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장명성 기자] '양심적 병역거부'가 무죄라는 대법원 판결에 보수 개신교계가 뜨겁게 반응하고 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엄기호 대표회장)와 한국기독교연합(이동석 대표회장)은 판결 직후 이를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안보에 위협이 될 것"이라며 양심적 병역거부를 강력히 반대했다. 한기총은 여호와의증인을 언급하면서 '특정 종교의 병역기피'라는 용어를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한국교회 보수 개신교인들은 병역거부를 극렬히 반대하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병역거부자는 기독교인이다. 서기 274년, 로마 치하 북아프리카 지역 군인 가정에서 태어난 막시밀리아누스(Maximilianus)는 21세가 되던 해에 로마의 징집 명령을 거부했다. 기록에 따르면 막시밀리아누스는 산상수훈의 평화적 메시지를 이유로 병역 이행을 거부했고, 이 때문에 처형당했다. 가톨릭은 "나는 이 세상의 군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군인이다"는 말을 남기고 순교한 그를 성인으로 추앙하고 있다.

병역거부자들과 그들을 후원하는 사람들이 모여 2003년 출범한 '전쟁없는세상'은 16년간 병역거부를 중심으로 반전·평화운동을 펼치고 있다. 병역거부자이면서 전쟁없는세상 병역거부 캠페인 담당자로 일하고 있는 이용석 활동가는 막시밀리아누스 이야기를 예로 들며, 병역거부의 시작은 종교의 가르침을 따르려 했던 종교인들의 담담한 실천이었다고 했다. 지금 병역거부를 반대하는 종교인들의 언어가 보수 정치인의 언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다는 그를 11월 6일 서울 대흥동 전쟁없는세상 사무실에서 만났다.

병역거부자 당사자면서 양심적 병역거부 캠페인 담당자로 일하고 있는 이용석 활동가를 서울 대흥동 전쟁없는세상 사무실에서 만났다. 뉴스앤조이 장명성

"정부·국회 직무유기 때문에
사법부가 나설 수밖에 없어
병역거부, 특정 종교에 국한할 문제 아냐"

-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라'는 헌법재판소 결정과 대법원 무죄판결을 통해 병역거부 운동이 큰 전환점을 맞았다. 활동가로서 소회가 남다를 것 같다.

늦었다고 생각하지만, 늦은 만큼 충분히 환영할 만한 결정들이 나오고 있다. 사실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이 나올 거라고 예상했다. 헌법재판소 결정도 있었고, 하급심에서도 118건의 무죄판결이 있었기 때문에 유죄가 나오리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대한민국 최고법원에서 병역거부 문제에 관해 명확한 결론을 내린 것이니 판결 자체에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번 판결에서 주목할 점은, 대법원이 '국제 인권 규범'을 근거로 삼았다는 사실이다. 국제 인권 규범을 판결문에 인용하고 넣은 것이 처음이라고 한다. 법조계에서는 앞으로 소수자 인권 보호 측면에서 이번 판결이 좋은 선례로 작용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인권적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의 이 같은 판결은, 그 존재 의미에 걸맞은 판결이었다고 생각한다.

활동가로서는, 가장 보수적인 사법부가 이런 판결을 내리는 동안 국회와 정부는 무얼 하고 있었는지 묻고 싶다. 병역거부 문제는 사법부가 결정을 내리기 전에 대체복무제 도입 등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고, 그런 식의 해결이 더 좋은 방법이다. 정부와 국회의 직무유기 때문에 사법부가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 무죄판결 이후, 보수 기독교계를 비롯한 병역거부 반대 진영은 "여호와의증인에 대한 특혜"라고 비난한다. '특정 종교의 병역기피'라는 용어를 써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헌법재판소 결정문이나 대법원 판결문만 보더라도, 사법부는 병역거부를 '종교' 문제가 아니라 '개인 양심' 문제로 판단하고 있다. 이렇게 접근하는 게 당연하다. 특히 특정 종교의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한국 병역거부자 대다수가 여호와의증인인 것은 국제적으로 봤을 때 예외적 상황이다. 한국에서 교세가 큰 기독교·불교 신자들은 병역거부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여호와의증인은 역사적으로도 등장한 지 얼마 안 된 종교다. 오랫동안 서구에서는 개신교·가톨릭 신자들이, 동양에서는 불교 신자들이 종교적 신념에 입각해 병역을 거부해 왔다. 제1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병역거부가 더 폭넓은 평화운동으로 발돋움하는 데 기독교 퀘이커·메노나이트 신자들이 크게 기여했다. 많지 않지만, 한국에도 개신교·가톨릭·불교 신자 등 다양한 종교인이 병역을 거부하고 있다. 이런 사실을 본다면 병역거부를 특정 종교의 문제로 보기는 어렵다.

