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역 1번 출구 골목은 우리 유가족들에게는 슬픔과 아픔의 공간이자 반드시 지키고 싶은 공간입니다. 우리 아이들의 마지막 숨소리를 느낄 수 있는 곳,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을 함께했던 곳, 그러므로 우리는 그 체취를, 그 흔적을 남겨 둬야만 하는 것입니다. 아직도 두렵고 슬픈 마음에 이태원역 1번 출구를 찾아오지 못하는 유가족도 있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언젠가는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우리는 이 골목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이해하고 '기억과 안전의 길'로 모두에게 인식되길 기대하는 것입니다.

 

이태원에서의 비극적인 참사를 극복하고 치유와 회복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참사의 현장을 '기억과 안전의 길'로 인식하고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 그럼으로써 두 번 다시 아픔을 겪지 않을 미래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야말로 남은 우리가 해야 할 미래 세대에 줄 수 있는 약속인 것입니다." - 희생자 이주영 씨 아버지 이정민 10·29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 발언(2023년 8월 8일 용산구청 앞 기자회견 중)

10·29 이태원 참사 현장이었던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골목. 뉴스앤조이 구권효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이태원 참사 1주기가 얼마 남지 않은 가운데, 참사 현장인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해밀톤호텔 골목이 '10·29 기억과 안전의 길'로 탈바꿈한다. 10·29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와 10·29이태원참사시민대책회의(시민대책회의), 이태원 상인 및 주민이 다수 속해 있는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 용산구청 등이 참사가 일어난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시기에 '기억 공간(memorial space)'을 만들기로 합의한 내용이라 의미가 크다. 

참사 이후부터 이태원역 1번 출구와 해밀톤호텔 골목은 수많은 이의 추모 메시지와 추모 물품으로 뒤덮였다. 현재도 해밀톤호텔 벽면에 추모 메시지를 붙일 수 있는 공간이 임시로 마련돼 있다. 지금까지 봉사자들이 자발적으로 조직돼 메시지와 물품들을 수거해 유가족들에게 전달해 왔다. 이런 방식이 지속될 수 없다고 판단한 유가족들과 시민대책회의, 이태원 상인·주민들, 용산구청이 협의를 통해 기억 공간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1번 출구 중간 정비'라는 이름으로 마련되는 기억 공간은, 참사 현장을 '기억과 안전의 길'로 명명하고 입구 우측에 게시판 3개를 세우는 것을 골자로 한다. 중간에 있는 게시판에는 이태원 참사에 대한 설명이 담긴다. 마지막 "부디, 그날 밤을 기억하는 모두의 오늘이 안녕하기를 바랍니다"라는 문구는 희생자들의 출신 국가 및 사용 언어를 반영해 14개 언어로 게재된다. 양쪽 두 개의 게시판은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피해자들을 위로하는 메시지 등으로 채워질 계획이다. 게시판 설치는 용산구청이, 관리는 유가족과 시민대책회의가 한다. '중간 정비'라는 이름처럼 이번에 마련되는 기억 공간이 완성형은 아니다. 

'기억과 안전의 길' 이미지. 사진 제공 10·29이태원참사시민대책회의

비교적 빠르게 기억 공간이 조성될 수 있었던 데에는 시민대책회의 피해자권리위원회의 역할이 컸다. 피해자권리위원회는 지난해 12월 21일, 참사가 일어난 지 한 달 반밖에 되지 않은 시점에 이미 참사 현장 정비에 대한 유가족협의회와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의 1차 합의를 이끌어 냈다. 이후 기억 공간을 디자인할 전문가를 섭외하고 구체적인 안을 만들었다. 현장 정비에 미온적이었던 용산구청의 협력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참사 이후 모든 당사자가 예민하고 공격적일 수밖에 없는 상태에서 극적인 '갈등 전환'을 이뤄 낸 것이다.

