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다큐멘터리 '프레이 어웨이(Pray Away)'는 신앙으로 동성애 성향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전환 치료(conversion therapy)' 혹은 '회복 치료(reparative therapy)'의 위험성과 허구성을 드러낸 다큐멘터리영화다. 넷플릭스를 통해 8월 3일 전 세계에 공개됐다.

한국에도 전환 치료가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공식적으로 '전환 치료'라는 용어를 쓰지는 않지만, 성령 집회에서 기도하다가, 성경적 상담을 받다가, 말씀을 듣고 신앙의 힘으로 소위 '탈동성애'에 성공했다고 간증한다. 반동성애 진영에서는 이런 탈동성애자들을 내세워 동성애는 선천적이지 않기 때문에 변화할 수 있다고 홍보(?)한다.

전환 치료는 사람의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을 바꾸려는 모든 시도를 통칭하는 말이다. 한국에서는 2016년 3월, 한 트랜스젠더 청년이 목사에게 강제로 상담을 받던 중 폭행을 당해 탈출한 일이 발생했다. 이 일을 계기로 인권 단체와 종교 단체가 연합한 전환치료근절운동네트워크(전근넷)가 출범했다.

전근넷 활동가들은 '프레이 어웨이'를 어떻게 봤을까. 영화 내용과 밀접하게 관련 있는 두 사람과 이야기를 나눴다. 이동윤 평론가(활동명 에디)는 현재 춘천 영화제 프로그래머이자 영화 평론가로 일하고 있다. 성소수자들이 주로 모이는 로뎀나무그늘교회에서 10년 넘게 신앙생활을 해 왔다. 이성원 상담사(활동명 미묘)는 '상담공간 서로오롯' 대표 상담사로 '소수자 스트레스'가 주 연구 분야다.

전환치료근절운동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이동윤 평론가(왼쪽)와 이성원 상담사를 만났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전환치료근절운동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이동윤 평론가(왼쪽)와 이성원 상담사를 만났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이동윤 평론가와 이성원 상담사를 8월 18일 서울 중구 필동 카페바인에서 만났다.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을 언급하는 것으로 시작한 이야기보따리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두 사람과의 대담 내용을 정리했다.

- 먼저 '프레이 어웨이'에 대한 짧은 평을 부탁한다.

이동윤 / 전환 치료와 관련한 극영화로는 '보이 이레이즈드'(2018)와 '카메론 포스트의 잘못된 교육'(2018) 두 편이 나와 있다. 전환 치료 시설에서 경험한 이야기를 각각 게이·레즈비언 입장에서 다룬 영화다. 이런 내용을 극영화로 말고 다큐멘터리로 접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전환 치료 가해자였던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그 잘못을 책임지기 위해 한 행동을 보여 주는 내용이어서 좀 더 힘이 있는 것 같다. 이런 점이 다큐멘터리영화의 장점이기도 하다.

이성원 / 미국은 전환 치료가 금지된 주도 많고 하니 성소수자 혐오가 끝났을 거라 생각하는데, 사실 미국도 여전히 갈등이 많다. 이 영화에서도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사과하는 전환 치료 가해자들 이야기에 더해, 지금도 그들의 자리를 메우며 전환 치료에 매진하고 있는 사람들을 같이 보여 주지 않나. 그런 걸 보면서 아직 세상이 바뀐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가장 인상 깊게 본 장면을 꼽는다면.

이동윤 / 탈동성애 사역 단체 엑소더스 부대표 존 폴크가 게이 바에 갔다가 성소수자 인권 활동가에게 사진이 찍힌 후, 워싱턴에 있는 또 다른 탈동성애 운동가 이벳 칸투를 만나 나눈 대화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내가 죄를 지었다"거나 "다시 타락했다"고 하지 않고 "우리 운동에 폐를 끼치면 안 되는데"라고 말했다. 이 말 자체가 이 운동의 허점을 드러낸다고 봤다. 탈동성애가 가능하다는 논리를 계속 생산하고 이 운동에 정치적 힘이 실리는 게 중요했지, 정작 탈동성애 여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는 것을 방증하는 장면이라고 본다.

