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 가족과 함께하는 성탄 예배가 12월 23일 열렸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4·16 가족과 함께하는 성탄 예배가 12월 23일 열렸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뉴스앤조이-여운송 기자] 성탄을 맞아 4·16 세월호 참사와 10·29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들을 한 명 한 명 호명하고, 그들의 삶을 기리며 유가족들과 연대하는 예배가 열렸다. 4·16 가족과 함께하는 2022년 성탄 예배 '그의 이름, 우리와 함께'(마 1:23)가 12월 23일 늦은 저녁, 경기 안산 단원구에 위치한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강당에서 진행됐다.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를 기록했지만, 세월호 가족을 비롯한 그리스도인·시민 100여 명이 공간을 가득 메웠다.

이날 예배 인도를 맡은 김은호 목사(희망교회)는 "세월호 참사 이후 이전과 달라야 한다는 간절함이 있었다. 하지만 8년이 지난 2022년, 우리는 4·16 세월호 참사와 같은 10·29 이태원 참사를 경험하고 있다. 여전히 거짓이 진실을, 어둠이 빛을, 절망이 희망을 이기는 듯 보인다. 하지만 4·16 가족과 함께하는 이번 성탄 예배를 통해, 이 땅에 빛과 희망을 보이신 주님을 만나 결국 진실이 거짓을, 빛이 어둠을, 희망이 절망을 이기는 은총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홍순영 군의 엄마 정순덕 씨가 주제 말씀인 마태복음 1장 23절을 읽은 뒤, 이창현 군의 엄마 최순화 씨가 '그 이름을 부르는 것은'이라는 제목으로 묵상을 나눴다. 그는 4·16 가족들과 그리스도인·시민들이 성탄을 맞아 함께 모여 참사 희생자들의 이름과 삶을 기억하는 일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전했다.

창현 엄마 최순화 씨는 우리가 세월호·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이름과 마주해야 하는 이유를 전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창현 엄마 최순화 씨는 우리가 세월호·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이름과 마주해야 하는 이유를 전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우리는 오늘 우리를 이 자리로 이끌어 준 이름들과 마주한다. 이 이름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젊은 나이에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다. 2000년 전 유대 땅에서 예수가 그랬고, 3173일 전 진도 앞바다에서 세월호에 탔던 304명이 그랬고, 55일 전 이태원에서 희생당한 159명이 그랬다. 성탄을 앞둔 오늘 이 이름들과 마주하는 일은, 흘러간 시간만큼 멀어져 버린 이 이름들과의 간극을 좁히기 위한 용기 있는 행동이고, 그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다짐의 표현이다. (중략)
 

한 사람의 이름에는 그 이름을 선물해 준 부모의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고, 삶을 살아 낸 당사자의 숭고함이 깃들어 있다.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이름을 가진 예수는 이름에 걸맞은 삶으로 2000년 넘게 인류를 선하게 이끌어 오고 있고, 구조되기만을 기다리다 침몰하는 배와 함께 수장된 세월호 희생자들은 이를 실시간으로 지켜본 국민들로 하여금 참사 이전과 이후는 달라져야 한다고 각성하게 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 또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질 국가는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줬다. 억울하게 죽임당한 그들을 잊어버린다면, 우리가 있는 지금 이곳이 언제든 세월호와 이태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세월호 가족과 연대해 온 교회의 교인들로 이뤄진 낭독자들이 번갈아 가며, 단원고 학생들을 비롯한 세월호 희생자 304명의 이름과 삶을 낭독했다. 참석자들은 낭독자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순서 책자에 적힌 희생자 명단을 눈으로 하나하나 짚어 나갔다.

"단원고 2학년 1반 18명의 이름과 삶의 이야기입니다.
 

얼굴에 해바라기 같은 웃음을 띠고 엄마가 힘들어하면 꼭 안아 주던 고해인.
아빠의 보배, 아빠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끝없는 잔소리꾼이었던 '꽁민지' 김민지.
초등학교 때 점토 교육 강사 자격증을 딸 정도로 만들기를 좋아했던 김민희…."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이 못다 이룬 꿈과 각양의 성품, 취미와 특기, 별명, 그에 얽힌 추억 등이 찬찬히 낭독됐다. 교사, 일반인, 미수습, 선원 희생자들의 이름도 빠지지 않았다. 낭독이 이어지는 동안 참석자들은 곳곳에서 옷소매를 적셨다.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지 못하는 낭독자도 있었다. 한 줄 남짓한 문장으로 모든 희생자의 이름과 삶을 낭독하는 데만 1시간이 걸렸다.

