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지난 6개월간 만난 전직 신학생 10명은 '다른 길' 역시 존재하며, 다른 길은 '틀린 길'이 아니라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길은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지난 6개월간 만난 전직 신학생 10명은 '다른 길' 역시 존재하며, 다른 길은 '틀린 길'이 아니라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올해 초 페이스북을 통해 연재된 웹툰 '신학생 A의 이야기'는 적나라하면서도 날카롭게 현재 신학생·목회자의 생계 문제를 지적한다. 엠마오연구소를 운영 중인 차성진 목사가 그린 이 웹툰은, 별 고민 없이 신학교에 진학해 어쩔 수 없이 신대원에 입학하고, 어쩌다 보니 목사가 되었다가 결국 나이 40에 교회에서 밀려나는 신학생 A의 일대기를 다룬다. 웹툰은 신학교에 가려고 고민 중인 A의 삶을 이렇게 설명한다.

"A는 교회에서 보내는 시간이 가장 즐거웠다. 목사님, 친구들과 어울리며 교회 일을 하는 것이 즐거웠고, 사람들 앞에 서는 순간이 좋았기 때문이다. (중략) A는 무언가를 열심히 한 적도 열렬히 좋아한 적도 없었다. 그저 학창 시절 내내 학교와 교회를 반복적으로 다녔을 뿐이다. 그러니 취미든, 꿈이든 없는 것은 당연했다. A는 미래를 대비해 본 적이 없다. 하나님이 내 미래를 예비하셨다기에 그냥 그 말을 믿으면 되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이런 소재의 웹툰이 나올 만큼 많은 신학생이 자신의 미래와 사역 문제로 갈등하고 좌절하고 방황한다. 그저 열정과 소명이면 다 되는 줄 알았던 목회자 세계는 막상 경험하고 나니 '성직'이 아니라 그냥 여러 직업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또한 사랑과 섬김을 강조하는 그 세계 이면에는 약육강식의 논리가 자주 작동했다.

예상과 전혀 다른 상황을 마주한 이들은 '이 길은 아니다'라는 것을 체득하고 목회자 세계에서 뛰쳐나오기도 한다. <뉴스앤조이>는 지난해 12월부터 6개월에 걸쳐 전직 신학생 10명을 만나, 목회자 세계에서 낯선 세계로 옮겨 간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를 기사화했다. '다른 길로 간 신학생들'에 대한 반응은 예상보다 컸다. 신학생 독자들은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고, 어떤 독자는 "그들의 앞길을 응원한다"며 응원 메시지를 보냈다. 한 신학대 교수는 "신학생들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해 줘서 고맙다"고 전해 왔다.

왼쪽부터 김민혁 씨(가명), 한진호 씨, 이성진 씨(가명), 최반석 씨. 모두 신학을 공부한 후 목회를 포기하고, 경찰, 공연업, 카페, 웨딩 촬영 업체 등 신학과 무관한 분야로 뛰어들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왼쪽부터 김민혁 씨(가명), 한진호 씨, 이성진 씨(가명), 최반석 씨. 모두 신학을 공부한 후 목회를 포기하고, 경찰, 공연업, 카페, 웨딩 촬영 업체 등 신학과 무관한 분야로 뛰어들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정의·상식 무너진 교회 경험 후 다른 세계로
담임목사와 생각 다르면 의견 못 내
세습 문제에 환멸 느끼기도

<뉴스앤조이>가 만난 다른 길을 간 신학생들이 입을 모아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한국교회는 위계적인 구조로 돼 있으며, 무엇보다 '부모 찬스'가 있어야만 좋은 자리(교회)에 갈 수 있다는 것. 그들은 정의와 상식이 무너진 교회 구조를 경험했고, 상실감과 좌절감을 느끼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뉴스앤조이>가 인터뷰한 10명 모두 목회자 자녀가 아니었다. 이 중 3명의 부모가 뒤늦게 신학을 공부해 목회자가 됐지만, 모두 교단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거나 자녀의 미래를 책임져 줄 만한 위치가 아니었다. 다른 길을 간 신학생들은 스스로 '6두품', '해골', '흙수저'라고 자조했다. 그들이 증언한 한국교회의 문제점을 몇 가지 살펴보자.