이성원 / 인상적인 부분은 워낙 많은데 두 가지 정도만 꼽자면, 상담 일을 해서 그런지 주인공 중 한 명이 상담받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이벳 칸투는 탈동성애 관련 사역을 앞두고 있으면 불안·공황장애가 온다고 했고, 상담사는 그의 증상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양성애자이면서 그것을 숨기고 전환 치료 사역을 한다는 건, 자신의 한 부분을 숨겨야 하는 일이지 않았을까. 많은 긴장과 자기 검열을 지속하면서 일상을 보냈을 거다. 그가 울면서 이야기하는 장면을 보며 '칸투가 이전부터 본인의 모습대로 살았으면 어땠을까' 안타깝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또 다른 장면은 전직 사역자 마이클 버시가 "동성애 혐오가 존재하는 한 새로운 엑소더스는 또 등장할 것"이라고 한 마지막 부분이다. 이는 전근넷을 시작할 때 논의하던 지점과 맞닿아 있기도 하다. 활동 방향을 의논할 때 전환 치료에 앞장서는 어느 한 단체가 없어진다고 해서 끝날 운동이 아니라는 데 다들 동의했다. 한국 사회에 깊게 스며든 성소수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이상, 자신의 성적 지향을 바꾸고 싶어하는 사람은 계속 생겨날 것이고, 이들을 위해 전환 치료를 시행하는 단체는 계속 나올 것이라고 이야기 나눈 적이 있다. 그 이야기를 직접 활동한 사람에게 들으니 '이 혐오는 정말 뿌리가 깊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성애'가 정신질환 목록에서 빠진 지 오래지만, 미국에는 여전히 동성애를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하는 개신교 단체들이 많다. '프레이 어웨이' 영상 갈무리
'동성애'가 정신질환 목록에서 빠진 지 오래지만, 미국에는 여전히 동성애를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하는 개신교 단체들이 많다. '프레이 어웨이' 영상 갈무리

- 영화에서는 지금 활동하는 '새로운 엑소더스'를 보여 주기도 한다. 트랜스젠더로 살다가 "예수님을 통해 바뀌었다"며 탈동성애 운동에 앞장서는 제프리 매콜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

이동윤 / 그 사람의 선택이라면 일단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매콜이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됐는지 나름 생각해 봤다. 사실 퀴어 커뮤니티는 워낙 생존하기 힘든 곳이다. 특히 트랜스젠더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데는 더 큰 한계가 존재했을 것이고, 어려움이 닥쳐왔을 때 '그래도 나는 내 모습대로 살아가겠다'는 용기와 자신감을 갖기 힘들었을 수 있다. 매콜이 교회 공동체로 돌아가 안정감을 얻게 된 과정, 그게 정답이라고 읊고 다니는 모습이 한편으로는 이해가 갔다. 그가 원했던 건 자신이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커뮤니티 아니었을까.

