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친구가 책을 한 권 펴냈어요. <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라는 책인데요. 2021년부터 '노동' 분야 담당 기자로 취재했던 산업재해 사고 사례를 바탕으로, 산재가 왜 지속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지, 반복되는 비극 앞에서 우리 사회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게 만드는 책입니다.

그제는 '노동건강연대'라는 단체에서 북 콘서트를 열어 다녀왔습니다. 10명 남짓 모인 사람들과 2시간가량 강의를 듣고,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그동안 헤드라인만 읽고 지나가고, 잠시간 안타까움의 감정으로만 끝내곤 했던 산재 사고에 대해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삶을 위해 일이 존재"하는 것인데, "산재는 그 관계를 뒤집어" 일하는 사람의 목숨과 유가족의 삶을 빼앗아 갑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기에, 노동 현장에서 실수하더라도 비극적인 사건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구조적 한계를 보완하는 개혁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저 역시 한 명의 노동자로서, 희생자에 대한 안타까움과 책임자에 대한 분노를 넘어, 산재를 당연시하지 말고, 사회적 참사에 무뎌지지 말고, 구조적 원인을 이해하기 위해 '왜'라는 물음을 던지자고 다짐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사역기획국 세향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그 좁은 골목길에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 줄 국가는 없었다 

이태원 참사 1주기가 다가옵니다.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해밀톤호텔 골목에는 13만 명의 인파가 몰렸고, 300여 명의 젊은이가 갇히는 비극이 발생했습니다. '5.5평'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159명이 왜 마지막 숨을 거둬야 했을까요. <뉴스앤조이>는 기독교인 유가족, 그들과 연대하는 기독교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 봤습니다. 

'투사'가 된 유가족

· 이태원 참사 유가족은 지난 1년간 계속해서 정부에 진상 규명을 요구했습니다. 
· 그러나 돌아오는 건 침묵과 외면이었죠. 아직까지도 제대로 된 진상 규명은 없습니다. 
· 사랑하는 이들과 일상을 빼앗긴 유가족들은 '투사'가 되어 거리에 나왔습니다. 
· 죽은 나의 가족은 돌아오지 않지만, 이렇게 해야 희생자 159명을 온전히 애도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고 유가족은 말합니다. 그리고 다시는 같은 아픔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며 오늘도 싸우고 있습니다.
· 이태원과 핼러윈이 문제가 아니라, 작동하지 않았던 시스템이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유가족을 철저히 외면했다

· 희생자 최재혁 씨 어머니 김현숙 권사는 "1년 동안 제일 가슴 아팠던 것은 기독교의 외면"이라고 했습니다. 개신교를 비롯해 자신이 몸담고 있는 교회마저도 위로의 말 한마디 없던 게 참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 "제가 그렇게 사랑하던 교회에서 저의 아픔을 외면했어요. 교인들은 저에 대해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라고 잠시 생각하고는 바로 잊어버리더라고요. 사실 저도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어요. TV 뉴스에서 나오는 사건들은 저와 상관없는 일이고, 교회를 다니는 우리 가족에게 이런 엄청난 비극은 생기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죠. 그런데 막상 피해자 입장이 되고 보니까 '이게 아니구나' 싶었어요." (김현숙 권사)
· 유가족들은 교회로부터 위로가 아닌 "아들은 하나님 옆에 있다고 생각하고 믿음으로 나아가라", "자녀를 잘 키운 줄 알았더니 왜 그런 축제에 보냈느냐", "기독교인이 그렇게 시위에 나가면 안 된다"는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 특별법 제정을 위한 삼보일배 때,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방법적인 것도 신앙적이어야 한다. 의식이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다른 방법으로 추모하고 행동하겠지만, 자신의 교회 목회자가 '삼보일배'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그들에게 신앙적 혼란과 혼돈을 주게 된다면 이 얼마나 가증한 행동인가?"라는 성명을 내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교회가 함께해 주길

