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엄태빈 기자]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함께하는 신학교 간담회가 10월 16일 향린교회(김희헌 목사)에서 열렸다. 간담회에는 이태원 참사 1주기를 앞두고, 희생자를 추모하고 특별법이 제정되기를 바라는 신학생과 그리스도인 25명이 참석했다.

희생자 최재혁 씨의 어머니 김현숙 권사는 그동안 간담회나 인터뷰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는데 신학교 간담회라 참여했다면서 발언을 시작했다.

"1년 동안 제일 가슴 아팠던 것은 기독교의 외면이에요. 대학생들의 외면도 마음 아팠지만, 개신교를 비롯해 내가 몸담고 있는 교회마저도 보수적이라 위로의 말 한마디 없던 게 참 힘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제게 하나님의 뜻이니 감당하고 믿음과 기도로 나아가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말이 너무 원망스러웠어요. 왜 하필 내 아들이, 내가 그런 고난 속에 들어가야 할까요. 저는 욥이 아닙니다. 3년 전에 남편을 보내고, 또 우리 아들을 잃었습니다. 하늘을 향해 묻고 또 물었습니다.

 

40대 가장인 우리 아들은 일의 연장선으로 식사 대접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죽었습니다. 술을 하지 않기에 지인들을 택시 태워 보내고, 자기는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려다 사고를 당했죠. 하루에 수십 통 날아오는 재난 문자만 왔어도, 지하철이 무정차만 했어도 아들은 그 길을 걷지 않았을 겁니다. 초등학생인 아들의 자녀들은 아빠의 죽음에 대해 이해하지 못해요. 왜 아빠가 길가에서 질식하고 압사당했는지 이유를 묻는데 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신학생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답이 뭘까요. 아이들에게는 뭐라고 답 해줘야 하나요. 국가의 부재, 경찰의 무능으로 아빠가 죽었다고 답해 주면 되나요? 

 

저는 우리 손자들을 위해, 아들의 죽음이 억울하지 않게 부르짖고 있습니다. 세월호 세대가 자라 이태원 세대가 됐습니다. 세월호 참사 때 만난 유가족을 이태원 참사에서 만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요. 학생들이 함께 사회적 문제를 짊어지고 나아가지 않으면 이 나라는 여전히 이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유가족들은 이태원 참사에 대한 관심이 오늘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희생자 서형주 씨의 어머니 이정옥 씨는 여러 시민의 연대가 없었다면 이 자리까지 올 수 없었다며 앞으로도 함께해 줄 것을 부탁했다.

"(참사 당일은) 완전한 무정부 상태였습니다. 지난 1년간 나름대로 정부에 촉구해 왔지만 (정부는) 계속 잘못이 없다고 합니다. 우리 신학생 여러분들이 바른 생각을 가지고 열심히 싸워 주길 바랍니다. (중략) 우리 애는 갔어요. 다시 만날 수도 없어요. 여기 있는 학생들도 우리 애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피했을 뿐이죠. 그 후로도 오송 참사가 있었습니다. 세월호는 9년이 걸렸어요. 우리는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지만 뚜벅뚜벅 걸어 나가겠습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 김현숙 씨는 1년 동안 제일 가슴 아팠던 것이 기독교의 외면이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엄태빈
이태원 참사 유가족 김현숙 씨는 1년 동안 제일 가슴 아팠던 것이 기독교의 외면이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엄태빈

신학생들의 연대 발언이 이어졌다.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박우섭 씨는 “이태원 참사 때 교회는 '귀신 축제다, 영적 전쟁이다'라며 나쁜 말들을 했는데, 전혀 생소하지 않았다. (교회는) 사람이 죽고 다치는 일이 생기면 상냥하고 자연스럽게 폭력의 말을 해 왔다. 교회가 내뱉은 혐오의 말로 상처받은 유가족에게 그저 죄송하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숭실대학교 기독교학과 류재민 씨는 "성서에는 히브리 노예, 소작인, 빈민, 고아와 과부가 겪는 좌절과 고통을 해방시키고 구원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성서가 증언하듯 그리스도인은 사회의 불합리한 현실 속에 살아가는 이들과 함께할 의무가 있다. 아픔이 기록되어야 그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 기록되지 않은 참사는 기억되지 않고, 기억되지 않는 참사는 반복된다"며 유가족들과 끝까지 연대하겠다고 말했다. 

감리교신학대학교에 재학 중인 옥승헌 씨는 "누군가를 잃은 이들의 시간은 분명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시간의 한 축이 사라져 내가 맞추어야 할 시간의 기준점이 사라졌으니 말이다. 축이 사라진 시계가 새로운 축을 기준 삼기 위해, 우선 내 시간의 기준을 강탈한 강도를 찾아야 한다. 강도를 붙들어 사과와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 내야 한다. 그리고 누구도 손쓰지 않았던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문제를 개선해 나갈 때 비로소 나의 시간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시간이 안전해진다. 시간을 바로잡는 일에 함께하겠다"고 했다.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김진성 씨는 "교회는 하나의 교회라고 말한다. 신학생으로, 교회의 일원으로서, 우리의 무지로 행한 폭력들을 반성한다. 오늘 모인 추모의 마음들이 연대로 이어질 수 있길 바란다"며 계속해서 함께 행동할 것을 약속했다.

신학생들은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과 끝까지 연대하겠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엄태빈
신학생들은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과 끝까지 연대하겠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엄태빈

이번 간담회를 준비한 10·29이태원참사를기억하고행동하는그리스도인모임 김지애 간사는 "유가족 앞에 설 때, 교회가 내뱉은 날카로운 칼과 같은 말들이 떠올라 신학생과의 간담회를 선뜻 진행하지 못했다. 유가족의 투쟁으로 현재 특별법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놓여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 의원이 법사위원장이라 특별법이 전혀 논의되지 않고 있다"며 특별법이 잘 제정돼 희생자 159명을 진정으로 애도할 수 있는 길이 열리도록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10월 16일부터 28일까지 '이태원 참사 1주기 함께해요'라는 주제로 시청 앞 시민 분향소에서 2주간 집중 추모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월요일부터 토요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분향소 앞에서 보라 리본 공작소를 열고, 오후 6시부터 토크쇼·음악회 등 다양한 테마의 추모 문화제를 진행한다. 잠시 중단됐던 헌화도 재개된다. 유가족의 분향소 안내(도슨트)를 통해 15개국 희생자의 이야기와 보라색 별의 의미를 들어 볼 수 있다.

참사 1주기 하루 전인, 10월 28일 오후 2시 향린교회에서는 '청년 100인의 대화, 사회적 참사에 관한 100명의 생각을 잇다'가 열린다. 링크(bit.ly/1029youth)를 통해 참가 신청할 수 있다. 김지애 간사는 "계속해서 재난 참사를 겪는 우리들이 사회에 무엇을 요구할 수 있는가를 토론하는 시간이니 자리해서 생각을 나눠 달라"고 부탁했다. 

10월 29일 일요일 이태원 참사 1주기 시민 추모 대회는 오후 5시 서울광장 앞 세종대로에서 진행된다. 사전 행사로는 오후 2시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 4대 종교(개신교·가톨릭·불교·원불교) 기도회와 오후 3시부터 시민 추모 대회 행진(이태원역 1번 출구 → 용산 대통령실 앞 → 삼각지역 11번 출구 → 서울역 12번 출구 → 시청역 5번 출구)이 진행될 예정이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