1. 담임목사의 생각과 다른 의견을 낼 수가 없다

이성진 씨(가명)는 교역자 회의 때는 담임목사 말에 무조건 맞장구치면서 회의가 끝나면 담임목사를 욕하는 부교역자들을 보며 회의감을 느꼈다고 했다. 교회가 더욱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담임목사의 의견과 다른 목소리를 내거나 들을 줄 알아야 하는데 그런 상황 자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안유일 씨도 최고 지도자(담임목사)와 다른 의견을 내면 '역정'을 부리는 교회 문화를 경험하고 교회를 뛰쳐나왔다고 말했다.

이러한 위계 구조는 담임목사-부교역자 사이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부교역자-부교역자 간에도 형성되고, 나아가 교역자-교인 관계에서도 발생한다. 이런 모습을 두고 민웅기 씨는 "목회자들이 교회가 돌아가게 하려고 교인들의 순수함을 이용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2. 실력보다는 핏줄

"줄도 없고 백도 없는 나 같은 놈은 나가 죽으라는 거냐." 영화 '내부자들'의 이 명대사는 교회 안에서도 작용했다. 다른 길을 간 신학생들은 목회 임지를 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고, 소위 좋다고 소문난 곳으로 가는 데는 실력보다 '핏줄'과 '연줄'이 우선적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교계 안팎에서 목회지 대물림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크지만, 일부 목회자는 자식에게 대놓고 교회를 물려주거나 때로는 교차 세습 등 편법을 동원하기도 했다. 이런 현상은 다른 길을 간 신학생들을 더욱 좌절하게 만들었다. 박선호 씨(가명)는 평생 이렇게 살다가는 '성골' 출신 목회자들을 떠받들며 노예처럼 생활하게 될 것 같아 목회를 관뒀다. 박민수 씨(가명)는 교단에서 이름난 교회의 '준전임' 전도사 자리마저도 부목사에게 잘 보여야 '간택'받는다고 말했다.

박선호 씨는 "주의종이 되려 신학교에 왔지, '주의종의 종'이 되려고 신학교에 온 것은 아니다. 그러나 좋은 목회지는 백 있는 사람들이 '왕위'를 계승하듯이 이어 가고, 힘없는 이들은 계속해서 하층민으로 머무르게 되는 구조"라고 말했다.

3. 누구도 챙겨 주지 않는 생계 문제

한국교회는 목회자들의 헌신과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대다수 목회자들이 받는 대우는 상대적으로 그에 미치지 못한다. 특히 부목사, 전도사로 이어질수록 처우는 더 열악해진다. 다른 길로 간 신학생 중 상당수가 주 5~6일 격무에 시달렸다. 월 150만~160만 원의 사례비를 받으며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줄 돈이 없어 저임금을 주는 교회도 있었지만, 줄 돈이 있는데도 제대로 사례하지 않는 교회도 있었다. 근로기준법, 최저임금, 4대 보험 등은 거룩한 일을 수행한다는 미명하에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가정을 꾸릴 경우 생계 문제는 곱절로 다가온다. 자녀가 있는데도 월 200만 원에 못 미치는 사례비를 받으며 '헌신'이라는 이름으로 버텨야 한다. 십일조와 각종 절기 헌금 등도 내야 하기 때문에 경제적 상황은 더욱 빠듯하기만 하다.

게임 배경 원화가로 일하는 김광수 씨는 "항상 교회에 나가면 즐겁고 행복했다. 그러면 집에 오면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막막하고 힘들고 어려운 형편 때문에 '잘 살고 있다'는 느낌보다 어떻게든 아득바득 '살아 나가고' 있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억대 연봉을 받는 담임목사와 100만 원대 사례비를 받는 전도사 간 '분배 정의'의 문제를 경험한 한진호 씨는, 이런 상황 자체가 비신앙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사업을 하며 교회처럼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근로기준법을 잘 지키는 것이야말로 예수의 정신을 구현하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한 그는 창업 후 탄력 근무제 도입, 초과근무 수당 지급 등 근로기준법을 준수하고 있다.

