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개혁은 하나님도 못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한국교회 상황은 점점 나빠지고 이 흐름을 바꿀 만한 뾰족한 수도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교회 개혁'이라는 거대 담론으로 접근하기보다 교회가 바꿔 나가야 할 것 하나하나에 집중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교계에는 젊은이들의 목소리, 특히 여성들의 목소리가 별로 들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들이 외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아서겠지요. <뉴스앤조이>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여성 신학생·사역자들의 인터뷰를 연재합니다. - 기자 주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인생과 신앙의 '정답'을 알고 있다고 굳게 믿던 때가 있었다. 착각의 결과는 배타적인 태도로 나타났다. 소극적으로는 나와 다른 답을 가진 사람과는 함께 갈 수 없다고 생각했고, 적극적으로는 그런 사람들을 정죄했다. 가장 열려 있고 다양한 것을 배웠어야 할 20대 중·후반에 그랬으니, 부끄럽고 미안하고 후회스러운 일이다. 내가 살아온 모든 시간이 나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으나, 다시 생각해도 흑역사요 자다가 생각나면 '이불킥' 할 일이다.

그런데 이 사람을 인터뷰해 보니 나보다 더 심했던 것 같아 이상한 위로가 된다(?). 유튜브 채널 '구 신학생'을 운영하는 이구신(26·활동명)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여름 수련회를 4번이나 참석한 끝에 '불'을 받고 신학교 진학을 결심했다. 하나님을 더 알고 싶고 전하고 싶다는 순수한 갈망이었는데, 당시 그의 신앙 상태가 어땠는지는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다. ①4번 참석한 수련회 중에는 에스더기도운동본부의 '지저스 아미'도 있었다 ②베리칩을 믿었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수련회 4번 가서 소명 받음….
수련회 4번 가서 소명 받음….

"20대 초반까지도 진지했어요. '사람들은 왜 베리칩을 안 믿을까. 왜 휴거를 안 믿을까. 이 마지막 때에 다들 너무 한가한 생각을 하고 있네'라고 생각했죠. 제가 어느 정도였냐면, 교회 안 다니는 친구에게도 이렇게 말했어요. '교회 안 다니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베리칩은 절대 받으면 안 돼. 나중에 이마랑 팔에 뭘 받으라고 할 거거든? 그게 666이야. 그건 절대 안 된다!' 나중에 들었는데, 그때 그 친구가 저랑 관계 끊으려고 각 재고 있었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제가 대학 때 별명이 '박리새인'이었어요(이구신의 본명이 박 씨다 –기자 주). 저는 기독교교육학과에 입학해 신학을 복수 전공했는데요. 처음에는 기독교교육학과 친구들보다 신학과 친구들하고 더 어울리려 했어요. 기독교교육학과 친구들은 대화 내용에 하나님 비중이 별로 없는, 뭔가 '거룩한 열심'이 떨어지는 느낌?(웃음) 대화하다가도 제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면 '잠깐, 그건 성경적으로 틀린 거 같은데?'라고 태클을 걸었죠."

2014년 아신대학교에 입학해 신학을 체계적으로 배우면서 잘못된 신앙이 조금씩 바로잡혀 갔다. 신학교에 다닌 4년 내내 그의 신앙과 사고방식은 뿌리부터 흔들렸다. 일례로 박근혜와 문재인이 격돌했던 2012년 12월 대선 때 그는 박근혜를 지지했다. 이유는 "문재인은 빨갱이라던데?"였다. 그랬던 그가 2016년 말 박근혜 탄핵 열풍이 시작됐을 때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촛불 시위에 함께 참여하자고 독려하는 사람이 됐다.

