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이태원 참사 희생자 최재혁 씨(48)는 두 아들을 둔 신실한 기독교인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교회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대학 입시로 바쁜 고등학생 시절에도 매일 저녁 가족 예배를 드렸고, 시험 기간에도 교회 예배를 빠지는 일이 없었다. 부모님이 '월요일이 시험인데, 이번 주일만 한번 빠지면 안 되느냐'고 말하면, 그는 '무슨 말씀이냐'며 한결같이 교회로 나섰다. 성인이 되어 옮겨 간 교회에서 결혼을 하고, 자녀들과도 함께 꼬박꼬박 예배에 나갔다. 

주변에서는 그를 두고 '불꽃처럼' 사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친구들은 그가 남들보다 10배의 시간을 산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전 세계를 돌아다녔고, 외국계 회사에서도 일했다. 이후 JTBC 산하 콘텐츠 스튜디오를 함께 창립하고 전략기획실장으로 근무했다. 정도 많은 사람이었다. 회사를 옮긴 후에도 옛 직장 동료들과 한 달에 한 번 이태원에서 만났다. 

2022년 10월 29일에도 이태원에서 모임이 있었다. 저녁 10시쯤, 재혁 씨는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길을 나섰다. 술을 마시지 않는 그는 취한 동료들을 먼저 택시에 태워 보내고 지하철을 타러 이태원역 1번 출구로 향했다. 사람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이태원 거리를 사진으로도 남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거대한 인파에 밀려 넘어졌다. 함께 길을 걷던 동료 한 명은 반대 방향으로 떠밀려 넘어졌다가 2시간 만에 깨어났지만, 재혁 씨는 돌아오지 못했다. 

최재혁 씨 어머니 김현숙 권사는 <뉴스앤조이>와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교회를 향한 원망을 쏟아 냈다. 한평생 보수적인 교회에 몸담아 온 그는 아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누구도 원망할 수 없고 내가 다 떠안고 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다. 다른 유가족들처럼 거리에 나가서 투쟁하기보다는 은둔하면서 신앙적으로 생각하려고 애썼다. 

그래도 교회와 교인들이 아픔을 겪고 있는 자신을 위로하고 곁에서 함께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30여 년간 출석했던 교회에서조차 그를 철저히 외면했다. 주변 교인들은 핼러윈 축제를 '귀신 축제'라고 불렀고, 신앙인이면서 다 큰 아들이 왜 그런 곳에 갔냐고 수군댔다. 담임목사와 부교역자들은 분향소를 단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지난 1년간 외부 활동에 잘 나서지 않았던 김 권사는 10월 16일, 신학생 간담회에서 유가족 발언에 나섰다. 그는 교회가 왜 이태원 참사를 외면하고 있느냐고 호소했다. <뉴스앤조이> 인터뷰 요청에도 응했다. 기독교 언론에 나와 목소리를 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고 했다. 10월 19일 김현숙 권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이태원 참사 40대 희생자 최재혁 씨의 어머니 김현숙 권사.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이태원 참사 40대 희생자 최재혁 씨의 어머니 김현숙 권사.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 그동안 외부 활동에 잘 나서지 않았다고 하셨는데, 이유가 있었나요. 

참사 초기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 비서실에서 저를 만나고 싶다고 연락이 왔어요. 그때는 유가족들이 누구인지를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럼 유가족들도 함께 만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건 아니래요. 장관님께 드릴 말씀은 너무 많았지만 저 혼자 만나는 건 아닌 것 같았어요. 그래서 "혼자 장관님을 만날 이유는 없다. 만약 유가족 모임이 형성돼서 장관님을 만나게 되면 나한테도 꼭 연락해 달라. 나도 꼭 유가족들을 만나고 싶다"고 하고 거절했죠. 

