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 신문이나 방송을 보다 보면, 늦은 나이에 목회자가 된 이들의 간증을 자주 접할 수 있다. 다른 직업을 갖고 활동하다 뒤늦게 '목회자가 돼라'는 음성을 듣거나 소명 의식이 생긴 이들이다. 생업을 포기하고 목회자의 길에 뛰어드는 이들을 보면, 때로 존경심이 생기기도 하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범죄 이력이 있으나 과오를 다 뉘우쳤다며 목회자가 되는 이들도 있어, 진정한 회개와 용서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런 이유에서든 저런 이유에서든, 한국교회는 '목회자가 되는 이들'에게 관심이 많고 그들의 이야기를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반대로 목회자의 길을 걷기 위해 준비하다 그 길에서 벗어난 이들의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별로 없다.

<뉴스앤조이>는 신학대학교 혹은 신학대학원 과정을 밟고도 목회자의 길 대신 다른 길을 선택한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고 싶었다. 이 릴레이 인터뷰의 이름은 당초 '목회 포기자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뉴스앤조이>가 만난 이들은 신앙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각자 삶의 방식에서 신앙적 가치를 실현하려 애쓰고 있었다. 따라서 엄밀하게 말하면 '포기'라는 단어 대신 '다른 길'이라는 표현이 적합할 것이다.

'다른 길로 간 신학생들' 인터뷰 아홉 번째 주인공은 박선호·정지수(가명) 부부다. - 기자 주

[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이번에는 신학교 출신 부부를 만났다. 부부는 같은 신학교 선후배 사이로 만나 결혼했다. 부부 모두 신학대학원까지 진학했으나, 얼마 안 가 목회를 그만뒀다. 목회를 그만둔 이유는 너무나 명확했다. 남편 박선호 씨(37·가명)는 지금까지 만난 신학생들 중 가장 날것의 표현을 썼다. "해 먹을 게 없어서 관뒀다." 그는 "이 인터뷰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라고 했다.

아내 정지수 씨(32·가명)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돈 얘기 앞에 솔직해지자"며 목회자들도 돈 벌기 위해 똑같은 고민을 하는데, 왜 목회를 그만둔 신학생만 속물 취급을 받아야 하느냐고 말했다. 또 "스스로의 힘으로 먹고사는 게 성직"이라고 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목회뿐만 아니라 다른 어떠한 일도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박선호 씨는 미국 유학을 다녀온 후 목회를 포기했다. IT 회사를 거쳐 지금은 보험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정지수 씨는 신학대학원에 들어갔다가 곧바로 자퇴 원서를 낸 후, 학원 강사가 됐다. 강남 대치동을 거쳐 지금은 성남의 한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지난 4월 말 성남 판교에서 부부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부부의 요청으로 실명과 얼굴은 밝히지 않기로 했다.

목회를 포기한 신학생 '부부'의 이야기를 들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목회를 포기한 신학생 '부부'의 이야기를 들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 신학교에 들어간 계기가 궁금합니다.

정지수 /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건강이었어요. 고1, 2때는 성적이 잘 나왔는데, 고3 때 건강이 안 좋아졌고 덩달아 성적까지 떨어졌어요. 모의고사 등급도 2~3등급씩 내려가고, 멘탈이 무너지기 시작하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삶에서 처음으로 힘든 시간이었죠.

그런데 주위 모든 사람이 "너는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이라서 지금 이렇게 아픈 거다"라고 하더라고요. 다른 대학 가지 말고 신학대에 가야 한다는 '사인(sign)'이라고도 했어요. 그런 말을 계속 들으니까, 진짜 그런 줄 알았어요. 저는 선택받은 사람이라서, 목회를 안 하면 벌을 받거나 큰일 날 줄 알았죠. 그런 두려움을 갖고 신학교에 입학했어요.

