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뉴스앤조이> 기획 '비하인드 스토리 - 여성 안수 투쟁사'가 양성평등 미디어상 보도 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다. 한국양성평등진흥원(장명선 원장)은 12월 25일, <뉴스앤조이>가 보도한 '비하인드 스토리 - 여성 안수 투쟁사'를 포함해, 방송·보도 21편을 제24회 양성평등 미디어상 수상작으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한국양성평등진흥원은 '비하인드 스토리 - 여성 안수 투쟁사'가 다양한 인터뷰와 역사적 자료를 활용해 교계 내 성차별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중요하게 평가했다고 시상 이유를 설명했다. <
"오… '여성 안수 논쟁 100년'이라니,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데?"[뉴스앤조이-구권효·나수진 기자] '비하인드 스토리 - 여성 안수 투쟁사'는 지난해 말 나수진 기자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습니다. 한국교회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장로교단에서 여성 안수가 논의된 지 '100년'이 되는 해가 2022년이라는 겁니다. 2022년을 계획하는 회의에서 편집국 막내 기자가 입에 착 붙는 아이템을 내놓자, 강도현 대표가 '벌써부터 각이 나온다'며 좋아했죠.그런데 웬걸, 기획은 시작부터 삐거덕했는데요. 조선예수교장로회에서 여성 안수에 대한 이야기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여성 안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교단 및 개인 성향에 따라 다를 것이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기성) 이수경 목사(67·새사랑교회)는 여성 안수에 마음을 크게 두고 제도화를 위해 노력했지만, 그것이 교단 내 성차별을 타파하기 위한 투쟁의 목적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하나님이 목회를 하라고 부르셨고, 그 부르심을 따라가다 보니 목사 안수를 주셨다"는 신앙고백이 있을 뿐이다.기성은 2004년 여성 안수제를 도입했다. 2001년부터 새사랑교회를 개척해 담임전도사로 사역하던 이수경 목사는 2006년 목사 안수
[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회)는 교단 초기부터 여성 안수를 도입했다. 다른 교단보다 먼저 여성 목사를 인정한 감리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1972년 '담임자로 결혼한 여자 목사는 담임을 계속할 수 없으나, 기관에서는 계속 시무할 수 있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사실상 결혼한 여성에게 목사직을 주지 않겠다는 이 차별 조항은 1989년까지 17년간 존속했다. 감리회 김명희 목사(66)는 자신이 쓴 회고의 글 '여성 안수가 이루어지기까지'에서 이 조항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목회에 대한 사명이 불탔어도 한 인간의 삶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유명희(테레사) 사제(63)는 대한성공회가 여성에게 성직을 주지 않던 1983년 천신신학교(현 성공회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학교에 다니면서 만난 여성들과 함께 '성공회젊은여성모임'을 만들어 활동했다. 1987년에는 이 모임 회장을 맡기도 했다. 성공회젊은여성모임이 발행했던 소식지 <우물가>는 모임 취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젊은여성모임이란? 나이에 구속받지 않고, 자신의 할 일을 찾아 주체적으로 사는 여성이, 여성을 억압하는 비민주적 사회제도를 변화시키고, 스스로를 구속하는 길들여진 사고에서 벗어나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현재 대한성공회 사제 중 여성은 20명이 채 되지 않는다. 이는 전체 사제의 10%에도 미치지 않는 수치다. 첫 여성 사제 서품 후 21년이 지났지만 그간 여성 성직자가 그리 많이 나오지 않았다. 모든 교단이 인구 자연 감소와 개신교 인구 감소라는 이중고에 맞닥뜨린 상황이기는 하나, 지금 신학대학원에 있는 성직 후보자의 여성 비율도 10%가 되지 않는다는 점은 뭔가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민숙희(마가렛) 사제(53·대한성공회 광명교회)만큼 여성 사제에 대해 고민한 사람은 아마 많지 않을 것이
[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여성 안수제 도입을 위한 투쟁에는 여성 교역자만 참여한 것이 아니다. 장로교단에서 1930년대 여성 장로를 세워 달라는 요구로 시작된 여성 안수 운동은 평신도·교역자·신학자 등 다양한 교단 구성원의 연대 속에서 이뤄졌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은 1959년 예장합동과 분열한 후 본격적으로 여성 안수 투쟁을 벌였다. 그 핵심에는 여성 평신도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여전도회전국연합회(여전도회)가 있었다. 이들은 물심양면으로 남성 총대들을 설득했고, 그 토양 위에서 젊은 여성 교역자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남금란 목사(58)는 '연합', '단합', '연대'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60여 년을 이어 온 긴 투쟁 속에서 낙담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도, 아직 여성 안수를 도입하지 않은 교단들에 하고 싶은 말을 전할 때도 이 말을 썼다. 그에게 여성 안수 투쟁은 여성들 간 연합·단합·연대를 몸소 체험하게 해 준 사건이었다. 남 목사는 교단 내 여성들이 '여성 안수'라는 깃발 아래 하나로 모였던 때를 회상하며, 활발히 소통하고 격의 없이 서로 의지한 '사랑방' 같은 시간이었다고 말했다.남금란 목사는 대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는 여성 목사제를 시행한 지 48년이 지났다. 여성 안수는 교단 구성원 모두가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위해 채워야 할 첫 번째 단추였다. 그로부터 50년 가까이 지난 현재, 기장 내 여성들의 처지는 어떨까. 첫 단추에 이어 두 번째, 세 번째 단추도 잘 채워지고 있을까.1960~1970년대 여성 목사제를 위해 투쟁했던 이들은 은퇴한 지 오래다. 오늘날 기장 내 여성들의 현실을 듣기 위해서는 좀 더 젊은 인물을 찾아야 했다. 이 주제에 전국여교역자회