바로 그날 이태원 유가족협의회가 출범한다는 걸 TV 뉴스에서 보게 됐고, 저도 변호사를 통해서 유가족협의회에 합류하게 됐어요. 이상민 장관이 저에게만 면담을 제안한 게 '우리가 이렇게 유가족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보여 주기식 목적이었던 것 같아서 불쾌하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에는 그 사건을 알리면서 언론에 나가고 그랬어요.

이후에는 유가족협의회 활동이 제가 나아갈 수 있는 방향하고는 거리가 좀 있는 것 같아서 거의 참여하지 않았어요. 지방에 내려가 은둔을 좀 했죠. 저는 보수적인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으니까, 추석에 분향소 앞에서 상복을 입고 절을 한다든지, 49재를 지낸다든지, 삼보일배를 한다든지 하는 것들은 참여하기가 어려웠거든요. 보수적인 신앙이 저의 마음에 꽉 자리 잡고 있어서 잘 깨지지 않더라고요. 저는 신앙인이니까, 이런 사고가 났어도 누구도 원망할 수 없고 다 제가 떠안아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 지난 10월 16일 신학생 간담회에 참여하셨지요. 그때는 어떤 마음이셨나요. 

저의 믿음하고는 별개로, 아픔이 너무 크더라고요. '왜 교회에서는 이렇게 아픈 사람이 있는데 한 번도 연락이 안 오고 관심을 가져 주지 않을까', '나는 어디로 가면 기독교와 소통할 수 있을까' 고민은 계속하고 있었어요. 서울시청광장 분향소에서도 천주교·불교 종교인들은 많이 만날 수 있었는데 기독교인들은 거의 없었거든요. 

사람들과 대화하면 "아직도 이태원 사건이 안 끝났어?", "이태원 참사가 언제 일어났지?" 이런 질문을 받았어요. 모두 이태원 참사를 잊어 가고 있구나, 그런 상황 속에서 저조차도 아들을 잊을 수 있겠구나, 이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던 중 유가족 단체 대화방에서 신학생 간담회 소식을 접했어요. 그동안은 항상 어느 언론에서 인터뷰를 하거나 간담회를 연다는 글이 올라오면 거의 보지도 않고 넘겼거든요. 그런데 신학생 간담회라고 하니까 좀 만나 보고 싶었어요. 기독교의 외면에 대해서 신학생들한테 묻고 싶었죠. 그리고 유아·청소년을 가르치는 전도사님들이라고 하니까, 아이들이 우리 아들 같은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목소리를 내고 싶다는 마음이었어요. 

- 간담회에서 지난 1년 동안 가장 안타까웠던 건 개신교의 외면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실제 다니시던 교회의 반응은 어땠나요. 

저는 구역장이니까 참사가 일어나고 재혁이 소식을 구역 식구들에게 먼저 알렸어요. 이후 구역 식구들을 통해 교회에까지 알려졌고, 장례 기간에 목사님께서 오셔서 좋은 말씀을 해 주셨죠. 그런데 딱 거기까지였어요. 이후 목사님께서는 이태원 참사 분향소가 서울시청 앞에 있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단 한 번도 먼저 물어봐 주지 않더라고요. 제가 부교역자들을 찾아가서 '분향소에 한 번만 와 달라'고 얘기를 했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어요. 거기서부터 서운함이 들었죠. 

주변 교인들은 저를 '귀신 축제에 나이 든 아이가 왜 갔지', '김현숙 권사의 신앙이 저 정도일까' 하는 시선으로 봤어요. 우리 아이는 핼러윈 축제를 참여하러 이태원에 간 게 아니었고, 설령 그랬다고 하더라도 그게 큰 죄는 아닌데 무슨 죄인처럼 돼 있더라고요. 

저를 열심히 도와주고 분향소에도 제일 많이 찾아와 주는 친구 권사와 이틀 전에도 통화를 하면서 "교회 분위기는 어떠냐", "교회에서 핼러윈 축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아직도 부정적인 사고에 잡혀 있다는 거예요. 아무리 자기가 그런 게 아니라고 설명해도 '됐어, 그만해'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차단한대요. 더 이상 대화를 진전할 수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 가까운 목회자와 교인분들이 그런 반응을 보였을 때 더 상처가 되셨을 것 같은데요. 