박선호 / 아들 낳으면 목사로 키우겠다고 생각하는 부모님 집안에서 태어났어요. 누나만 두 명 있었는데, 교회에서 '한나의 기도' 설교를 들은 어머니가 마침 저를 낳으셨죠. 어렸을 때부터 목회자 교육(?)이 시작됐어요. 말 배울 때부터 주기도문으로 언어 교육을 받았고, 교회 오가면서 읽는 게 성경이었죠. 어느 날 꿈에 이사야서 구절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사 40:28)가 나오면서, 목사가 돼라는 계시를 받았죠. 매일 머릿속에 성경 구절만 입력하고 사니까 꿈에서도 발현됐던 것 같아요.

- 신학교에 진학한 후에도, 목회자가 되겠다는 생각에는 흔들림이 없었나요?

정지수 / 처음에는 열심히 공부했어요. 아파서 오기도 했고, 그때만 해도 신학교에서 신학 공부 안 하고 방황하면 손해 본다는 느낌이었거든요. 원래 신학교 교수가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교수님들을 보니까 자기 파벌을 모으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자기만의 성을 쌓는 것 같은 분들이 보였어요. 그게 맞는 건가 싶기도 했고, 과연 이게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부르심인가 고민이 많이 됐어요.

학문적으로 아무리 고민해 봐도 답이 안 나오는 것 같아서 목회 현장으로 들어갔어요. 마침 부모님이 교회를 개척하셔서 같이 봉사하려고 했는데, 더 큰 교회에서 사역해 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중형 교회 전도사로 일했어요. 당연히 대학원에도 진학했고요.

박선호 / 고등학교 다닐 때 공부를 안 했어요. 신학교 외에 다른 대학교 간다는 목표가 없었으니까 공부를 안 한 거죠. 그렇게 신학교에 진학했어요. 신학교 들어가서도 놀러만 다녔지 공부는 안 했어요. 시골 살다 서울에 가니까 놀 게 많더라고요. 아내와 같은 학교를 다녔지만 학교 다닐 때는 몰랐어요. 아내는 수업을 열심히 듣던 학생이었고, 저는 매일 공만 찼거든요. 그래도 목회자가 돼야겠다는 생각은 있었죠.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한 계기가 있어요. 어머니가 교회에서 장로로 피택됐는데, 교회에서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거든요. 온갖 음해성 소문이 떠돌았어요. 그걸 보면서 '힘이 없으면 이렇게 당하는구나', '이래서 사람이 공부를 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교회에서 힘을 가지려면 뭐라도 돼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미국으로 유학을 다녀오면 어머니가 크게 힘을 받으실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게 동기부여가 되면서, 그때부터 미친 듯이 공부를 시작했어요. 학점이 1.9에서 3.9로 올랐죠. 몇 군데 알아보고 미국에 있는 학교로 유학을 떠났어요.

유학 가서는 사회복지학·신학을 복수 전공했어요. 이유가 있어요. 학부에서 역사적 예수와 여성에 대해 공부하면서, 성경이 이름 없는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공부를 해서 이름 없는 사람들을 도우려고 했죠.

- 그런데도 두 분은 결국 목회를 포기하셨는데요.

정지수 / 대학원에 입학하자마자 자퇴했는데, 솔직히 들어가서 실망을 많이 했어요. 학부 때 배우는 것과 달라진 게 없었거든요. 목사가 되기 위해 거치는 과정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어요. 남성들이야 이 과정을 거쳐서 하루빨리 목회자가 되는 게 목표니까 다닌다고 하지만, 여성으로서 대학원을 다니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아했거든요. 대부분 결혼하면 커리어가 끝나 버리니까요.

그래도 대학원을 자퇴하고 1년은 목회에 대해 더 고민했어요. 내가 잘하고 있나 싶기도 했고, 미련 때문에 청년 사역을 계속했어요. 평일에는 일하고 토요일·일요일은 교회 사역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했죠. 오히려 그때 청년들의 고충을 더 들어 줬던 거 같아요.

박선호 / 저는 아주 날것 그대로 말하자면, 그 구조 안에서 '해 먹을 게 없어서' 나왔다는 표현이 더 솔직할 것 같아요. 다녀 보니 신학교는 진정한 예비 목회자가 아니라 '왕권'을 이어받을 사람이 다니는 곳이더라고요. 소위 말하는 '성골', '진골', '금수저'가 많았어요.

