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 신문이나 방송을 보다 보면, 늦은 나이에 목회자가 된 이들의 간증을 자주 접할 수 있다. 다른 직업을 갖고 활동하다 뒤늦게 '목회자가 돼라'는 음성을 듣거나 소명 의식이 생긴 이들이다. 생업을 포기하고 목회자의 길에 뛰어드는 이들을 보면, 때로 존경심이 생기기도 하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범죄 이력이 있으나 과오를 다 뉘우쳤다며 목회자가 되는 이들도 있어, 진정한 회개와 용서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런 이유에서든 저런 이유에서든, 한국교회는 '목회자가 되는 이들'에게 관심이 많고 그들의 이야기를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반대로 목회자의 길을 걷기 위해 준비하다 그 길에서 벗어난 이들의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별로 없다.

<뉴스앤조이>는 신학대학교 혹은 신학대학원 과정을 밟고도 목회자의 길 대신 다른 길을 선택한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고 싶었다. 이 릴레이 인터뷰의 이름은 당초 '목회 포기자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뉴스앤조이>가 만난 이들은 신앙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각자 삶의 방식에서 신앙적 가치를 실현하려 애쓰고 있었다. 따라서 엄밀하게 말하면 '포기'라는 단어 대신 '다른 길'이라는 표현이 적합할 것이다.

'다른 길로 간 신학생들' 인터뷰 다섯 번째 주인공은 게임 배경 원화가 김광수 씨다. - 기자 주

[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다른 길로 간 신학생들' 시리즈를 취재하며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신학생이 목회 관두면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우스워질 정도로, 그들은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일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원래 남달리 뛰어난 사람 아니었냐'며 '될놈될(될 사람은 뭘 해도 된다)'을 주장하지만, <뉴스앤조이>가 만나 본 이들은 하나같이 목표를 구체적으로 세우고,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자기만의 길을 개척해 가고 있었다.

이번에 만난 사람은 게임 회사 넥슨(NEXON)에서 '콘셉트 아티스트(배경 원화가)'로 일하는 김광수 씨다. 현재 게임 속 배경이 되는 세계를 그림으로 구현하는 일을 하고 있는 김 씨의 꿈은 원래 '목사'였다. 그는 한신대학교 신학과와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전임 사역도 하는 등 목사가 되기 위한 모든 과정을 밟았다. 하지만 결국 목사 안수를 앞두고 미술 업계로 방향을 선회했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김광수 씨는 교회에서 사역할 때 만큼은 '행복'했지만, 일상은 생활고에 시달릴 만큼 어려웠다고 회상했다. 고심 끝에 자신이 좋아하는 미술 분야 일에 뛰어들었다. 그 과정에서 어려움도 겪었지만, 지금은 재미와 만족을 느끼며 지내고 있다고 했다. 4월 28일 경기도 용인에서 김 씨를 만나, '다른 길'로 가게 된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 봤다.

한국기독교장로회에서 목사 안수를 앞두고, 목회 대신 '미술가'의 길을 택한 김광수 씨를 만났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한국기독교장로회에서 목사 안수를 앞두고, 목회 대신 '미술가'의 길을 택한 김광수 씨를 만났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 먼저 공통 질문으로 시작할까요. 신학교에 들어가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하면서 일산으로 이사를 갔는데요. 그때부터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어요. 되게 좋았어요. 선생님들이 잘해 주시고 전도사님·목사님도 너무 좋은 거예요. 그때는 목사님들이 멋있게 보이더라고요. 초등학교 3학년 때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학교에서 장래 희망을 쓰는 시간이 있었어요. 거기 목사라고 적었어요.

진짜로 목사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한 건 그 이후죠. 중학교 넘어가서는 조금 삐딱선을 타면서 교회에 잘 안 나가려고 했어요.(웃음) 교회 가는 척하면서 다른 데 가고 친구들이랑 어울리고 그랬는데요. 그럼에도 계속 찾아 주고 잡아 주고 이끌어 주는 선생님과 전도사님들이 좋더라고요. 그래서 마음을 다잡았어요. 교회가 내 삶에서 굉장히 큰 부분이기 때문에 교회에 기여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차근차근 쌓였던 거 같아요.

