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 신문이나 방송을 보다 보면, 늦은 나이에 목회자가 된 이들의 간증을 자주 접할 수 있다. 다른 직업을 갖고 활동하다 뒤늦게 '목회자가 돼라'는 음성을 듣거나 소명 의식이 생긴 이들이다. 생업을 포기하고 목회자의 길에 뛰어드는 이들을 보면, 때로 존경심이 생기기도 하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범죄 이력이 있으나 과오를 다 뉘우쳤다며 목회자가 되는 이들도 있어, 진정한 회개와 용서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런 이유에서든 저런 이유에서든, 한국교회는 '목회자가 되는 이들'에게 관심이 많고 그들의 이야기를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반대로 목회자의 길을 걷기 위해 준비하다 그 길에서 벗어난 이들의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별로 없다.

<뉴스앤조이>는 신학대학교 혹은 신학대학원 과정을 밟고도 목회자의 길 대신 다른 길을 선택한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고 싶었다. 이 릴레이 인터뷰의 이름은 당초 '목회 포기자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뉴스앤조이>가 만난 이들은 신앙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각자 삶의 방식에서 신앙적 가치를 실현하려 애쓰고 있었다. 따라서 엄밀하게 말하면 '포기'라는 단어 대신 '다른 길'이라는 표현이 적합할 것이다.

'다른 길로 간 신학생들' 인터뷰 여덟 번째 주인공은 개발자 안유일 씨다. - 기자 주

[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여덟 번째로 만난 신학생 출신 개발자 안유일 씨(32)가 살아온 삶은 여느 전도사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교회 수련회에 가서 은혜를 체험했고, 목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것저것 조금씩 잘하기는 하는데 업으로 삼기에는 고만고만한 것 같았지만, 예수님 사랑하는 것만큼은 제일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신학교에 들어갔다.

동경과 선망의 대상이던 목회자와 전도사. 그러나 현장에 뛰어들어 실망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더럽고 치사한' 꼴을 많이 보면서, 개척을 해 기성 목회와는 다른 목회를 해 볼까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생계 문제가 안 씨의 발목을 잡았다. 반년 동안 독학한 끝에 개발자로 취업한 배경에는 '살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감리교신학대학교와 신학대학원을 졸업했지만 목회 대신 개발자의 길을 택한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여전히 많은 전도사가 '열정'과 '신앙', '수련'이라는 명목으로 빈곤을 강요당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지난 4월 말 서울 강동구에서 안유일 씨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개발자가 된 전직 전도사 안유일 씨는 교회가 '열정'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부교역자들의 생계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개발자가 된 전직 전도사 안유일 씨는 교회가 '열정'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부교역자들의 생계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 신학교 시절은 어땠나요.

환상이 컸는지는 모르겠지만, 들어와서 엄청나게 실망했어요. 제가 꿈꿔 온 신학교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어요. 처음 신학교 갈 때는 소위 말하는 '신학적 괴물'만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기숙사 들어가 보니 술 먹는 형들도 있었고 '소방 교육'이라면서 선배들이 후배들 불러다가 얼차려 주는 이상한 전통도 있었어요. 선지 동산인 줄 알았는데 그냥 똑같은 대학교고, 전도사님들도 그냥 똑같은 대학생이더라고요. 오히려 교회에서 못 보던 모습을 보고 실망도 많이 했고요. 그때만 해도 형들이 "네가 현실을 알아야 한다. 은혜가 없으면 눈치라도 챙겨라"라고 했는데, 그런 말들을 받아들이기가 참 힘들었어요.

신학교에 다닐 때는 공부보다 교회 사역에 치중했어요. 사역과 학업의 비율을 따지면 8 대 2 정도 됐을 거예요. 지금 와서 왜 그렇게 열심을 쏟았는지 생각해 보면, 초등부 아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게 좋았던 것 같아요. 또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믿었고요. 목사가 되려고 이 과정을 밟는 거니까 최선을 다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 앞선 인터뷰한 신학생 대부분이 위계적·수직적 교회 구조가 힘들었다고 말했는데요. 유일 씨는 어땠나요.

