수 없는 좌절의 순간들을 떠올려 봅시다. 그리고 오늘 본문을 다시 한번 읽어 봅시다.
| 말씀 나눔 - 새로운 희망 |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잠든 사람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 선포합니다. 공동번역 성서는 이를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죽었다가 부활한 첫 사람"이라고 번역합니다. 여기서 '첫 열매', '첫 사람'이라는 표현, '처음'이라는 단어에 주목해 보고자 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가 이전에는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사람'이라고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익숙한 것, 이미 경험했던 것에 대해서는 두려움을 덜 느낍니다.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고 통제 가능하다는 착각 속에서 안도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미지의 것, 경험해 보지 못한 것, 기존의 상식을 뛰어넘는 것 앞에서 우리는 불안과 두려움을 느낍니다. 오늘날 사회는 예측 불가능성과 불확실성이 증폭되면서, 우리를 끊임없이 불안과 두려움 속으로 몰아넣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들을 시도합니다. 정치, 경제, 문화, 종교 등 다양한 영역에서 해법을 찾으려 노력하지만,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늘 실망감을 안겨 줍니다. 마치 이리저리 길을 찾아보아도 사방이 막혀있는 미로 속을 헤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런 굴레 속에서 과거의 방식, 우리의 경험을 계속해서 의지하고 신뢰한다면, 그 결과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경고처럼 "황야에서 자라는 가시덤불"처럼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볼 수 없을 것"입니다(예레미야 17:5-6). 바울은 우리가 이미 익숙한 방식, 이 세상에 희망을 찾고 있는 사람들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라 표현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노력한다 한들 우리의 모든 시도가 멈춰설 수밖에 없는 지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가장 극단적인 미지의 영역인 '죽음'입니다. 그 누구도 죽음 너머를 온전히 파악할 수 없습니다. 죽음 앞에서 모든 사람의 예측과 통제는 완전히 멈춰서게 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바울이 그리스도를 '새로운 사람'이라 말했던 이유가 밝혀집니다. 그분은 우리가 도무지 파악할 수 없고 희망을 가질 수 없는 그곳, 바로 죽음의 어두움으로부터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잠든 사람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고전 15:20)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죽음 너머에서 찾아오는 생명이 있음을 보여 주는 가장 강력한 증거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희망이 좌절될 때에도 '새로운 사람'인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우리의 예측 가능한 '미래'로 부터가 아닌 '영원'으로부터 오는 새로운 종류의 희망입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새로운 열매'는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습니다. 예수님께서 활동하시던 모습을 누가복음 6장을 통해 살펴보면, 그분은 끊임없이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열매를 맺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 굶주린 자, 우는 자, 미움받는 자, 핍박받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선언하십니다(눅 6:20-22). 일반적인 세상의 상식으로는 기대와 희망이 좌절되는 순간들이겠죠. 그러나 예수님은 바로 그 순간들, 오히려 그 깨진 틈 사이로 영원으로부터의 복이 찾아온다는 역설적인 진리를 보여 주십니다. 우리의 예측이 좌절되는 순간, 세상적인 기대가 무너지는 바로 그 순간, 우리는 역설적으로 영원을 경험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무너진 곳에서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시고, 우리를 '새로운 사람들'로 만들어 가십니다.
답이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불안, 끊이지 않는 고통의 소식들은 마치 짙은 어둠과 같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어둠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희망을 외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새로운 사람' 그리스도의 희망의 빛이 그 순간 우리에게 드리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김정민 / 닷바이블
| 세속성자의 기도 |
시국을 위해 기도합시다.
하나님, 12·3 내란 사태부터 시작된 이 나라의 혼란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대통령 탄핵 심판을 비롯하여 내란의 책임을 묻는 법적 절차가 진행 중이지만, 사법부를 불신하며 법을 거슬러 스스로 자기가 옳다 주장하는 이들이 쩌렁쩌렁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치열한 의견의 대립과 분열이 깊어지는 이 사회를 불쌍히 여기시어 이 사태가 올바르게 해결되도록 도우소서. 우리가 모두 바른 정보에 근거하여 합리적 판단을 하도록 도우시고, 민주주의와 법치의 원칙을 지키는 방향으로 소통하며 행동하게 하소서. 무엇보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자들이 나라의 분열과 혼란을 부추기는 데 앞장서고 있는 현실이 너무나도 속상하고 화가 납니다. 정의의 주님! 이 혼란한 시국에 책임이 있는 자들을 심판하시되, 주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으며 자기 목소리만 높이고 있는 이들은 갑절로 심판하여 주소서.
병환 중에 있는 이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치유하시는 주님께 우리가 기도하오니, 원치 않는 질병과 싸우고 있는 이들과 예기치 못한 사고로 몸을 다쳐 회복 중에 있는 이들에게 주님의 위로와 치유의 손길을 내려 주소서. 아픈 이들이 적절하게 치료받고 회복할 수 있도록 주께서 도와주시고, 돌보는 이들에게도 힘을 주시옵소서. 주님, 당장 치료가 필요한데도 생업을 떠나지 못하거나 금전적 문제로 병원 문턱조차 넘지 못하는 이들이 우리 주변에 많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기억하게 하시고, 도울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기꺼이 돕고 회복시키는 이웃이 되게 해 주소서.
창조주를 기억하며 기도합시다.
생명을 주신 하나님, 내 영혼과 몸이 주님의 생명으로 충만하게 하옵소서. 때로 생각 자체가 귀찮았습니다. 생각이 게을러지니, 목표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목표가 없으니, 어디에 삶을 헌신해야 할지 불분명했습니다. 삶에 대한 열정이 없는 사람으로 서서히 변했습니다. 일시적인 육체의 쾌락, 재물에 대한 욕심, 권력에 대한 야망에만 집착했습니다. 삶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내 삶이 왜 가치가 있는지, 질문하지 않은 탓입니다. 삶이 허무하고 답답할 때 나를 만드신 창조주를 기억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인생의 답이요 삶의 지혜임을 깨닫게 하옵소서. (<참회의 기도>, 김지철 지음, 비아토르 펴냄, 73쪽에서 발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