수능을 본 이후에 고민 없이 원서를 썼어요. 내가 다니는 교회와 관련된 대학이 어딘지 보니까 한신대학교더라고요. 그때는 교단 성향이나 신앙관 같은 건 하나도 몰랐어요. '우리 전도사님 나온 학교로 가면 되나 보다' 싶어서 신학교에 입학하게 됐죠.

- 목사 외에 다른 직업을 갖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 없었나요.

있긴 있었어요. 그림을 좋아해서 만화를 그리고 싶긴 했는데, 잠깐 꿈꿨던 정도였어요. 학교에서 공부하다가도 쉬는 시간이 되면 만화책을 따라 그리거나 낙서하는 걸 좋아했어요. 미술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는데, 집안 형편이 너무 안 좋아서 포기했죠.

고3 때 선생님과 진로를 상담하는 시간이 있었어요. 미대를 가려면 어떤 걸 준비해야 하고 또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 물어봤어요. 그때 미대 진학 조건을 듣고 나서, 우리 집 형편상 어렵겠다 싶어서 내려놨죠. 그림 그리는 걸 제외하면 목사가 돼야겠다는 생각만 있었죠.

- 한신대학교는 학풍이 진보적이라서 시험(?) 들거나, 중간에 진로를 바꾸는 분들도 많다고 들었는데요. 막상 들어가 보니 어떻던가요.

입학하자마자 다가온 한신대 문화는 굉장히 큰 충격이었어요. '내가 여기 있어도 되나' 싶더라고요. 우리 목사님이나 전도사님들 봤을 때 전혀 그런 느낌이 없었는데…. 다들 거칠고, 욕도 잘하고, 시위 나가서 투쟁도 하는 걸 보고는, 고등학생 때 생각했던 신학생의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서 충격받았던 기억이 있어요.

그래도 20대 초반은 스펀지 같았어요. 가르침이나 분위기를 빨리 흡수했던 것 같고요. 어렸을 때 설교 듣고 성경 공부하고 분반 공부할 때 배운 것과는 굉장히 달라서 질문이 많이 생겼어요. 하나님이 기존에 내가 알던 분이 맞는지,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믿음을 행한다는 건 무엇인지 고민이 많았어요. 신학교 시절은 그런 질문을 하나씩 정리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 신앙적으로 잘 맞지 않아 학교를 힘들게 다닌 건가요.

아니요. 많이 재밌었어요. 기본적으로 공부할 때는 보수적인 마음이 남아 있었지만 그렇다고 다른 활동들에 거부감이 있지는 않았어요. '이런 거였구나', '이런 것도 있구나' 하면서 배웠어요. 찬양팀을 꾸려서 여기저기 섬기러 다니기도 하고, 학회 안에서도 공부하고, 신대원 가서는 풍물 활동도 하고, 노래패에 들어가서 민중가요도 부르고 했죠.

- 그러면 학부·신대원을 다니는 동안 목사가 되겠다는 꿈과 소명에는 흔들림이 없었나요.

전혀 없었어요. 학부를 졸업한 다음 신대원을 갔고, 신대원 졸업하고 2년 전임 전도사 생활까지 한 다음 목사 안수를 받으려고 했어요. 학부 때는 용산제일교회, 신대원 때는 오세욱 목사님이 있는 가온교회에서 사역했어요. 가온교회에서는 방과 후 대안 학교(그물코학교)를 운영했는데 대안 학교 선생님이 적성에 잘 맞더라고요. '여기서 전임 사역을 끝내면 더 전문적으로 교육학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대안 교육, 평화교육, 민주 시민교육, 갈등 중재 같은 데 관심이 많았거든요. 그쪽으로 공부를 해서 대안 교육 사업, 평화교육 운동 같은 걸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김광수 씨는 전도사 시절 행복하게 사역했다. 적성에도 잘 맞았다. 그러나 집에 돌아오면 늘 삶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다. 사진 제공 김광수
김광수 씨는 전도사 시절 행복하게 사역했다. 적성에도 잘 맞았다. 그러나 집에 돌아오면 늘 삶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다. 사진 제공 김광수
아득바득 '살아 나가야' 하는 현실 자각 후
뒤늦게 미술의 길로 뛰어들어

- 여기까지만 들으면 마치 지금도 어느 대안 학교에서 사역하고 있을 것만 같은데요. 적성에도 잘 맞았던 것 같은데 왜 목회를 그만둔 건가요.

