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12월 23일 '4·16 가족과 함께하는 성탄 예배'에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예은 양 엄마 박은희 전도사가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을 위로하며 낭독한 글입니다. 필자의 수정과 허락을 거쳐 전문을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4월의 엄마 박은희 전도사가 10월의 엄마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4월의 엄마 박은희 전도사가 10월의 엄마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안녕하세요. 단원고 2학년 3반 유예은 엄마입니다. 제 딸은 쌍둥이 중 작은아이로, 노래 부르는 걸 좋아했습니다. 아이는 늘 입에 노래를 달고 살았습니다. 또 과일을 좋아해서 별명이 '과일 나라'였어요. 저 멀리서도 용케 엄마를 알아보고 "엄마" 부르며 달려오던 아이였습니다.

그래서 적막한 방에 혼자 있을 때, 먹어 주는 사람이 없어서 상한 과일을 잔뜩 버려야 할 때, 늘 엄마를 부르며 달려오던 아파트 입구를 지날 때, 순간 시간은 멈추고 저는 우주 한가운데 서 있는 듯 길을 잃어버리곤 했습니다.

어머님도 그러시지요. 아이가 없는 세상을 받아들일 수 없는데, 아이를 위해서 살아남아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당황스럽고 억울하고 분통이 터지십니까.

제가 힘들고 어려웠던 그 시간들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같은 아픔을 안고 있는 유가족들, 그리고 함께하는 시민들 덕분이었습니다. 그분들 앞에서는 웃을 수도 있었고, 마음껏 울 수도 있었습니다. 눈치 보지 않고 밥도 먹을 수 있었습니다. 다 같은 마음이었으니까요. 함께 있는 유가족들을 가까이하시고, 위로하러 오는 시민들과 함께하시기 바랍니다.

저희도 참사 초기부터 정부가 보상금 프레임으로 유가족들을 돈에 눈먼 사람처럼 만들었고, 악성 댓글에는 "자식 잃고 돈 잔치 하는 부모들"이라는 조롱이 난무했습니다. 그래서 2014년 겨울, 오랫동안 사용했던 세탁기가 망가졌지만 저는 차마 그것을 바꾸지 못했습니다. 다 악성 댓글들 때문이었지요. 그러다가 어느 날 산처럼 쌓인 젖은 빨래 더미를 끌어안고 머리를 묻은 채 펑펑 울었던 적도 있습니다. 그런 악성 댓글 따위는 쳐다보지 말아야 했습니다. 사람도 아닌 것들의 글입니다. 눈여겨보지 마세요.

지금도 정부는 당연한 배상금을 '보상금'으로 포장하고, 새빨간 글씨 속보를 내보내며 유가족들의 가슴을 후벼 파고 있습니다. 가해자인 국가가 피해자에게 당연히 줘야 하는 것인데, 정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오히려 이러한 행동을 통해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들고 있습니다. 유가족을 자식 목숨 이용하는 파렴치범으로, 국민의 세금을 도둑질하는 경제사범으로 만들어 놓고, 자신은 가해자의 자리에서 은근슬쩍 도망갑니다.

기가 막히시지요. 한 번도 아니고 매번 참사 때마다 이 짓을 반복하고 있는 저들을 볼 때마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솟습니다.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보수 단체들이 혐오의 나팔을 불도록 부추기고 눈감아 주고 있습니다. 그런 지금의 모습은 그들이 인간이 아님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제 이틀 뒤면 성탄절입니다. 예수님이 휘황찬란한 왕궁이 아닌 누추한 마구간에 태어나셨다는 것은 교회 다니지 않는 사람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교회 지도자들은 거리에 나와 있는 자들의 손은 잡아 주지 않으면서, 피해자들 눈에 피눈물이 나게 한 대통령을 찾아가 그의 손을 잡고 기도회를 하고 왔습니다. 그들은 참종교인이 아닙니다. 정말 부끄러운 일입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저도 자식을 잃었지만, 그렇다고 감히 여러분의 마음 다 안다고 하지 못하겠습니다. 그저 잊지 않고 함께하겠다고, 먼저 시작한 저희가 포기 않고 버티고 있겠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일은 정부나 정치인 심지어 시민의 눈치도 보지 말고 마음껏 하시기 바랍니다. 8년 8개월을 지나고 보니, 내가 뱉어 낸 말은 나의 말이 아니라 내 아이의 절규였던 것 같습니다. 아이가 마음껏 말하도록 그 이름을 걸고 계속 나아가십시오. 그러다 보면, 힘들 때 아이들은 찾아와 주고 슬플 때 함께 울어 주며 늘 그 길을 함께할 겁니다.

그런데 이 길이 생각보다 깁니다. 잘 챙겨 드시고 때로는 쉬시고 때로는 도움을 받아 가면서 긴 호흡으로 가시기를 바랍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많은 사람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가족들도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박은희 / 세월호 참사 희생자 단원고 2학년 3반 유예은 양의 엄마. 안산화정교회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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