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곤히 잠든 적군 지휘관의 관자놀이에 말뚝을 대고 땅에 박아 버린 이스라엘 여성 야엘(삿 4:21). 이 사건에 앞서 사사기의 유일한 여성 사사인 드보라는 출전을 머뭇거리는 남성 바락에게 '하나님이 적 지휘관을 한 여자의 손에 넘겨 주실 것이고, 당신은 승리에 대한 영광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예언한다(삿 4:9). 여성이 남성 대신 영웅이 되고 그 영광을 차지하는 전복적이고도 빛나는 여성 연대의 순간, 문득 질문이 생긴다. 드보라와 야엘은 서로를 알고 있었을까? 성서는 왜 이 두 여성의 관계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을까?

성서의 모호성·틈새에서 '퀴어한' 이야기를 건져 내는 <퀴어 성서 주석 Queer Bible Commentary·QBC>(무지개신학연구소) 강독회 '모다들엉 퀴어신학'이 4주 차를 맞았다. 모임을 이끈 이영미 교수(한신대 구약학)는 구약 성서의 여섯 번째 책인 '사사기'를 다룬 데린 게스트(Deryn Guest)의 해석을 소개했다.

드보라의 예언에 따라 바락의 관자놀이에 말뚝을 박는 야엘. 여성이 남성 대신 영웅이 되고 그 영광을 차지하는 전복적이고도 빛나는 여성 연대의 순간이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드보라의 예언에 따라 시스라의 관자놀이에 말뚝을 박는 야엘. 여성이 남성 대신 영웅이 되고 그 영광을 차지하는 전복적이고도 빛나는 여성 연대의 순간이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사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탈출해 팔레스타인 땅에 입성한 뒤에 벌어진, 부족 공동체의 혼란스러운 시대상을 그린 책이다. 본문에서 수차례 반복되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라는 구절은 이런 상황상 '왕조시대'가 도래할 수밖에 없었다고 에둘러 변증한다. 전통적으로 사사기에 대한 해석은 주로 혈기왕성하고 남성적인 주인공들의 면면에 초점을 맞춰 온 경우가 많았다.

레즈비언 신학자 데린 게스트는 사사기를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 완곡어법, 이중 의미를 가진 어구, 애써 감추지 않는 성적인 언급을 자주 사용하는 섹시한 책"(285쪽)이라고 명명한다. 또 "공동체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이스라엘과 다른 인종 집단 사이의 경계를 두텁게 하려는" 목적으로 쓴 "바빌로니아 포로기 이후의 청중"을 대상으로 한 책이자, "투박한 구전 전승의 잔존물이 아니라, 저자가 이념적으로 채색한 창의적이며 세련된 허구"(284쪽)라고 주장한다.

이를 바탕으로 게스트는 사사기 3장에 등장하는 사사 에훗과 모압 왕 에글론의 만남을 "비유적인 강간 장면"(288쪽)으로 해석한다. 에훗은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모압 왕 에글론을 비밀스럽게 만나 암살에 성공하는 인물이다. 게스트는 에훗이 고대에서 특이하고 부자연스럽다고 여겨진 '왼손잡이'로 등장하고(그것도 '오른손의 아들'이라는 뜻의 베냐민 지파 출신이었다), '남근'이라는 뜻을 함께 지닌 '손'이 자주 언급됐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를 퀴어적으로 해석하면, 에훗이 은밀한 일을 아뢰기 위해 에글론 왕이 홀로 있는 곳으로 들어가 단검으로 찌르는 모든 과정이 '성적인 행위'가 된다.

게스트는 "전반적으로 주석가들은 에훗의 업적을 특이하고, 부자연스럽고, 교활하고, 불길하다고 다양하게 묘사하는데, 그들 모두가 찾는 단어는 아마 '퀴어스러운'일 것"(294쪽)이라고 말한다. 아울러 전통적인 주석가들이 이러한 본문 자체의 동성애적 암시와 에훗을 이스라엘의 영웅으로 칭송하고 싶은 욕구 사이에서 당황스러워하고 있다고 평했다.

데린 게스트는 사사기에 등장하는 드보라와 야엘 이야기를 '레즈비언 정체성의 해석학'을 동원해 새롭게 해석한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데린 게스트는 '레즈비언 정체성의 해석학'을 동원해 사사 드보라와 야엘의 관계를 새롭게 해석한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게스트는 사사기 4~5장에 등장하는 드보라와 야엘 이야기도 두 여성의 관계가 지나치게 생략돼 '이성애적'으로 구성됐다고 본다. 그는 "두 여자의 관계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것은 화자(남성)의 관심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라며 "히브리성서 화자들이 여성들 사이의 친밀한 우정과 연대라는 실재를 억제하는 주요 방식 중 하나로 여성의 역할을 아내와 어머니로 정하고, 서로 지지하는 친구보다는 경쟁하는 적수로 그린다"(299쪽)고 주장한다.

그는 '미드라쉬'를 활용해 드보라와 야엘을 레즈비언 관계로 재해석한다. 미드라쉬란 '상상력'을 동원해 성서 이야기에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틈의 일부를 메우는 해석법이다. 이러한 해석을 통해 드보라와 야엘은 '전통적 여성성을 거부하고 남자 영웅에게 주어지는 역할을 스스로 맡은', '통제 불가능한', '서로의 교제를 자유롭게 즐기고 남편의 간섭에서 자유롭게 된' 두 여성으로 다시 태어난다. 게스트는 레즈비언 정체성의 해석학을 위해서는 '저항 전략'과 '이성애 의심의 해석학'을 사용해야 한다며, 이성애 중심주의의 뿌리에 도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강독을 마친 참석자들 사이에서는 "기발하다", "재미있다", "공감이 잘 안 된다" 등 다양한 반응이 이어졌다. 한 참석자는 "이러한 해석에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 모르겠다. 되레 퀴어신학을 부정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반감을 심화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주석가들이 에훗을 해석하는 데 양가적인 감정을 느끼며 난감해하는 것을 두고, 저자가 '퀴어스러운'이라는 표현으로 요약한 문장이 인상 깊었다. 에훗이 목적은 달성했지만 문제적인 것 같고, 강간의 주체자이지만 토사구팽당하는 느낌도 있어 앞으로 좀 더 해석할 여지가 많이 있으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영미 교수는 게스트의 모든 해석에 공감하지는 않는다면서도 해석의 권위는 해석학적 공동체의 공감과 확산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QBC의 내용에 나도 충격받을 때가 있다. 이러한 해석이 우리의 신앙 공동체에서 얼마나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 고민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퀴어신학은 단순히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이 아니라 히브리어 분석 등 학문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다. 논리성·변증력·기발함에 있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고, 존중을 넘어 학문적 경외심까지도 갖게 한다"고 평했다.

또 "퀴어적인 해석이 (다수를) 설득하는 데는 효과가 없을 수도 있다. 다만 QBC가 끊임없이 되풀이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성서는 그 자체로 모호한 '틈새'가 있고 '퀴어하다'는 점이다. QBC을 읽는 독자들이 각자의 경험과 자료를 활용해 성서를 해석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해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모다들엉 퀴어신학' 5주 차는 모나 웨스트(Mona West)가 쓴 QBC '룻기' 파트를 다룬다. 이와 더불어 정혜진 박사(이화여대)와 <여성들을 위한 성서 주석 - 구약 편>(대한기독교서회) 룻기 파트를 함께 읽으며 퀴어신학과 페미니즘신학의 교차성을 살핀다. 모임은 8월 4일 온라인으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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