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아가서에는 적나라한 성적 묘사가 나온다. "나에게 입맞춰 달라"(1:2), "나무 숲속에서 함께 밤을 보내자"(7:11) 등 에로틱한 구절이 곳곳에 등장한다. 이 때문에 아가서는 교회 내에서 '불온한' 책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성적' 표현을 불편하게 여기는 이들은 아가서를 '그리스도와 교회 간의 사랑'이라는 비유적 관점에서 해석하거나, 기껏해야 결혼식 주례 본문쯤으로 생각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퀴어 성서 주석 Queer Bible Commentary·QBC>(무지개신학연구소) 아가서 파트 저자이자 퀴어신학자 크리스토퍼 킹(Christopher King)은 아가서를 "그리스도교의 가장 큰 영적인 상처 중 하나인 성욕에 대해 물려받은 두려움을 치유하는 효능 있는 연고"(565쪽)라고 소개한다. 이영미 교수(한신대 구약학)도 "아가서를 결혼과 연결하는 전통적인 해석은 아가서의 본질을 왜곡한 것"이라며 "아가서는 관습적으로 터부시되는 '에로스'를 적극 옹호하는 책"이라고 평가했다.

'노래 중의 노래'이자 '에로스적 사랑'을 묘사하는 아가서를 퀴어 관점에서 읽는 강의가 열렸다. QBC 강독회 '모다들엉 퀴어신학' 7번째 모임이 8월 18일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이번 강의는 이영미 교수가 크리스토퍼 킹의 주석을 소개하고 참석자들이 감상을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귀스타브 모로가 그린 '아가 - 술람미 여인'(1893).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귀스타브 모로가 그린 '아가 - 술람미 여인'(1893).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이영미 교수는 한국교회가 성을 금기시하고, 재생산을 위한 성만 허용해 왔다고 했다. 이러한 배경에는 출산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성관계를 금지하고, 금욕 생활을 강조한 보수 기독교 전통이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오늘날에도 교회는 혼전 성관계를 금지하고, 성과 관련된 이야기를 꺼낼 때면 쉬쉬하기 일쑤다. 아가서는 그동안 교회에서 말하지 못했던 성에 대한 답답함과 두려움을 치유할 수 있게 해 준다"고 했다.

아가서는 외부인인 술람미 여자와 이스라엘 남자가 열정적으로 사랑에 빠진 상황을 묘사한다. 또, 이들의 열렬한 사랑을 긍정하고, 그 자체로 추구할 만하다고 찬양한다. 크리스토퍼 킹은 이들의 사랑이 민족을 넘어선다는 점에서 '불법적'이고, 관습을 거스른다는 점에서 '퀴어적'이라고 해석한다. 얼핏 보면 이성애주의를 찬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본문에서 퀴어 연인들을 위한 의미를 '되찾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아가서의 주인공은 남자와 여자지만, 본문이 이성애를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인간의 사랑'이라는 선물 자체를 축하한다"고 설명했다.

"술람미 아가씨와 애인의 열정적인 사랑은 진짜 동등하게 원하는 것, 불가항력적인 사랑스러움을 서로 나누는 그 에로틱한 대칭에서 야기된다. 다른 말로 해서 각 연인은 상대의 아름다움과 섹시함에서 보이는 '같음(sameness)', 곧 본질적 비슷함에 끌린다. 그들 간의 역동성은 이성애적인 것일 수 있지만 그 구조는 확실히 동성애적, 곧 같음의 매력(an attraction of sames)이다." (571쪽)

술람미 여인이 예루살렘 여성들을 향해 자신을 "검고(and) 아름답다"(1:5)고 말하는 장면도 퀴어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검음'은 술람미 여인의 외부성을 드러내는 표지이자, 섹슈얼리티·자유·일탈 등 퀴어성을 상징한다. 이영미 교수는 해당 구절이 전통적인 성서 번역에서 대개 "검지만(but) 아름답다"고 번역됐지만, 여성·흑인신학은 '검음'과 '아름다움'을 동등하게 배열했다고 했다. 이 교수는 해당 본문을 "퀴어이고 아름답다"로 바꿔보자고 제안하면서 "퀴어의 사랑은 많은 경우 사회적 정상성 범주 등을 통해 제한받으며 긴장 속에서 이뤄진다. 해당 본문은 독자가 지진 정체성과 이데올로기적 선택에 따라 '검음(퀴어함)'과 '아름다움'을 긴장·조화 관계로 해석될 수 있다"고 했다.

이러한 해석에 따르면, 술람미 여인은 자신을 타자화하고 성적 대상화하는 사회에 맞서는 인물이다. 당당한 이 여성은 아름다움을 자신의 특성이자 독창성으로 내면화한다. 이영미 교수는 자신의 욕망을 주체적으로 표현한다는 이유로 사회로부터 '문란하다'고 지탄받는 성소수자 관점에서 이를 읽어 냈다. 그는 "여성(혹은 퀴어)이 성적 자율성을 발현하는 것은 사회규범에 위협이 되기 때문에 터부시된다. 그러나 술람미 여인은 자신의 성적 자율성을 드러내고 사회가 부여한 출산의 의무로부터 자유를 선포한다. 모든 사람은 서로의 욕망에 따라 원하는 대로, 누구를 언제 어떻게 사랑할지 결정할 권리를 갖는다"고 말했다.

아가서 8장을 '화해'와 '수용'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도 했다. 간밤의 성폭력에서 생존한 술람미 여인은 딸의 순결을 중시하는 어머니에게 인정받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애인과 함께 '어머니의 집'으로 들어간다. 이영미 교수는 "'어머니'는 단순히 생물학적 가족 구성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퀴어들은 '어머니'에서 사랑하는 이들, 부모님, 교회의 얼굴을 본다"며 "술람미 여성이 희망했던 화해·수용·안전을 제공하는 역할을 교회가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앨버트 조셉 무어가 그린 '술람미'(
앨버트 조셉 무어가 그린 '술람미'(1864).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강의를 마친 후 참석자들은 함께 소감을 나눴다. 한 참석자는 "내 자녀가 사람들이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선택을 하더라도 나만큼은 아이 편이고 싶은 것처럼, 교회도 그런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구약의 하나님은 고아·과부 등 사회적 약자와 함께하는 분이라고 했고, 예수께서도 세상 사람들이 다 버린 창녀·세리와 함께하셨다. 그런데 왜 교회가 동성끼리 사랑한다는 이유로 세상에서 손가락질당하는 사람들을 품지 못할까. 교회마저 거부하면 정말 갈 곳 없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품는 것이 아가서가 말하는 '어머니'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모다들엉 퀴어신학'는 다음 주 마지막 강독회를 진행한다. 앙겔라 바우어 레베스크(Angela Bauer-Levesque)가 쓴 QBC '예레미야' 파트를 다룬다. 모임은 8월 25일 온라인으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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