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 신문이나 방송을 보다 보면, 늦은 나이에 목회자가 된 이들의 간증을 자주 접할 수 있다. 다른 직업을 갖고 활동하다 뒤늦게 '목회자가 돼라'는 음성을 듣거나 소명 의식이 생긴 이들이다. 생업을 포기하고 목회자의 길에 뛰어드는 이들을 보면, 때로 존경심이 생기기도 하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범죄 이력이 있으나 과오를 다 뉘우쳤다며 목회자가 되는 이들도 있어, 진정한 회개와 용서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런 이유에서든 저런 이유에서든, 한국교회는 '목회자가 되는 이들'에게 관심이 많고 그들의 이야기를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반대로 목회자의 길을 걷기 위해 준비하다 그 길에서 벗어난 이들의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별로 없다.

<뉴스앤조이>는 신학대학교 혹은 신학대학원 과정을 밟고도 목회자의 길 대신 다른 길을 선택한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고 싶었다. 이 릴레이 인터뷰의 이름은 당초 '목회 포기자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뉴스앤조이>가 만난 이들은 신앙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각자 삶의 방식에서 신앙적 가치를 실현하려 애쓰고 있었다. 따라서 엄밀하게 말하면 '포기'라는 단어 대신 '다른 길'이라는 표현이 적합할 것이다.

'다른 길로 간 신학생들' 인터뷰 세 번째 주인공은 인천에서 카페를 운영 중인 이성진 씨(가명)다. - 기자 주

[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다른 길로 간 신학생들' 세 번째 인터뷰이 이성진 씨(가명)는 기자가 오랜 기간 알고 지낸 사람이다. 신학교에 다닐 때, 17살 신입생이 입학했다는 소식을 듣고 눈이 휘둥그레졌던 기억이 난다. 수재라는 소문이 돌았는데, 과연 하는 일마다 충실했고 늘 밝고 활력 넘치는 친구였다. 목회자가 되면 정말 잘할 것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그가 몇 년 전 목회를 내려놓았다는 소식을 듣고 다소 놀랐다. 앞선 인터뷰이 한진호 대표(스톰프)처럼 그 역시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회)에서 수련목회자 과정을 밟다가 중도에 포기했다. 그는 지금 인천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이유가 궁금해 전화했을 때, 이성진 씨는 "교회가 나를 밀어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위계적이고 수직적인, 제도화된 교회와는 맞지 않는다던 그의 말이 기억에 깊게 남았다. 다른 길을 선택한 신학생들을 릴레이로 인터뷰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 말이었다. 인터뷰는 지난해 말 인천에서 진행했고, 인터뷰를 전후로 최근까지 몇 차례 연락을 주고받으며 내용을 보강했다.

- 불과 17살의 나이에 신학교에 입학했다. 입학하게 된 과정부터 듣고 싶다.

종교적인 체험이 있어서 목사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어렴풋이 목사라는 직분을 동경했다. 그저 목사가 되면 많은 사람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 집안 사정이 조금 어려웠다. 어머니는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학교를 자퇴하게 했고, 빚을 내서 필리핀으로 보냈다. 필리핀으로 파송된 선교사님을 따라 2년간 거기서 살았다. 중3 나이에 돌아왔는데 한국에서 학력은 여전히 초졸이었다. 독학해서 중졸 검정고시를 봤다.

16살이면 고등학교에 갈 나이다. 당시에 외국어고등학교에 갈 수 있었고 입시 상담까지 했는데, 집안 형편 때문에 그것도 어려웠다. 그래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차에 목사님이 "어쨌든 목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있으니, 그냥 고졸 검정고시랑 수능을 보고 신학교에 입학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권유하시더라.

그때는 대학교에 일찍 간다는 것 자체가 멋있어 보였다. 남들이 가 보지 않은 길이었고. 그래서 고등학교는 포기하고 16살 5월에 고졸 검정고시를 보고 그해 수능까지 봤다. 그래서 17살에 신학교에 입학했다.

수련목회자 과정까지 들어섰다가 목사 안수를 포기한 이성진 씨를 만났다. 그는 현재 인천에서 카페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 이성진
수련목회자 과정까지 들어섰다가 목사 안수를 포기한 이성진 씨를 만났다. 그는 현재 인천에서 카페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 이성진

- 17살이라면 남들은 고등학생일 때다. 신학교에 입학했는데 부담감은 없었나.

