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개혁은 하나님도 못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한국교회 상황은 점점 나빠지고 이 흐름을 바꿀 만한 뾰족한 수도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교회 개혁'이라는 거대 담론으로 접근하기보다 교회가 바꿔 나가야 할 것 하나하나에 집중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교계에는 젊은이들의 목소리, 특히 여성들의 목소리가 별로 들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들이 외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아서겠지요. <뉴스앤조이>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여성 신학생·사역자들의 인터뷰를 연재합니다. - 기자 주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내 주변에 있는 '가나안 성도'들은 다들 한때 교회에서 한가락 하는(?) 사람이었다. 주말이면 밤낮없이 교회에서 헌신했던 과거가 있다. 그중에는 신학생도 있고, 신학생보다 더 신학에 심취했던 이도 있다. 그만큼 교회에 애정을 가졌던 사람들이었다. 하긴 그러지 않았다면 교회를 떠난 지금 스스로를 '가나안 신자'라고 할 일도 없을 것이다.

안은영 씨(30·가명)도 그랬다. P신학대학교 기독교교육학과를 졸업했고, 교회 봉사는 물론 학부 졸업반 때는 교회 사역도 했다. 그랬던 그가 졸업 후 선택한 것은 '탈교회'였다. 전공을 살리려면 '기독교 판'에 있어야 할 텐데, 그러고 싶지가 않아 일반 회사에 취업했다. 기독교 신앙을 버리지는 않았지만, 그길로 2년간 교회를 나가지 않았다.

"제가 교회 다니면서 착취를 많이 당했어요.(웃음) 갑자기 토요일에 전화 와서 포스터 만들라고 하면 만들고. 4학년 때는 교회 사역을 나갔는데, 결론은 '이 바닥을 떠야겠다'였어요. 기본적인 노동조건도 갖춰지지 않은 채로, 주 6일 근무에 수요·금요 예배, 새벽 예배 등… 감당을 못 하겠더라고요. 교회에 여성 사역자의 자리도 너무 없는 거예요. 제가 사역했던 교회는 그래도 의식 있는 교회라고 인정받는 곳이었는데도 여성 전임 사역자가 한 명도 없었어요.

 

또 한 가지는 세월호 사건이에요. 신앙의 근간이 흔들리더라고요. 저는 초등학생 때 친구 따라 교회에 처음 갔는데, 그때부터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교회에 다녔거든요. 그렇게 쌓아 온 '신앙'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뿌리부터 흔들렸어요. 당시 교회들 대응을 보면서 실망도 많이 했고요. 전통적인 기성 교회는 못 다니겠더라고요. 그렇다고 아예 문화가 다른 곳도 어색하고요. 뿌리가 바뀌었는데 정착할 곳을 찾지 못한 거죠."

한동안 주일 오전 교회 바깥공기를 마셔 본 적 없는 은영 씨였다. 

한참 고민 중일 때 만난 한 여성 목사의 조언이 힘이 됐다. "주일 오전 10시에 바깥공기를 마셔 보는 것도 좋아요." 은영 씨에게는 이 말이 자신의 존재를 긍정해 주는 것으로 들렸다. "전통적인 시각으로 보면, 교회를 떠나게 한 나쁜 목사라고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저에게는 제 존재를 긍정해 주는 인생의 한마디였어요."

자갈밭길인 줄 알았는데 가시밭길

기독교 신앙을 버린 것은 아니었기에 교회를 떠나 있는 시간이 영원할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교회를 떠난 지 3년째 되는 해, 다른 일을 준비하다가 길이 막혔고 생계 문제로 다시 사역을 시작했다. 한 교회에서 초등학교 5~6학년 아이들을 맡았다. 여자아이가 많았는데,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여성 사역자의 필요성을 느꼈다. '이들이 커서 청년·장년이 됐을 때 여성 사역자가 없다면 어떨까.' 은영 씨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겠다 생각했다. 이듬해 신학대학원에 진학했다.

이미 한번 데어(?) 봤기 때문에 여성 사역자의 길이 어려울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신대원을 2년 반 다닌 지금 드는 생각은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이다. 현실을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사역자의 길로 들어서니 더 심각한 지점들이 보였다. "그래도 자갈밭길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가시밭길이더라고요."(웃음)

"여성 사역자의 자리가 없어도 이 정도로 없을 줄은 몰랐고, 여성 사역자가 교회 안에서 어떤 위치인지도 자세히 몰랐던 거죠. 여성은 목사가 돼도 '며느리' 역할이 주어지더라고요. 교인들이 여성 사역자에게 바라는 건 담임목사 잘 챙기라는 거예요. 리더라기보다는 보조 역할인 거죠. 정말 훌륭하고 저를 정말 좋아해 주시는 여자 집사님이 계셨는데요. 저한테 대놓고 '전도사님, 저는 여자 목사님들은 싫어요. 내 세대는 여성 목사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아요'라고 말하시더라고요.