새로운 길을 찾아야겠다라고 생각한 건 전임 사역 2년을 마치는 시점이었어요[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는 신대원 졸업 후 전임 사역 2년을 마치면 목사 안수를 받는다 - 기자 주]. 집을 한번 쭉 돌아보게 됐어요. 그동안 집안 형편이 많이 어려웠는데 지금까지 그걸 외면하고 살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항상 교회에 나가면 즐겁고 행복하고, 은혜도 받고, 기뻤어요. 그런데 집에 오면 실상은 그렇지 않았거든요. 막막하고 힘들고 어려운 형편 탓에, '잘 살고 있는' 느낌보다 어떻게든 아득바득 '살아 나가고' 있는 것 같았죠. 실제로 삶에서 그런 것들이 눈에 보였는데도, 애써 외면하면서 '형편 좀 나아지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데 그친다던지, '살다 보면 언젠가 좋아질 수 있겠지' 나이브하게 생각하면서 생활했던 것 같아요.

삶의 문제를 외면하고 살았다는 그 생각이, 목사 안수 자격이 주어졌을 때 비로소 들더라고요.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현실 세계에서, 나에게 주어져 있는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겠더라고요. 이어 몸으로 발로 뛰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스쳤어요.

- 그래서 선택한 길이 미술이었나요.

고등학교 때 쉬는 시간마다 함께 그림 그리며 낙서를 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게임 업계에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됐어요. 그 친구를 만나면 항상 "그림으로 먹고살아서 좋겠다"는 얘기를 했어요. 그랬더니 그 친구가 "너도 해 봐, 할 수 있어" 하더라고요.

이제 와서 무슨 그림이냐고 말은 했는데, 막상 그 타이밍에 이 얘기를 들으니까 '재밌겠다',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준비하면 얼마 만에 너처럼 현직에서 일할 수 있냐"고 물어보니까 기본적으로 1년 이상 해야 한다더라고요. 동시에 3~4년을 준비해도 취업을 못 하는 사람도 있다고도 했어요.

친구한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어요. 자기한테 2~3주 정도 기초를 배우고 나머지는 전문 학원에서 1년 정도 준비해 보라더군요. 처음부터 시작했어요. 원근법, 어두운 면, 밝은 면, 삼각형, 원 그리기… 친구에게 3주 동안 속성으로 배우고 학원에서 공부를 시작했어요.

- 비교적 늦은 나이에 미술 공부를 했는데, 학비와 생활비는 어떻게 충당했나요.

그때 모아 놓은 돈이 진짜 얼마 없었어요. 쥐어짜서 공부하면 1년 정도 버틸 수 있는 상황이었어요. 어쨌든 학원에 들어가긴 했는데 운이 좋았어요. 아침부터 나와서 문 닫을 때까지 항상 그림만 그리니까, 원장님이 좋게 보셨나 봐요. 학원에서 간단한 일 몇 가지만 도와주면 학원비는 무료로 해 주겠다고 하더라고요. 운이 좋게 공부를 하게 됐어요.

학원비만 있으면 되는 게 아니라 생활비도 필요하잖아요. 그래서 새벽에 나가 일을 하면서 필요한 돈을 추가로 충당했어요. 학원가 근처 뷔페 식당에서 아침, 점심에 아르바이트를 했고요.

1년을 넘게 준비했는데, 하루도 빼놓지 않고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밥 먹는 시간 빼고 그림만 그렸어요. 그때 교회를 안 나갔는데 목사님께 죄송했죠. 목사님도 서운하셨겠지만, 제가 진짜 필사적으로 하고 있는 걸 아니까 많이 봐주셨어요.

그렇게 하다 보니, 운 좋게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리더라고요. 스타트업 회사였는데요. 자금 문제로 회사가 어려워져 반 년만 일했지만, 거기서 시작해 그라비티를 거쳐 넥슨으로 이직하게 됐죠.