"그때 시위라는 것도 처음 나가 봤거든요. 찾아보니까 '신학생시국연석회의'라는 게 조직돼 있더라고요. 거기서 하는 기도회에 가 봤는데, 저한테는 너무 생소한 거예요. 떼제 찬양은 뭐고 기도할 때 촛불은 왜 드는지. 한편으로 '이런 건 말로만 듣던 에큐메니컬 아닌가. 나는 신학적으로 에큐메니컬과 함께 갈 수 없는데…' 이런 생각을 하면서 시위와 기도회에 참석했어요.(웃음)

 

스물한 살까지 베리칩을 믿었으니 굉장히 근본주의적이었죠. 잘못된 교리에 갇혀서 다른 사람을 판단했고요. 정말 다행인 게 학교에서 좋은 교수님을 많이 만나 이런 생각들을 깰 수 있었어요. '복음주의'를 표방하는 학교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분의 사랑이 어떤 모습인지 은혜와 감격 속에 다녔어요. 대학 다니는 내내 매학기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살았어요.(웃음)"

이구신이 신학대 3학년 때 참석한 2016년 11월 신학생시국연석회의 기도회. 뉴스앤조이 박요셉
이구신이 신학대 3학년 때 참석한 2016년 11월 신학생시국연석회의 기도회. 뉴스앤조이 박요셉
하나님나라는 흔들리지 않는다니까?

신학을 공부하며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당해 본 일은 딱히 없다고 했다. 기독교교육학과는 '여초' 상태였고, '주변인'이 된 남학생들이 오히려 불쌍할 지경이었다. 교회 사역도 나간 적이 없다. 웬일인지 당시 기독교교육학과에서는 사역을 나가지 않는 학생이 훨씬 많았고, 그렇지 않아도 이구신은 인생에서 적잖이 혼란을 겪고 있었던 때라 사역을 나가야겠다는 생각도 별로 들지 않았다.

극단적인 음모론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그의 신앙 베이스는 어쨌든 보수 신학이다. 베리칩과 적그리스도를 주로 이야기하던 모교회는 견디기가 힘들어 떠났고, 이후에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 소속 교회를 '만족하면서' 다녔다. 성경 본문에 충실한 담임목사의 설교가 좋았다. 청년부 담당 목사도 권위 의식 없이 청년들을 대해서 좋았다. 이 정도만 돼도 이구신은 만족할 수 있었다.

"청년부 목사님이 그만두시고 다른 목사님이 오셨는데요. 그분 설교는 듣기가 힘들더라고요. 사람을 은근히 정죄하는 설교였어요.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들어 보면 '다윗은 청년 때 이랬는데, 다니엘은 어렸을 때부터 이랬는데, 나는 여러분 나이 때 이랬는데, 여러분은 지금 이게 뭐냐. 하나님을 정말 믿는다면 그렇게 살 수 있냐'는 내용이었어요. 청년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관심이 있다기보다, 사회에서 소위 '기독교적 가치'가 무너지는 것에 더 신경 쓰는 분이었죠. 숨이 막혀서 나왔어요.

 

지금 교회에 나가지 않은 지 1년 정도 돼 가는데요. 저는 정말 하나님이 좋고 교회에 가고 싶어요. 그런데 '정죄 없는 예배'를 찾기가 어렵더라고요. 저와 같이 아직 교회를 사랑하는 '가나안 성도'들의 욕심은 그리 크지 않아요. '완벽한' 교회를 찾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어느 정도 안 맞고 미성숙한 부분이 있더라도,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마음, 하나님 뜻대로 살아 보려는 마음을 공유할 수 있는 교회면 될 것 같아요. 물론 그러려면 서로 다름을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겠죠."

최근 몇 년 사이 부쩍 늘어난, 어느 정당을 지지하는지, 동성애 혹은 페미니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신앙인과 비신앙인을 나누려는 태도에 문제의식을 느낀다. 그가 근본주의적 신앙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기독교의 본질은 그런 데 있지 않다는 걸 배웠기 때문이다. 그가 이해하는 기독교의 가치는 이웃 사랑, 용서, 관용 등이다. 교회에서 이런 것들을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희 학교도 동성애에 부정적이에요. 그래도 한 교수님께서 '한국교회가 동성애 때문에 망할 것 같으냐. 아니다. 교회 안으로 들어온 세속주의·경쟁주의 때문에 망할 것이다. 교회는 절대 외부 요인으로 망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어요. (동성애 반대 말고도) 교회가 붙잡아야 할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거죠.