·신학생들은 새로운 길을 택했지만, 신앙까지 버린 것은 아니다. 새로운 직업을 가진 이후에도 그동안 배워 왔던 신앙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삶에서 성직을 실천하는 길이 무엇인지를 찾으려 애썼다. 왼쪽부터 김광수 씨, 박민수 씨(가명), 민웅기 씨, 안유일 씨, 박선호()정지수(가명) 부부. 뉴스앤조이 최승현
신학생들은 새로운 길을 택했지만, 신앙까지 버린 것은 아니다. 이들은 삶에서 성직을 실천하는 길이 무엇인지를 찾으려 애쓰고 있었다. 왼쪽부터 김광수 씨, 박민수 씨(가명), 민웅기 씨, 안유일 씨, 박선호(가명)·정지수(가명) 부부. 뉴스앤조이 최승현

축구 선수 출신인 민웅기 씨를 제외한 나머지 신학생은 현재 직업과 관련한 사전 지식이 없었다. 게임 배경 원화가가 된 김광수 씨는 미대를 나오지 않았다. 웨딩 촬영 업체를 운영하는 최반석 씨 역시 취미에서 시작한 일이었다. 개발자가 된 박민수 씨와 안유일 씨도 컴퓨터와는 크게 관련 없는 삶을 살았다. 강남 대치동 유명 어학원에서 강사로 일한 정지수 씨(가명)는 학원 강사 중 유일한 '비유학파'였다. 카페 사장 이성진 씨는 목사가 되기 직전 목회를 포기한 후 뒤늦게 커피를 배우고 사업을 하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쌓기 시작했다. 지금은 경찰이 된 김민혁 씨(가명)도 경찰 제복과 전혀 무관한 삶을 살아왔다.

다른 길을 가기로 마음먹은 이들은 삶의 새로운 페이지를 쓰기 위해 말 그대로 피나는 노력을 했다. 목표를 세우고 잠을 줄여 가며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쌓았다. 상대적으로 뒤늦게 뛰어든 상황이다 보니 더 큰 노력이 필요한 건 당연했다.

주변의 일부는 이런 행동을 '결국 돈 때문에 사역을 포기한 것 아니냐'며 불편하게 보기도 했지만, 다른 길로 간 신학생들은 제도권에 물들어 가는 목회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최반석 씨는 "어영부영 목회할 바에는 차라리 안 하는 게 낫겠다"고 했다. 김민혁 씨는 "목사가 되는 것보다는 어려움에 처한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다른 길로 간 이들은 꼭 '목사'라는 직업만이 거룩하고 구별된다는 환상에서 벗어났으면 한다고 말했다. 목사를 절대화·신격화하지 말고,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사는 것이 곧 '성직'이라는 걸 알았으면 한다고 했다. 한진호 씨는 "스스로 주님의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사역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지수 씨는 "자기 삶을 책임질 수 있는 직업이 성직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다른 길로 간 신학생들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신학생들을 향해 "하루빨리 계획을 세우고, 우선 도전하라"고 조언했다. 새롭게 택할 그 길은 '틀린 길'이 아니라 '다른 길'이니 과감히 새로운 도전에 나서기를 바란다고 했다.

[다른 길로 간 신학생들 연재 인터뷰 리스트]

① [경찰 김민혁 씨(가명)] 아랍권 누비던 신학생 선교사, 목사 대신 경찰 되다
② [공연업 회사 대표 한진호 씨] "목사 안수 포기했지만, 하나님의 일 그만둔 건 아니다"
③ [카페 사장 이성진 씨(가명)] 다양한 의견 공존할 수 없는 교회 구조 경험 후 목회 포기했다
④ [웨딩 촬영 업체 대표 최반석 씨]  "어영부영 목회할 바엔 안 하는 게 낫겠다 판단했죠"
⑤ [게임 배경 원화가 김광수 씨] "사역해서 행복하고 즐거웠지만, 막막하고 어려운 형편은 나아지지 않더라"
⑥ [개발자 박민수 씨(가명)] '교회 정치' 환멸 느껴 목회 접었지만…"보호 종료 청소년들과 함께 신앙생활 하며 돕고 싶어"
⑦ [축구 교실 코치 민웅기 씨] "선하시고 실수 없으신 하나님이 왜…" 세월호 참사 목격 후 목회 관두다
⑧ [개발자 안유일 씨] 열정 품고 신학교 왔더니 돌아온 건 '열정 페이'…"주 6일 일하고 160만 원 받고 살아"
⑨ [보험회사 직원 박선호 씨(가명)·학원 강사 정지수 씨(가명) 부부] "성직은 자기 삶 책임지는 것…'하나님의 부르심' 꼭 목회만 의미하는 건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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