유학 가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어요. 비교적 집안이 좋은 목회자의 아들 상당수는 미국연합감리교회(UMC)에서 목사 안수받는 걸 목표로 해요. 거기서 목회를 하려면 기존 목회자들에게 추천서를 받아야 하는데요. 그분들은 자기에게 이득이 되거나 집안이 괜찮은 사람한테 추천서를 써 주거든요. 저처럼 가진 게 아무것도 없고 그저 공부하고 싶어 온 사람은 추천서를 받을 수가 없어요. 후배가 유학 온다고 해서 "왕위 이을 거 아니면 오지 마라"고 했어요. 안 그러면 진짜 박사 학위까지 따고 한국 돌아가도 80만 원 받으면서 알바나 해야 하니까요.

실제 한국에 돌아오니까 '배틀 필드' 같더라고요. 자리를 물려받을 기회 자체가 없어요. 목회하러 와서 부목사 비위나 맞추고, 멸시당하고, 무시당하고, 개인 심부름이나 하면서 150만 원을 받았어요. 노예처럼 살면서 일했죠. 저는 주의종이 되기 위해 신학교에 왔는데, 그게 아니라 주의종의 '종'으로 살게 될 판이었던 거죠. 노예 생활은 못하겠더라고요.

박선호 씨는 미국에서 '백'이 있어야 목회를 할 수 있다는 걸 배웠다. 일정한 위치에 올라가는 것은 '왕위 계승'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정지수 씨도 전도사 시절 교회 담임목사 아내와 자녀들의 영어 숙제를 대신 해 주면서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박선호 씨는 미국에서 '백'이 있어야 목회를 할 수 있다는 걸 배웠다. 일정한 위치에 올라가는 것은 '왕위 계승'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정지수 씨도 전도사 시절 교회 담임목사 아내와 자녀들의 영어 숙제를 대신 해 주면서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 두 분은 어떻게 만나 결혼하게 된 건가요?

박선호 / 5년 전에 처음 만났는데, 그 당시 목회를 포기한 건 아니고 그만둬야 하나 고민할 때였어요. 그러다가 먼저 이 길을 내려놓은 지금의 아내를 알게 된 거죠. 신학교 다닐 때 플라톤의 '동굴의비유'에 대해 배우잖아요. 동굴 안에 있는 사람은 그림자만 보고 사는데, 진짜를 보려면 동굴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고. 먼저 동굴 밖으로 나간 사람은 무슨 결심을 하고 나갔는지 궁금하더라고요. 얘기하다 보니까 서로 상황도 비슷하고 망한 케이스도 비슷하고… 동질감을 느꼈고요. 서로에게 힘이 될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그렇게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됐죠.

- 한국교회 대다수는 여전히 부부가 함께 목회를 하는 것을 반대하고, 여성 목회자에게도 '사모' 역할을 강조하는데요. 목회를 그만둔 데는 이런 이유도 작용했나요?

정지수 / 둘 다 목회를 하려 했다면 어려웠을 것 같아요. 목회자와 결혼하는 순간 교회에서는 사모 역할을 하기 원하니까요. 여성이 담임목사로서 자기 교회에서 사역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겠더라고요. 그런 대우는 받고 싶지 않았어요. 여성이라는 이유로 교회에서 보호받는 존재로 여겨진다든지, 보호를 당연히 생각하는 거요. '교리와장정'에 보면 사모는 그냥 평신도예요. 물론 친한 친구들 중에도 목회자 아내가 된 사람이 많아요. 그들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저에게는 그게 맞지 않았어요.

말 나온 김에 얘기하자면, 이런 문제가 해결되려면 여성들이 더 탁월성을 발휘해야 한다고 봐요. "인종차별이나 성차별 같은 '주의'를 막는 가장 강력한 억제제는 탁월함이다(Excellence is the best deterrent to racism, sexism all the 'ism's)"라고 말한 오프라 윈프리의 말을 감명 깊게 들은 적이 있는데요. 구조와 폐쇄성을 바꿀 수 있는 탁월함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해요.