 

가끔 보면 동성애나 페미니즘 때문에 금방이라도 교회가 망하고 하나님 이름이 땅에 떨어질 것처럼 구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나라 진동치 않네'라는 찬양을 들려주고 싶어요.(웃음) '하나님의 나라 진동치 않네. 주 하나님 영광 흔들 자 없네.' 하나님나라는 동성애와 페미니즘 때문에 흔들리지 않아요. 하나님나라는 진동치 않을 텐데, 왜들 그렇게 무서워하며 아득바득하는지 모르겠어요."

페미니즘 싫으면 '최수종'처럼 하든지

이구신의 관심은 자신과 같은 보통의 보수적인 한국교회를 경험하고 거기에 실망한 기독교인들이다. 유튜브 콘텐츠도 그런 사람들을 타깃으로 만든다. 영상이 수려하지도, 자주 올라가지도 않는데 '구 신학생' 채널 구독자가 900명이라는 게 그에게는 신기한 일이다. "근데 이런 콘텐츠로 돈은 못 벌어요. 기독교 콘텐츠로 돈 벌려면 '우파 코인' 타는 방법밖에 없어요.(웃음)"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구천을 떠도는 것처럼, 교회를 떠나고서도 유튜브 이 채널 저 채널을 떠도는 사람들이 있어요.(웃음) 몸은 교회에서 떠났지만 마음은 떠나지 못한 사람들이죠. 진보적인 분들은 이미 자유하기 때문에 떠돌지 않아요.(웃음) 저는 떠도는 분들과 소통·공감하고 싶어요. 저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그런 분들 보면 안쓰러워요. 그들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당신만 그런 고민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려 주고 싶어요."

하나님과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실망하게 한 모습들이 있다. 특히 이구신은 여성으로서 성폭력에 너무나도 관대한 한국교회에 분노한다. 그는 유튜브에서 N번방 사건과 교회 성폭력을 다룬 적도 있다. 이런 상태라면 여성들이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여성 전용 교회'가 생겨도 이상하지 않다고, 변화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교단의 교회들을 '보이콧'하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몇 달 전 교회 내 성폭력을 다룬 온라인 전시회 '처치투 잇다 있다'를 보고 너무 화가 났어요. 교회 안에서 성범죄가 반복된다는 건, 지도자들이 성범죄를 대단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여전히 일부의 일탈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사회에서는 성범죄 형량이 너무 낮다는 문제 제기가 있는데, 교단들은 형량이 낮은 건 둘째 치고 아예 치리 자체를 하지 않는 경우도 있잖아요. 이런 교단들을 전부 보이콧하자면, 벌써 여기도 안 되고 저기도 안 돼요. 갈 데가 없어요."

딱히 페미니즘을 깊이 공부해서 얻은 생각은 아니다. 페미니즘은 이구신에게도 어려운 주제다. 전반적인 내용에는 동의하지만, 페미니즘의 다양한 스펙트럼 속에서 어디쯤 위치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그가 기독교의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하는 용서·관용이 페미니즘과 어떻게 같이 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있다. 친구와 선후배 여성들이 페미니즘을 싫어한다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제 주변에도 페미니즘을 불편해하는 여성들이 있어요. 기본적으로 페미니즘이 갈등을 드러내니까 불편할 테고, 다 남자 탓이라 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그런 것 같아요. 근데 페미니즘을 싫어하면서 동시에 남자도 싫어하더라고요?(웃음) 성희롱·성추행을 직접 당한 경우도 많고요. 어쨌든 사회 분위기에 따라 젊은 여성들은 점점 더 예민해질 거고, 교회 내 차별도 더 많이 발견될 거예요. 그런데 교회는 벌써부터 소위 '성경적 질서'를 사수하기 위해 문제를 제기하는 여성들을 마치 적그리스도인 것처럼 몰고 있어요. '너 혹시… 페미니?' 하면서요."