영화에도 소속감에 대한 이야기가 잠깐 나온다. 성소수자 크리스천들이 엑소더스가 주최한 캠프에서 오히려 안정감을 느낀다는 거다. 자신의 성적 지향을 바꾸기 위해 캠프에 참석했지만, 같은 사람들이 있는 안전지대이기 때문에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고 했다. 어쩌면 기독교 문화가 이를 이용해 전환 치료로 이끄는 수단으로 만들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교회 공동체는 돌봄에 능하다. 괴로워하는 이에게 '당신이 변할 수 있다는 걸 인정하면 우리가 케어해 줄게'라고 손을 내밀지 않나. 그 과정에서 소속감·안정감을 느끼고, 사랑받고 있다는 경험을 하게 된다면 사람에 따라 자신의 정체성을 무시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이성원 / 이런 맥락에서 전환 치료를 한다는 개신교인들의 행동이 좀 비열하고 폭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성소수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살아간다 해도 사회의 혐오·폭력과 마주하면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러면 '내가 과연 이렇게 살 수 있을까', '나를 드러내도 안전할까' 다시 갈등에 빠진다. 나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정체성을 계속 고수하거나 약한 부분을 드러내기 어렵다. 그런 취약한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으니 결국 내가 믿을 수 있는 공동체 혹은 커뮤니티 안에서만 안심하고 진짜 나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의 다양한 퀴어 커뮤니티에서는 자신의 취약한 부분을 드러내기 힘든 경우가 많다. 일단 커뮤니티에 진입하기까지 심리적 장벽이 높다. 아직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커뮤니티에 발을 들이면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것 아닌가' 걱정하기도 한다. 또 커뮤니티는 이미 정체성을 확립한 사람들만 가야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고도 한다. 이런 많은 생각이 스치는데도 어디 가서 속 시원히 이야기할 곳이 없다. 전환 치료를 하는 교회·단체는 어떤가. 아직 정체성을 고민 중이라고 하는 이들이 솔직한 고민을 털어놓을 커뮤니티가 되는 셈이다. 전환 치료는 가장 취약한 상황에 있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상담 가이드라인에도 전환 치료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누군가 전환 치료에 대해 문의하면 팩트를 알려 주게 돼 있다. 성적 지향은 질병이 아니라거나, 전환 치료로 발생하는 부정적 결과를 알려 주면서 탈동성애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까지 설명한다. 다만 우리는 그 일을 할 수 없다고 한다. 상담사는 내담자가 왜 탈동성애를 원하는지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이유에는 위에서 설명한 대로 소속감 부재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엮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성소수자 커뮤니티 내에서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 전환 치료 같은 것에 노출될 수밖에 없고, 그에 의지하게 되는 부분이 분명 있는 것이다.

이동윤 평론가는 영화 속에서 탈동성애 했다는 사람들의 행복한 얼굴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이동윤 평론가는 영화 속에서 탈동성애 했다는 사람들의 행복한 얼굴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 유독 기독교 공동체에서 전환 치료의 '성공 사례'가 많이 등장하는 이유는 뭘까.

이동윤 / 개신교에는 신앙이 주는 '죄의식'이라는 특수성이 있는 것 같다. '나를 주관하시며 내가 전적으로 신뢰하는 절대자가 내 정체성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이걸 죄라고 하시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너무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개신교인 정체성이 강한 사람이면서 동성애에 대한 입장이 확고하게 정립되지 않은 사람이라면, 자신의 신앙 공동체에서 "그거 죄야, 바꿔야 해"라고 했을 때 흔들리지 않을 수 없을 거다.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니야, 그럼에도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셔'라는 믿음이 없다면 결국 "저는 죄인입니다"라고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이성원 / 이야기하기가 조심스럽기는 한데, 상담할 때 종교적 정체성에 발달 과정이 있다고 얘기한다. 자신의 종교적 정체성을 삶에 통합해 나가는 방식을 일컫는 말인데, 많은 교회와 교인들은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낮은 수준이라는 건 룰과 규범을 중시하는 차원에만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사랑·용서 등 종교가 추구하는 여러 보편 가치가 있을 텐데, 규범만 너무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한다.

크리스천 내담자들을 만나면, 기독교가 마치 율법만 중시하던 '공포의 종교'와 예수님의 구원을 말하는 '사랑의 종교'로 나뉜 것 같다. 한국 개신교인들에게는 보편적으로 이 '공포의 종교'가 너무 뿌리 깊다. 공포가 극대화된 나머지 기도로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것 자체를 무서워하는 분들이 많다. 자신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버림받았고, 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서사가 너무 많다.

- 영화에서는 탈동성애 단체들의 다양한 사역을 '전환 치료'라고 불렀다. 한국에도 이런 일을 하는 개신교인들이 있는데, 종교의 힘으로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치료'가 아닌 '치유'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성원 / 사실 한국 상황에서 '전환 치료'라는 용어는 대부분 종교 단체의 활동이 이슈가 되면서 알려졌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쪽에서 아무리 아니라 해도 전환 치료라고 하면 종교계를 먼저 떠올릴 것 같다. 전환 치료가 꼭 의학적·심리적 개입만 뜻하는 건 아니다. 전환 치료는 스펙트럼이 상당히 넓다. 예전에는 동성애 즉 성적 지향만을 이야기했다면 지금은 성별 정체성까지 바꿀 수 있다는 이론·모델을 포괄한다. 그것이 기도가 됐든 성경 공부가 됐든, 정체성을 바꾸려는 모든 시도를 전환 치료라고 부르는 것이다.