그 자리에는 시민대책회의 공동운영위원장이자 피해자권리위원회 위원장 민김종훈(자캐오) 성공회 신부(용산나눔의집·길찾는교회)가 있었다. 사회적 참사 가운데 기독교 사역자가 갈등 전환을 이끌어 냈다는 것은 종교의 본령과 역할을 되짚게 한다. 자캐오 신부를 10월 10일 용산나눔의집에서 만나 합의를 이끌어 낸 과정과 그 배경이 되는 신학적·신앙적 고민에 대해 들어 봤다. 

자캐오 신부. 뉴스앤조이 구권효
자캐오 신부. 뉴스앤조이 구권효
존중의 테이블을 만들다

'피해자의 권리'. 얼핏 보면 당연한 것 같은 말이지만, 막상 피해자의 권리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답하기는 쉽지 않다. 법으로 정해진 것도 없다. 그러나 자캐오 신부를 비롯한 여러 인권·사회 활동가들은 이태원 참사 전 여러 사회적 참사를 겪고 연대해 오면서, 이 피해자의 권리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민대책회의에서 진상규명위원회뿐 아니라 피해자권리위원회가 존재하게 된 이유다. 

피해자의 권리를 이야기하려면 먼저 '피해자'가 누구인지 정의해야 한다. 이태원 참사의 일차적 피해자는 희생자와 생존자, 그리고 그들의 가족 및 지인이다. 그다음으로는 참사 현장을 목격하거나 구조에 동참했던 이태원 주민과 상인들, 경찰과 소방 등 공적 구조자들이 될 것이다. 더 넓게는 참사 소식을 전해 듣고 가슴 아파한 시민들도 포함된다. 사회적 참사는 사회적 트라우마를 남긴다. 피해자를 좁게 보려 하는 시각에서 탈피해, 피해자의 다양성과 복합성을 이해하고 또 이해시키는 것이 피해자권리위원회의 첫 과제였다. 

"가장 먼저 배려하고 존중해야 하는 존재는 가장 큰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에요. 저희가 피해자의 다양성과 복합성을 말씀드렸을 때, 유가족분들이 그 경황 없는 중에도 귀담아들어 주시고 수용해 주시고 입장을 정리해 주셨어요. 그렇지 않았다면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었고, 나아가서도 안 됐죠."

사회적 참사 후 안타까웠던 부분은, 진정 책임 있는 자들이 발뺌하는 시간 동안 '피해자 대 피해자'의 구도가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참사 현장을 정비하는 데 있어서도 어쩌면 이와 같은 전철을 밟을 뻔했다. 유가족들은 최대한 애도와 추모의 메시지 및 물품들을 그 자리에 보존하고 싶어 했다. 이태원 주민과 상인들 또한 추모의 마음은 있었지만, 현장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일상의 터전이 참사의 현장으로만 각인되는 것은 이들에게는 생존에 큰 타격을 입는 일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유가족들의 요구와 주민·상인들의 요구가 상충될 때, '피해자 대 피해자' 구도가 되기 쉽다. 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자들은 이러한 갈등을 부추긴다. 

참사 후 이태원역 1번 출구와 골목은 추모 메시지와 물품으로 뒤덮였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참사 후 이태원역 1번 출구와 골목은 추모 메시지와 물품으로 뒤덮였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피해자권리위원회는 지난 사회적 참사들에서 발생한 '피해자 대 피해자' 구도를 반복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희생자와 유족, 생존자, 지역 상인과 주민, 공적 구조자와 시민은 서로의 적이 아니다. 이들은 피해자이며 그래서 오히려 배려하고 연대해야 할 존재들이다. 자캐오 신부와 활동가들은 처음부터 이러한 철학을 가지고 관계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경청했다. 