- 목회를 그만둔 다음에는 무슨 일을 했나요?

정지수 / 지금 성남에 있는 한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어요. 원래 학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처럼 어학원에서 일했거든요. 목회를 안 하기로 결심한 후에, 대학 때 경험을 발판 삼아 학원에 이력서를 넣었어요. 어학 점수도 없었는데 열정 하나만 믿고 덤볐어요. 넣을 수 있는 곳에는 전부 넣었어요. 기업이든 알바든 가리지 않고요.

몇 군데서 연락이 왔지만 다 탈락했죠. 대신 면접 과정에서 많이 배웠어요. 그분들이 조언을 많이 해 주시더라고요. 제가 워낙 열심히 하니까 좋게 봐 주셨던 것 같아요. "이쪽 일을 하고 싶으시면 일단 자격증부터 따라", "방법을 알려 주겠다" 하면서 도움을 주셨어요. 쉽지는 않았어요. 전에 일했던 곳에서는 13명 중 저만 비유학파더라고요. 거기서 늘 열등감을 느꼈고 따라갈 수 없는 벽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교회에서 전도사로 일한 경험이 사회에서 메리트로 작용하는 부분도 많은 것 같아요. 가르치는 일로 비교하자면, 교리를 가르치는 것에서 학교 과목을 가르치는 걸로 콘텐츠만 바뀌었다고 생각해요. 학원 일도 전도사 하듯이 똑같이 했어요. 그래서 크게 이질감을 느끼지는 못했어요. 전화 심방도 했다니까요.(웃음) 마음을 담아서 교회에서 아이들 관리했던 것처럼요. 회사원이라고 가만히 있기보다는 앞에 나서서 전도사처럼 일하니까 플러스 요소가 됐던 것 같아요. 몇 번 이직하면서 더듬더듬 여기까지 왔어요.

박선호 / 미국에 갔을 때 영어를 잘하면 그래도 할 수 있는 일이 생기겠다는 마음으로 공부했어요. 하루에 3~4시간 자면서 처음부터 공부했어요. 수동태·능동태도 몰라서 처음부터 다시 배웠어요. 햄버거 주문할 때도 "빅맥 플리즈" 하지 "절인 양상추 추가해 달라" 이런 건 꿈도 못 꿨죠. 그때 포기하지 않고 고생해 가며 영어를 배운 게 큰 도움이 됐어요.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는 해외 기업과 계약을 맺고, 그들의 솔루션을 한국에 들여오면서 파트너들과 소통하는 일을 했어요. 계약을 하려면 영어를 잘해야 하니까요. 지금은 보험회사에서 일하고 있어요.

두 부부는 목회를 내려놓은 이후 더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말했다. 목회를 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생계가 더 문제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자신의 삶을 책임지며 스스로 길을 탐구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어 만족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두 부부는 목회를 내려놓은 이후 더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말했다. 목회를 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생계가 더 문제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자신의 삶을 책임지며 스스로 길을 탐구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어 만족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 한때 목회자를 꿈꿨던 이들이 너무 돈에 집착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아요.

정지수 / 사실 목사님들도 돈에 굉장히 민감하세요. 하나님이 다 책임져 주실 거라고 돈에 초연한 것 같지만, 그분들도 손해보험 들지 말지 굉장히 고민하세요. 여름에 부흥회 다니시는 것도 결국 사례비 때문 아닌가요? 나름 성공했다는 목사님들, 유명한 교수님들조차도 세습한 대형 교회 협동목사로 일하면서 비위 맞추고 있잖아요.

우리 부부는 목회자가 되고 싶지 않아서 그 세계를 나온 게 아니라, 먹고사는 게 더 큰 문제라서 그렇게 결정한 거예요. 모두가 그 문제를 솔직하게 인정했으면 좋겠어요.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신앙이 어떻고 철학이 어떻다고 이야기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파트타임으로 전도사를 하면서 주중에는 생계를 책임지려고 알바라도 하려고 하면 목사님들이 좋아하지 않으시잖아요. 자기 삶을 책임지는 거야 말로 성직이라고 생각해요.