이렇게 얘기하니까 내가 머리가 엄청 좋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수능도 오래 공부했다. 목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신학교에 들어간 건 아니었고, 말했듯이 대학교에 일찍 가는 게 멋있어 보였을 뿐이었다. 그래서 대학을 졸업하면 대학교를 하나 더 다니고 싶었다. 나는 대학을 17살에 들어갔으니 스무 살에 졸업하는 게 아닌가.

그런데 신학교에 다니면서 점점 목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같이 어울렸던 형·누나들과 함께 예배에 참석하고, 거기서 느끼고 깨닫는 것들이 있었다. 점진적으로 사역을 시작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4학년이 되면서 마음을 굳혔다.

나와 같이 학교 다닌 사람들은 내 이미지를 기억하겠지만, 되게 열심히 찬양하고 예배 참석하는 학생이었다. 나는 졸업이 가까워질수록 더 신실해지더라.(웃음) 학교에서도 4학년 때 복음주의 정신을 강조하는 동아리에 가입해 활동했다. 내적 확신이 있는 건 아니었고, 그냥 예배에 참석하는 게 기뻤던 것 같다. 그러면서 내 미래에 대해서는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고 '내 길은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목사가 되기로 했으니 진로에 대해 크게 고민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학부 졸업하면 대학원 가고, 대학원 졸업하면 목사 안수받고 임지 구해서 사역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 수련목회자 시험도 한 번에 합격했다. 27살에 감리회 목사가 될 수 있었는데, 왜 그만뒀나.

여러 이유가 있는데, 우선 일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역량보다 많았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일이 줄지 않더라. 전도사에게 가중되는 것도 많지만 부목사님들도 하는 일이 많다 보니 분담하거나 서로 도울 수가 없는 구조였다. 일이 많고 힘들어서 그만둔 사람도 많다. 내가 수련목으로 있을 때만 6명이 그만뒀다.

- 단순히 일이 많아서 목회를 포기했을 것 같지는 않은데.

힘든 것도 힘든 건데, 마음이 지쳤다. 교회 구조에 대해 전반적인 회의감이 들었다. 너무 수직적이고 경직돼 있어서 적응하기 힘들었다. 나는 더 자유롭게 내 의견을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은데, 교회들이 '일치'라는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나. 그러니 소수 의견이나 전도사 의견을 잘 듣지 않는 분위기다. 박탈감을 많이 느꼈다.

교회에 어떤 문제가 생겼다고 가정해 보자. 정석이라고 해야 하나 '국룰'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담임목사 뜻을 따르는 거다. 그런데 만일 그 뜻에 문제의식이 있으면 서로 불편해진다. 나도 이런 내가 싫고, 다른 사람들도 함께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 마치 직장 상사가 점심 메뉴 자유롭게 고르라면서 "난 짜장면" 하는 거랑 같은 건가.

사실은 그런 거다. 경직된 분위기였다. 목사님이 "나는 열려 있고 모든 의견을 다양하게 존중한다"고 말은 하지만, 결국 교회는 한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명분 아래 다양한 의견이 공존할 수 없는 구조가 되는 거다.

그러니 회의 때는 "담임목사님 말씀이 옳습니다"하고, 뒤에서는 부교역자들끼리 담임목사 욕하는 구조가 반복된다. 그런 모습에서 인지 부조화가 심하게 오더라. 물론 부교역자들이 대놓고 반대되는 의견을 말하기 어려운 상황인 건 알지만, 그렇다고 이중적인 행동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 구조적 문제가 아니라 개인 성격 탓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 같다. 혹시 내가 '프로불편러'는 아닌가 자기검열도 해 봤나.

