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의 '멸공' 발언은 단순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는 일이었다. 유난히 관심받기를 즐기는 한 사람이 내던진 20세기 유물 같은 시대착오적 표현에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와 김진태·나경원 전 의원의 이른바 '멸콩' 챌린지가 더해지면서 정치적인 논란이 일었다. 안 그래도 '사상 최악의 대선'이라고 하는 마당에 한국 사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비생산적인 다툼이 하나 늘었다. 아니나 다를까 열린민주당 김의겸 의원과 방송인 김어준 등이 정용진 부회장이 '군 면제'라는 사실을 물고 늘어졌다.

권력층의 병역 비리·기피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는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960년 4·19혁명 전후로 병역 이행자들은 '병역 미필 공무원 축출'을 외치며 그 자리에 재향군인을 고용하라고 주장했고, 더러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1) 1950년대 대학 재학생들은 징집을 보류해 줬으나, 군대에 입대한 청년들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병력 부족을 이유로 제대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등2) 군 복무가 공정하게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에 대한 불만이 켜켜이 쌓여 갔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적 경험은 누적·전승됐고,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여당의 유력한 후보였던 이회창 후보는 아들의 병역 비리 이슈를 이겨 내지 못하고 김대중 후보에게 석패했다.

물론 병역제도는 공정하게 집행돼야 한다. 재벌·정치인 등 특권층이 권력을 이용해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가거나 때로는 불법을 서슴지 않으며 군대에 가지 않는 것은 분명한 잘못이다. 사회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과 고민이 없는 이들이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는 것은 한국 사회에도 좋은 일이 아니다.

문제는 이 비난이 권력을 악용하거나 불법을 저지른 행위에 대한 비판을 넘어, '병역 여부'로 시민의 자격을 구분하는 식으로 너무 쉽게 작동한다는 데 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는 사병 월급 200만 원 공약을 발표한 이재명·윤석열 후보와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를 비판하면서 "군대를 안 가고 총 한 번 쏴 보지 않은 사람들이니 몰라서 그런 게 아닌가"라고 이야기했다.

공약의 실효성을 따져 보고, 허황된 공약이면 이를 비판하면 된다. 대선 캠프의 공약을 후보나 대표 혼자 만드는 것도 아닌데, 이를 후보와 대표의 '군대 경험 유무'로 치환하는 것은 전문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아니다. 안 후보의 발언은 '군 미필자는 안보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다'는 우리 사회의 지독한 편견에 기대고, 그 편견을 다시 재생산하는 일이다.

안철수 후보만의 문제가 아니다.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후보는 자신의 특전사 경력을 강조하며 상대 후보인 박근혜 후보와 차별성을 두려 했다. "한마디로 군대도 안 갔다 온 사람들, 특전사 출신 저 문재인 앞에서 안보 얘기 꺼내지도 말라! 맞습니까?"3) 역시나 박근혜 후보의 공약이 허황되고 잘못됐다면 그 문제를 지적하면 되는데, 그보다는 상대 후보가 군 복무를 하지 않았다는 점을 공격하며 보다 노골적으로 '군대 가지 않은 사람은 안보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다'고 이야기 한 것이다.

이런 인식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다. 군 복무로 시민의 위계를 나누는 것은 사회 구성원 간의 차별을 조장한다. 이 위계는 '지켜 주는 사람'과 '지켜 줘야 하는 사람'의 구분에서 온다. 전자는 희생을 강요받고, 누군가 지켜 줘야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후자는 전자에게 늘 감사해야만 한다. 위계의 아래에 위치한 이들(군대에 가지 않는 여성·장애인·이주민·병역거부자)은 차별 대우를 받는다. 

이 차별은 사회문화적으로 깊게 형성된 차별이기도 하도, 때로는 군 가산점제 같은 법과 제도를 통해 작용하기도 한다. 이 위계는 모든 시민이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하는 민주주의 사회 원리에 맞지 않을뿐더러 기형적이기까지 하다. 위계의 위에 위치한 이들 또한 '군복 입은 시민'으로서 합당한 권리를 인정받지 못한다. 군 복무로 시민의 자격을 나누는 인식은 위계의 상위에 위치한 이들에게는 희생을 강요하고, 하위에 위치한 이들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한다.