그가 봤을 때 기독교인들이 페미니즘을 수용하든지 말든지 남성들이 행동을 바꿔야 한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가장 극명한 예가 '결혼'이다. 온라인상에서 잉꼬부부인 유명인들이 회자되며 결혼 생활의 좋은 점이 부각되는 것을 은어로 '결혼 바이럴'이라고 하는데, 그는 이 결혼 바이럴이 교회 안에서 많아지는 것도 일면 긍정적이라고 했다.

"모든 교회가 페미니즘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어떤 교회는 '성경적 질서'를 사수하는 게 중요하겠죠. 그들이 말하는 성경적 질서란, 가장인 남편 뜻에 아내가 복종하는 거잖아요. 단, 남편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엡 5:25)' 해야죠. 우리는 교회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보다 그리스도가 교회를 더 사랑한다는 확신이 있잖아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페미니즘이 싫다면 교회가 '성경적 가정'의 모습을 보여 주면 돼요. 최수종·차인표·션·박지헌처럼 아내를 소중히 하고 가족을 섬기는 남편이 교회 가면 널리고 널렸다고 할 정도가 돼야죠. '교회 다니는 부부는 달라'라고 했을 때, 여성들이 더 할 수 있는 건 많이 없어요. '성경적 아내'들은 이미 열심히 하고 있거든요. 남성들이 '성경적 남편'이 돼야죠. 저야 물론 성경적 아내가 될 생각은 없지만.(웃음)"

'성경적 남편' 되려면 최소 최수종인데….  MBC 라디오스타 갈무리
'성경적 남편' 되려면 최소 최수종인데…. MBC 라디오스타 갈무리
도태될 교회는 빨리 도태돼야

하나님을 알고 싶다는 열정에 불타 신학교에 갔는데, 지금은 일반 회사에 취업한 가나안 성도가 돼 있다. '이구신'이라는 이름 자체도 '이제는 구신학생'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신학교 입학을 결심했을 때와 지금, 인생의 목적은 변하지 않았다. 방법은 180도 바뀌었지만. 목회 생각도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목사'라는 타이틀에는 관심 없다. 마음 맞는 이들과 안전한 교회를 이루고픈 소망은 있다. 영상으로 만들었던 '여성 전용 교회'도 해 보고 싶고, 누군가 한다면 밀어주고 싶다.

화가 나고 안타까운 부분은 기성 교회들이 긍정적으로 변화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떻게 해야 교회가 변할 수 있을까 많이 고민했다. 당회에 청년들을 참여시켜 달라고 할까, 여성 총대 할당제를 하면 될까, 목사들을 재교육하면 될까…. 하지만 '치리'라는 중요한 톱니바퀴가 망가져 있으니, 모든 것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돌아갈 수 없는 느낌이다. 교회 지도자도 범죄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게 구조적으로 자정이 불가능하다면? 역사적으로 그런 일이 반복돼 왔다면?

"다니는 교회에서 문제의식을 느끼고 그곳을 바꾸려 노력하는 건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교회를 나오기 전 몇 년간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시도해 봤어요. 그렇게 버티고 싸우는 게 신앙적으로 성숙해지는 데 도움이 많이 됐고, 주변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기는 했어요.

 

그런데 어떤 의견도 들을 생각이 없는 교회를 바꾸려는 노력은 결국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꼴이 되더라고요. 좋은 교회에 쏟을 에너지도 부족하잖아요, 지금 시대가. 교회가 교회다움을 고민하기를 멈추고 계속해서 개혁하려 하지 않는다면 결과는 도태죠. 그런 교회는 도태돼야 하고 실제로 도태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교계 안에서 보면 교회가 절대 망하지 않을 것 같지만, 사회에서 보면 이미 도태되고 있잖아요.

 

나쁜 교회가 너무 크고 많고 눈에 띄기는 하지만, 교회다움을 고민하는 교회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런 곳이야 말로 정말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섬기고 있겠죠. 도태될 건 빨리 도태되고, 교회다움을 고민하고 살아 내는 교회들이 더 많이 드러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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