누구든지 나에게 싫은 소리를 하는 사람이 없다면, 그 사람은 되게 불행한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이 목사든 아니든 말이다. 진짜 내 의견을 정말 반대해 주고 "네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고 진심으로 말해 주는 동료가 없으면 얼마나 안타까운가. 그런데 동기들이나 어떤 선후배 이야기를 들어 봐도 담임목사는 자기 의견을 건설적으로 비판하는 걸 원치 않는 것 같다. 비단 한 교회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프로불편러'가 맞다. 내 입으로도 말하고 다닌다. 그게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교회는 돈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보다 더 숭고한 가치를 추구한다. 그러면 문화도 조금 더 개방적이어야 하는 거 아닌가. 적어도 조금 더 나은 길을 걸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교회에서 자기 의견을 내는 것 자체가 교회의 질서를 무너뜨린다고 생각하지만, 길게 보면 그렇게 다양한 의견을 내는 게 교회에 도움이 된다."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 교회에서 크게 다투거나 쫓겨난 건가.

전혀 아니다. 실제로 어떤 분은 "네가 그 교회에서 상처받은 건데 다른 좋은 교회에 가서 목회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질문하시더라. 그분은 내가 피해 의식 때문에 그런 거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게 맞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다른 데 가면 무조건 행복해질 수 있을까. 나는 다른 데 가서도 같은 문제로 또 힘들어할 것 같다.

오해가 없었으면 한다. 담임목사님은 개인적으로 나를 많이 밀어주셨다. 내가 잘되기를 바라셨고 많은 걸 투자해 주시기도 했다. 수련목 시험에 합격하니까 주일 오전 예배 설교를 맡겨 주실 정도였다. 담임목사가 주일 설교를 전도사에게 맡기는 교회는 흔치 않다.

사직서 내면서도 담임목사님에게 '챙겨 주신 것은 너무 감사하지만 목사님의 목회 방향이나 생각과는 다른 의견을 갖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나왔다. 담임목사님은 나를 끝까지 챙겨 주시려고 했다. 힘들면 쉬라면서 내년에 다른 교회에서 수련목회자를 계속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고까지 했다(감리회 수련목회자는 3년간 반드시 소속 교회가 있어야만 목사 안수를 받을 수 있다 - 기자 주). 그러니까 목사님은 구조 안에서는 최선을 다해서 대우해 주신 건데, 나는 사직서를 내고 교단에 전화해서 제명해 달라고 했다.

신학교에 들어온 후에는 목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미래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겪은 교회 내부는 다양한 의견이 공존할 수 없는 곳이었다. 사진 제공 이성진
신학교에 들어온 후에는 목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미래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겪은 교회 내부는 다양한 의견이 공존할 수 없는 곳이었다. 사진 제공 이성진

- 갑자기 목회를 포기한다고 하니 온갖 추측이 난무했을 것 같다. 신앙을 잃어버렸다든지, 사고(?) 쳐서 그만두는 거라든지…

주위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것 같아 어떤 면에서는 슬프고 아프지만, 그래도 단호하게 그만둘 수 있었던 이유를 냉철히 생각해 보니 '사역하는 게 좋아서'였던 것 같다. 목사라는 직업이 좋았던 게 아니었던 거다. 그걸 깨닫고 나서는 마음이 좀 편했다.

수련목 그만뒀다고 하니 "쟤는 하나님 떠났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전혀 아니다. 나는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싶다. 근데 그건 꼭 목사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일 아닌가. 나는 그렇게 결론 내린 것뿐이다.

상처받은 건 상처받은 거고 그 안에서 했던 사역 활동은 다 즐거웠다. 교회 사람들 다 보고 싶고 생각나고… 그래서 말인데, 사고 쳤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반드시 기사에 실어 줬으면 한다. 절대로 아니다.(웃음) 지금도 그만두고 나온 교회 목사님들이나 교인들과도 연락하고 지낸다. 몇몇 청년은 내가 일하는 카페로 찾아와서 즐겁게 놀기도 한다. 어떤 청년은 아직도 전도사님이라고 부르고, 어떤 사람은 사장님이라고 하고, 어떤 청년은 그냥 이름으로 부른다.

- 목회를 관두고 나니 어떤 기분이 들던가.

삶의 터전을 빼앗긴 느낌이 들었다. 사실 누가 가져간 건 아닌데, 교회라는 곳은 나에게 집과 같았으니까. 매일 다니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매일 만나는 곳이었는데, 그만두고 나서 교회를 떠나니 상실감이 컸다. 큰 걸 하나 잃어버린 마음도 들었고.