저도 사역하면서 많이 실망했어요. 오래전 일이라 가물가물하긴 하지만, 교회가 너무 수직적이었어요. 무슨 회의를 해도 결국 담임목사님 뜻대로 가야 했죠. 그때 담임목사님이 은퇴하시고 새로운 목사님이 부임할 예정이었는데, 두 분 말에 토를 달면 역정을 냈어요. 옛날 분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미국에서 유학하고 왔다는 분조차도 그렇게 올드하고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교회를 이끌어 나가는 걸 보니 힘들었어요.

교회 내에서 벌어지는 부조리와 불의한 일도 저를 시험에 들게 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목회자에게 제일 중요한 업무는 '설교'라고 생각했는데, 교회 안에서 설교 표절이 넘쳐 나는 거예요. 설교를 듣다가 특정 키워드를 인터넷에 쳐 보면 거기 뜨는 설교를 똑같이 읽고 있어요. 사람들이 다 알면서도, 입 다물고 쉬쉬하곤 했고요. 그때는 전도사로서 설교를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엄청 클 때였어서 그랬는지, 눈물이 나고 화가 났어요. 다른 부교역자에게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얘기했더니 "이런 거 함부로 발설하면 안 된다"면서 입을 닫게 만들더라고요.

당시 우리 교회에는 다른 교파 소속 목사님도 계셨어요. 제가 그분과 친했는데, 어떤 목사님이 친하게 지내지 말라고 하는 거예요.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안 전도사는 감리교인이니까 나랑 친하게 지내야지. 저 사람은 계급으로 따지면 병사도 안 되잖아. 간부들끼리 어울려야지"라는 거예요.

고등학생 때는 목사가 되겠다고 결심할 만큼 신앙이 진지했는데, 전도사로 일하면서 이런 일을 겪다 보니 그런 기쁨과 감격도 없어지더라고요. 그냥 일처럼 되어 버린 거죠. 신대원을 졸업하면서 교회를 나왔어요.

설교가 너무 좋았다는 그는 전도사 때도 하루에 2~3시간씩 성경을 읽고 설교를 준비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성경을 읽으면 혼을 냈다고 한다. 사역할 시간에 왜 성경을 읽느냐는 것이었다. 사진 제공 안유일
설교가 너무 좋았다는 그는 전도사 때도 하루에 2~3시간씩 성경을 읽고 설교를 준비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성경을 읽으면 혼을 냈다고 한다. 사역할 시간에 왜 성경을 읽느냐는 것이었다. 사진 제공 안유일

- 전도사를 사임하고 나서는 무슨 일을 했나요.

우선은 신앙적으로 뭔가 새로운 자극이 필요할 것 같아서 6개월간 여러 교회를 탐방하고 다녔어요.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고민도 많이 했죠. 청소년 지도사가 되고 싶었어요. 제일 큰 이유는 '좋은 영향'을 끼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점이었어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던 중에 우연히 시민단체 활동을 하는 교회를 알게 됐어요. 약자를 돕는 사역이면 무조건 하나님이 기뻐하실 거라고 생각했죠. 그 교회에서 전도사로 일하면서 단체 활동도 함께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가서 좋은 일도 하고 돈도 벌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열심히 했고요.

- 의미 있는 일을 택했네요. 만족스럽던가요.

교회도 너무 좋았고 하는 일도 의미 있었는데, 목사님에게 실망이 컸어요. 그냥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 같았다고 해야 할까요. 설교 시간에는 정경이 가짜인지 진짜인지 모른다는 얘기를 하면서, 또 성경 공부 교재는 유기성 목사가 쓴 <예수님의 사람>(위드지저스)을 사용해요.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었죠.