이번 예배에서는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이름도 불렸다. 총 159명의 희생자 중 지난 12월 16일 열린 이태원 참사 49재 추모제 당시 유가족이 공개를 동의한 희생자 79명의 이름이었다. 그들을 기리며 호명하는 소리가 공기를 타고 참석자들의 마음을 울렸다.

"강민지, 김단이, 김도은, 김동규, 김미정, 김보미, 김산하, 김세리, 김수진, 김연희, 김용건, 김원준, 김유나, 김의현, 김인홍, 김주한, 김지현, 김지현, 김현수, 노류영, 문효균, 박가영, 박소영, 박시연, 박지애, 박지혜, 박초희, 박현도, 박현진, 서예솔, 서형주, 송영주, 송은지, 송채림, 신애진, 신한철, 안다혜, 안지호, 양희준, 오근영, 오지민, 오지연, 유연주, 유채화, 윤성근, 이경훈, 이남훈, 이동민, 이민아, 이상은, 이수연, 이승연, 이승헌, 이은재, 이주영, 이지한, 이지현, 이한솔, 이해린, 이현서, 임종원, 장한나, 정아량, 정주희, 조경철, 조명화, 조예진, 조한나, 진세은, 최○○, 최다빈, 최민석, 최보람, 최보성, 최유진, 최정민, 최혜리, 추인영, Steven Blesi."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노란 리본과 이태원 참사를 애도·연대하는 검은 리본 및 배지를 함께 패용한 시민들이 곳곳에 보였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노란 리본과 이태원 참사를 애도·연대하는 검은 리본 및 배지를 함께 패용한 시민들이 곳곳에 보였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예은 양의 엄마 박은희 전도사는 '4월의 엄마가 10월의 엄마에게'라는 제목으로 이태원 참사 유가족에게 애도와 연대의 메시지를 전했다. 박 전도사는 "아이가 없는 이 세상을 받아들일 수 없는데, 아이를 위해 살아남아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것이 얼마나 당황스럽고 억울하고 분통 터지시나. 힘들고 어려웠던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건 같은 아픔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유가족들, 그리고 함께하는 시민들 덕분이었다"며 유가족들끼리 가까이 하고, 찾아오는 시민들과 함께하시길 바란다고 위로했다.

그는 세월호 가족들도 자식을 잃은 후 지난 8년 8개월간 무책임한 정부와 언론, 각종 조롱과 악성 댓글로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면서도 "그렇다고 여러분의 마음을 다 안다고 감히 말하지는 못한다. 그저 먼저 시작한 저희가 절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고 있겠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잘 챙겨 드시고, 때로는 쉬시고, 때로는 도움을 받아 가며 긴 호흡으로 가시기 바란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사람이 함께하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도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4월의 엄마가 10월의 엄마에게'라는 제목으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 예은 엄마 박은희 전도사. 뉴스앤조이 여운송
'4월의 엄마가 10월의 엄마에게'라는 제목으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 예은 엄마 박은희 전도사. 뉴스앤조이 여운송

이날 예배를 기획한 4·16생명안전공원예배팀 정경일 박사(새길교회)는 예배 후 광고 시간, 이번 성탄 예배의 기획 취지를 밝혔다. 그는 "이번 예배는 세월호 가족이 이태원 가족을 위로하기 위한 예배였다. 이태원 유가족을 초대하자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우리가 그곳에 가야지 (그분들을) 차마 초대할 수는 없다는 마음으로, 기도와 예배를 통해 위로의 마음을 나누고자 준비했다"고 말했다. 또한 "영정도 이름도 없는 이태원 참사 분향소를 보면서 세월호 가족들이 너무 비통해했다. 희생자 한 분 한 분의 이름과 삶을 기억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을 향한 위로의 메시지를 담은 성탄 카드를 적기도 했다.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는 이를 모아 이태원 참사 유가족 측에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세월호 가족들은 이날 시민들이 작성한 성탄 카드를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세월호 가족들은 이날 시민들이 작성한 성탄 카드를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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