'탈교회'를 하면 바로 행복할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더라. 후련하지도 않고 그렇게 기쁘지도 않다. 그렇지만 시간을 되돌리더라도 아마 51대 49로 그만두는 걸 다시 선택할 것 같다.

- 가족이나 주변에서도 만류했을 거 같은데.

부모님이나 목사님이나 교인들은 당연히 안타까워했다. 정상적으로 편하게 안수받기를 원하셨다. 그런 분들은 박탈감을 많이 느끼셨다. 그러나 주변 친구들이나 지인들은 내 결정을 지지해 줬다. 아마도 나와 같은 문제의식이 있기 때문에 나를 지지한 게 아닐까. 그들 역시 교회 구조 안에서 겪었던 어려움을 공감하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한 번도 떠나 본 적이 없지 않나. 목사가 되겠다고 다짐한 이후에는 다른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안 했을 텐데.

목사가 좋다고 생각한 다음부터는 다른 직업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주변에서 나에 대한 기대가 워낙 컸고, (어린 나이에 대학에 입학했으니) 특별해 보였을 거고, 나 같은 사람이 목사 하면 좋겠다고 얘기해 주시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까 더 그랬다.

후회도 많이 된다. 이렇게 될 거였으면 그리 차라리 (신학대에) 가지 말 걸 그랬나 싶기도 하고. 그래도 지나간 날에 크게 연연하지 않으려 한다. 대학 다닐 때 어리다고 놀림도 많이 받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충분히 뭘 해도 도전할 기회가 많이 남았다고 생각한다.

- 나중에 다시 목회할 가능성도 있는 건가.

한다 해도 감리회에서 할 생각은 없다. 목사라는 신분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나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가정으로 초대해서 함께 예배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

그는 다시 목회를 하더라도 교단으로 돌아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뜻이 맞는 이들과 함께 작은 공동체를 이루는 등 제도권 바깥에서 활동하고 싶다고 했다. 사진 제공 이성진
그는 다시 목회를 하더라도 교단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뜻이 맞는 이들과 함께 작은 공동체를 이루는 등 제도권 바깥에서 활동하고 싶다고 했다. 사진 제공 이성진

- 카페에서 일한 지 얼마나 됐나.

1년 조금 안 됐다. 사실 카페 할 생각은 별로 없었는데, 우연히 알게 된 건물주 사장님이 카페를 해 보면 어떻겠냐고 제의해 주셨다. 나도 배운다는 마인드로 시작해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그동안 살면서 사장이나 오너로 뭘 운영해 보고 경험해 본 일은 없었기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정말 좋은 배움이 되겠다 싶어서 수락했는데, 생각보다 쓴맛을 많이 보고 있다. 수익은 제로(0)에 가깝다. 그래도 코로나 시국에 마이너스 안 나온 것만으로도 참 감사하다. 카페와 더불어 2월부터는 건물주 사장님과 식품 회사 스타트업을 시작했다. 카페 건물에서 하는 거다. 잘되면 좋겠다(웃음).

- 이것저것 기사에 꼭 넣어 달라는 말이 많아서 아예 기회를 주겠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쨌든 탈교회를 해서 다른 직업을 가지고 책임 있게 신앙생활을 해 보기로 도전했다. 나 스스로는 당당하지만, 솔직히 결과로도 선택이 틀리지 않다는 걸 보여 주고 싶다. 경제생활도 하면서 제도권 목회가 품지 못한 사람과 연합할 수 있는 좋은 케이스가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다.

그러려면 돈을 잘 벌어야 할 것 같다. 사실 교회 안에 있으면서, 교회 바깥에서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삶을 경험해 본 적은 없지 않나. 한두 달 하는 알량한 경험 말고 몇 년씩 한 분야에 골몰하면서 희로애락을 느껴 보고 싶다. 그러면서 나를 다듬어 가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수립하고 싶다. 그렇게 해야 훗날에 사역을 다시 하게 되더라도 부끄럽지 않을 것 같다.

많은 말을 했지만, 내가 옳다고 고집하지 않는다. "내 말에 반박하고 싶은 말이 생각났다면, 당신 말이 맞다." 이 말은 기사에 꼭 써 달라(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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