외부 사역하실 때의 모습은 존경스러웠지만, 내부에서는 리버럴을 넘어서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 같아 보여서 설교 들을 때마다 너무 괴로웠어요. 한번은 예배 시간에 "안 전도사가 수련목회자 시험에 붙으면 우리 교회에서 3년간 노예 생활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걸 들으면서 목회자에 대한 가치관도 흔들렸어요. 아내도 "왜 내가 노예의 아내로 살아야 하느냐"고 하더라고요.

생계 문제도 컸어요. 저는 전도사 자격으로 단체 일을 병행했어요. 화~금 일하고 주말에 교회 사역까지 하면서 월 160만 원을 받았어요. 같이 일하는 단체 직원들은 월~금까지 일하는데 160만 원에 4대 보험까지 따로 챙겨 주셨고요. 그런 데서 오는 상처가 컸죠. 아무리 전도사라지만, 전도사니까 돈을 덜 받는 게 당연한 걸까요? 바깥에서는 전도사들 페이가 너무 적다면서 올려야 한다고 강조하셔 놓고, 정작 그 일을 돕는 저 역시 최저임금도 못 받는 상황이었죠.

두 차례 그만둔다고 말씀드렸고, 취업 활동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덜컥 붙어 버렸어요. 취업하려고 알아보면서 목사님께 취직하면 수요일과 금요 예배는 못 나온다고 말씀 드렸는데, 막상 취직하니까 그다음 주에 바로 그만두고 나가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 이후로는 목회 할 마음이 아예 없어졌어요.

- 목회를 포기했을 때 막막하지는 않았나요.

처음에는 후회도 많이 했어요. 설교하는 게 정말 즐겁고 기뻤거든요. 육아 중일 때도 아내와 조율해서 매일 3시간씩 성경 공부를 했어요. 설교 한 편 쓰는 데 15~18시간씩 걸렸던 것 같아요. 근데 제가 그렇게 노력해도 가정 형편은 전혀 나아지지 않는 거예요. 설교에 열정을 쏟는 만큼 가족들에게는 더욱 소홀하게 됐고요.

교회에서 받은 사례비랑 아내가 파트타임으로 버는 돈을 합치면 200만 원이었어요. 서울에서 전세방 얻어서 애기 키우는데, 200만 원으로는 불가능했죠. 있는 돈 까먹으면서 살았던 거예요. '이렇게 살면서 부모님한테 효도 한번 할 수 없게 되는 건가' 고민도 됐고요.

그때 친한 친구한테 전화해서 얘기했어요. "나 목사 말고 장로 할 거다. 어차피 전도사는 교회에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사니까, 차라리 평신도가 돼서 교회에서 하고 싶은 얘기 좀 하고 살 거다. 교육부 장로 맡아서 전도사님들 월급 올리라고 요구할 거고, 전도사님들 책도 사 줄 거다. 그분들 사역하는데 돈 때문에 처절하지 않도록 도와줄 거다"라고 얘기했어요. 목회하는 친구들이 더 적극적으로 환영하더라고요.(웃음)

그 후로 취업을 준비했어요. 출판 기획이 해 보고 싶어서 이곳저곳 알아봤는데, 운 좋게 한 출판기획사에 덜컥 취직이 됐어요. 들어갈 때 경쟁률이 70:1이었어요. 그런데 아무런 스펙도 없는 내가 도대체 왜 붙었는지 모르겠는 거예요. 들어가자마자 대표님한테 나를 왜 뽑았는지 물어봤어요. 그때 대표님이 하는 말이 "안 대리는 영상도 만들 줄 알고, 기획도 할 줄 알고, 디자인도 할 줄 알고, 관리도 할 줄 알고, 교육도 할 줄 알아서 뽑았다. 이렇게 다 잘하는 사람은 진짜 없다"라는 거예요. 그래서 속으로 '전도사도 경쟁력 있구나' 하고 생각했어요.(웃음) 올라운더가 필요한 기업도 있겠더라고요.

- 어렵게 붙은 회사인데, 1년 반도 안 되어서 그만두고 다시 '취준생'이 됐는데요. 이유가 뭔가요.