전환 치료 방식이 다 다르기 때문에 대응이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공통점은 전환 치료가 자신의 한 부분을 부정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자신의 일부를 인정할 수 없게 막고 자아를 분열시키기 때문에 전환 치료의 폐해는 클 수밖에 없다.

엑소더스 컨퍼런스 참석자들은 같은 생각을 지닌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에 좋다고 했다. '프레이 어웨이' 영상 갈무리
엑소더스 컨퍼런스 참석자들은 같은 생각을 지닌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에 좋다고 했다. '프레이 어웨이' 영상 갈무리

- 탈동성애자들의 간증을 들으면 "성소수자로 살던 과거에는 힘들었는데, 거기서 벗어나니 너무 행복하다"는 메시지가 주를 이룬다. 이들의 행복감을 거짓이라고만 볼 수는 없지 않을까.

이동윤 / 로뎀나무그늘교회에 왔던 사람 중에 '번개(일회성 만남)'에 중독됐다고 표현한 친구가 있었다. 그런데 번개를 많이 하는 자신의 행동에 너무 죄책감을 느꼈고 결국 탈동성애 사역을 하는 사람에게 갔다. 중독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너무 행복하다고 말하는 영상을 봤는데 좀 씁쓸하더라.

그 친구가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그 친구가 느끼는 행복감은 판타지 세계에 들어갔을 때의 환희라고 생각한다. 그 친구에게 번개는 중독이며 죄의 영역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유혹을 이기지 못해 죄를 범하고 다시 괴로워하고.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너무 괴롭고 힘든데, 여기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는 어떤 가능성을 만난다면 그게 전부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순간이 있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그 친구가 한편으로는 이해가 간다. "이건 죄니까 하지 마"라고 하는 누군가의 분명한 선언을 믿고 벗어나는 것처럼 느끼는 순간의 환희가 분명히 있었을 거다. 그렇기 때문에 인터뷰하며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이 너무 이해가 간다.

이성원 / 솔직히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이런 사례를 마주하게 되면 활동가들은 어떻게 다뤄야 할지 당황하는 것 같기도 하고, 힘들어서 언급하는 것 자체를 꺼리는 것 같다. 상담사 중에도 성소수자 당사자로서 이론적으로는 다 알고 있지만 스스로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를 바꾸기 위해 다른 상담을 받으러 다니면서 오랜 기간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친다. 성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혐오의 시선은, 상담하는 사람조차 자신의 정체성을 중독이나 충동으로 볼 만큼 뿌리 깊다. 특정 행동을 통해 이런 상황을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면, 그리고 정말 그렇게 믿고 있다면 그 순간 분명한 해방감을 느끼지 않을까. "나는 더 이상 성소수자가 아니야"라고 말함으로써 자유로워졌다고 느끼게 되면, 더더욱 정상성의 세계에 안착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 것이다.

- 정상성을 강조하는 사회일수록 이런 사람들이 계속 생겨날 수밖에 없다는 말처럼 들린다.

이동윤 / 한 발 떨어져서 보면 혐오와 차별을 양산하고, 이를 반복·재생산하는 시스템이 문제라는 걸 안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스템을 붕괴시키는 길밖에 없다. 그런데 이건 불가능에 가까운 미션이다. 영화에서 혐오가 있는 한 전환 치료는 계속될 거라는 말이 절망적으로 들렸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불가능에 맞서 싸워야겠다고 다짐할 수는 있다. 하지만 모든 성소수자가 그런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같은 마음이 드는 건 아니다. 다 함께 싸우자고 강요하거나, 당신도 희생해서 시스템을 무너뜨려야 변화가 온다고 할 수 없는 거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그 시스템 내에 있는 소수자들, 그 안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 이들을 더 관심 갖고 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화에 나온 제프리 매콜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순간들이 온다. 저쪽에 있는 사람, 이쪽에 있는 사람 이런 식으로 흑과 백을 선명하게 구별한다. 눈물 흘리며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는 전직 탈동성애 사역자들이 더 선하고, 여전히 그 운동을 펼치고 있는 매콜은 악한 것 같지만, 그렇게만 볼 수는 없는 문제 같다. 고통의 언어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기 나름대로 몸부림치고 있는 사람에게 더 관심을 갖고 이를 어떻게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인가 이야기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이건 어려운 문제니까.