날 선 이가 많았다. 필요 없다고 쏘아붙이기도 했다. 자캐오 신부는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며 존중의 마음을 일관되게 전했다. 처음엔 경계했던 사람들도 자신들을 '피해자'로 인정해 주고 경청하려 하는 피해자권리위원회의 일관된 태도에 신뢰를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요구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피해자권리위원회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도 일단 충분히 다 들어 주었다. 최악의 상황까지 고려하며 모든 이야기를 다 펼쳐 놓고 가능성을 찾아 나갔다. 그러자 상충돼 보이는 요구 속에서도 '기억'과 '안전'을 추구하는 마음은 모두가 같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떤 말을 해도 안전하다는 신뢰 위에서 대화했을 때 비로소 진정한 협의가 시작될 수 있거든요. 그럴 때에야 비로소 갈등을 빠르게 제거하거나 회피해야 할 게 아니라, 그저 갈등으로 볼 수 있게 돼요.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보이는 갈등상태는 견딜 수 있어도, 아무 희망도 없는 현실은 견디기 힘든 법이거든요. 필요(needs)를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서로 존중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니까 갈등을 전환할 수 있었던 거죠.

 

그리고 제가 항상 했던 말이 있어요. 누구도 쉽게 영웅화하거나 악마화하지 말아야 한다고. 누구에게나 영웅적인 면이 있고 악마적인 면이 있으니까요. 그러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영웅이 될 수도 있고 악마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가 서로에게 영웅이 되어 줍시다'라고 말씀드렸죠."

피해자권리위원회는 관련 법규나 선례가 없다며 손 놓고 있던 용산구청의 참여도 이끌어 냈다. 참사 후 용산구청에는 참사대책추진단이라는 조직이 마련됐으나,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피해자권리위원회는 참사의 분명한 책임이 있는 박희영 용산구청장의 직접적 관여는 배제하며, 참사대책추진단이 책임 주체로 나서도록 촉구했다. 그 결과, 참사 1주기 전 유가족과 주민·상인들, 시민단체와 공공기관이 합의한 '기억과 안전의 길'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지금도 해밀톤호텔 건물 벽면에는 추모와 애도의 메시지가 붙어 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지금도 해밀톤호텔 건물 벽면에는 추모와 애도의 메시지가 붙어 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한국갈등전환센터 박지호 대표는 갈등 전환의 차원에서 이번 이태원역 1번 출구 중간 정비를 높게 평가했다. 그는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직접적인 피해자가 발생한 상황에서 갈등 전환에 이르는 일은 쉽지 않다. 공공기관은 기존 방식대로, 매뉴얼대로 행동할 뿐이고, 이런 방식은 피해자들이 피해를 회복하거나 그들의 관심사를 제대로 담아 내지 못하는 허점이 있다. 누군가 각 당사자를 연결하고 대화 테이블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번에 그 역할을 피해자권리위원회가 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지호 대표는 "조정자 역할을 할 때 가장 어려운 게 각 당사자의 신뢰를 얻는 일이다. 특히 유가족들에게는 세심하고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한다. 그렇게 신뢰를 얻어 가면서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게 절대 쉽지 않다"며 "종교인이든 시민사회 활동가든 이런 역량을 갖추면 좋겠다. 투쟁의 단계에서는 싸워야겠지만, 그걸 넘어서 대화 테이블이 만들어지면 조정자, 갈등을 전환하는 역할이 필요하다.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어떤 합의점을 만들 수 있는 시점을 놓쳐 버린다"고 말했다. 

사회가 종교에 기대하는 것

개신교 성직자가 사회적 참사 가운데 사람들을 중재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평화의 사도로 부름받은 그리스도인의 본령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자캐오 신부가 존중의 테이블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지난 10여 년간 용산나눔의집에서 사역하며 만나는 이들을 존중과 평등의 자세로 대했기 때문이다. 용산에서 오랫동안 일관된 태도로 이주민과 소수자 권리 운동을 했던 것이 지역민들에게 신뢰를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사역의 배경에는 '도시신학'이 자리하고 있다.