전쟁없는세상이 주최한 2018 평화 캠프에서 참가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용석 활동가. 사진 제공 전쟁없는세상

- 개신교인들은 물론이고 국민들도, 이렇게 되면 여호와의증인에 청년들이 몰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16년 전 병역거부를 선언한 임치윤이라는 분이 있었다. 초창기 한국 병역거부자들은 학생운동이나 사회운동하던 사람들이었는데, 이분은 그런 배경이 없었다. "왜 병역거부를 하려고 하냐"고 물어보니, "원래 여호와의증인이었는데 그만뒀다"면서 자기 이야기를 털어놨다.

20대 청년으로 해 보고 싶은 게 많은데, 여호와의증인은 해야 할 것도, 하지 말아야 할 것도 너무 많아서 힘들었다고 하더라. "여호와의증인도 탈퇴했으면서 병역거부는 왜 하려고 하느냐"고 다시 물어봤더니,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고민해 오던 문제라고 답했다.

일반화할 수 없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감옥 가는 것이 여호와의증인 신자로 사는 것보다 더 쉬운 일일 수 있다는 거다. 그만큼 여호와의증인 신자가 되는 건 까다롭다. 오랫동안 자신의 신앙생활을 증명해야 하고 조건도 많다. 설사 병역을 거부하려고 청년들이 여호와의증인에 몰려간다고 해도 다 받아 주지도 않는다.

재밌는 사실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여호와의증인 증가율이 가장 높은 나라가 한국이라는 것이다. 대체 복무나 병역거부 때문에 다 여호와의증인으로 몰려갈 것 같으면, 대체복무제가 있는 나라들의 증가율이 높아야 하는 데 그런 경우는 없다. 감옥에 가야 하는 한국에서 증가율이 높다는 게 조금 이상하지 않나.

농담처럼 하는 말이 있다. 대체복무제가 도입돼 젊은이들이 여호와의증인으로 몰려갈 게 걱정된다면, 한국교회도 젊은이들에게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 병역을 거부하라고 권하면 된다. 교회가 젊은이들에게 평화에 대해 가르치고,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드는 일을 실천하는 삶을 이야기한다면 그들이 여호와의증인으로 갈 걱정은 안 해도 될 거다.

- 실제 병역거부 운동하면서, 반대에 앞장서는 보수 개신교인을 많이 봤을 것 같다. 비종교인으로서 평화운동에 반대하는 종교인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사실 그런 분들을 볼 때 '종교인'이라는 느낌을 크게 받지는 않는다. 정치적으로는 당연히 나와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종교인이라는 타이틀을 건 그들이 하는 말을 들어 보면, 병역거부를 싫어하는 보수 정치인들의 언어와 다르지 않다. 국민이라면 누구나 안보를 중요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주장하는 방식이나 내용이 아쉬운 부분이 많다. 이 사안에 반대하는 게 종교적 이유가 아니라 정치적 이유라는 생각이 든다.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오던 날, 재판소 앞에도 '헌재가 합헌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개신교인들이 있었다. 그분들이 우리를 보더니 대뜸 "북한으로 가라"고 하더라. 소위 '종북'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병역거부를 정확히 이해하려 하지 않고, 국방의 의무와 양심의자유가 부딪혔을 때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기 때문에 '병역거부=종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사실 북한은 한국보다 더 심한 수준으로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는 나라다. 우리한테 북한으로 가라는 게 말이 되나. (웃음)

- 병역거부자 중 개신교인인 사람도 있었을 텐데, 활동하며 마주한 그들은 어떤 사람이었나.

'예비군 훈련 거부자' 김형수 씨가 생각난다. 병역을 거부하는 데 신앙적 부분이 크게 작용했다고 말하더라. 개신교 안에도 전쟁과 평화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있고, 평화주의가 기독교 전통 중 하나라는 걸 알고 난 후 그걸 따르기로 했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기독교인이라면, 스스로 끊임없이 질문하면서 이 시대에 예수의 길을 따른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고민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예수님이 2018년 대한민국에 남성으로 내려와서 입영 영장을 받았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지 고민해 보는 거다. 군대에 가더라도, 개신교인으로서 어떤 군 생활을 해야 할지 질문하고 갔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군 생활은 아주 다르지 않을까.