그런 면에서 이 영화가 재밌었던 지점은 여전히 탈동성애 운동을 하는 이들을 터부시하지 않는 카메라의 시선이었다. 그들이 마지막에 행진하면서 모였을 때 정말 행복해 보인다. 한국 반동성애 운동가들의 찡그리거나 뭔가에 홀린 표정이 아니라, 그들은 그 순간만큼은 천국이라 느낄 정도로 순수하게 행복해 한다. 그걸 터부시할 게 아니라, 이 현상을 어떻게 볼 것인지 다시 질문해야 한다.

이성원 상담사는 주로 '소수자 스트레스'를 연구하며, 성소수자 정체성과 관련한 상담도 한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이성원 상담사는 주로 '소수자 스트레스'를 연구하며, 성소수자 정체성과 관련한 상담도 한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이성원 / 성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폭력이 없는 사회라면 살면서 누구나 자신이 성소수자인지 아닌지 고민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고민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교회는 말할 것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성소수자들이 온전하게 본인 이야기를 하고, 편안하게 있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데, 그런 공간이 없다. 그러면 이들이 느끼는 감정은 당연히 '성소수자가 아니고 싶다'일 수밖에 없고, '성 정체성을 바꿀 수 있다'고 하는 말에 끌리게 되는 것이다.

-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상황이 반복될 거라고 보는지.

이동윤 / 젊은 세대 인식은 상당히 바뀌었다고 본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다만 기존과 다른 목소리가 하나로 모이지 않고, 산발적으로 나오기 때문에 힘이 실리지 않는다. 무시되고 없는 의견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그 목소리가 아예 사라지는 건 아니다. 소셜미디어든 어디서든 계속 올라오고 있다. 최근 도쿄 올림픽에서 '페미니스트' 논쟁이 있을 때 "언론은 바뀌지 않았는데 대중은 바뀌었다"는 기사를 봤다. 언론은 고리타분한 방식으로 젠더 이슈를 다뤘는데, 대중이 언론의 문제를 지적해서 역으로 언론이 이 현상을 분석하는 기사였다.

이렇게 문제의식을 느낀 사람들은 더 이상 침묵하지 않고 어떤 식으로든 발화한다. 이 발화가 주류의 목소리로 인정되지 않았을 뿐이지 변화는 이미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개신교 내에서도 동성애 문제뿐만 아니라 교회의 성차별 문제를 계속 가시화하려는 <뉴스앤조이> 같은 곳도 있고, 이를 본 여성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문제를 참지 않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상황에 좀 기대를 걸고 있다.

이성원 / 2021년 한국 사회에서 이런 현상을 여기저기서 많이 볼 수 있다. 한 분야에서 두 영역으로 나뉜다. 고리타분한 주장을 하는 이들이 있고, 변화를 수용하는 젊은 세대가 있는데 그 사이에 벽이 존재한다. 교회도 마찬가지 아닌가. 교인들이 다 목사의 생각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걸 안 드러낸다. 아니 드러낼 수가 없다. 교회도 학회도 사회도 견고해 보이는 이 벽을 무너뜨리는 계기가 당장 생기지 않는 이상, 어떻게 서로 소통할 수 있게 할 것인지가 앞으로의 과제일 것 같다.