"얼마 전 성공회 나눔의집협의회와 정의평화사제단이 냈던 책 <무엇이 좋은 도시를 만드는가>(비아토르)는 '사회 속의 교회, 교회 속의 사회'라는 기획의 일환인데요. 한국의 일부 교회는 마치 교회가 세상 모든 일을 다 알고 있다는 듯 말하잖아요. '우리가 정답을 줄게'라는 우월감을 가진 태도로 사회에 접근하죠. 그게 그리스도교의 스펙트럼 가운데 하나의 입장일 수는 있어요. 하지만 절대 주류의 입장은 아니에요. 세계 그리스도교 스펙트럼에는 '사회 속의 교회, 교회 속의 사회'라는 입장도 많아요. 교회도 사회의 한 구성원이라는 거죠. 우리는 좋은 시민이자 좋은 제자가 돼야 한다는 거예요. 

 

기본적으로 그리스도인은 이 땅의 나그네이자 이방인으로 하나님의 초대를 받은 사람들이잖아요.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것처럼, 이 땅의 나그네이자 이방인, 임시 거주민 취급을 받는 사람들에게 똑같이 환대와 연대의 방식으로 나아가야 하는 거예요. 그와 함께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초월적인,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며 안내하는 통로 역할을 하는 것. 저는 그것이 곧 사회참여이자 갈등 전환이라고 생각해요. 사회참여와 갈등 전환은 그리스도교의 길일 수밖에 없는 거죠."

민김종훈 사제의 사역 바탕에는 '도시신학'이 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자캐오 신부의 사역 바탕에는 '도시신학'이 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현실은 다르다. 사회적 참사 앞에서 개신교는 무력한, 때로는 빌런(악당)의 이미지다. 개발 지상주의로 일어난 용산 참사 때 서초역 앞에 초대형 예배당을 짓겠다고 발표한 오정현 목사(사랑의교회)를 추모 예배 설교자로 세우는 촌극이 발생한 적도 있다. 세월호 참사 직후 오정현 목사와 김삼환 목사(명성교회 원로) 등은 '막말'로 구설에 올랐다. 대다수가 보수 성향인 한국교회는, 참사의 진상 규명을 방해한 보수 정치 세력의 든든한 우군이기도 했다. 유가족들 곁을 지킨 개교회나 개별 그리스도인도 많았지만, '집단으로서의 개신교'는 분명 유가족과 시민단체들에는 불편한, 나서지 않았으면 하는 존재다. 

혹은 '돈을 내는' 종교 정도다. 타 종교에 비해 충성 신자가 많은 개신교는 모금을 하기 유리하다. 대형 교회 같은 경우 며칠 만에 억대의 돈을 쾌척하기도 한다. 물론 돈은 현실적으로 중요한 것이기도 하지만, 교회의 시혜적인 태도가 발목을 잡는다. 무엇보다 고민되는 지점은 이것이다. '사회적 참사 앞에서 개신교의 역할이 그저 돈을 모아서 주는 것 정도인가.'

"저는 제가 성공회 신부라는 것이 이번 일을 하는 데 오히려 도움이 됐어요. 주변에서도 '신부님이니까 말씀드려 본다'는 말을 많이 들었거든요. 저에 대한 칭찬이 아니라, 그것이 바로 사회가 종교인에게 기대하는 바였던 거예요. 지금 한국은 '초갈등 사회'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갈등이 많고 복합적이잖아요. 우리가 일관되게 사회참여와 갈등 전환을 해 나갈 수 있다면, 언젠가 갈등을 겪은 사람들이 우리를 찾아오거나 우리가 다가갔을 때 신뢰를 보여 줄 거라고 믿어요.

 

지역마다 교회가 촘촘히 있잖아요. 저는 교회들이 지역사회에서 갈등을 전환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봐요. 단지 이제까지는 이러한 세계관과 방법론을 소개받은 적도 없고 경험해 본 적도 없었던 거죠. 그러니까 자신들이 익숙한 방식으로, 단순히 모금해서 전달하고 '우리 교회가 무언가 했다'는 식으로 하는 거예요. 이건 구호 활동에 참여하는 방식이죠. 물론 이런 방식도 더 확산될 필요가 있긴 해요. 다만 저는 그것보다 좀 더 그리스도교 신앙에 가까운 것들이 분명히 있다고, 그렇다면 우리가 도전해 봐야 하는 거 아니겠냐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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