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여성의 눈으로 성서를 보면 부당하고 부조리한 구절이 도처에 펼쳐진다. 성서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말이 없거나, 체제에 순응하는 수동적인 존재일 뿐이다. 여성주의적 성서 해석은 이러한 이성애 가부장주의와 남성 중심 서사에 문제를 제기하면서도, 성서가 가진 해방의 힘을 긍정한다. 기독여민회 정혜진 연구실장은 "종교적·문화적 권위를 가진 성서는 대개 여성의 삶을 좀 더 나아지게 하는 방향이 아니라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 현실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됐다"며 "성서가 가부장적이라는 문제를 인정하면서도, 억압적인 제도를 견디고 때로는 혁신하는 여성의 경험과 통찰을 통해 해석하는 것이 여성주의적 성서 해석"이라고 말했다.

성서의 틈새와 모호함을 퀴어 경험으로 해석하는 <퀴어 성서 주석 Queer Bible Commentary·QBC>강독회 '밀리와 함께하는 모다들엉 퀴어신학' 5강이 8월 4일 온라인으로 열렸다. 이번 강독회는 '룻기'를 퀴어·여성주의 관점을 통해 교차적으로 해석했다. QBC 번역자이자 감수를 맡은 한신대 이영미 교수와 <여성들을 위한 성서 주석> 2판 번역에 참여한 기독여민회 정혜진 연구실장이 발제자로 나섰다. 이 교수는 "두 책이 여성·성소수자를 비롯해 다양한 소수자들, 차별받는 공동체를 위한 해방적 성서 읽기를 지향하고 '성'이라는 주제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교차적으로 대화해 보는 시간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이방인 여성이었던 룻은 훗날 예수 족보에까지 이름을 올린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공용
이방인 여성이었던 룻은 훗날 예수 족보에까지 이름을 올린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공용

룻기는 기근을 피해 모압으로 이주했다가 남편과 아들을 잃고 과부로 남겨진 나오미·룻의 이야기다. 과부가 된 오르바는 시어머니 나오미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지만, 룻은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르시는 곳에 나도 머무르겠다"(룻 1:16)며 나오미를 '붙좇는다'(룻 1:14). 이후 이들은 베들레헴으로 돌아와 부유한 지주인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주워 생계를 이어 가고, 종국에는 룻과 보아스가 결혼하면서 다윗의 할아버지인 오벳을 낳는다.

정혜진 실장은 여성신학적 해석을 소개하며 모압 여성인 룻이 이스라엘 땅에 들어와 잘 정착하는 '신데렐라 이야기'로 봐서는 안 된다고 했다. 정 실장은 "룻은 이상적인 며느리이자 아내, 이방인이지만 다윗의 증조할머니가 되는 '위대한 어머니'로 해석되곤 한다. 하지만 이 구도 뒤에는 사회문제, 젠더 관계, 개인적 동기, 민족 간 대결이라는 여러 가지 이념 갈등이 숨어 있다. 남편이 없는 과부이자 이민족인 한 모압 여성에 대한 칭찬이 '여성은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가부장적 전제, '이방 여인은 속임수를 쓰는 위험한 사람이다'라는 편견의 산물일 수도 있다는 비판에서 여성신학적 해석은 출발한다"고 했다.

가부장적 관점에서 룻기를 해석하는 '효부' 담론에서도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정 실장은 "룻이 아들을 낳게 되는 후반부 이야기를, 룻이 배제되고 나오미가 앞장서게 되는 내용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두 여성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잃은 나오미의 삶이 룻을 통해 어떻게 이어지는지 주목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이영미 교수도 "나오미 가족이 기근을 피해 이민 간 땅이 모압이다. 유다보다 선진국인 모압에 간 것이다. 그곳에서 룻은 정착민으로서의 기득권을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다. 따라서 시어머니와 며느리라고 하는 가부장적 구조보다, 인종·나이·계급의 차이를 극복하면서까지 룻이 나오미를 따라가려고 했던 이유를 질문해야 한다"고 말했다.

두 여성의 물리적 관계 묘사한 '다브카'
"룻의 사랑은 경계를 넘는 사랑"

QBC 룻기 파트의 저자 모나 웨스트는 룻을 "우리의 여성 퀴어 선조"라고 명명했다. 웨스트는 주석에서 이성애적 가부장주의 사회에서 가치를 지니지 못하는 두 여성이 결합하는 데 주목했다. 그는 "전통적으로 이성애 결혼 의식에서 반복된 단어들을 써서 룻이 나오미에게 말한다"며 "이들 단어와 행동은 성서 속 어디에서도 표현된 적 없는 두 여자 사이의 가장 가까운 물리적 관계를 드러낸다"(320쪽)고 했다. 웨스트의 관점에서 룻은 "결혼·가족·출산에 대해 가부장제의 동성애 차별적 정의에 기초한 주변화 상태를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321쪽)하는 '자기 결정의 예'를 제시하는 인물이다.

