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여운송 기자] <퀴어 성서 주석 Queer Bible Commentary·QBC>(무지개신학연구소) 강독회 '모다들엉 퀴어신학' 2번째 모임이 7월 14일 온라인(ZOOM)으로 열렸다. 퀴어신학자 마이클 카든(Michael Carden)이 쓴 '창세기' 파트를 다룬 이번 강독회는, QBC 번역출판위원 이영미 교수(한신대 구약학)가 먼저 강의를 하고 참석자들이 질의응답을 나누는 순서로 2시간 가량 진행됐다.

창세기는 전통적으로 하나님이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했다(창 1:27)는 구절을 기반으로 이성애적 결혼 제도를 절대적인 '창조질서'로 공고히하고, 아브라함부터 요셉에 이르는 족장 시대 내러티브를 통해 창조 세계의 가부장적 질서를 정당화하는 데 사용돼 온 성서다. 성서를 문자주의적으로 읽는 일부 보수 개신교계는 이를 다른 해석이 비집고 들어올 여지가 없는 만고불변의 진리로 여기면서, 곳곳에 '이단'이라는 불도장을 찍는다.

그러나 마이클 카든은 유대 전통, 랍비 문헌, 이슬람 전통, 페미니즘 이론, 현대 퀴어 이론 등을 활용해 "모든 전통 안에서 또한 모든 전통을 뛰어 넘어" 창세기를 '낯설게' 읽는다. 자신의 작업을 '퀴어 미드라쉬(queer midrash)'로 명명하는 카든은 "창세기라는 메타 태피스트리(tapestry·융단, 채색 직조물)를 만든 많은 실을 퀴어적으로 돌리고 돌리"(119쪽)며 주석을 읽는 이들에게 당혹스러움, 새로운 상상력, 해방감을 동시에 선사한다.

<퀴어 성서 주석 - 히브리성서> / 데린 게스트·로버트 고스·모나 웨스트·토마스 보해치 엮음 / 퀴어성서주석번역출판위원회 옮김 / 무지개신학연구소 펴냄 / 800쪽 / 4만 5000원. 뉴스앤조이 여운송
<퀴어 성서 주석 - 히브리성서> / 데린 게스트·로버트 고스·모나 웨스트·토마스 보해치 엮음 / 퀴어성서주석번역출판위원회 옮김 / 무지개신학연구소 펴냄 / 800쪽 / 4만 5000원. 뉴스앤조이 여운송

강독 모임을 이끈 이영미 교수는 카든의 창세기 해석을 소개하며 "성서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와, 이렇게도 볼 수 있구나' 하고 놀랐다. 나는 (카든에 비하면) 아주 보수적이고 정통적인 기독교인인 것 같다. 카든 주석은 전통적인 주석 개념을 뒤집어 엎는, 퀴어가 아니라면 도무지 쓸 수 없는 퀴어적인 것"이라고 평가했다. 카든 자신이 퀴어이기 때문에 전통적 성서 해석의 틈바구니에서 전혀 새로운 의미를 건져 올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카든은 일반적인 신자들이 보기에 다소 놀라운 방식으로 성서에 접근한다. 그는 창세기를 관통하는 해석의 열쇠로 '안드로진(androgyne, 자웅동체)'에 대한 고대 신화를 제시한다. 안드로진은 연합체/단일체(primal unity) 상태를 반영하는 최초의 인간으로, 성서에서는 '아담'으로 표상된다. 가장 이상적인 상태였던 최초의 인간은 성이 이분법적으로 분화되지 않고 조화를 이뤘다는 것이다.

카든은 창세기의 하나님이 '안드로진'으로 묘사된다고 봤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을 부르는 호칭인 '엘 샤다이'는 남성 단수 고유명사 '엘'과, 여성성을 드러내고 생명·풍요·출산을 상징하는 '가슴' 혹은 '두개의 산'이라는 의미를 지닌 '샤다이'가 합성된 단어로, 하나님의 안드로진적 성격을 보여 준다. 안드로진인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최초의 인간 아담도 안드로진이었다. 그는 남(이쉬)/여(이샤)로 분화한 후 다시 부모라는 '한 몸(안드로진)'을 이룬다. 카든은 단일화된 존재에서 분화된 존재가 되고, 이 분화된 존재가 관계 속에서 다시 하나 됨을 회복해 나가는 과정이 창세기의 '이상적인 인간 이해'를 담고 있다고 본다.

