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퀴어 성서 주석 Queer Bible Commentary·QBC> 출간을 기념해 섬돌향린교회(임보라 목사)가 주최한 '밀리와 함께 읽는 모다들엉 퀴어신학' 마지막 모임이 8월 25일 온라인으로 열렸다. 강의를 맡은 이영미 교수(한신대 구약학)가 퀴어신학적 관점에서 예레미야서를 개괄하고, 참석자들이 그동안 강의에서 느낀 소회를 나눴다.

예레미야서 서두에는 선지자 예레미야가 소명을 받는 장면이 등장한다. 1장 5절을 보면 "내가 너를 자궁에서 짓기도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자궁에서 나오기도 전부터 너를 구별하여, 뭇 민족에게 보낼 예언자로 세웠다"고 나온다.

"자궁(포궁)은 하나님께 속하고, 예레미야의 소명의 자리가 된다. (중략) 히브리어 본문은 누구의 자궁인지 대명사를 지정하지 않고 정관사만 사용하고 있어서 해석이 애매하고, 그래서 야웨의 모성적 측면을 함축한다고 볼 여지가 있다. 이렇게 읽는 것이 불편한 주석가들은 예레미야의 친어머니를 본문에 도입한다."(609~610쪽)

이영미 교수는 이 장면에 등장하는 임신 이미지를 새롭게 읽어낼 수 있다고 했다. 전통적인 해석에서는 '포궁'을 생물학적 어머니의 것으로 해석하며 전형적인 모성 이미지를 강조해 왔다. 하지만 독자 각자의 정체성에 따라 포궁을 하나님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러한 해석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며 가부장적 남성 이미지를 강화해 온 독자들의 고정관념을 한 차례 비트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하나님을 젠더화하려는 시도는 현실 가부장제를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준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예레미야가 남성을 지칭하는 이스라엘을 '신부', '창녀', '화장한 거리의 여자' 등으로 묘사한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예레미야서에서 남성 청중들은 여성화되고, 때로는 '드래그 퀸(Drag queen)'이 되기도 한다. 독자들은 일반적으로 이러한 본문을 해석할 때, 성별 사이를 오가는 '젠더 유동적(gender-fluid)' 은유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현실에 존재하는 성소수자는 부정하고 선을 긋는다. 이 교수는 성서가 성별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성적 이미지를 활용하듯, 젠더 이분법을 넘어 실제 삶에서도 성소수자에 관해 성서와 동일한 인식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성애적 가부장제 사고방식을 지닌 저자는 예언자를 백성에게 회개하라고 요청하는 인물로 묘사하며, 사랑하는 신부인 이스라엘과 창녀이며 난잡한 여자인 이스라엘/유다를 병렬시킨다. (중략) 그 가운데 선택된 이미지는 포르노의 성격을 지니며, 여성을 미친 듯이 날뛰며 성적으로 공격적이라고 비판함으로써 전형적인 이성애적 가부장제의 역학을 반대로 뒤집는다." (610~611쪽)

예레미야서는 예언의 시급성·중대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통제 불가능한 성욕을 지닌 야생 암나귀'나 '강간' 비유를 사용하는 등 젠더 혐오적 이미지로 가득 차 있다. 이렇게 선택된 이미지는 '포르노'적이라는 점에서 특히 여성 독자들에게 유해하지만, 한편으로는 당대 요구되던 전형적인 여성상을 전복시키기도 한다.

이영미 교수는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수사학적 목적에서, 당시 남성 독자들에게 가장 끔찍한 일을 은유적으로 활용했다고 변호할 수는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관점에서 볼 때 타당하지는 않다. 성서를 읽는 현대 독자들은 고대 독자의 관점과 사회적 위치, 이해관계가 다르다. 수사학 전략의 이중성을 해체하면서도, 성서의 폭력적인 이미지는 걷어 내는 비판적 읽기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레미야가 이야기하는 '새 창조'는 결국 젠더가 해체된 세상이라고도 했다. 예레미야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젠더 유동적 은유는 결국 회복된 이스라엘을 향한 예언에서 절정에 달하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주님께서 이 땅에 새 것을 창조하셨으니, 그것은 곧 여성이 남성을 안는 것"이라고 한 예레미야 31장 22절이 젠더의 전복을 의미한다고 했다. 또, 예레미야서의 결말은 젠더를 뒤집는 놀라운 하나님의 세상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했다.

렘브란트가 그린 '예루살렘의 파괴를 슬퍼하는 예레미야'(1630).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렘브란트가 그린 '예루살렘의 파괴를 슬퍼하는 예레미야'(1630).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강의를 마친 뒤에는 참석자들이 소감을 나눴다. 한 참석자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처럼 모든 성서가 퀴어신학으로 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길도 지났고 경계를 부수기도 했다. 그야말로 퀴어한 방법으로 성서의 핵심을 만나는 과정을 지켜보며 흐뭇했다"고 했다. 5주 차 강독회에서 여성주의적 룻기 읽기를 진행한 정혜진 박사는 "여성신학은 주류 신학자들의 관점을 취하는 동시에 그들이 관심 갖지 않는 것까지 다루는 작업이다. 퀴어신학은 여기에 젠더·퀴어 관점을 더해 '삼중의 노력'이 든다는 점을 느꼈다. QBC를 읽으며 성서를 읽는 관점이 확장됐다"고 말했다.

QBC 히브리 성서에 이은 신약성서 편은 현재 감수 단계다. 올해 하반기 크라우드 펀딩을 거쳐 내년 초 출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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