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에큐메니컬 운동, 대안을 위한 긴급 토론회…"형식적인 협의체 아닌 운동 정체성 지켜야"

내년이면 창립 100주년을 맞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때아닌 위기를 맞았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내년이면 창립 100주년을 맞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때아닌 위기를 맞았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이홍정 총무) 회원 교단인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회·이철 감독회장)가 차별금지법·동성애 문제로 탈퇴 움직임을 보이자 교회협이 휘청이고 있다. 반동성애 진영의 압박으로 회원 교단 중 가장 규모가 큰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이순창 총회장)과 감리회가 연달아 탈퇴를 거론해, 내년 100주년이 되는 교회협은 때아닌 위기를 맞았다. 

교회협은 1월 19일 실행위원회에서 △감리회의 교회협대책연구위원회 조사·연구에 협력한다 △대화위원회를 구성한다 △차별금지법·동성애 문제에 관한 중장기적 연구 과정을 설치한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독소 조항과 역차별 조항에 대해 공론화 과정을 마련한다 △교회협 인권센터의 자율적인 명칭 변경을 기다린다 등을 결의했지만, 감리회의 탈퇴 논란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그러자 이홍정 총무가 사임 의사를 밝혔다. 이 총무는 3월 16일 감리회 감독들에게 탈퇴를 재고해 달라는 탄원서를 보내 "그동안 차별금지법과 동성애 문제에 대한 진정 어린 신앙적 우려에 공감하면서도 보다 발전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가기 위한 공론화의 과정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또한 무차별적 선전 선동을 동반한 가짜 뉴스와 반대를 위해 의도된 과잉 해석과 특정 집단의 정치적 입장들이 탈진실의 시대를 이끌며 본질을 왜곡시킨 채 한국교회와 사회를 분열로 몰아가는 데 대해서도 책임 있게 대처하지 못했다"며 책임을 통감하고 총무직을 내려놓겠다고 했다. 

교회협 내부에서는 100년 가까이 이어 온 에큐메니컬 운동이 위기에 처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총무의 사임뿐만 아니라 '교회 일치와 갱신'이라는 에큐메니컬 정신이 약해지고 재정적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교회협 산하 위원회들은 3월 30일 공동으로 긴급 토론회를 열고 에큐메니컬 운동의 본질과 대안을 논의했다. 종교간대화위원장 민숙희 사제의 사회로 진행된 이번 토론회에서는, 전 정의평화위원장 최형묵 목사(천안살림교회), 정금교 목사(대구누가교회), 한국기독청년회(EYCK) 하성웅 총무가 발제했다.

3월 30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 기독교회관에서 한국기독교회협의회 산하 위원회 공동 주최로 긴급 토론회가 열렸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3월 30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 기독교회관에서 교회협 산하 위원회 공동 주최로 긴급 토론회가 열렸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최형묵 목사는 한기총·한교총 등 보수 교회들의 헤게모니가 강화하는 동안 교회협이 상대적으로 구별되는 위상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현재 한국교회 에큐메니컬 운동이 정체성 위기를 겪고 있다는 것은 그 정신을 온전히 구현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뜻한다. 보수 교회의 노골적인 양상과는 다르게 보일지 모르나, 교회협 역시 내부 역학에서 힘의 우위에 의한 파당 정치의 영향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다"고 말했다.

최 목사는 교회협 내부에서마저 차별금지법에 대한 대립이 이어진 것은 서로 배우고 소통하는 대화의 장이 결핍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한 에큐메니컬 운동이 바닥 교회들과의 접점을 상실한 채 소수의 상층부 운동으로 전락했고, 회원 교단들이 대표권을 지닌 인사 또는 실무진을 통해 이해관계를 관철하는 방식으로 에큐메니컬 운동을 수단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형묵 목사는 교회협이 재정적 문제도 겪고 있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국교회가 지닌 물적 자원이 에큐메니컬 운동에 활용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이홍정 총무의 사임 이후 새로운 지도력을 확보할 때까지 비상 대책 기구를 한시적으로 운영해 다양한 에큐메니컬 영역과 소통하고 의견을 수렴하자고도 제안했다. 

정금교 목사도 에큐메니컬 운동이 보수화하는 한국교회 환경을 극복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에큐메니컬 운동은 일치 운동이며 그 작동 방식은 화해와 연대와 소통이다. 그러나 지난 100년 동안 교단들의 보수성은 강화했고 교단 신학은 저항하지 못했다. 보수성을 가진 채로 배출된 교회 지도자들은 연대가 아닌 개별 성과에 몰입했다. 에큐메니컬 운동은 이러한 한국교회의 보수성을 타개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정 목사는 교회협이 일부 세력의 목소리에 좌우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에큐메니즘이 기독교의 한 분파인가. 신학의 한 조류인가. 보수 기독교에 대응하는 빨갱이인가. 우리는 하나님나라를 실천할 뿐이다. 누가 어떻게 다른 이름을 붙인다고 하더라도 포기하지 않을 신앙의 길"이라고 말했다. 그는 에큐메니컬 운동이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지역 개교회의 풀뿌리 에큐메니컬 운동을 활성화해야 한다고도 했다. 지역 에큐메니컬 운동가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지역 에큐 펀드'와, 지역 지도력 확보를 위한 '지역 에큐 아카데미' 등 지속적인 활동·교육 방안을 마련해 달라고 했다. 

하성웅 총무는 기독 청년들에게 에큐메니컬 정신과 신학을 선명하게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힘겨운 여건 속에서도 여전히 기독 청년 활동가들이 버티고 있는 이유는 에큐메니컬 운동이 가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기독 청년들이 이 자부심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에큐메니컬 진영과 교회협이 정치 집단, 형식적인 협의체 기구가 아닌 운동 단체로서의 정체성을 지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교계 원로부터 청년까지 많은 참석자가 자리를 메웠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교계 원로부터 청년까지 많은 참석자가 자리를 메웠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교회협이 중년 남성 중심의 연대체를 벗어나 청년들의 참여를 높일 수 있도록 구조를 개혁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발제 이후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 교회협 청년위원회 김정현 위원장은 "지난 1월 감리회와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교단이 차별금지법 관련 질의서를 보내온 원인은 한국교회 각 교단의 대표성이 중년 남성에게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청년들이 교단 총대 다수고, 총회장이고, 임원이었으면 절대 그런 질의가 나오지 않는다. 교계에서 대표성을 띠는 집단과 아닌 집단 간에 차별금지법 관련 인식이 얼마나 다른지는 많은 설문을 통해 이미 증명돼 있다. 결국 청년들은 구조 내에서 자기 의견을 반영할 수 없으니까 교회를 이탈하거나 스스로 구조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교회협이 맞이한 위기 앞에서 청년들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해야 하나. 그보다 교회협이 청년들에게 그만큼 의미가 있는 집단이기는 한가. 어차피 '그들만의 리그'였는데, 밑바닥에서 활동하던 수많은 청년에게 감리회가 교회협에서 탈퇴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 있겠나"라면서 "지금이라도 대안을 찾고 싶다면 밑바닥을 주목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청년 할당제로 한두 명 넣는 게 아니라, 밑바닥에서 활동하는 청년들에게 찾아가 제발 교회협과 활동해 달라고 부탁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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