10·29이태원참사를기억하고행동하는그리스도인모임 김지애 간사는 교회와 개신교인이 '나는 당신의 아픔을 다 이해한다'는 시혜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유가족의 입장에 서야 한다고 말합니다. 
· 김 간사는 이태원 참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고민하던 중, 한 유가족의 말이 신앙적 도전으로 다가왔다고 해요. 
· "가영이 어머니가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유가족들이 소리치는 건 죽은 내 아들딸 다시 살리려고 하는 게 아니다. 여기 지금 살아가고 있는 여러분이 조금 더 안전한 사회에서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이고, 여러분들의 부모가 우리랑 똑같은 고통을 다시는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지금 이 활동을 하고 있는 거다'라고요."
· 희생자 김의진 씨 어머니 임현주 집사는 교회에게 외면하지 말고 유가족과 함께해 달라고 요청하셨어요. 
· "교회가 너무 조용해요. 교회는 이 불의를 왜 모른 척하는지… 교회가 나서서 정의를 찾아야 합니다. 유가족들이 알지 못하게 도와준 교회들도 있었어요. 그동안 교회가 유가족 쉼터에 식사를 제공해 왔더라고요. 그러나 우리와 함께 소리 높여 정의를 말하고 국가의 책임을 묻는 일이 더 절실히 필요해요. 억울한 희생의 진실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해 희생자들의 아름다운 역사가 바르게 기록될 수 있도록 교회가 함께해 줬으면 좋겠어요."

10·29 기억과 안전의 길 

· 이태원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참사 현장인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해밀톤호텔 골목이 '10·29 기억과 안전의 길'로 탈바꿈합니다. 
· 비교적 빠르게 기억 공간이 조성될 수 있었던 데에는 10·29이태원참사시민대책회의 피해자권리위원회의 역할이 컸는데요. 그 자리에는 시민대책회의 공동운영위원장이자 피해자권리위원회 위원장 민김종훈(자캐오) 성공회 신부(용산나눔의집·길찾는교회)가 있었습니다. 
· 자캐오 신부는 10여 년간 용산에서 이주민 및 소수자 사역한 경험을 바탕으로, 유가족과 이태원 주민·상인들, 시민단체와 공공기관의 협의를 이끌어 냈습니다.  
· 참사 초기 모두가 예민하고 공격적일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서로의 입장을 중재하고 갈등을 전환한 것입니다. 
· 이런 모습은 사회적 참사 앞에서 교회가 단지 돈을 모아 주는 것을 넘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화해자의 사명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슬픔으로 연대하는 이들

·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지난 10월 3일, 이태원 참사 진상 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그리스도인 추모와 연대 기도회에서 기도한 김영준 목사(민들레교회)의 기도문을 함께 읽어 보면 좋겠습니다.

"축제의 공간이 죽음의 시간으로 덮여 버렸던 시월 이십구일
이태원에 여전히 햇빛과 비를 내리시는 하나님은 누구입니까.
무심히 햇빛과 비를 맞으며 살아야 하는 우리는 무엇입니까.
누구인지 모를 하나님께 무엇인지 모르는 우리는 그저 기도합니다.

(중략)

'슬퍼하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퍼할 것이라'

선포한 시인을 따라 푸른 하늘 아래 푸른 잔디 위에서 슬퍼하는 이들에게 복을 내리소서.
영원히 슬픔으로 연대하는 이들에게 복을 내리소서.
슬픔을 셀 수 없어 영원히 슬퍼할 것이라 말할 수밖에 없는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모릅니다.
다만 하나님이 우리 이름을 아십니다.
일백쉰아홉, 한 명 한 명 이름을 아십니다.
슬픔마저 죽이려 하는 악한 권력을 무너뜨리시고 슬픔으로 어깨동무한
약한 일백쉰아홉 명 이름 이름을 부활케 하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편집국 태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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