[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지난해 9월,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최초로 여성 총회장이 선출됐다. 여성 총회장의 탄생은 기장뿐만 아니라 한국교회 주요 교단에서 전례 없는 일이었다. 여성 목사제를 이미 도입해 시행하고 있는 교단에서도 중요한 직책은 여성에게 내주지 않는다. 그러나 김은경 목사(67)는 익산노회 최초 여성 노회장에 이어 교단 최초 부총회장·총회장에 당선되며 '유리 천장'을 깨뜨려 왔다.김은경 목사는 목사 안수를 받기 전부터 사회적 약자, 특히 폭력 피해 여성과 아동에게 관심을 쏟았다. 전북성폭력예방치료센터 부설 성폭력상담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아직 50년을 살아 보지 않은 입장에서, 50년 전 일을 기억하고 이야기한다는 건 어떤 느낌일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는 1956년 여성 장로제를, 1974년 여성 목사제를 제도화했다. 완전한 여성 안수제 도입 후 48년이 지난 지금은, 투쟁 당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사람 자체가 많지 않다. 다행히 당시 기장 여교역자협의회(현 전국여교역자회) 서기를 맡았던 김지선 목사(74)를 만날 수 있었다."왜 새삼스럽게 지금 여성 안수를 다뤄요?" 김지선 목사는 기자들과 만나자마자 물었다.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강호숙 박사(60)는 쌓인 게 많았다. 인터뷰 내내 격정을 쏟아 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렸을 적 친구 따라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에 소속한 교회를 다니고, 자연스럽게 총신대학교에서 공부를 하게 된 것이 이런 삶을 가져올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그는 여성이라서 차별받고, 무시당했고, 외로웠다. 최근에도 슬럼프에 빠져 조금 힘들었다는 강 박사의 말이 시리게 다가왔다. 예장합동 상황이 안타까운 것은, 현재 교단 내에서 여성 안수를 위해 노력하는 조직이 없다는 점이다. 고린도전서와 디모데전서 성경
[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여성에게 안수직을 주지 않는 것은 명시적이면서도 구조적인 차별이다. 여전히 일부 교단에서는 여성들이 신학교에서 남성들과 똑같이 공부하고 졸업해도 목사가 될 수 없다. 동기와 후배들은 졸업 후 몇 년 만에 강도사·목사가 되는데, 여성들은 만년 전도사 신분이다. 강도권·성례권이 없는 여성 교역자들은 사역 범위가 심방·교육으로 제한되고, 적은 임금을 받으며, 성차별·성희롱에 쉽게 노출되기도 한다.이러한 차별적 제도를 고수하고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이 한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교단이라는 점은 아이러
"1938년 가을이었다. 전국 장로교 총회가 평양 서문밖교회에서 모였는데 그때에 여성 당회장권을 허락해 줄 것을 전국여전도회에서 건의했었다. 총회 서기가 그 결의문을 읽자 전 총대들은 쑤셔 놓은 벌떼처럼 일어나면서 여성들을 향해 야유와 비웃음을 퍼부었다. 그때 어느 목사님은 '여편네가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이 거룩한 자리에 서겠단 말인가?' 하고 빈정대는가 하면 또 다른 목사님은 '배때기가 남산만 해 가지고 어디를 올라오겠단 말이냐?' 하고 온갖 험한 소리를 퍼부어 대던 그 욕설과 핀잔의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 쟁쟁하였다. (중략)
"우리 장로교회는 아직도 장로와 집사(안수집사)의 권도 주지 않고 공공연하게 남녀를 차별한 헌법을 만들어 놓고 여권의 신장을 막고 있다는 것은 참 모순도 심한 모순이올시다. (중략) 이 같은 차별적 헌법은 남녀평등이니 여자 해방이니를 강단에서 외치는 우리의 주장과는 근본적으로 배치되는 것이며 이 법을 하루를 더 둔다면 우리 스스로를 하루 더 모욕함이요, 교회 발전을 그만치 지연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뉴스앤조이-구권효·나수진 기자] 지금도 한국교회에 유효해 보이는 위 글은 무려 88년 전 나온 것이다. 조선예수교장로회 함남노회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한국교회 대부분을 차지하는 장로교회에서 '여성 안수'에 대한 논의가 처음 나온 시점이 1932년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나요? 지금으로부터 딱 90년 전 이야기인데요. 1930년대는 유례 없이 교회 내 여권女權 문제가 많이 논의된 때입니다. 저희도 이번에 취재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요. 당시 여성들이 쓴 글들은 지금 읽어 봐도 논리 정연하고 한편으로는 절절합니다.<뉴스앤조이>는 올해 초부터 '비하인드 스토리 - 여성 안수 투쟁사'라는 제목으로 한국교회 여성 안수 역사와 그 의미를 짚는 기획 취재를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