저는 보수적인 장로교회를 다닌다는 것에 굉장히 자부심을 갖고 신앙생활을 해 왔어요. 주변에 다른 교단 교회를 다니는 친구가 많이 있는데, 신앙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하게 되면 "우리는 말씀 중심이야. 너희와는 비교가 안 돼"라고 말하곤 했죠. 

그런데 제가 그렇게 사랑하던 교회에서 저의 아픔을 외면했어요. 교인들은 저에 대해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라고 잠시 생각하고는 바로 잊어버리더라고요. 사실 저도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어요. TV 뉴스에서 나오는 사건들은 저와 상관없는 일이고, 교회를 다니는 우리 가족에게 이런 엄청난 비극은 생기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죠. 그런데 막상 피해자 입장이 되고 보니까 '이게 아니구나' 싶었어요. 

10월 16일 신학생 간담회에 참여한 김현숙 권사(사진 가운데). 뉴스앤조이 엄태빈
10월 16일 신학생 간담회에 참여한 김현숙 권사(사진 가운데). 뉴스앤조이 엄태빈

- '핼러윈 축제'에서 참사가 벌어졌다는 것 때문에, 개신교인 유가족들은 이중으로 정죄와 비난에 시달렸을 것 같습니다. "귀신 축제에 놀러 간 게 잘못"이라는 시선을 맞닥뜨렸을 때는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어쩌면 저도 제 아들이 그 안에 있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얘기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싶어요. 교회는 귀신과 사탄을 제일 적대시하니까요. '자기들이 귀신을 찾아서 핼러윈에 갔는데 죽은들 무슨 상관이야' 그런 말을 서슴지 않고 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핼러윈 축제가 문제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내 자식이 죽었다는 것을 바라봐 준다면 그런 말은 못 할 것 같아요. 스쳐 지나가는 생각으로 할 수는 있지만, 끝까지 '걔네들은 귀신 축제 간 애들, 나쁜 애들이야' 이렇게까지 밀고 나가지는 않겠죠.  

저도 참사를 겪고 나서야 핼러윈 축제가 뭔지 찾아봤어요. 세계적인 축제이고, 우리나라에서도 규모가 큰 축제더라고요. 대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시험 끝나서 거기에 갔는데, 그게 무슨 죄가 될까요? 과연 그들이 핼러윈 축제의 유래에 대해서 얼마나 자세히 알고 거기에 갔을까요? 핼러윈 축제에 간 사람들은 귀신에 대해서 관심도 없고 잘 모르는데, 그걸 가지고 무슨 죄인인 양 취급해 버리는 게 너무 마음 아파요. 

- 이태원 참사 당시 국가는 재난을 예방하고 대비하지 못했는데요. 교회는 그런 정부를 향해 책임과 진상 규명을 외치는 유가족들에게 무관심해 보입니다. 

제가 구역장인데 저희 구역 식구들도 분향소에 찾아오는 걸 두려워해요. 왜 두려워하냐고 물었더니, 정치적으로 두렵대요. 남편이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데 자기가 그곳에 나가서 분향을 하면 혹시나 불이익을 당할까 봐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어요.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이런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데 놀랐고, 과연 교회 안에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지 조사해 보고 싶더라고요.

사람들이 장례식장에도 날마다 오고, 병원에도 데리고 가고, 반찬도 해다 주고 뭐 이렇게 얼마든지 베풀어요. 그런데 정부 앞에 나서서 소신껏 발언하는 건 하고 싶어 하지 않더라고요. 사람들이 언제쯤 그걸 깰 수 있을까요. 저처럼 당해 보고 깨면 안 되잖아요. 

