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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현재 분쟁 상황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모든 군사행동을 규탄합니다. 우리는 양국의 지도부와 군대가 한발 물러서서 협상 테이블에 앉을 것을 촉구합니다. 우크라이나와 전 세계의 평화는 비폭력적인 방법으로만 달성할 수 있습니다. 전쟁은 반인륜적 범죄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떠한 종류의 전쟁도 지지하지 않고 모든 전쟁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결의합니다."

- 우크라이나 평화운동 단체 'Ukrainian Pacifist Movement'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시작한 지난 24일 우크라이나 평화운동 단체 'Ukrainian Pacifist Movement'는 위 성명을 십여 개국 언어로 번역해 전 세계에 타전하며 반전을 위한 행동을 촉구했다. 단체 사무국장 유리 셸리아첸코(Yurii Sheliazhenko)는 침공 한 주 전인 2월 16일 미국의 독립 언론 'Democracy Now!'에 출연해, 이 갈등이 전쟁으로 비화되지 않도록 할 공동의 책임이 동서 강대국 모두에 있다고 했다. 그는 "우리(우크라이나) 정부는 무모하게 글로벌 권력 투쟁에서 서구의 편을 들어 갈등의 일부가 됐다. 우리는 중립국이 돼야 한다. 우리는 보편적 평화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물론, 전 세계 모든 사람은 평화롭게 살고 싶어 하고 행복해지고 싶어 한다. 서양과 동양의 강대국들은 우크라이나와 우크라이나를 넘어 전쟁이 확대되는 것을 피해야 할 공동의 책임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터무니없는 정치적 논쟁 때문에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를 죽일 수 있는 핵 비축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쟁없는세상은 '모든 전쟁은 인간성에 반하는 범죄'라는 신념에 기초해, 전쟁과 전쟁을 일으키는 다양한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 우리는 '착한 전쟁', '정당한 전쟁'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으며, 대화와 협상 외에는 그 어떤 해결책도 없다고 생각한다. 러시아의 이번 우크라이나 침공은 명백한 불법행위다. 러시아에게는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 내 친러 분리주의 공화국(도네츠크인민공화국·루간스크인민공화국 - 기자 주)의 독립을 인정하고 말고 할 아무런 권한이 없다. 러시아가 2014년 이후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벌인 무차별적 군사작전은 모두 불법이다. 러시아를 대상으로 한 서구 사회의 위선적인 동진 정책과 위협에도 불구하고, 이번 침공의 일차적 책임은 분명 러시아에 있다. 따라서 우리는 러시아가 모든 공격을 즉각 중단하고 우크라이나에서 군대를 철수할 것을 촉구한다.

여기까지는 '반전운동'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활동과 논리다. 하지만 우리는 임박한 혹은 이미 벌어진 전쟁을 막거나 중단시키는 것만이 반전운동의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전쟁은 우연히 일어나지 않는다. 전쟁이 일상적 차별과 착취의 산물이듯, 평화 역시 일상적 노력의 결과물이다. 따라서 반전운동은 전쟁을 일으키는 다양한 원인을 우리 일상과 사회구조에서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을 포함한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는 1990년 이래 서구의 세력 확장 시도에 일상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야 하며, 이것은 이번 전쟁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그래서 평화운동의 역할은 전시 '반전 집회'에만 그치지 않는다. 평화 시기에 전쟁을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무기를 사고팔아 되레 전쟁을 조장하는 '무기박람회'에 대한 저항 행동, 징병제도에 문제를 제기하며 병역거부자들을 지원하는 활동 등 '일상적' 반전운동도 평화운동의 역할이다.

전쟁없는세상은 2월 24일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WRI·War Resisters' International)의 성명을 번역·개제해 '사회적 방어(Social Defense)'라는 다소 생소한 개념을 국내에 소개했다. 반전·평화운동은 오래전부터 전쟁과 같은 폭력적 침략에 대한 비폭력적 대안 및 역사적 사례를 수집·연구해 왔고, 이를 '사회적 방어'라고 명명했다. 사회적 방어는 영토 자체보다 사회구조를 방어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예를 들면, 침략자들에게 경제적 이득을 주지 않기 위해 파업 활동으로 침략 이익을 감소시키는 일, 침략 국가 시민들과 소통하며 침략 행위에 대한 자국민의 사회적 지지를 약화시키는 일 등이 있다. 대중매체 뉴스 보도들은 마치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의 개입이나 우크라이나·러시아 양국 정상의 만남이 중요한 것처럼 다루고 있지만, 이미 전 세계의 많은 사례가 사회적 방어의 효용성을 증명해 왔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인도의 경우일 것이다. 인도는 영국 제국주의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대규모 시민 불복종운동 등 다양한 비폭력 기술을 사용해 결국 독립을 쟁취했다. 영국이 염전에서 소금 채취하는 것을 금지하고 비싼 영국산 소금을 수입해 먹도록 강요할 때는 '소금 행진'으로 상징되는 불복종운동을 벌였고, 영국의 비싼 면직물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임과 동시에 물레를 돌려 직접 옷을 지어 입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것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미래의 인도가 어떤 사회가 될 것인지 보여 주는 행위였고, 비폭력 독립운동의 자부심을 드러내는 상징이 됐다.

무엇보다 인도가 택한 비폭력 전략은 영국의 폭력성이 확대되는 것을 막았다. 같은 영국의 식민지였던 케냐에서는 폭력적인 반란이 일어나 수많은 사람이 강제수용소에 갇혔고 수천 명이 학살당했다.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프라하의 봄)을 막기 위해 소련이 침공했을 때, 체코슬로바이카 시민들은 비폭력 저항의 방식을 사용했다. 그들은 많은 소련 군인들에게 '프라하의 봄'의 정당성을 알렸고, 실제로 많은 수가 설득되었다고 한다. 당시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소련의 영향력하에 있는 '꼭두각시 정권'을 이끌 사람을 수개월 동안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시민들의 결속력이 강했다. 이 비폭력 저항으로 전 세계 공산당에서 소련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이번 WRI 성명서에 "러시아가 수립할 새 정부에 대한 복종을 거부할 것을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호소"하고 "러시아 국민들과 군인들이 자국 정부의 전쟁 행위에 대한 모든 복종을 거부하고 비폭력적으로 저항하며 푸틴 정권을 축출할 것을 호소"하는 것은 모두 이러한 '사회적 방어'의 일환이다.

러시아의 침공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끔찍한 재앙이다. 또한 더 큰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전 세계적 재앙이기도 하다. 침공은 중단돼야 하고 러시아는 즉각 우크라이나에서 철수해야 한다. 그리고 반전운동은 급박한 상황을 하루속히 종식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하고, 일상에서도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다양한 사회구조적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오리 / 평화운동 단체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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