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형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받고 제주교도소에 수감된 평화운동가 송강호 박사가 보내온 글입니다. 송 박사의 글을 통해 평화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 바랍니다. - 편집자 주

코로나19 확진자가 다시 2000명대로 늘어난 9월 2일, 우리 정부를 대표하는 보건복지부장관은 코로나 전담 의료 인력을 대표하는 보건의료노조위원장과 힘겨운 협상을 계속하고 있었다. 1년 반이 넘도록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불철주야 헌신해 온 의료 종사자들이 외치는 '더 이상은 견딜 수 없다'는 처절한 호소를 모든 국민이 애처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요구는 명료했다. 의료 인력을 확충해서 간호사 한 사람이 돌봐야 하는 환자를 현재 17~20명에서 7명으로 제한해 달라는 것, 코로나 같은 사태를 대비하기 위한 전담 병원을 현재 20여 개에서 77개로 늘려 달라는 것, 의료 인력에게 정당한 보상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

정부는 한정된 재정으로 이를 감당할 수 없다며 협상 결렬을 예고했지만, 기나긴 논의 끝에 새벽 2시가 돼서야 협상이 타결됐다. 보건의료노조가 정부 측의 '노력하겠다'는 약속만 받아 낸 채 조건부 합의하는 것으로 전대미문의 의료 공백 사태가 진정된 것이다. 간호사님들이 착했던 덕이었다. 그들이 눈물겹도록 고마웠다.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미심쩍다. 정부가 정말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까?

내가 정부의 진정성을 믿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재정 부족을 이유로 보건의료노조의 요청을 전부 수용하기 어렵다고 난색을 표했던 바로 그날, 정부는 향후 5년 동안 국방 예산을 200조 원으로 늘리고 5년 후에는 한 해 국방비로 70조 원을 지출하겠다고 자랑스러운 듯 발표했다. 코로나19가 온 세계에 창궐하고 있고, 중국에서는 탄저병과 페스트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는데도 말이다. 제2, 제3의 팬데믹에 대한 불안한 예고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 지구온난화로 기후는 격변하고 있다. 홍수와 산사태가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고, 다른 지역에서는 전례 없는 폭염과 대규모 산불로 인명 사고뿐 아니라 아예 도시 전체가 대피해야 하는 사태까지 생기고 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국방의 목표가 어떻게 실현돼야 할지 진지하게 다시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그런데 정부는 향후 5년 내에 이지스함·항공모함과 같은 수조 원대 군함과 무기를 사들이고 군인들의 봉급을 더 늘리는 데 한정된 국가 재원을 쓰겠다고 했다. 병원을 더 지어 달라는 아우성에는 돈이 없다고 하면서, 무엇을 위해 어떻게 써야 할지도 불확실한 전쟁 무기에는 천문학적인 세금을 지출하겠다고 구체적인 계획까지 발표했다. 이것을 보면 아직도 우리나라는 이 시대의 재앙들이 계시하는 미래의 징조도, 시대의 정신도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군대와 무기는 우리나라의 '우상'이다. 우리의 안전과 행복을 지켜 줄 것이라는 거짓 믿음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여전히 대중적인 인기를 끈다 점에서 그렇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이 우상에게 한 해 55조 원의 헌금을 바치고 55만 명의 젊은 청춘을 제물로 바친다. 일할 사람이 부족해 탈진 상태에 빠진 의료 인력은 충원하지도 못하면서 50만 명이 넘는 젊은이들을 교도소 같은 병영의 철조망 안에 가둔 채 코로나19에 집단감염이 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중환자 시설이 부족한 국민들은 병원에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죽어 가는데, 우리 정부는 얼마 안 가 고철 덩어리가 될 무기를 구입하기 위해 수십 조 원의 혈세를 탕진하려 든다.

정부뿐 아니라 국민 대다수도 '국방비'라고 하면 공돈이라도 얻은 것처럼 돈을 갖다 받친다. 국가의 재정지출은 제로섬게임과도 같다. 국방비를 증액한다는 말은 결국 교육·의료·복지 예산을 그만큼 갉아먹겠다는 것이다. 지금도 매일 10명이 넘는 시민들이 코로나19 감염으로 죽어 가고 있다. 월남전보다도 더 큰 희생을 치르는 소리 없는 전쟁이 우리나라 한복판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국가 방위를 책임지는 이들은 엉뚱한 미지의 전쟁을 대비한다면서 시간과 자원을 허비하고 있다. 70% 이상이 산악 지대인 우리나라에서 미국·러시아·유럽·호주 등지에서 겉잡을 수 없이 번진 것과 같은 대형 산불이 번질 경우 우리나라는 초토화될 것이며, 주민들이 당할 인명·재산 피해도 엄청날 것이다.

기후 재앙이 가져올 재난이야말로 지금 예상 가능하고 임박한 국가적 위기다. 군대는 이 모든 위협에 올바로 대응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탄소 배출 증가 상황에서도 잘못된 판단과 결정을 내리고 있다. 탄소 중립을 위한 모든 노력을 무색하게 만들 만큼 거대한 석탄 발전소들을 건립하고 있고, 엄청난 자원과 에너지를 고갈시키면서 탄소 배출까지 증대할 군사 장비들을 매입하려는 시대착오적인 계획을 세우고 있다. 군사 장비와 시설들은 고밀도·고효율의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핵 발전을 요구하게 돼 있다. 이는 핵 재앙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우리나라를 다시금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의 재앙으로 끌고 들어갈 것이다.

우리는 과거를 향한 퇴보를 중지하고 돌이켜 미래를 향해 나가야 한다. 매몰 비용에 연연하지 말고 당장 석탄 발전소 건설을 중단하고 그 시설을 재생에너지 발전 시설로 신속히 전환해야 한다. 맹목적인 국방비 증액을 중단하고 과거 지향적인 국방 정책을 총체적으로 성찰하기 위한 대국민 토론장을 열어야 한다. 무조건 총과 칼만이 국민을 지킬 수 있다는 전근대적 안보 관념을 버리고, 과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실제적으로 위협하는 공공의 적이 무엇인지를 규명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시민들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는 대화의 장을 열기를 바란다.

나는 확신한다. 민주적인 토론을 거친다면, 결국 총을 든 군인보다는 산불 진화를 위한 소방대원, 국제범죄를 추적하는 인터폴, 잔혹한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안전 요원들, 테러 전담 특수 경찰, 보이스 피싱 전담 경찰, 전염병 예방 전담 보건 인력, 해상 인명 구조대 등 특수하고 다양한 분야의 인력을 양성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현재와 미래에 닥칠 위협으로부터 우리 국민을 더 확실하게 지켜 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군대라는 낡은 부대는 새로운 시대의 위협을 막을 수 없다.

송강호 / 평화운동가.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