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퀴어의 눈으로 성서를 읽어 내는 <퀴어 성서 주석 Queer Bible Commentary·QBC> 강독회 '밀리와 함께하는 모다들엉 퀴어신학' 6강이 8월 11일 온라인으로 열렸다. 에스더기를 주제로 진행된 이날 강의에, 참석자들은 뿔·머리띠·화관 등 다양한 코스튬과 소품을 활용해 '크로스드레싱(cross dressing)'을 하고 등장했다. QBC가 소개하는 에스더서의 주요 키워드 중 하나가 크로스드레싱이었기 때문이다.

분홍색 가발을 쓰고 강의를 진행한 이영미 교수(한신대 구약학)는 한국교회에서 에스더기가 소비돼 온 양상을 비판했다. 그는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라는 유명한 구절 때문에, 주로 국가와 민족을 구하는 애국자 같은 인상을 심어 주도록 해석돼 왔다. 나 또한 에스더기는 무거운 책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성서는 항상 심각할 필요도 없고, 심각한 책도 아니다. 성서 속 희극 요소를 발견하며 좀 더 자유롭고 즐겁게 성서를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QBC 에스더기 파트를 저술한 모나 웨스트는 에스더기를 역사적 사실이 아닌, 요나서와 같은 허구적 이야기 또는 역사 소설(443쪽)로 소개한다. 유대 절기 중 하나인 부림절의 기원과 세부 사항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자, 사람들을 웃게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쓴 책이라는 것이다. 웨스트는 '성서'라는 말이 주는 무게감이 독자들로 하여금 에스더서를 제대로 감상하지 못하게 만든다고 지적하며, 희극적 요소에 집중하는 '캠프적 읽기(a camp reading)' 방식으로 초대한다.

여기서 말하는 '캠프'란 과장·과시라는 희극적 요소에 집중해 젠더 이분법을 파괴하는 퀴어 미학 방법론이다. 이는 "단지 유머만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패러디라는 전술을 사용해 체제 전복적인 비판을 제공"(444쪽)한다. 이영미 교수는 "캠프적 읽기는 패러디와 과장을 통해 경계를 넘고, 공간을 점거하고, 정상성이라는 특권을 흉내내거나 파괴하는 전략을 사용한다. 마치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당대 관료들과 세태를 비판·풍자했던 우리나라의 탈춤과 같다"고 설명했다.

"캠프는 지배적인 관습이 절대적인 규범이 아니라 그저 관습일 뿐이라는 것이 폭로되는 지점에 이르도록 이것을 과장한다. (중략) 에스더기에서 과장은 독자들을 그저 즐겁게 해 주는 데 그치지 않고, 페르시아 왕실 권력의 관습을 노출시키고, 남성과 여성이라는 젠더 이분법과 디아스포라 상황에서 구축된 유대인과 페르시아인이라는 정체성을 파괴한다." (445쪽)

아르트 드 헬데르가 그린 '에스더와 모르드개'(1685). 헝가리 부다페스트 미술관 소장
아르트 드 헬데르가 그린 '에스더와 모르드개'(1685). 헝가리 부다페스트 미술관 소장

웨스트는 에스더기를 캠프적으로 읽으며, 에스더기에 수차례 반복해 등장하는 잔치 장면, 에스더·모르드개의 '크로스드레싱', 에스더를 여왕으로 만드는 '환관' 등 주류 해석사에서는 주목받지 못했던 요소들을 포착해 낸다.

웨스트는 에스더기가 과장을 통해 페르시아 궁정의 젠더·권력을 패러디한다고 본다. 이를테면 에스더기에는 궁정 문화를 과장해서 표현한 잔치 장면이 9번이나 등장하는데, 이는 페르시아 왕실 권력의 폭력적인 관습을 노출하기 위한 장치라는 것이다. 또한 잔치 자리에서 자신을 트로피처럼 자랑하고자 했던 왕 앞에 나아가기를 거절한 와스디의 폐위 사건, 이어지는 왕의 칙령(여성들에게 남성들의 권위를 세우라고 명령하는 내용을 담은) 사건 등을 통해 남성 권력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패러디하고 있다고 해석한다.

웨스트는 유대인을 전멸시키라는 왕의 칙령에 맞서 각각 왕후의 예복과 굵은 베옷을 입는 에스더·모르드개의 모습을 '크로스드레싱'으로 보기도 한다. 그는 이것이 "유대인과 페르시아인이라는 이분법을 파괴"하는 "제3의 표현 양식, 즉 주체 또는 타자라는 구성된 정체성에 속하지 않는 가능성의 공간을 만들어 낸다"(452쪽)고 평가한다.

