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 회원 교단인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회)가, 교회협이 급진적인 행보를 이어 가고 있다고 판단하고, 활동 제한을 권고하기로 결의했다. 하지만 교회협을 오랫동안 지켜봐 온 관계자들은, 오히려 보수화됐다고 말한다. 사진은 지난 10월 31일 열린 제31회 감리회 총회 모습. ⓒ뉴스앤조이 이용필

지난 10월 31일,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회·전용재 감독회장)는 제31회 총회 폐회를 앞두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김영주 총무)의 활동 제한을 권고하기로 결의했다. 교회협이 '급진 진보화'됐고, 교계 연합 기구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최초 건의안은 "교회협 탈퇴"였으나, 심사 과정에서 "활동 제한 권고"로 수정했다. 논란이 될 법도 했지만, 교회협 안건은 <21세기 찬송가> 논쟁에 묻혀 별도의 토론 없이 만장일치로 통과했다.

감리회가 교회협의 활동을 문제 삼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교회협 활동 제한 권고" 건의안에는 교회협이 이명박 대통령 시절 광우병 시위에 나섰고, 김영주 총무가 이석기 의원(통합진보당)의 탄원 서명에 동참한 것으로 나와 있다. 가톨릭과의 일치 운동, WCC(세계교회협의회) 총회 개최도 문제로 지적했다. 안건을 발의한 장석구 장로(코리아기독국민연합 대표회장) 현재 교회협이 하는 일은 좌파 운동에 해당하며, 교회협의 행보에 불만을 가진 사람이 많다고 했다.

총회 결의 소식이 전해지자, 감리회 내부에서는 섣부른 결정이었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익명을 요구한 감리회 본부 관계자는 "소속 교단 목사가 교회협 총무로 있음에도, 앞뒤 고려하지 않은 채 밀어붙였다"면서 보수 측의 해프닝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정배 교수(감신대)는 "교회협 역사와 에큐메니컬 운동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것 같다"면서 아쉬움을 전했다. 다만, 이 교수는 교회협이 급진 진보화된 게 아니라 사회와 교계가 보수화된 것으로 이해했다.

교회협이 '급진 진보화'됐다는 감리회의 판단과 달리, 교회협을 오랫동안 지켜봐 온 이들은 오히려 보수화됐다고 말한다.

대형 교회 품은 교회협, 보수화되다?

올해 90주년을 맞이한 교회협은 교회 일치 운동과 사회 선교에 앞장서 왔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감리회, 한국기독교장로회, 대한성공회, 구세군대한본영, 기독교대한복음교회, 한국정교회,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여의도, 서대문) 등 9개 교단이 참여하고 있다.

교회협은 고난받는 사람과 함께하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해 하나님이 교회를 세웠다고 믿는다. 믿음은 언젠가 이뤄진다는 희망을 가지고, 인권·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다. 1970~1980년대에는, 군사독재 정권에 저항하는 시민·학생·노동자의 우산 역할을 담당했다. 해외 교회가 재정을 지원하면서 군사정권에 저항할 수 있었다. WCC를 비롯해 미국, 독일 교회 등이 지원했다. 1990년대 들어 해외 교회의 재정 지원이 끊어지자, 교회협은 재정 확충을 위해 대형 교회와 손을 맞잡았다.

▲ 교회협 원로들은, 대형 교회의 참여로 인해 교회협이 변질됐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각종 사업을 추진할 때마다 대형 교회를 의지하게 되면서 활동에도 제약이 뒤따르게 됐다는 것이다. 사진은 10월 23일 열린 교회협 실행위원회 모습. (사진 제공 교회협)

지난 1996년 교회협은 당시 조용기 목사가 이끌던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기하성)를 회원 교단으로 받아들였다. 조용기 목사는 성령 운동으로 진보와 보수가 하나 돼 한국 사회를 변화시키겠다고 했다. 이후 교회협 회장은 대형 교회 목사들의 관문으로 통했다. 최성규 목사(인천순복음교회), 김삼환 목사(명성교회), 이영훈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등 대형 교회 목사들이 돌아가며 회장을 역임했다. 문대골 목사(전 교사위원장)는 교회협의 정체성이 상실된 시기로 규정했다.

핵심 의사 결정 기구인 실행위원회와 총회는 보수 세력이 장악했다. 강인철 교수(한신대)는 <민주화와 종교-상충하는 경향들>(한신대학교출판부)에서 기하성 교단 영입은 교회협 내에서 보수 헤게모니를 확고부동한 현실로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그동안 교회협을 이끌어 온 진보 인사들은 소수자로 전락했고, 반대로 보수 인사들의 입김은 커졌다.

대형 교회 참여로 교회협이 변질됐다는 의견에 교회협 원로들도 적극 동의한다. 김상근 목사(전 통일위원장)에 따르면 대형 교회들은 자본으로 교회협을 바꾸려 했다. 진보·보수를 하나로 만들겠다고 말했지만, 공염불에 지나지 않았다.

갈등도 있었다. 지난 2003년 당시 최성규 회장은, 교회협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신앙을 버릴 수 없다고 공개 선언했다. 오히려 교회협이 과거 낡은 틀과 전통을 바꾸는 게 시대적 상황에 맞다고 발언해 논란이 됐다. 당시 한기총이 시청에서 주최한 기도회에 참석한 이유로, 최 회장은 교회협 내부에서 강한 비판을 받았다.

또 다른 문제는 리더십 부재다. 세월호 침몰 사고를 계기로 에큐메니컬 진영뿐만 아니라 복음주의 단체도 들고 일어섰지만, 이를 하나로 묶어 내지 못했다. 정상복 목사(전 정의평화위원장)는 "많은 기독 단체가 따로 놀고 있는데도, 교회협이 이전처럼 울타리 노릇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안재웅 목사(다솜이 이사장)는 대형 교회로 인해 교회협이 변했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고 했다. 보여 주기 식 사업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냉철한 자기반성, 현재 분석, 미래 전망이 취약하다면서 전반적으로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했다.

교회협 실행위원들, "에큐메니컬 운동 위기 직면"

감리회 총회 결의 소식을 들은 교회협 실행위원들은, 현재 에큐메니컬 진영이 처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예장통합 소속 한 실행위원은 총회 당시 토론 유무를 떠나, 전반적으로 에큐메니컬 진영이 위기에 직면한 것 같다고 했다. 교단이 보수화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며, 이는 예장통합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기장 소속 실행위원은 교회협이 급진적이라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오히려 전보다 아픔의 현장에 못 나간다면서 적극 활동해야 한다고 했다.

이와 달리 감리회 소속 교회협 실행위원은 총회 결의에 개의치 않아 했다. 그는 "이번 결의는 여당과 정부를 지지하는 장로가 주축이 돼 제안한 것이다. 총회에서 한 건 올렸다는 식의 성과를 내기 위한 것"이라면서 감리회 전체 입장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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