이용석 활동가는 병역거부자들과 군 복무하고 있는 이들을 '불행 경쟁' 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장명성

"36개월 교정 업무는 '징벌적'
대체 복무로 '대안적 안보' 만들어야
젊은이들 '불행 경쟁' 시키지 말라"

- 헌재 결정에 따라 정부는 2019년 12월 31일까지 대체복무제를 도입해야 한다. 평화운동 단체들은 현재 논의되고 있는 정부의 대체복무제안이 '징벌적'이라고 주장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 국방부가 준비하는 대체 복무는 쉽게 말하면 36개월 동안 교도관들 행정을 보조하는 거다. 교도관들에게는 도움이 되겠지만, 한국 사회 전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다른 방식으로 한다면 훨씬 더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본다.

지금 정부안은 각각 쟁점에서 가장 안 좋은 것들을 조합해서 만든 안이다. 복무 기간을 현역 복무의 2배인 36개월로 제시했는데, 왜 2배여야 하는지 합리적 이유를 제시하지 않았다. 면밀한 조사와 연구를 통해 만든 게 아니라, 행정 편의를 위해 만든 것으로 보인다. 보수 단체의 반발을 무마할 수 있고, 쉽게 만들 수 있는 내용을 조합한 게 아닌가 싶다. 헌재나 대법원의 결정에 따라 양심의자유를 어떻게 보장할지, 대체복무제를 시행해 사회에 어떤 방식으로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

대체 복무가 사회 취약층을 돕는 일이 되었으면, 그래서 '대안적 안보'를 만들어 가는 일이면 좋겠다. 36개월 교정 업무가 징벌적이라는 주장은 교도소가 힘들어서가 아니다. 교도소 업무보다 치매·독거 노인을 돌보거나 중증 장애인들을 위한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훨씬 고되고 힘든 일일 수 있다. 그럼에도 이런 일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대체 복무를 통해 더 넓은 범위에서 한국 사회가 나아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 병역거부 관련 재판 하급심에서도, 국가 안보의 의무를 꼭 병역을 통해 이행해야 할 필요는 없고, 평화 활동을 하는 것도 국가 안보를 위한 것이라는 취지의 판결이 나온 적도 있다. '대안적 안보'라는 개념도 이와 같은 건가.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안보'의 개념이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나는 지금 파주에 살고 있다. 옥상에 올라가면 북한이 보일 정도로 가깝다. 그런데 이웃들이 북한 때문에 불안감을 느끼는 일은 잘 없다. 정작 이들이 불안감을 느끼는 때는, 세월호 참사나 메르스 같은 예기치 않은 사고나 안전 문제가 생겼는데 국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다.

강한 군대로 국경선을 지키는 전통적 의미의 안보만 신경 써야 하는 시대는 지났다. 다른 영역의 안보에서 국가 책임이 늘어나고 있는데, 한국 정부는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체 복무를 통해 국가의 안전보장에 도움을 주는 대안적 안보를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병역거부자들은 실제로 그런 일을 하고 싶어 한다.

- 평화 운동가, 병역거부 운동가로서 병역거부에 크고 작은 반감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세상이 더 좋아질 가능성은 정치인보다 시민들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 시민이 종교인이든 아니든 말이다. 정치인은 결국 시민 여론에 따라 움직인다.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표를 던질 수밖에 없었던 것도 시민들 때문이다. 병역거부와 대체 복무 논의에 정치인 역할도 있지만, 토론·논쟁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설정하는 건 시민들이다.

'어떻게 하면 병역거부자들에게 힘든 일을 시킬 수 있을까', '병역을 이행하는 젊은이들의 박탈감을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라는 시선에만 머무르면 안 된다. 그건 서로 '불행 경쟁'을 시키는 거다. 불행을 경쟁해서 박탈감이 해소된다면 또 모르겠지만, 지금 복무하는 분들이 군 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박탈감이 대체복무제 도입이나 양심적 병역거부 때문에 생긴 건 아니지 않나.

다른 쪽으로 시선을 옮겨서 논의해야 생산적인 결론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대체복무제가 사회에 더 좋은 효과를 줄 수 있는가'라는 고민이면 좋겠다. 병역거부자들 양심의자유를 보장하는 차원도 있을 거고, 군 복무자들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도 이야기할 수 있다. 이 논의와 함께 군 복무에 관한 법률이나 제도를 좋은 방향으로 개정할 수도 있지 않겠나. 당사자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까지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쪽으로 논의를 옮겨야 한다. 서로 다른 의견들이 만나서 나오는 결론들이 부디 생산적이면 좋겠다.

전쟁없는세상은 병역거부 수감자를 지원하는 활동도 하고 있다. 사진은 2016년 병역 수감자의 날 행사에서 발언하는 이용석 활동가. 사진 제공 전쟁없는세상
전쟁없는세상 사무실에는 반전운동, 평화운동에 쓰이는 소품이 많다. 전쟁 반대 문구가 들어가 있는 티셔츠. 뉴스앤조이 장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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