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연주 씨와 진세은 씨는 같은 학교 기숙사에 사는 친구였다. 저녁을 먹기 위해 이태원을 찾은 그날, 음식점을 나와 길을 걷다가 참사를 당했다. 연주 씨는 친구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고, 세은 씨는 구조 후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숨졌다. 세은 씨의 부고가 들린 건 연주 씨의 발인 날이었다.

유연주 씨 언니 유정 씨는 동생 장지에서 돌아오자마자 동생 친구 세은 씨 빈소로 달려갔다. 부모를 위해서라도 절대 울지 않겠다고 다짐한 유정 씨의 결심은 무너졌다. 우연히도 세은 씨 빈소는 동생이 사용했던 곳이었다. 2월 7일, '10·29 이태원 참사 추모와 연대의 거리 기도회'에 참석한 유정 씨는 "아직도 이렇게 눈물이 나오는 걸 보면, 저는 여전히 그날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언제쯤이면 저를 포함한 유가족들이 그날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라고 말했다. 유 씨는 말할 때마다 새어 나오는 울음 사이로 숨을 골랐다.

10·29 이태원 참사 100일을 하루 앞둔 2월 4일, 유족들은 서울시청 광장에 다시 분향소를 차렸다. 참사 100일이 지나도록 공식적인 사과, 책임자 처벌, 재방 방지 대책을 내놓지 않는 정부에 책임을 묻기 위해서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오는 15일까지 분향소 철거를 통보한 상태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10·29 이태원 참사 100일을 하루 앞둔 2월 4일, 유족들은 서울시청 광장에 다시 분향소를 차렸다. 참사 100일이 지나도록 공식적인 사과, 책임자 처벌, 재방 방지 대책을 내놓지 않는 정부에 책임을 묻기 위해서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오는 15일까지 분향소를 철거하라고 통보한 상태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개신교인·시민들이 함께한 이날, 시청광장 이태원 참사 합동 분향소 앞에는 경찰 펜스와 차 벽이 세워져 있었다. 이날은 당초 오세훈 서울시장이 유가족들에게 분향소를 자진 철거하라고 통보한 기한을 하루 앞둔 날이기도 했다. 참사 99일째인 2월 4일, 서울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을 출발해 광화문광장으로 행진하던 유가족·종교인·시민들은 경찰 제지 끝에 시청광장에 분향소를 세웠다. 참사 직후 정부가 일방적으로 세운 이름과 영정 없는 분향소 대신, 시민들이 손수 나무·철제 기둥을 올리고 비닐로 덧씌운 분향소였다.

서울시청 앞에 마련된 10·29 이태원 참사 합동 분향소는 참사 100일이 지나도록 어떠한 사과도, 책임자 처벌도, 재발 방지 대책도 내놓지 않는 정부에 책임을 묻기 위한 상징적인 장소다. 하지만 오세훈 서울시장은 유가족들에게 두 차례 계고장을 보내 분향소 철거를 통보했다. 시청광장은 불특정 시민들이 자유롭게 사용해야 하는 장소라면서 안전상 이유를 들었다. 시청광장 대신 녹사평역 지하 4층 공간을 분향소 자리로 제안하기도 했다. 7일 오전, 오 시장은 "일주일 시간 줄 테니 자진 철거하라"며 강제 철거 기한을 유예했지만, 10·29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는 이곳 분향소를 지키겠다는 입장이다.

참사 희생자 유연주 씨 언니 유정 씨는 경찰 및 이태원 상인과 유가족, 추모하는 사람과 추모하지 않는 사람을 갈라치기 하는 서울시와 정부를 비판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참사 희생자 유연주 씨 언니 유정 씨는 경찰 및 이태원 상인과 유가족, 추모하는 사람과 추모하지 않는 사람을 갈라치기 하는 서울시와 정부를 비판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유정 씨는 오 시장이 유가족 면담을 거부하는 등 제대로 소통한 적도 없으면서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 씨는 "오늘 오전 11시에 서울시가 언론을 통해 시청 앞 분향소에 대한 행정대집행을 일주일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덧붙여 '그동안 꾸준히 소통해 왔음에도 유가족이 광화문광장 (사용)을 주장하는 게 당황스럽고 그 배경이 무엇인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마치 유가족협의회와 지속적인 대화를 해 온 것처럼 조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시와 정부가 직접 분향소를 설치했던 시청광장에 유가족들이 다시 분향소를 차리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느냐고 했다. 오히려 "유가족의 마음을 누구보다 이해하고 공감한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와 추모 감정을 배척하려는 정부의 행태가 매우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유 씨는 시청광장 합동 분향소는 시민들이 함께 세운 곳이라면서, 독립 조사 기구를 통한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이 이뤄질 때까지 유가족들은 힘써 싸울 것이라고 했다.

"시민 여러분, 저희 유가족들이 겪어 보니 사랑하는 사람을 준비도 없이 갑자기 떠나보내는 일은 감히 인간이 감내할 수 있는 고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다른 누군가가 이런 똑같은 고통을 겪는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온몸을 다해 막고 싶습니다.
 

지금 여기 있는 시청 분향소, 저희가 아닌 국민 여러분께서 피와 땀으로 몸소 만들어 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분이 저희 유가족과 희생자들을 지켜 주시고 항상 함께해 주시는 것처럼, 저희는 여기 계신 모든 분과 다른 국민들이 생명과 안전에 대한 걱정 없이 살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진상 규명을 통해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기 위해 절대 쓰러지지 않겠습니다."

서울시청 앞 분향소를 찾은 그리스도인·시민들은 빵과 포도주를 함께 나누며 이태원 참사를 끝까지 기억하고 함께하겠다고 다짐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서울시청 앞 분향소를 찾은 그리스도인·시민들은 빵과 포도주를 함께 나누며 이태원 참사를 끝까지 기억하고 함께하겠다고 다짐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참가자들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주제로 한 요한계시록 21장 3~5절을 읽고,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과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다짐하면서 침묵으로 기도했다. '연대의 식탁 나눔' 순서에는 함께 빵과 포도주를 나누기도 했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기도문을 읽으며, 희생자·생존자·목격자·구조자들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치유의 손길이 함께하기를 염원했다. 또한 참사를 안타까워하며 상처와 절망으로 힘겨워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날 기도회를 인도한 자캐오 사제(대한성공회 용산나눔의집·길찾는교회)는 "한 번이라도 더 이 자리를 찾아 주시고, 함께할 수 있을 때마다 함께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이것은 여야나 정파가 아닌 삶과 죽음의 이야기고, 사랑하는 사람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사람들의 간절한 노래이자 기도다. 그 자리에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는다면 어디에 함께하실까"라면서 "우리의 신앙이 골방에 갇혀 죽어 가지 않도록, 거리에서 함께해야 하는 사람들 곁을 지켜 달라. 우리 일이 될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끝내 함께 이겨 내는 그 자리에 있어 달라"고 말했다.

개신교·가톨릭·불교·원불교 4개 종단은 매주 화요일 저녁 7시 시청광장 10·29 이태원 참사 분향소 앞에서 돌아가며 기도회를 열 계획이다. 개신교 담당 순서는 매월 첫째·셋째 주이며, 다음 기도회는 2월 21일 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의 주관으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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