- 충분히 다른 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요. 그럼에도 미술을 선택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다른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뭘 하면 좋을지 고민했어요. 먼저는 '내가 돈을 벌려고 사역을 그만두지만, 그래도 행복해야 한다. 내가 즐거워하는 일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두 번째로는 '내가 가진 재능을 활용할 수 있는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림은 그 두 가지 조건을 다 충족했어요. 제게는 그림이라는 게 일이 아니라 '놀이'였고, 미대생들처럼 대학교를 다니면서 죽어라 그림만 그린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새로 시작하는 게 무섭기도 했지만, 막상 해 보니 너무 재밌는 거예요. 그때 추진력을 크게 받아서 할 수 있었어요. 힘들어 죽겠는데 억지로 한다는 마음은 아니었어요.

오히려 그림 쪽이었기 때문에 전직이 가능할 수 있었다는 생각도 들어요. 이 업계에서는 학과를 안 봐요. 고졸이어도 상관없어요. 홍익대를 나왔든 세종대를 나왔든 학벌이 얼마나 좋든 상관없이, 못 그리면 '아웃'이거든요. 그림은 참 정직한 거 같아요. 진짜 직관적으로 딱 보고 잘했네 못했네 느낌이 오거든요.

그는 현재 게임 회사에서 게임의 배경을 디자인한다. 3D 모델링 전 기초가 되는 배경을 그리는 일이다. 사진 제공 김광수
그는 현재 게임 회사에서 게임의 배경을 디자인한다. 3D 모델링 전 기초가 되는 배경을 그리는 일이다. 사진 제공 김광수

- 게임 회사에서는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나요.

배경 원화가라고 하는데요. 일반적으로 해외에서는 콘셉트 아티스트라고 표현합니다. 게임을 만들 때, 기획자들이 게임 안에 이런 환경이 필요하다고 기획하면 그걸 원화가들이 디자인화·이미지화해 주고요. 그림을 그리면 모델러들이 3D화해서 게임 엔진에 올리는 거죠. 테스트를 반복하면서 문제가 없는지 체크하고 수정해 나가죠.

- 미술에도 분야가 다양한데, 처음부터 게임 업계 취업을 고려했나요.

네. 애초부터 게임 업계 쪽만 생각했어요. 그림을 그려서 먹고살 수 있는 길은 다양하지만, 계획이 구체적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괜히 추상적으로 준비했다가 '사실 알고 보니까 이걸 하려면 추가 조건이 필요하네' 하는 돌발 상황을 마주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저 같은 경우는 현업에서 활동하는 친구에게서 도움을 얻을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게임 업계 쪽으로 발을 들이게 됐어요.

- 지금 하는 일에 만족하나요?

재밌고 만족해요. 지금까지 4년을 했는데 낙서할 때랑은 다르죠. 물론 프로로서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있어요. 소비자들의 명백한 니즈가 있고, 그 니즈를 만족해야 되고, 그리고 스스로도 (결과물이) 잘 나왔다고 느껴야 하니까요. 그래도 제게 그림 그리는 건 기본적으로 '놀이'였기 때문에, 아직도 재밌게 하고 있어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밥 벌어먹는 게 저는 축복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게 제일 큰 매력이고, 결과물이 상용화가 돼서 유저들 반응이 좋을 때, 내가 작업한 게임 배경이 칭찬받을 때 기분이 좋죠. "이번에 새로 생긴 맵이 되게 예쁘다" 같은 칭찬요.

지금 하는 작업도 제가 어렸을 때 엄청 좋아했던 게임이거든요. 어렸을 때는 이걸 하면서 엄마한테 그만하라고 혼났는데, 지금은 제가 이걸 만들고 있는 거예요. 이제는 "엄마, 이제는 이 게임을 만들어서 벌어먹고 살아요" 하는 게 신기하기도 하네요.

- 일할 때 제일 큰 고충은 무엇인가요? 게임 업계 하면 잦은 야근 등 혹독한 근무 문화로 유명한데요.

