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가 옳으냐 그르냐 문제를 떠나 기본적으로 누군가를 전환하겠다는 것은 잘못된 상담 접근이다. 상담의 기본 원칙은 현재 그 사람 모습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다."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정푸름 교수(크리스챤치유상담대학원대학교)는 2월 25일 연세대학교 백양관에서 열린 '성소수자 상담 경험 실태 조사 결과 보고회'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

결과 보고회는 전환치료근절운동네트워크(전근넷)가 마련한 자리로, 제9회 성소수자 인권 포럼 중 한 세션이었다. 전근넷은 지난해 3월, <뉴스앤조이>가 트랜스젠더 연희 씨 사례를 보도한 뒤 '전환 치료'의 문제점을 연구하고 알리기 위해 결성됐다. 최근에는 성소수자 정체성을 바꾸려는 '전환 치료' 혹은 '동성애 치유'가 한국 사회에서 어느 정도로 진행되는지 알아보기 위해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성소수자 1,072명이 이 설문에 답했다. 전체 응답자 중 '전환 치료'를 실제로 겪어 본 적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28명, 비율로 따지면 2.5%였다. 전근넷 관계자는 "현재 전환 치료를 받고 있거나 성 정체성 문제로 여전히 고민하고 있는 사람은 이 설문 조사에 응할 수 없었다. 이미 정체성 고민을 끝냈거나 오래전에 전환 치료를 경험한 사람들만 설문에 응답한는 것이 이 조사가 지닌 한계"라고 설명했다.

2월 25일 연세대학교 백양관에서 열린 '성소수자 상담 경험 실태 조사 결과 보고회'를 가득 메운 참석자들. 뉴스앤조이 이은혜

소수이긴 하지만 이들의 대답에서 눈여겨볼 지점이 있었다. 중복 응답이 가능했던 이 설문에서, 전환 치료 경험자 28명 중 16명이 (심리) 상담가에게, 13명이 종교인에게 받았다고 응답했다. 상담사에게 일대일 개인 상담을 받았다고 한 사람이 23명으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지만, 기도·수련회 등 기독교 의식으로 치료받았다고 응답한 사람도 14명이었다.

전환 치료를 경험한 장소로는 종교 기관이 1등이었다. 응답자 13명은 교회·목회상담소 등에서 전환 치료를 받은 적 있다고 응답했다. 경험자들이 전환 치료를 결심한 이유는 △가족의 강요 △이성애자로 살아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 △다른 사람들처럼 '정상'이라고 느끼고 싶은 욕구 △종교인의 강요 △신에게 비난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 순이었다.

'성소수자'라는 말에
무턱대고 바꾸려는 시도
제대로 된 상담 아냐

정푸름 교수는 기독교 상담가 자격으로 참석했다. 정 교수는 자신의 입장도 기독교 상담계에서 소수에 속한다며 발표를 시작했다. 그는 지난해 연희 씨(가명) 사례부터 언급했다. 정 교수는 진주 사랑의교회가 보여 준 방식은 잘못된 치유 상담의 전형적인 예라고 했다. '안찰'을 빌미로 때리는 것은 폭력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했다.

정푸름 교수는 기독교적인 색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이 기독교 상담은 아니라고 했다. 기독교 상담은 기도로 시작하고 상담 중 말씀 한 구절 인용하는 기법 같은 게 아니라고 했다. 그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에 대해 상담자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기독교 상담가는 자신의 신앙관을 어떻게 상담에 드러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푸름 교수(크리스챤치유상담대학원대학교)는 동성애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기독교 상담가라면 다른 상담가에게 위탁하는 것이 상담 윤리에 맞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한국교회 전반적인 분위기는 '동성애 반대'다. 기독교 관련 단체에서 '동성애 치유' 혹은 일반 상담을 진행하는 곳도 많다. 정 교수는 기본적으로 성소수자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없다면, 차라리 다른 곳에 위탁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신학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죄성의 문제라 생각하는 기독교 상담가는 성소수자 상담이 힘들 것 같다. 상담 윤리는 자기 전문 분야가 아니거나 자기 뜻대로 할 수 없으면 다른 상담가에게 위탁하라고 말하고 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문제들은 전문 상담가를 찾아서 그들에게 보내야 한다."

동성애를 '치유'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기독교 상담가도 있다. 하지만 정푸름 교수는 "동성애가 옳으냐 그르냐 문제를 떠나 기본적으로 누군가를 전환하겠다는 것은 잘못된 상담 접근이다. 상담의 기본은 현재 그 사람 모습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내담자가 말하는 게 다 옳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담자의 모습을 그대로 수용해야만 그 사람이 진정한 자기 자신과 맞닿아서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 강화된다. 무언가를 결정해 주지 않는 것이 상담자의 원칙"이라고 했다.

성소수자 상담은 기독교 상담가들의 전문 분야가 아니다. 기독교가 성소수자를 언급하기 시작한 것도 몇 년 전부터다. 그럼에도 '전문가'를 자처하는 이들이 등장했다. 정푸름 교수는 자신도 성소수자 내담자를 만나면 이성애자 상담가로서 얼마나 무지한지 깜짝 놀란다고 했다. 그는 상담가라 하더라도 "미안하다, 정말 잘 모르겠다. 알려 달라"는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보고회에서 발표를 맡은 별의별상담소 미묘 활동가는 성소수자 본인이 원해서 전환 치료를 요청할 수도 있다고 했다. 조사 결과에서는 주변인들의 권유로 '전환 치유'에 나선 경우가 많지만 당사자가 성 정체성을 바꾸기 원해 상담을 요청하는 경우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상담가라면 내담자가 원하는 욕구를 듣고 바로 실행하는 게 아니라, 한 번 더 생각하게 하는 단계를 거치면 좋겠다고 했다. 상담을 원하는 사람들은 내담자가 왜 본인의 성 정체성을 바꾸려고 하는지, 살기 힘들어서 그런 건지, 본인을 수용할 수 없어 그런 것인지 먼저 탐색해야 하는데 그런 순서 없이 바로 진행하면 안 된다고 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