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9 이태원 참사 100일을 앞두고 참사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기도회가 열렸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10·29 이태원 참사 100일을 앞두고 참사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기도회가 열렸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맞은편, '100' 모양으로 엮은 하얀 국화와 십자가, 촛불이 놓였다. 그 앞으로 목회자, 어린아이와 함께한 가족 등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앉았다. 무거운 표정 사이사이로 '책임자를 처벌하라', '대통령은 사과하라'고 적힌 팻말이 손마다 들려 있었다.

10·29 이태원 참사 100일을 닷새 앞둔 1월 31일, 추모 기도회가 열렸다. 10·29이태원참사를기억하며행동하는그리스도인모임에서 주최한 이번 기도회는 엄숙한 분위기에서 1시간가량 진행됐다. 기도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녹사평역 합동 분향소까지 행진한 뒤 조문에 참여하기도 했다.

희생자 박가영 씨의 어머니 최선미 집사는 참사가 벌어진 지 세 달이 지나도록 정부는 아무런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국정조사 내내 이상민 장관은 '모릅니다', '제 생각은 그렇지 않습니다'. '미흡했습니다' 이 세 마디만 반복했다. 행정안전부장관이라면 참사 후 세 달이 지난 시점에 와서는 미흡했던 부분에 대해 어떠한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했고, 수립하는 과정이며, 수립할 예정인지 말해야 했다. 그런데 모든 것을 수립할 예정이라고만 하니, 세 달 동안 한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 아닌가. 우리와 우리의 청년들, 남아 있는 자식들은 너무도 무섭고 어둡고 대책 없는 세상에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참사 희생자를 탓하는 교회의 대응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최 집사는 "우리 아이는 살아서 주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를 힘쓰고, 다음 세대를 이어 가야 할 사명이 있는 아이였다. 주님의 뜻을 거스른 자는 대통령이고, 이상민 장관이며, 용산구청과 경찰"이라고 말하며 울먹이기도 했다. 또한 "어떤 젊은 목사님은 이번 참사가 기성세대의 기도가 부족해서 생긴 일이라고 한다. 기도가 부족했다고 우리에게 뒤집어씌우지 말라. 평소에 사회의 부당하고 안일한 사태에 목소리 내지 않고, 기독교의 정신을 주장하지 않고, 공의의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었던 당신들의 잘못이다. 목회자가 먼저 엎드리고 울어야 할 때다. '왜 그곳에 갔느냐'가 아니라 '왜 돌아오지 못했는지' 물어야 할 때다"라고 말했다.

최 집사는 "유가족들은 지금 처절하게 울고 있다. 함께 울어 달라"면서, 한국교회가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서명운동, 독립적 조사 기구 설치 및 특별법 제정 노력에 동참해 달라고 강조했다. 

참사 희생자 박가영 씨 어머니 최선미 집사는 정부가 참사 후 100일이 지나도록 아무런 재발 방지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교회를 향해 피해자를 탓하거나 참사를 왜곡하지 말아 달라고도 말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참사 희생자 박가영 씨 어머니 최선미 집사는 정부가 참사 후 100일이 지나도록 아무런 재발 방지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교회를 향해 피해자를 탓하거나 참사를 왜곡하지 말아 달라고도 말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이날 설교는 세월호 희생자 단원고 2학년 3반 유예은 양이 다녔던 안산 화정교회 박인환 목사가 전했다. 박 목사는 정부가 유가족이 모이는 것을 방해하고, 희생자의 이름과 사진이 없는 분향소를 만드는 등 세월호 참사를 겪고도 달라진 것이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하나님이 고통 속에 있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과 함께 눈물 흘리며 아파하고 계신다면서, 부끄러움을 모르는 권력자들을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라고 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이 쓰러져 있는 유가족들을 일으켜 줘야 한다며 "우리 모두 함께 연대하는 '세 겹 줄'이 되어 쉽게 끊어지지 않고 기어이 정의로운 심판의 날을 맞이하자. 그러기 위해 공감하고 기억하고 동행하자"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 다음 날인 10월 30일이 주일이었습니다. 1부 예배 시간에 예은 엄마 박은희 전도사가 슬그머니 밖으로 나갔습니다. 예배 끝난 후에 보니 로비 위에 의자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10·29 이태원 참사 소식을 들으면서 받은 충격이 몸으로 왔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주변의 4·16 목공소 엄마·아빠들, 그리고 여러 세월호 엄마·아빠들의 얘기를 들으니 모두 비슷했습니다. 한마디로 픽픽 쓰러지는 것이었습니다. 진상이 규명되지 않고 책임자 처벌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태원 참사를 접하다 보니, 트라우마가 몸을 때리는 것 같았습니다. 사람은 각각인 것 같지만 이렇게 서로 연결돼 있는 것입니다. 

 

지금 어떤 위로도 받을 수 없는 이태원 참사 가족과 친구 여러분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남은 것이라고는 절망과 상처밖에 없고 길바닥에 내동댕이쳐진 것과 같은 처지의 세월호 유족들이지만, 그들이 아픈 마음으로 여러분과 함께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록 이 땅의 주류 세력들, 그것이 정치 세력이든 종교 세력이든 간에 그들은 (유가족을) 발길질하고 폄훼하고 가짜 뉴스를 만들어 괴롭히는 괴물 짓을 해 왔지만, 드러나지 않은 많은 사람이 지난 9년간 세월호 가족들 곁에서 함께 기도하며 싸워 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태원 참사 가족들 곁에 또 설 것입니다."

기독여민회 민아름 목사는 더 이상 비슷한 참사가 벌어지지 않도록 그리스도인들이 끝까지 기억하고 행동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민 목사는 "우리는 여행을 가다가, 놀러 가다가, 길거리에서, 직장에서, 언제 어떻게 끝날지 모르는 삶을 살고 있다. 사람보다 자본이 우선시되는 이 사회에서 우리의 안전은 언제나 자본에 밀려, 설 자리를 잃는다. 이제 더 이상 그 어떤 생명도 허망하게 잃고 싶지 않다. 반복되는 참사를 막기 위해 행동하고 소리치고 기억하게 해 달라. 이 사회의 안전을 뿌리부터 튼튼하게 쌓아 올릴 수 있는 끈질긴 연대를 이루게 해 달라. 이를 통해 사회구조를 바르게 세우고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여 모두에게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 가게 해 달라"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대책 마련 등 정부의 책임을 요구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참가자들은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대책 마련 등 정부의 책임을 요구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이태원 참사 100일을 하루 앞둔 2월 4일 오후 2시 광화문 북광장에서는 '10·29 이태원 참사 100일 시민 추모 대회'가 열린다. 이날 유가족들은 11시 녹사평역 합동 분향소에서 영정을 들고 광화문까지 행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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