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원하는 것을 행하고 있다 믿었어요." - 마이클 버시(Michael Bussee), 엑소더스 공동 창립자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넷플릭스를 통해 8월 3일 전 세계에 공개된 다큐멘터리 '프레이 어웨이(Pray Away)'에는 '전직' 탈동성애 사역자들이 등장한다. 미국에서 가장 큰 탈동성애 단체였던 엑소더스인터내셔널(Exodus International·엑소더스)에서 활동한 '탈동성애 사역'의 전 리더들은 사역할 당시에는 자신들도 동성애자였으나 강력한 신앙의 힘으로 변화했다고 주장했다.

엑소더스는 1973년 설립돼 미국 전역에서 대규모 탈동성애 사역을 펼쳤다. 하지만 39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 자신들이 해 온 개신교식 '전환 치료(conversion therapy)'가 오히려 성소수자의 삶을 짓밟았다며 사역의 실패를 인정하고 2013년 컨퍼런스를 끝으로 문을 닫았다.

단체가 해체된 후, 엑소더스에서 활동했던 이들은 공식 사과 편지를 쓰는 등 여러 경로를 통해 성소수자 공동체에 사과의 뜻을 전했다. '프레이 어웨이'를 제작한 크리스틴 스톨라스키(Kristine Stolaski)는 주요 활동가 다섯 명과 심도 있는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과거 활동 및 현재의 모습을 교차적으로 보여 주면서 개신교 전환 치료의 허구성·위험성을 드러낸다.

'프레이 어웨이'는 8월 3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됐다.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프레이 어웨이'는 8월 3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됐다.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엑소더스의 얼굴'로 불린 존 폴크(John Paulk)는 '한때' 동성애자였으나 엑소더스에서 만난 '전직' 레즈비언과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아이도 둘이나 낳았다. 전환 치료의 성공 케이스인 그는 온갖 방송에 불려 다니며 확신에 찬 탈동성애자로서의 삶을 살았다. 부회장·이사장을 맡으며 단체의 핵심 인사로 거듭났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공허함이 커졌고, 술에 빠져 지냈다. 술에 취한 채 게이 바(gay bar)에 들렀다가 인권 운동가에게 포착돼 엑소더스에서 퇴출됐다.

"(남성에 끌리는 감정이) 왜 사라지지 않는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해야 사라질지도 모르겠고, 갈수록 심해졌어요. 나이가 들수록 심해졌죠. 저를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들에게 둘러싸여 살고 있는데도 너무나 외로웠어요. 그때 전 남자와 사랑을 주고받고 싶어 괴로워했죠. 괴롭다 못해 어느 정도였냐면, 이 모든 것의 원인이 뭐든 간에 상관없을 지경이었어요. 옳고 그름, 성경 말씀 다 상관이 없었죠. 내가 진정 누구인지 알아낼 여정을 떠나지 않으면 자살할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자살하리라 확신했죠."

폴크는 이 사건 이후 아내와 이혼했다. 현재 그는 한 남성과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 인터뷰를 이어 가는 그의 표정에는 과거처럼 확신에 찬 자신감 대신 지나간 삶에 대한 슬픔·분노·후회·안타까움 등이 서렸다. "하루라도 솔직하게 살아 본 적이 없어요. 거짓말에, 거짓말에, 거짓말에, 거짓말에…." 그는 자신의 거짓된 삶이 다른 성소수자들을 억압했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며 눈물을 흘렸다.

줄리 로저스(Julie Rodgers)는 엑소더스에서 전환 치료를 경험한 사람 중 비교적 젊은 축에 속한다. 그는 엑소더스가 해체할 때까지 함께했다. 근본주의 개신교를 믿는 가정환경에서 자란 로저스는 17살 때 엄마에게 커밍아웃했고, 엄마는 그를 개신교 전환 치료 단체 '리빙 호프(Living Hope)'로 이끌었다. 리빙 호프에서 활동하던 로저스는 범위를 넓혀 엑소더스 전국 컨퍼런스에 강사로까지 서게 된다.

그 역시 탈동성애 사역에 가담하면서도 자신의 성적 지향을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탈동성애 사역에 빠질수록 자신을 학대하는 횟수·수위가 높아졌다고 고백했다. 결국 로저스는 최종적으로 실패를 인정하고 2014년 탈동성애 사역을 떠났다. 이후 작가·강연자로 활동하고 있다.