박선호 / "내 삶을 책임지는 게 성직이다"라는 아내의 말에 동의해요. 우리 부부는 그렇게 사는 것이 남에게 피해 주지 않는 삶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신학생 때부터 교회 지원을 받기 싫어서 혼자 돈 모아서 성지순례 다녀왔어요. 교회는 교인들이 피땀 흘려 번 돈으로 세운 거예요. 저는 평신도 자녀였기 때문에, 우리 어머니가 헌금을 얼마나 하시는지도 알고, 교회에서 얼마나 노력하시는지도 알아요.

교인들이 하나님과 교회 공동체를 위해 기도하고 헌금하는 거지, 목회자들 잘 먹고 잘살라고 헌금하는 건 아니니까요. 십계명에 "네 이웃을 속이지 말라"고 나와 있고, 단테의 <신곡>에도 '사기'가 제일 나쁜 죄라고 하잖아요. 왜 목사들은 자기 먹고살 궁리를 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나요? 교인들 돈으로 유학 다녀와서 자기 자랑하는 게 결국 남의 돈 빼앗는 것 같더라고요.

- 목회를 포기한 이후의 삶에 만족하나요?

박선호 / 어머니가 신학을 하라고 하셔서 했던 거잖아요. 근데 아무리 좋은 일이라고 해도, 자기 철학이 없으면 갈피를 못 잡겠더라고요. 목회 길에서 벗어나 보니 오히려 더 예수님이 말한 방향성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살 수 있어 좋은 것 같아요. 그래서 목회를 포기한 후에도 신학·철학 책을 읽는 게 재밌어요. 목사님이 좋다더라 해서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게 왜 좋은지 직접 배우고 깨닫는 과정을 알아가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정지수 / 정말 좋아요. 신학교 다닐 때는 오히려 온전한 신앙생활을 하기 어려웠어요. 예배하면서 말씀에 은혜받고 싶은데, 현실은 유아실에서 애들 보거나 방송실에서 PPT 넘기고 있는 거죠. 지금은 그런 형태의 '성직'이 아니지만, 내가 배운 대로 내 삶을 살아갈 수 있어서 만족해요. 그게 신학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배운대로 살아가려고 몸부림치는 것.

- 비슷한 고민을 하는 신학생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박선호 / 자기 삶을 책임지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고 나니, 이제 내가 뭘 잘할 수 있는지 빨리 찾는 게 중요해지더라고요. 유학하는 와중에 "넌 (빽이 없어서) 안 될 거다"라는 말을 들으면서 상처도 많이 받았지만, 그래서 어떻게 일어서고 대안을 마련할까 늘 고민했어요. 어영부영 살다가 '하나님의 종의 종'으로 사는 것보다, 그런 삶을 살지 않기 위해 뭘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정지수 / 한 교수님과 상담하는 중에 다윗이 시편에서 "나는 주의 종이오니"(시 119:125)라는 말씀을 나누다가 깨우침을 받았어요. 성서에서 많은 사람이 자신을 하나님의 종이라고 선언하는데, 그렇다고 그들의 직업이 모두 목회자는 아니었잖아요. 그때부터 다른 세상에 대해 학습하고, 나에게 목회자가 돼야 한다고 두려움을 불어넣고 그것에 동조했던 사람들의 생각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건, 꼭 목회만을 의미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부르심이란 건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가르치는 게 재미있고, 다른 사람이 기량을 마음껏 뽐낼 수 있도록 응원하고 돕는 게 좋더라고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느낀 게 있어요. 확실히 타고난 친구들은 못 따라간다는 거예요. 그건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한다고 봐요. 김연아처럼 연습한다고 모두가 김연아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그렇지만 내가 남들과 똑같이 노력해서 같은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는 분명히 있어요. 그걸 찾는 건 자기 몫이더라고요. 성직이라는 개념을 넓게 보고 길을 찾으시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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