"가치 없는 한 여자가 또 다른 가치 없는 여자와 결합하고 또 그녀를 선택함으로써, 룻은 결혼 상태와 자녀 생산을 기준으로 자신들의 존재를 가치 없고 보잘것없는 주변부 존재들로 제한하고 규정하는 사회의 현상 유지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320쪽)

​'아버지의 가정에 남은 처녀'와 '남편의 가정에서 아이를 낳은 아내'만이 가치를 인정받는 사회에서 룻과 나오미는 여성 간의 연대를 보여준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공용
​'아버지의 가정에 남은 처녀'와 '남편의 가정에서 아이를 낳은 아내'만이 가치를 인정받는 사회에서 룻과 나오미는 여성 간의 연대를 보여 준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공용

이영미 교수도 룻과 나오미의 관계를 '고부 관계'로만 바라볼 수 없다고 했다. 가부장적 구조 속에서 해석하면 룻이 나오미를 따라가는 이유가 충성·신실함 때문이지만, 룻이 보여 준 사랑은 인종·나이·국가 경계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경계를 넘는다는 것은 '퀴어하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룻의 사랑은 경계 없는 사랑이라고 광범위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며 "해석의 차이는 어떤 질문을 하는지에 달려 있고, 질문에 대한 대답은 독자들이 두 인물을 어떻게 관계 짓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중요한 것은 해석자의 경험이 해석의 결과를 다르게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퀴어 공동체 생존 위해
틈새 활용하는 전략 배워야"

모나 웨스트는 QBC에서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논쟁이 진행되던 199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룻기에 드러난 '대안 가족' 구성에 초점을 맞춘다. 룻·나오미·보아스가 성소수자에게 적대적인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출산 전략을 수행했다는 것이다. 친족 중 한 명이 친척의 땅을 되사는 '고엘법'과 생존한 동생에게 사망한 형의 아내와 결혼하도록 요구하는 '형사취수제'의 모호하면서도 유머러스한 결합은 이들이 새로운 전략을 시도할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열어 주는 장치다. 모나 웨스트는 "룻과 보아스의 전략은 우리 모두가 재화와 용역에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노력에 동참하게 한다"며 "적대적인 환경 한가운데서도 우리의 관계를 긍정하고 보호하며 우리를 지탱하게 하는 공동체를 만들 수 있도록 일깨워 준다"(322쪽)고 했다.

이 교수는 모나 웨스트의 해석을 소개하며 나오미·룻·보아스가 퀴어와 앨라이의 협력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또, 이러한 본문을 통해 성소수자 당사자와 앨라이가 대안 가족이나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할 때 전략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이영미 교수는 "이렇게 구성된 대안 가족은 보아스가 아닌 룻과 나오미의 가족이다. 문맥상 보아스는 유부남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두 여자들이 구성한 가족에게 오벳이라고 하는 아이를 선물로 주고, 자신만의 가족생활을 했을 거다"라며 "퀴어 공동체의 합법성을 부정하는 장애물들이 있지만, 그러한 장애물을 극복하기 위해 법을 지혜롭게 다루는 방식을 룻기에서 배워야 한다"라고 말했다.

모나 웨스트는 룻기가 "오늘날의 퀴어 공동체에게 적대적인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을 제공한다"고 했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공용
모나 웨스트는 룻기가 "오늘날의 퀴어 공동체에게 적대적인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을 제공한다"고 했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공용

정혜진 실장은 타작마당에서 룻의 행동이 속임수였지만, 성서가 이를 비난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고 했다. 대신, 특권을 가진 이들이 억압적인 구조에 저항하고, 소수자들이 필요한 바를 보장하도록 요구한다고 했다. 정 실장은 "이삭줍기와 같은 임시적인 삶의 방편은 사회적 약자들을 내버려 두는 구조에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 성서가 사회의 책임 있는 남성을 향해 '당신이 할 일을 하시오',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시오'라고 하는 약자의 목소리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룻기는 고대 이스라엘의 유산·친족법을 통해 한 사람·가족의 생존이 보장되는 제도적 개혁을 해낸 것이다. 하지만 룻이 이스라엘 가족의 며느리로, 아내로, 아이를 낳은 어머니로 살아가는 방식이 이스라엘 사회에 가부장적 사회 체계 전체를 개선하지는 않았다. 삶을 살아 내는 한 여성의 저항이 현대 기준에서는 한계가 있을 수도 있다. 다만 여성들의 삶을 빈곤으로 내모는 위태로움의 폭력 앞에서 저항하고 현실 제도의 틈새를 활용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