그 회사에서 딱 1년 3개월 일했는데요. 조금 더 뾰족한 삶을 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조금씩 잘하는 삶은 뭔가 애매하게 느껴졌어요. 기술을 갖고 싶었어요. 그 회사에서 일하는 개발자들과 좀 친해져서 이것저것 배우면서 코딩을 공부했어요. 전도사를 그만두니까 설교 준비는 안 해도 되잖아요? 그 남는 시간에 매일 3시간씩 코딩 공부를 했어요. 코딩을 시작할 때 가장 기본 개념인 HTML과 CSS 개발 언어는 미리 공부했고요.

몇 달 해 보니까 독학으로는 한계가 있더라고요. 그렇다고 코딩을 아예 그만두자니 여태 배운 게 물거품이 될 것 같고, 지금 공부를 안 하면 6개월 후가 될지, 1년 후가 될지 장담할 수 없겠는 거예요. 그래서 과감히 직장을 그만두고 코딩을 본격적으로 공부해 보기로 했어요. 그게 작년 9월이에요.

그때 연봉이 2500만 원이었어요. 전도사 중에 이만큼 월급 받는 사람 없잖아요? 매달 160만 원 받다가 200만 원을 받으니까 너무 큰돈이더라고요. 그런데 그런 곳을 그만두고 갑자기 코딩을 한다니까 아내가 말렸죠. "무조건 한다. 한 번만 더 믿어 달라"고 말하면서 아내를 설득했어요.

어렵게 들어간 직장을 곧 관두고, 유일 씨는 개발자가 되기 위해 몰두했다. 실패하면 생계가 끝난다는 심정으로 절박하게 매달렸다고 했다. 개발자로 직장에 처음 출근한 날 찍은 사진. 사진 제공 안유일
어렵게 들어간 직장을 곧 관두고, 유일 씨는 개발자가 되기 위해 몰두했다. 실패하면 생계가 끝난다는 심정으로 절박하게 매달렸다고 했다. 개발자로 직장에 처음 출근한 날 찍은 사진. 사진 제공 안유일

- 단기간 안에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이 컸을 것 같아요. 공부하는 과정은 어땠나요.

간절했어요. 무조건 두 달 안에 끝낸다는 마음으로 하루에 15시간씩 공부했어요. 부트 캠프 학원에 가 보니 대학생 때부터 공부한 사람도 있고, 취업 준비하러 온 사람도 있었는데, 애 딸린 아빠가 직업 다 포기하고 와서 공부했으니 얼마나 간절했겠어요. 잘되기 위해서 정말 노력 많이 했어요. 집에 있으면 육아를 해야 하니까 아예 바깥에 개인 사무 공간을 구했어요. 거기서 15시간씩 하루도 빠짐없이 공부한 거예요. 그런 면에서는 육아를 혼자 하다시피 한 아내가 엄청 지지해 준 거죠.

중간에 멘탈이 한 번 나간 적도 있었지만, 사실 초조할 겨를도 없었어요. 왜냐하면 제가 이걸 안 하면 우리 아이가 밥을 못 먹거든요. 정말 해내야만 한다는 동기부여가 돼 있었던 거죠. 그때는 정말 좋아하는 만화 '원피스'도 못 봤어요. 안 풀리는 문제가 있으면 앉아서 기도도 하고 묵상도 했어요. 그렇게 해서 지난해 연말 운 좋게 프로젝트 하나를 할 수 있게 됐고, 올해 2월 취업하게 됐어요. 직원이 40여 명 되는, 신입이 많은 스타트업 회사예요. 힘들게 취업 준비했던 때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나려고 해요.

- 단기간 공부해서 개발자가 되었는데 생활에는 만족하나요.