한 가지 재밌는 지점은, 로저스가 탈동성애 사역을 떠난 직후 한 인터뷰에서 "기독교인 동성애자는 독신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는 상대적으로 '온건한' 복음주의자들이 동성에게 성적으로 끌리는 것 자체는 죄가 아니지만, 동성 간 성행위는 죄이기 때문에 독신으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로저스는 독신으로 살게 됐을까. 다큐멘터리에는 그가 평생을 함께할 여성을 만나 교회에서 수많은 사람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하는 장면이 나온다.

존 폴크(왼쪽)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프레이 어웨이 영상 갈무리
존 폴크(왼쪽)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프레이 어웨이 영상 갈무리

'프레이 어웨이'에 등장한 이들은 과거 각종 혐오 발언을 쏟으며 반동성애 운동을 전개했다. 이는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반동성애 운동과 큰 차이가 없다. 예를 들어, 반동성애 진영은 동성애를 인정할 경우 소아 성애와 수간까지 허용하게 된다고 극단적인 주장을 펼치는데, 수십 년 전 엑소더스 멤버들도 그러했다.

과거 폴크가 방송에서 한 말을 보자. "이성애자를 동성애자로 만들 수 없는 것처럼 동성애자도 이성애자로 '변화'시킬 수 없다"는 한 성직자의 말에, 폴크는 "아동 성추행범이나 가정 폭력범이 변할 수 없다는 말과 같지 않느냐"고 극단적으로 비교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동성 결혼 합법화 논란이 한창인 당시 엑소더스 활동가였던 이벳 칸투(Yvette Cantu)는 캘리포니아주 교회들에 생중계되는 토론회에서 "만약 성 지향성이나 성적 취향이 결혼의 근거라면 소아 성애자들도 6~8세 아이들과 결혼해도 된다는 이야기잖아요. 어머니와 아들이 그렇고 형제자매도 마찬가지죠"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중에 칸투는 이러한 발언이 전형적으로 사람들의 공포심을 자극하는, 아무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이실직고했다. 칸투는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과거를 회상하며 "(당시) 내 주장 대부분은 소위 눈사태 논리였어요. '여자끼리, 남자끼리도 결혼할 수 있다면 나중엔 어떻게 되겠느냐'는 거죠. (소아 성애, 어머니와 아들 등을 언급한 것은) 사람들이 품은 공포를 건드리는 주장이었죠"라고 말했다.

엑소더스는 2013년 컨퍼런스에서 전환 치료 사역 실패를 인정하고 해체를 발표했다. 프레이 어웨이 영상 갈무리
엑소더스는 2013년 컨퍼런스에서 전환 치료 사역 실패를 인정하고 해체를 발표했다. 프레이 어웨이 영상 갈무리

인터뷰에 응한 전직 사역자들은 모두 자신들의 과거가 성소수자 삶에 악영향을 미쳤다고 인정했다. 사람의 성적 지향을 전환 치료로 바꿀 수 없으며, 자신들이 잘못 판단했고, 탈동성애 사역으로 삶의 이유를 잃은 사람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엑소더스는 해체했지만, 안타깝게도 유사한 단체들이 생겨나 여전히 탈동성애 사역을 이어 가고 있다. 엑소더스 공동 창립자인 마이클 버시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동성애 혐오가 존재하는 한 새로운 엑소더스는 또 등장할 겁니다. 조직이 문제가 아니거든요. 방식도 문제가 아닙니다. 기저에 있는 믿음이 문제입니다. 게이라는 건 근본적으로 잘못됐으며 바뀌어야 한다는 믿음이죠. 그 믿음이 존재하는 한 이런 일은 또 일어날 겁니다."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한국의 성소수자와 교회를 무대로 활동하는 반동성애 단체들이 오버랩됐다. 분명 존재하는 성소수자 그리스도인들은 교회 안에서 혐오와 차별적인 메시지를 들으며 괴로워하고 있다. 또, 자의든 타의든 "동성애자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이들을 찾아다니는 경우도 있는데, 결국 변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자학하고, 심한 경우 자살까지 시도한다. 전환 치료를 겪은 성소수자가 그렇지 않은 성소수자보다 자살 시도 확률이 두 배나 높다는 연구 결과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정죄를 바탕으로 "성적 지향은 신앙으로 바꿀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각종 탈동성애 사역을 행하는 이들이 먼저 멈춰야 한다. 이벳 칸투는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이 그랬듯이 저도 진심으로 믿었어요. 제가 하는 일이 진심으로 옳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영혼을 짓밟는 일이에요. 사람들 인생을 짓밟는다고요. 제가 그 일부였다는 사실을 견딜 수가 없어요. 지금 하는 일이 오로지 피해만 끼친다는 걸 공감하고 깨닫게 된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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