예를 들면 상담학계 쪽은 그동안 사회문제에 전문가들이 개입하고 목소리 내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세월호가 하나의 기점이 되어 학계 차원에서 사회참여적인 것이 필요하지 않은가 하는 내부의 각성이 있었다. 젊은 연구자들이 중심이 되어 학계 윤리 강령을 개정하고 성소수자 관련해 언급하는 일이 증가하고 있다. 권력 구조의 가장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활발히 움직이는데, 이들의 움직임을 반영할 상부구조는 없다. 구조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 움직임을 주도하는 이들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조직화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

영화 '프레이 어웨이'에는 유사 심리학을 이용해 전환 치료하는 이들도 등장한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영화 '프레이 어웨이'에는 유사 심리학을 이용해 전환 치료하는 이들도 등장한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이동윤 / 2021 디아스포라영화제에서 '큐어드: 질병에서 자긍심으로'(2020)라는 영화를 상영했다. 1973년 미국정신의학회가 '정신 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 질병 항목에서 '동성애'를 삭제하게 된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이런 영화를 함께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공론의 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개봉한 성소수자부모모임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너에게 가는 길'(2021)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영화가 각 지역에서 개봉했을 경우 그 지역에 사는 당사자들이 영화를 보러 갔을 때 자긍심·확신을 얻고, 용기 낼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진다. 영화 상영 후 성소수자부모모임에서 대화 모임 같은 걸 진행할 텐데, 그때 성소수자 당사자가 그 부모들과의 만남을 통해 얻는 긍정적 효과도 분명히 있다. 그게 영화가 주는 힘이고 이것이 문화 운동의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교회는 반동성애 활동가들에게 발화 장소를 제공했고, 운동의 시작점이고 뿌리다. 그렇다면 우리는 '프레이 어웨이'나 '큐어드' 같은 영화라는 매개체를 통해 발화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

- 사랑을 외치는 이들이 모인 교회가 혐오 표현이 오가는 장이 돼 버린 반면, 경계 없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교회에 설 자리는 없다는 게 안타깝게 느껴진다.

이동윤 / 제도로서 종교는 무너지고 있지만, 종교가 추구하는 가치는 더 보편화되고 있다. 사랑, 인권, 타인에 대한 존중 의식 등의 중요성은 높아지고 있다. 교인끼리 모여서 교회 가고, 헌금 많이 해서 교회 건축하는 것보다, 성서가 말하는 가치를 어떻게 삶에서 실천하는지가 더 중요한 시대가 온 거다. 기독교인들도 여기에 더 초점을 맞추고 교회 생활도 변화해야 하지 않을까.

로뎀나무그늘교회에서 교인들과 이런 얘기를 한 적 있다. 기독교는 사실 우리에게 너무 많은 상처를 줬다. 여전히 죄책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이도 있고, 아무리 몸부림쳐도 불가능하다 생각 들 정도로 죄의식이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기도 하다. 이처럼 우리에게 엄청난 폭력을 행사한 기독교인데, 그런데도 우리는 왜 이 종교를 버리지 못하고 떠나지 못하고 있는가. 답은 각자가 경험한 하나님이라는 존재 때문이다. 하나님이 나에게 준 위로와 위안, 그 체험이 너무 절대적이다. 그게 있는 이상은 기독교에서 어떤 폭력을 행사한다 해도 결국 지금의 제도 종교가 바뀔 전환점이 올 거라고 생각한다. 코로나19로 이미 어느 정도 목격하고 있지 않나.

이성원 / 교회도 변화하지 않으면 그 역할을 누군가에게는 빼앗기는 시점이 올 거라고 생각한다.

-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이들에게 이 영화의 어떤 점을 주목하라고 하고 싶은가.

이동윤 / 트랜스젠더 여성이었다가 돌아왔다고 하는 제프리 매콜에게 더 주목해 달라고 얘기하고 싶다. 아까 이야기했던 것처럼 선을 그어서 '저 사람은 잘못된 생각하고 있어'라고 쉽게 단죄할 수 없다. 그리고 그들이 모였을 때 보여 준 환한 미소가 어떤 의미인지, 그 미소가 지속되기 위해 우리는 뭘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계기로 삼으면 좋겠다.

이성원 / 성소수자이든 아니든 우리는 차별과 폭력에 노출돼 있고, 자신의 정체성이 끊임없이 도전받는다. 이런 사회에서 자신을 어떻게 지킬지 고민하고,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는 건 결국 본인에게 돌아오는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걸 직시하게 만드는 영화다. 성소수자만을 위한 게 아니라, 성소수자이든 아니든 구조적인 문제를 생각하면서 자신의 행복 혹은 정체성에 대한 의심이 든다면 그걸 보려는 시도를 계속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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