교회 목사님들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해요. 저는 '보수적인 교회'라고 하면 정치적으로 보수 성향을 가진 게 아니라, 말씀 중심의 신앙생활을 하는 교회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정치적인 것까지 다 끌어들여 와서 교회 안에서도 '우리는 여당 지지자야', '저쪽은 다 간첩이고 빨갱이들이야' 이렇게 노골적으로 표현하더라고요. 우리가 말씀에 있어서 보수인 거지, 정치적인 보수가 아니라는 걸 교인들의 신앙을 이끌어 가는 목사님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말씀해 주셔야 하는 거잖아요. 

믿음과 소망과 사랑 그중 제일은 사랑이라는데, 사랑은 우리끼리 하는 건가요. 보수적인 신앙인들이라면 더욱이 소외되고 아프고 외롭게 지내는 약한 사람들에게 사랑을 뻗쳐야 하는 것 아닌가요.

서울시청광장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 분향소. 유가족들은 이곳에서 머물고 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서울시청광장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 분향소. 유가족들은 이곳에서 머물고 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 참사를 겪으신 이후 신앙에도 변화가 있었을 것 같아요. 

교회의 태도에 대해 아픔이 있을 뿐이지, 저의 신앙관에는 변함이 없어요. 단지 제가 기도를 안 해서, 저의 죄 때문에 벌을 받았다는 시선으로 바라보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가 욥도 아니고 왜 이런 시련을 겪어야 하나요? 그리고 욥은 과연 죄가 많아서, 벌을 받아야 마땅해서 그런 시련을 받았나요? 그건 아니잖아요. 또 설령 제가 그런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저의 죄만 묻지 제 아들까지 잔인하게 처벌하실 분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저희를 죄인 취급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유가족들의 아픔을 외면하고, 묵살해 버리고, 손가락질한다는 건 저는 복음의 신앙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신앙에 회의가 생긴 건 아니지만, 교회는 못 나가겠어요. 처음에는 교회를 계속 나갔는데,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저는 인생이 뒤집어지는 큰 충격을 겪었는데 주변 사람들은 다 그대로인 느낌에 그냥 눈물이 났어요. 목사님이 단 위에 올라오시면 그때부터 울기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울고. 30년 동안 잘 알고 지내던 사람들을 더 이상 쳐다볼 수가 없었어요. 제가 웃으면 '이제 다 잊었구나'라고 하고, 울면 '그렇게 청승 떨면 어떡해'라고 하는 시선들이 비수처럼 가슴에 꽂히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교회와 거리를 좀 두고 있어요. 

- 그리스도인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기도가 뭔가요. 함께 아픔을 공유하는 것 아닌가요. 교회가 99마리의 양보다 1마리의 양을 찾고, 사마리아 우물가의 여인을 다독였던 예수님의 마음으로 아픈 사람을 안아 줘야 하는데, 신앙생활 잘하고 좋을 때만 안아 주고 있어요. 아픈 자들은 외면해 버리고요. 

교회가 우리를 위로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얼마나 마음이 아프냐고, 이 꽃다운 아이들이 어떤 사연을 가지고 떠나게 됐느냐고. 분향소에 한 번도 나오지 않은 교회가 많잖아요. 분향소에 나와서 유가족들 손 잡아 주고 위로해 줬으면 좋겠어요. 모금이나 식사를 챙겨 주시는 것도 감사하지만, '너희들 돈 필요하지? 우리가 줄게' 이런 태도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일 중요한 건 마음에 진실로 와닿는 거예요. 그리스도인들이 와서 정말 위로가 됐다고, 너무 감사하다고 하는 말들이 제 마음에서부터 나오면 좋겠어요. 

그리고 참사는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어요. 저희가 안전하지 않은 사회에서 살고 있잖아요. 오송 지하차도에 물이 차올라서 사람이 죽을 거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거예요. 이제는 기독교가 높은 담을 허물고, 사회의 안전을 위해서 함께 목소리 내 줬으면 좋겠어요. 고통을 겪고 있는 유가족들을 같은 심정으로 바라봐 주시고, 유가족들의 활동에 함께 연대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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