군 복무가 위계를 나누는 기준으로 작동하는 이유는, 안보를 오로지 '군사적' 수단과 방식으로만 인식하기 때문이다. 안철수 후보, 2012년의 문재인 후보를 비롯해 많은 정치인과 그 지지자들이 안보를 군사 영역으로만 인식한다. 하지만 안보의 개념은 갈수록 확장되고 있고, 이에 따라 정부의 안보 대응도 군사 영역을 넘어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조선의 임금에게는 북쪽의 오랑캐와 남쪽의 왜구로부터 백성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이 안보였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만 대처해서는 안 된다. 코로나19 같은 팬데믹에 대처하는 것, 태풍·지진 같은 자연재해에 대처하는 것, 세월호 사건과 같은 사회적 참사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모두 안보다. 심지어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처하는 것조차 군사적 수단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고, 때로는 외교나 경제협력, 민간 교류와 같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군사적 수단은 안보를 지키는 다양한 방식 중의 하나일 뿐이다. 안보는 군인이 지키고 나머지는 군인의 보호를 받는 게 아니라, 다양한 안보 위협에 맞서 우리 모두가 안보를 지키는 역할을 수행하고, 서로가 서로의 안보를 지키고 지켜 줘야 한다. 군인이 국경선을 지키는 동안 의료 종사자는 감염병으로부터 군인을 지키고, 공무원은 의료 종사자의 업무가 원활히 돌아갈 수 있도록 소임을 다하고, 시민들이 낸 세금으로 공무원의 생활이 평화롭고 안전하게 유지되지 않는가.

이처럼 현대의 안보는 일방적으로 지키고 지켜 주는 관계가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결된 하나의 망에 가깝다. 결국 사회 공동체를 지키는 안보는 군인들만의 몫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의무이며, 2016년 병역거부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 판결문처럼 우리가 시민으로서 "맡은 바 소임을 다 하는 것" 또한 안보에 기여하는 일이다.

정용진 부회장이 말한 '멸공'은 기실 '군대 가지 않은 사람은 안보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다'는 인식과 닮았다. 군사적 수단에만 의존하는 안보 개념에서는 방어를 말할 때조차 늘 '박멸해야 할 주적'을 상정하고, 때로는 주적에 대한 '선제 타격'까지도 감행할 수 있어야 한다. 정용진 부회장의 시대착오적 망언에 대해서는 사회적 관심을 주지 않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비판을 해야 한다면 정용진 부회장과는 다른 전제에서 다른 대안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박멸해야 할 대상과 맞서는 것이 아니라, 지키는 사람과 지킴을 받는 사람이 나뉘어 위계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시민으로서 사회 공동체에 대한 책임과 소임을 다해 어떻게 안전과 평화를 유지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군 복무 여부와 별개로, 안보의 주체로서 우리가 서로 어떤 관계를 맺는지, 정부와 개별 시민들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질문할 수 있을 때, 진정으로 '멸공'의 다음 시대에 걸맞는 다른 평화와 안보를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이용석 / 평화운동 단체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병역거부자가 되기 위해 평화에 대해 공부하고 고민하다 보니 평화 활동가가 됐다. <평화는 처음이라>(빨간소금), <병역거부의 질문들>(오월의봄)을 썼다.

1) 강인화, "병역의무는 '어쩌다' 보편화되었나 - 병역 공정성 추구의 이면", 전쟁없는세상 블로그(http://www.withoutwar.org/?p=18596)
2) 강인화, "병역, 피해와 차별이라는 인식·감정", 전쟁없는세상 블로그(http://www.withoutwar.org/?p=18212)
3) 김환태 감독 다큐멘터리,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 금기에 도전',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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