스타트업 회사에서는 명절도 없이 일을 했거든요. 밤을 새서 하지 않으면 출시일을 지키기 어려운 살인적인 일정이었고요. 그런 문화가 남아 있는 회사도 있지만, 규모가 큰 회사일수록 이제는 덜한 것 같아요. 포괄 임금제를 폐지하고, 철저하게 주52시간 노동을 지키고요. 넥슨에 와서는 야근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물론 근무 환경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 공론화하고 표면에 드러낸 사람들의 노력이 컸죠.

고충이라 하면… 게임 업계가 정년이 진짜 짧거든요. 업계에서 정년으로 퇴직한 사람이 올해 처음으로 나왔을 정도로 한국에서는 수명이 짧아요. 그런데 그 사이에도 트렌드를 못 따라가게 되면 끝장이에요. 새롭게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보다 월등하게 더 잘해야 하고, 그것을 계속 증명해 나가야 시니어 아티스트로 활동할 수 있어요. 그것도 50대까지만 가도 많이 간 거라는 생각이 들고요. 그래서 계속 그림을 공부하고 새로운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가고 있어요. 하나에만 머무르면 도태되고 수명을 길게 가져가기 어려우니까요.

김광수 씨는 신학을 공부하며 '꼭 교회에서 일해야만 목회하는 건 아니다'라고 생각하게 됐다.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하는 신학생이 있다면, 목회를 선택하지 않는 것에 죄책감이나 부담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김광수 씨는 신학을 공부하며 '꼭 교회에서 일해야만 목회하는 건 아니다'라고 생각하게 됐다.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하는 신학생이 있다면, 목회를 선택하지 않는 것에 죄책감이나 부담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다양한 형태로 살아가는 목회자 만나고
끊임없이 공부하면서 신학관 바뀌어
"꼭 교회에서 일해야만 목회인가"

- 목사 안수를 받기 직전으로 잠깐 돌아가 볼까요.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다짐한 게 30살이었어요. 목사가 되겠다고 결심한 세월까지 합하면 15년은 될 텐데, 그걸 한순간에 포기하는 게 어렵지는 않았나요.

공부를 하면서 계속해서 신학관이 변해 왔어요. 내가 지금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 뜻을 실천하며 사는 게 뭘까 고민했는데요. 단순히 이 공간(교회)에서 사역을 해야만 가능한 게 아니라 여러 방식으로 그것을 실천하면서 살 수도 있겠더라고요.

주변 목사들님 영향도 컸어요. 기장에는 목회 외에도 다른 활동을 하는 분이 많아요. 지역에 센터를 만들어서 교육 활동이나 구제 사업을 하기도 해요. 직업을 갖고 일하는 동시에 선교 사역을 하는 분들도 있고, 아니면 노동 현장 등에서 억눌린 자들과 함께 투쟁하며 싸우시는 목사님들도 많고요. 그런 다양한 삶의 형태를 계속 접하다 보니, 꼭 교회에서 일을 해야 사역을 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 것 같아요.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기장이라고 하는 교단과 환경 속에서 공부를 해 나가면서 느낀 거죠. 하나님께서 나를 인형처럼 끌고 다니시는 게 아니라, 오히려 진취적으로 삶의 문제들을 격파해 나가고 하나님 뜻을 분별하고 관철해 나가면서 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기여를 한다면, 그것 나름대로 하나님나라에 동참하는 사역일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물론 목회를 그만둔다고 할 때 어머니는 슬퍼하셨어요. 내가 목사 되겠다고 하는 게 어머니의 자부심이셨거든요. 그래서 항상 말씀드려요. 형편 때문에 목사를 못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거라고. 취업도 하고 일에 만족해하니까 지금은 한시름 놓으셨죠.

- 지금은 목회에 대한 미련이 전혀 없나요.

한때는 있었어요. 1년간 미술 준비를 하는 동안에, 너무 힘드니까 '이게 맞나' 싶더라고요. 새벽에 일하고 학원에서도 또 잠깐 일하고 하루 종일 그림 그리다가, 제가 학원 셔터 내리고 집에 돌아가는 삶이 반복됐으니까요. 그래도 지금 당장 집으로 갔을 때 마주칠 가족들을 생각했어요. 내가 해결해야 할 삶의 과제들을 더는 무시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으면서 버틴 거죠. '내가 당면한 삶의 문제들을 피하지 말자', '예전처럼 집안 상황에 눈감고 교회에서만 행복하게 사는 패턴은 끝내자' 하고요.

