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괄적 차별금지법을 포함해서 동성애를 옹호하는 법을 빨리 제정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우리와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는 반성경적·반기독교적인 행태이기에 (중략) 과거에는 잘했다 할지라도 현재 변질되었다고 한다면 변질된 꼬리는 과감히 잘라 버리는 것이 코로나 이후 새로운 변화의 시대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하략)"

[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이홍정 총무)와 세계교회협의회(WCC) 탈퇴의 건'. 지난해 10월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회·이철 감독회장) 35차 행정총회에 안건이 상정됐다. 대표 발의자 중 한 명인 충청연회 정 아무개 장로는 교회협과 WCC는 감리회와 다른 입장을 추구하고 있다며 탈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안건을 두고 찬반 의견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탈퇴를 반대하는 측은, 교회협은 감리회·장로교가 에큐메니컬 운동을 위해 조직하고 이끌어 온 기관이니 탈퇴를 논의할 게 아니라 주인 의식을 가지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 전체 교단 구성원과 심도 있는 토론·연구를 거쳐야 한다고도 했다. 반면 탈퇴를 찬성하는 측은, 교회협과 WCC 때문에 교인들이 떠나는 등 선교에 방해가 되고 있으니 당장 투표로 결정하자고 몰아붙였다.

이철 감독회장은 "교회협과 WCC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안다. 그러나 여기서 결의하고 나면 감리교회가 두 쪽으로 나뉜다. 지금까지 총회에서 이렇게까지 다룬 적이 없었고, 감리교회 전체의 의견을 담은 백서도 나오지 않았다. 교회협을 탈퇴하려면 우리의 입장을 탄탄하게 하고 경고하는 등 결정 과정이 있어야 한다"며 중재에 나섰다. 이 감독회장은 총회 차원에서 신학적 정리를 위한 '연구위원회'를 설치해 내년 입법의회에서 다루자는 절충안을 제시했다. 총대들은 이 의견을 박수로 받았다. 

지난해 10월, 기독교대한감리회 35차 행정총회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이홍정 총무)와 세계교회협의회(WCC) 탈퇴의 건'이 상정됐다. 총대들은 이 안건을 두고 약 한 시간가량 토론했다. 기독교대한감리회 35차 행정총회 영상 갈무리
지난해 10월, 기독교대한감리회 35차 행정총회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이홍정 총무)와 세계교회협의회(WCC) 탈퇴의 건'이 상정됐다. 총대들은 이 안건을 두고 약 한 시간가량 토론했다. 기독교대한감리회 35차 행정총회 영상 갈무리
'교회 일치 운동' 위해 탄생한 교회협 
인권 운동 연대하자 보수 교계 공격받아

교회협은 내년이면 설립 100주년을 맞는다. 1900년대 초 미국 선교사들을 통해 한국 땅에 복음이 전파될 무렵, 선교사들은 성경번역자회(이후 대한성서공회)를 조직하는 등 교회 일치를 뜻하는 '에큐메니컬 운동'을 펼쳤다. 그 결과 1924년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가 출범했다. 1970년 회원 교단이었던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 감리회, 한국기독교장로회, 구세군, 대한성공회, 복음교회 등은 총회를 열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로 이름을 바꿨다. 

교회협은 에큐메니컬 운동뿐만 아니라 민주화 운동, 인권 운동, 통일 운동 등을 해 왔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국가 폭력으로부터 인권을 침해당한 이들의 곁에 섰다. 교회협이 사회·정치적으로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자, 보수 교계는 '용공' 프레임을 씌워 교회협을 공격했다. 교회협이 북한을 옹호하고 공산주의를 용인한다는 것이었다. 2016년 교회협이 '한반도 평화조약안'을 채택했을 때는, 감리회·예장통합 내 평신도 단체들이 교회협 탈퇴 서명운동을 벌인 바 있다. 

용공 프레임으로 공격받던 교회협은 지금은 동성애·차별금지법 지지를 이유로 공격받고 있다. 2020년 4월, 교회협 정의평화위원회가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성명을 발표하자 예장통합·감리회 내 일부 단체는 차별금지법이 동성애를 옹호하는 법이라며 문제 삼았다. 교회협과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교회협 인권센터가 그해 7월에 낸 차별금지법 제정 찬성 성명도 논란이 됐다.

같은 해 예장통합 105회 총회에는 교회협 탈퇴 관련 헌의안이 7개나 상정됐다. 2021년 106회 총회에서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이홍정 목사를 면담한 결과,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센터와 관련하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명칭을 사용하지 않고, 협의회적 의사 결정 과정 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보고서가 통과되면서 탈퇴 논의는 일단락되는 듯했다.  