이영미 교수는 웨스트의 해석에 더해 에스더기에서 '미투'와 '위드유'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페르시아의 왕비로서 전멸 위기에 처한 유대인을 위해 베옷을 입을 수 없었던 에스더는, 대신 금식을 하며 민족적 위기에 공감한다는 의미로 '미투'를 한다. 이에 유대인들은 금식에 동참하며 '위드유'로 화답했다. 에스더의 미투와 유대 공동체의 위드유는 연대 투쟁을 이끌어 냈고, 하만이라는 악의 세력을 정복하고 유대인을 학살로부터 구원해 내는 정의를 실현했다"고 말했다.

웨스트는 에스더기에 등장하는 '환관'에도 주목한다. 독자들은 주로 에스더·모르드개에 집중하지만, 사실 에스더기에는 많은 환관이 등장할뿐더러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이를테면 에스더기 1장에만 7명의 환관 이름이 등장하며, 2장에 등장하는 환관 헤개는 에스더를 왕의 눈에 띄게 만들어 왕비가 되게 하는 인물이다. 웨스트는 남녀와 구별된 '제3의 젠더'였던 고대 사회의 환관들을 비중 있게 다루며 이들을 치켜세운다. 퀴어인 웨스트의 눈에는 환관들이야말로 각종 이분법적 경계를 가로지르며 이야기 내에서 실권을 갖고 영향력 행사하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에스더기에서 환관은 '제3의 용어', 또는 더 정확하게는 '제3의 표현 양식'으로서 기능한다. 젠더·권력, 그리고 물리적 공간의 경계를 넘을 수 있는 그들의 능력은 줄거리(plot)에서 가능성의 공간을 명시한다. 이 이야기에서 환관은 남자와 여자의 세계를, 대궐 문, 문지방, 왕이 있는 곳까지 다른 인물들이 넘을 수 없는 물리적 경계를, 정보의 경계를 자유로이 가로질러 이동할 수 있다. (중략) 참으로 그들은 실권을 가진 사람들이다."(454쪽)

지오반니 보나티가 그린 '아하수에로 앞의 에스더'(1695).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공용
지오반니 보나티가 그린 '아하수에로 앞의 에스더'(1695).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공용

이 교수는 환관이 현대적 관점에서 '젠더 퀴어'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에스더기에서 환관은 왕국의 정치적 실세로 묘사된다. 하지만 많은 이가 에스더기에서 환관이 언급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결국 자신이 지닌 관심·관점에 따라 보이는 것이 완전히 달라진다. 이것이 QBC가 우리에게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라고 말했다.

또 한국교회에서 성서적 지도자의 롤 모델로 각광받는 느헤미야도 '왕의 잔을 따르는 신하'였다는 점에서 환관이자 젠더 퀴어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고자들은 총회 회원이 될 수 없다고 규정한 히브리인들의 총회법을 전복하는 이사야 말씀을 언급했다. 이 교수는 "이사야 56장 4절을 보면 '비록 고자라 하더라도, 나의 안식일을 지키고, 나를 기쁘게 하는 일을 하고, 나의 언약을 철저히 지키면, 그들의 이름이 나의 성전과 나의 성벽 안에서 영원히 기억되도록 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우리 중의 소수자·약자나 경계에 있는 이들에 대한 성서의 또 다른 관점을 엿볼 수 있다"고 했다.

강의 후 질의응답·토론 시간이 이어졌다. 이날 수강자로 참석한 정혜진 연구실장(기독여민회)은 에스더기가 주목하고 있는 소수자성을 인식하지 못한 채 오히려 강자 의식으로 에스더를 전유하는 한국교회 행태를 비판했다.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차별금지법이나 성소수자에 관해 가장 나쁜 뉴스를 생산하고 있는 단체가 에스더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에스더는 자칫 말살될 뻔한 (유대인이라는) 소수자적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죽으면 죽으리라' 한 것인데, 한국교회는 이를 결사반대 문구로 활용하며 오히려 소수자를 탄압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이는 에스더기가 지닌 기본적인 맥락 자체를 무시하고 성서를 오독하는 것"이라고 평했다.

'모다들엉 퀴어신학' 7주 차는 크리스토퍼 킹(Christopher King)이 쓴 QBC '아가' 파트를 다룬다. 모임은 8월 18일 온라인으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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