- 혹시 생계 문제 말고 목회를 포기하게 된 다른 요인도 있었나요.

'내가 진짜 목사를 해도 될까'라는 생각도 계속한 것 같아요. 평생 약자와 연대하면서 강자들이 아닌 작은 자들의 목소리가 되어 살아가는 목사님들처럼 내가 할 수 있을까? 나는 자격이 안 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많이 했죠.

한국교회가 많은 사건·사고 때문에 욕을 많이 먹고 있지만, 아직 귀감이 되는 분이 많아요. 그런 목사님들을 보면 교회를 포기하고 싶지 않고요. 그래서인지 신학생에게 '다른 길도 있다'는 걸 보여 주는 이 인터뷰를 하고 있으면서도, 아직 희망을 갖고 신학교에 오는 신학생들이 제발 잘해 주길 바라는 응원의 마음도 커요.

- 신학교와 교계의 사례비 문화는 어떤가요. 억대 연봉 받으려고 목사하려는 사람은 없지만, 막상 들어와 보면 광수 씨처럼 삶의 지속 가능성 자체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많잖아요.

주변에 조용기 목사처럼 되겠다고 꿈꾸며 신학교에 오는 사람도 있었어요.(웃음) 근데 신학교는 생계 고민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닌 것 같아요. 관성에 휩쓸려 신대원까지 가기는 쉬운데, 정작 목사님들이 교인들 앞에서 보여 주는 그런 모습이 아니라 뒤에서 어떤 고민을 하고 있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는 알려 주지 않는 거죠. 신학교 안에서 여러 목회 모델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네요.

- 광수 씨 말대로 여러 고민은 하지만, '관성'대로 그냥 목회의 길을 가는 이도 적지 않을 거 같아요.

학원에 다닐 때 다양한 사람을 만났어요. 명문대를 나온 이도 있고, 이미 그림에 대한 마음은 떠났는데도 계속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있었어요. 해 온 게 이거다 보니까 그냥 그렇게 가는 거죠. 그런 사람들은 시간은 쓰지만 결과물이 좋게 나오지 않아요.

그걸 보면서 신대원과 비슷하다고 생각을 했어요. 다른 일을 하다가 목회한다고 오는 분들이 되게 많으시잖아요. 그런 분들이 오히려 더 도서관에 엉덩이 붙이고 공부하면서 고민도 많이 해요. 반면 학부 때부터 쭉 걸어온 친구들은 신대원 가서 노는 경우가 많아요. 시간이 흐르다 보면 어디든 목회하러 나갈 거라고 생각하는 친구들도 많고요. 결과적으로는 경력과 상관없이 당사자가 절박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가 중요하다고 봐요.

- 광수 씨처럼 다른 길을 고민하는 신학생도 있는데요. 해 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첫 번째로, 사역의 길을 내려놓고 다른 길을 가기로 결정한다고 해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면 좋겠어요. 신학을 공부해 왔고 사역을 해 왔기 때문에 돌아서는 게 마치 배신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는 있어요.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신 소명과 역할은 꼭 사역이 아닐 수 있어요. 내가 있는 곳 어디라도 그 뜻을 실천할 수 있으니, 죄책감 내지 부담감에 억눌리지 않았으면 해요.

두 번째는, 사역만 해 왔거나 신학교 안에서만 시간을 보내며 성장을 해 온 이들이라면, 스스로 어떤 것을 좋아하고 또 어디서 무슨 활동을 할 수 있을지 통찰을 얻는 경험을 많이 하면 좋겠어요. 어떤 일에 기대를 가진다든지, 해낼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을 얻으려면 경험이 필요하니까요.

무엇보다 새로운 길을 모색할 때는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웠으면 해요. 창업한다고 무조건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노력한다고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으니까요. 충분히 고민하고 계획하는 과정 속에서 꼭 구체적이고 유연한 계획을 세우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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