카든은 조상들의 계보를 퀴어적으로 읽어 나간다. 이를테면, 아브라함과 사라를 성별이 모호한 안드로진으로 묘사하고, 이삭에게서 가부장적 남성성을 충족하지 못하는 트렌스젠더의 모습을, 리브가에게서 진취적이고 전향적인 레즈비언의 모습을 발견한다. 이삭이 에서를 사랑하고 리브가가 야곱을 사랑한 가족 내 편애 관계 역시 퀴어적인 관계로 풀어 가고, 채색옷을 입은 요셉을 '드래그 퀸(Drag queen)'으로 보기도 한다. 이들 이야기 모두에는 가부장제와 성별 이분법을 뛰어넘는 '안드로진적 이상'이 담겨 있다.

카든은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통제하고 수동적·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우기 위해 이용돼 온 '롯의 두 딸 이야기', '유다의 며느리 다말 이야기', '야곱의 딸 디나 이야기' 등도 가부장적 이성애주의를 전복하는 방식으로 해석한다. 이들을 통해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의 계보'가 채워진다. 창세기 본문이 말하거나 말하지 않는 부분들, 성서 텍스트가 지닌 애매모호함의 틈을 파고들어 퀴어만이 가질 수 있는 인식론적 경험 세계에 기반한 상상력을 가감 없이 발휘한다. 그리하여 가부장적, 여성 혐오적, 동성애 혐오적 생각을 비롯한 파시즘·인종차별·제국주의·식민주의(118쪽) 등 기독교 역사가 증명하는 창세기의 오용에 저항한다.

"창세기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가부장제, 여성 혐오, 동성애 공포, 성애 공포를 합리화하는 데 사용되어 왔다. (중략) 창세기가 가부장제 세계의 산물이기는 해도, 창세기의 여자들은 루터의 희망과는 달리 조용히 종속되어 있거나 천막 안에 고립되어 있지도 않다. (중략) 그들은 모든 가부장제의 표준을 완전히 깨면서 메시아적인 추진력을 연다. 창세기의 인물들은 신화적 성격을 가지며 동시에 힘을 행사하고 남용하고 또한 그 힘에 저항하는 관계망에 사로잡혀 있다. 창세기는 문명 세계를 제시할 뿐만 아니라 대안적인 유토피아의 가능성을 볼 수 있는 틈을 제시한다." (117~118쪽)

이영미 교수는 카든의 모든 해석에 동의하지는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이것이야말로 성서의 권위가 성서 자체가 아닌 성서를 해석하는 공동체의 힘에 달려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했다. 그는 "카든은 유대 랍비 문헌을 활용하지만, 내 공동체의 전통이 아니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힘든 해석도 있다. 논증의 권위는 근거 자료가 우리 공동체에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이처럼 성서의 힘은 성서 자체가 아니라, 성서를 자신들의 힘의 기반으로 삼는 해석 공동체의 힘에 달려 있다. 특정한 의미를 발판으로 삼고 있는 공동체의 힘이 지나치게 강해질 경우에는 성서가 혐오와 차별의 칼이 된다. 여태까지 믿고 들어 왔던 기준에서 벗어날 때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거나 그 자체를 듣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다수의 공통 경험을 기반으로 모인 이들이 성서 해석의 키를 쥐고 그것만을 '정통' 혹은 '진리'로 삼게 되면, 다른 경험에서 촉발된 상상력과 해석은 짓눌리게 된다. 이영미 교수는 "어떤 해석 공동체가 중심 권력을 발휘하는 한 그들이 성서의 이름으로 주장하는 교리는 강력한 힘을 지닌다. 이를 끊임없이 해체해 나가야 한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퀴어신학의 주제다. 다른 해석이 있을 수 있다고 자꾸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강한 힘을 가진 해석도, 성서의 애매모호성이 지닌 틈을 비집고 들어가 우리의 경험에 기반한 해석을 자꾸 내놓으면 해체해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서구 제국주의를 탈식민주의가 해체하고, 노예제도를 해방신학이 해체했듯, 제도가 가진 힘을 두려워하기보다는 다양한 해석을 통해 그것을 해체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이 우리가 카든에게 배울 수 있는 지혜다. 보다 열린 마음을 갖고 더 유쾌하고 퀴어스럽게 성서를 읽어 나가자"고 말했다.

'모다들엉 퀴어신학' 강독 모임 3주 차는 데이비드 탭 스튜어트(David Tabb Stewart)가 쓴 '레위기' 파트를 다룬다. 모임은 7월 21일 온라인으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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