이번에 입사하면서 연봉이 많이 올랐어요. 연봉이 얼마라는 얘기를 듣자마자 아내와 울었어요. 돈을 많이 벌게 돼서라기보다는, 그동안 힘들었던 세월의 감정이 한꺼번에 몰려오더라고요. 이제는 외식도 할 수 있고, 해외여행도 가 볼 수 있고, 그런 것들을 이제서야 누릴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사실 목회를 포기하기 전에는 정말 개척을 하고 싶었어요. 대부분 개척하는 이유가 그렇듯이, 기존 교회에 실망을 많이 했으니 좋은 교회를 시작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던 거죠. 제가 꿈꿨던 교회의 모습을 실현해 보고 싶었어요. 혹시나 교회가 커진다면 우리 교회에 다니는 전도사님들은 오전에는 신학 공부시키고, 오후에는 외부 사역을 할 수 있게 해 주고 싶었어요. 왜냐면 제가 전도사로 일하던 교회에서는 전도사가 사역할 시간에 성경 읽는다고 혼났거든요.

그런데 개발자 회사에 와 보니 여기가 더 교회 같아요. 대표님도 저를 '유일 님'이라고 불러 주시고요. 직원들이 공부하고 싶은 게 있으면 책값도 주고 세미나도 보내 줘요. 제가 공부를 잘해야 제가 만드는 서비스가 좋아지고, 그래야 회사가 잘되니까요. 전도사가 신학 공부를 해서 설교를 잘하면 그만큼 그 교회가 건강해지는 이치랑 같아 보여요.

- 만약 전도사에 대한 처우가 괜찮았다면 목회를 계속했을까요.

그랬다면 계속 목회를 했을 것 같아요. 어떤 목사님은 "요즘 젊은 사람들 패기가 없다. 우리는 옛날에 진짜 굶어 가면서 했는데 요즘은 너무 바라는 게 많다"고 하시는데, 그때와 지금이 같나요? 담임목사님도 본인 전도사 시절에 160만 원 받았다는데, 그럼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다는 거잖아요.

예전에 한 수련회에서 '목회자의 삶'이라는 영상을 틀었대요. 매일 4시에 하루를 시작해서 정장 입고, 스타렉스 끌고…. 그걸 다들 웃으면서 봤다는데, 저는 그 얘기를 듣고 정말 화가 났어요. 더 이상 이 조직에 기대할 게 없다는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교회 재정부 장로님들에게 묻고 싶어요. 당신의 아들딸이 매일 새벽 4시부터 일을 시작하는데, 한 달에 160만 원밖에 못 받는다면 그게 합당하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어차피 고용해서 뽑은 거라면 아무리 못해도 최저임금은 맞춰 주시고, 4대 보험도 가입해 주셔야 해요. 저는 여태 일했던 교회들에서 나올 때 퇴직금 명목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딱 30만 원 받았어요. 몇 년씩 죽도록 일한 대가가 그거였어요. 이런 교회의 모습이 부끄러워요.

- 다른 직업을 선택해야 하는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제가 똑똑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30살에 처음 사회에 나왔고, 31살이 되어 문외한이던 분야의 기술을 6개월 공부해서 취직했어요. 그런데 제가 첫 직장에서 들은 말처럼, 전도사님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진짜 많아요. 영상만 해도 요즘 전도사님들 얼마나 편집 잘하세요. 근데 그것도 결국 다 독학해서 배운 거잖아요. 조금만 공부하면 충분히 하실 수 있어요.

가진 기술이 없다는 이유로 교회에 머물러 있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건 바보 같다고 생각해요. 강력한 소명을 받은 분들도 있겠지만, 신학교에 온 사람들이 전부 전도사가 위해 태어난 건 아니잖아요? 신학교에서 마르틴 루터 열심히 배웠잖아요. 그런데 왜 목회만 성스럽다고 여기는 종교개혁 이전 사람들 생각을 똑같이 따라가는지 모르겠어요.

다들 소명 때문에 못 나온다고 하는데, 그러면서도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나가고 싶다"고 얘기해요. 그 정도면 목회가 적성에 맞는지 아닌지 본인이 제일 잘 알지 않겠어요? 설교 때 말하는 것과 나의 삶 사이에 괴리가 정말 크다면, 과감하게 나왔으면 좋겠어요. 나와서 하는 일 역시 성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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