교회협은 차별금지법 제정 등 인권 운동에 연대한다는 이유로 반동성애 단체의 공격을 받고 있다. 사진은 2018년 5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앞에 몰려와 시위한 보수 교계 반동성애 단체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교회협은 차별금지법 제정 등 인권 운동에 연대한다는 이유로 반동성애 단체의 공격을 받고 있다. 사진은 2018년 5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앞에 몰려와 시위한 보수 교계 반동성애 단체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지난해 감리회 총회가 교회협 탈퇴 문제를 다룬 것 역시 이러한 맥락 안에 있다. 감리교회바로세우기연대(감바연·이구일 대표)·감리회거룩성회복협의회(감거협·민돈원 사무총장) 등 반동성애 단체 5곳은 'NCCK(교회협)·WCC탈퇴추진범감리교인연합'을 결성하고 조직적으로 교회협 탈퇴와 관련한 공세를 펼치고 있다. 올해 2월부터는 'WCC·NCCK 탈퇴 촉구 및 동성애 옹호 세력 퇴출'을 주제로 매달 감리회 본부 앞에서 기도회를 시작했다. 이들은 학생 인권조례 폐지, 이동환 목사(영광제일교회) 규탄 시위 등도 해 왔다. 최근에는 감리회 정회원 성폭력 예방 교육 강사가 동성애 지지자라고 항의해 강의도 무산시켰다.

이들이 교회협·WCC 탈퇴를 주장하는 근거는 지난해 4월 발간한 44쪽 분량의 소책자 <왜 감리교회는 NCCK, WCC를 탈퇴해야 하는가>에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여기에는 보수 개신교계의 일방적인 반동성애 논리와 그동안 반복돼 온 교회협·WCC 반대 주장이 들어 있다. "교회협은 기독교 말살법이라 불리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적극 지지해 왔다", "교회협은 동성애를 옹호 및 지지한다", "교회협은 종교혼합주의·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한다", "교회협은 용공주의를 주창한다", "(WCC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그리스도의 유일성 혹은 복음의 유일성을 포기하고 타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는 종교다원주의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 책자는 지난해 감리회 총회 현장에서 배포됐다. 

이러한 논란이 일어날 때마다 교회협은 꾸준히 해명해 왔다. 2020년 제작한 '기독교 사회운동 바로보기'라는 영상에서 교회협과 WCC가 종교다원주의를 지지한다는 건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교회협은 "종교다원주의는, 하나님은 교회뿐만 아니라 세상에도 역사하고 계신다는 이해와 더불어 비그리스도인을 기독교인의 자매·형제·친구·이웃으로 환대하며 대화를 해야 한다는 관점이다. 이웃 종교를 무조건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열린 만남과 대화를 통해서 서로의 지혜와 윤리와 아름다움을 배워 각자의 전통을 더 깊고 풍요롭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협은 종교다원주의를 공식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다종교 사회 현실을 정직하게 받아들이면서 이웃 종교와 대화하며 서로 배우고 공동선을 위해 협력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차별금지법과 관련해서는 이홍정 총무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 총무는 2020년 8월 예장통합이 보내온 질의에 대한 답변서에서 "차별금지법은 소수자들의 사회·정치적 생명권을 보호하는 법이다. 한국교회와 소수자 사이에서 만들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접점이요, 소수자들을 위한 선교적 동행의 출발점이다"라고 했다.  

교회협 이홍정 총무. 뉴스앤조이 이용필
교회협 이홍정 총무. 뉴스앤조이 이용필
"빨갱이 프레임이 친동성애로 얼굴만 바꿔" 

에큐메니컬 운동에 참여해 온 감리회 목회자들은 교단 내 교회협 탈퇴 움직임에 반발하고 있다. 교회협 인권센터 황인근 소장은 3월 8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교회협이 펼쳐 온 교회 연합 운동은 민주화를 앞당기는 등 한국 사회를 견인해 왔다. 그런데 수구 세력은 이 모든 걸 다 부정하고 동성애라는 프레임 하나를 만들어서 좌우로 갈라 치고 있다. 진보적인 어젠다를 방해하고, 수구 정권에 공모하기 위해서다. 과거에는 교회협을 해체하기 위해 '빨갱이' 프레임을 사용했다면, 지금은 '친동성애'로 얼굴만 바꾼 것"이라고 비판했다. 

감리회 에큐메니컬위원회 이광섭 위원장은 "근본주의 신학을 가진 소수의 사람이 한국교회를 뒤흔들고 있다"고 했다. 그는 "웨슬리신학은 폭넓은 사회적 지평을 갖고 있다. 또한 교회협의 역사는 한국교회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 역사의 한 축을 감리회가 담당하며 일구어 왔는데, 탈퇴하겠다는 건 우리가 숨 쉬고 있는 토대를 부정하는 것이다. 이게 우리 집인데, 왜 자꾸 집에서 나가자고 하느냐. 집을 고치고 건강하게 세워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일부 반동성애 목회자가 잘못된 정보를 유통하며 교회협을 압박하고 있다면서, 교회협은 협의회 구조상 입장이 다른 회원 교단이 하나라도 있다면 그 입장은 공식적으로 표명할 수 없다고 했다. "한국교회는 동성애 문제를 단 한 번도 건강하게 신학적으로 논의한 적이 없다. 그런데 이제는 정치 지형과 이념에 따라 건강한 논의가 이뤄질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찬반 문제는 둘째 치고 논의하자고 하는 것만으로도 매도되는 상황에서, 에큐메니컬 진영이 이를 극복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교회협은 논란이 계속되자 올해 1월 19일 '대화위원회'를 구성했다. 대화위원 강석훈 목사는 "교회협은 기본적으로 회원 교회의 전통이나 신학을 존중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의견이 불거져 나온 상황을 인지하고 신중하게 접근하려 하고 있다. 정보나 이해가 부족해 오해가 생겼다면 서로 대화를 통해 해결하는 게 위원회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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