 

저는 성희롱·성폭력 같은 큰 사건은 겪지 않았는데요. 일상에서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일어나는 차별, 별것 아니지만 매일 내 생활에 쌓여 가는 차별, '먼지 차별'을 많이 겪었어요. 교회나 사역자 세계에서 바라는 여성상은 '엄마' 혹은 '성녀聖女'예요. 언제나 착하고 돌봐 주는 사람이죠. 그런 인식 속에서 자연스럽게 던지는 말들이 있어요. '여성스럽게 입어라', '예쁘게 입어라', '화사하게 입어라' 하는 옷차림 지적은 물론이고 '꽃', 심지어 '기쁨조'라는 말까지도 들어 봤어요."

지상파 뉴스에서도 '먼지 차별'의 심각성을 다루기도 했다. SBS 뉴스 갈무리
지상파 뉴스에서도 '먼지 차별'의 심각성을 다루기도 했다. SBS 뉴스 갈무리

여성에게 고정된 역할이 강요되는 것처럼, 남성 역시 고정된 역할을 강요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교회에서 여성 사역자는 다과 차리기, 데코레이션, 의전 역할이, 남성 사역자에게는 운전, 찬양 인도와 같은 역할이 주어졌다. 각자의 능력이 아니라 성별에 따라 역할이 주어진다는 차원에서 보면 둘 다 같은 차별이지만, 이 차별은 결코 같지 않다.

"여성 사역자가 하는 간식 차리기, 데코레이션, 의전 같은 건 인정을 받지 못해요. 이런 걸 아무리 잘한다고 사역자로서의 역량이 느는 것도 아니고요. 반면, 남성 사역자들은 운전만 해도 '힘든 일 한다'고 인정받죠. 찬양 인도를 하면 사역자로서의 역량이 커지는 거잖아요. 여성 사역자는 몸을 크게 쓰는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오히려 '편하다'는 말을 듣기도 하거든요."

사람을 성별에 따라 다르게 대하는 태도는, 심해지면 여성을 성적인 존재로만 보게 한다. 은영 씨가 어렸을 적 경험했던 남성 사역자들의 행태는 경악할 수준이었다. 그가 청소년일 때, 신학생이었던 20대 초반 남자 교사가 중학생들에게 성적으로 접근한 사건이 벌어졌다. 찬양팀 리더 사역자가 여자아이들을 그루밍하고 추행한 사건도 있었다. 하지만 교회는 한 번도 사건을 공론화하거나 가해자들을 치리하지 않았다. 가해자들은 모두 목사가 되어 지금도 사역하고 있다.

"남성 사역자들이 중·고등학생 아이들을 성적으로 대하는 건 고질적인 문제예요. 여성을 보는 시선 자체가 잘못된 거죠. 물론 이런 예가 극단적이고 좋은 남성 사역자가 많은 것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문제 있는 사람도 생각해 보면 많거든요. 그리고 이런 일부 가해자의 영향력이 크다는 게 문제죠."

존재를 부정해야 획득할 수 있는 '목사'

신대원 졸업을 앞둔 지금, 은영 씨는 다시 한번 갈림길에 섰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차별이 너무 잘 보인다. 맡은 아이들을 잘 양육하는 것 하나만으로도 신경이 많이 쓰이는데, 매일 이런 차별들을 인지하고 감내하고 때로는 싸워 나가야 한다는 현실이 은영 씨를 지치게 한다. 여성 사역자가 많아져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여성 목사의 길을 먼저 간 선배들에게 왠지 빚진 마음도 있다. 하지만 '그 가시밭길을 내가 가야 할까'라는 질문에는 선뜻 답하기가 어렵다.

"노동환경이 너무 안 좋아요. 교회는 여성 사역자가 결혼·출산·육아를 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구조가 아니더라고요.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니고, 베이비시터를 쓸 수 있을 만큼 돈을 많이 주는 것도 아니고. 주변에 보면 정말 능력 있는 언니들이 많거든요. 유학 다녀온 사람도 있고요. 근데 하나같이 파트타임 사역자예요. 이 정도면 구조적인 문제죠. '미래도 어두운데 고생하면서 이 길을 가야 할까, 애정을 가져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이런 현상을 보면서 여성의 존재가 부정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목사가 되는 길이 이렇게 험난하다면, 그건 결국 존재에 대한 부정 아닌가요? 이런 현실을 어떻게 뚫고 가더라도 목사가 되려면 최종적으로 사상 검증을 통과해야 해요. 최근 들어 목사 고시 면접 때 '동성애'에 대한 질문이 많아졌다고 하더라고요. 또 다른 존재를 부정해야 하는 거죠."

부교역자 세계는 여성 문제뿐 아니라 노동 문제도 심각하다. '목회자는 일반 노동자와 다르다'는 말은 자주 착취로 이어진다. 노동법에 적용을 받지 않으니 최저선이라는 게 없다. "최저임금·생활임금에 대한 개념도 없고, 대체 휴무나 연차 개념도 없고, 오로지 담임목사와 장로들의 호의에 기댈 수밖에 없는 거죠. 친구들끼리 모이면 '전도사 노조라도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말이 종종 나와요. 여성에게도 좋은 일자리가 아니고, 일반 노동자의 시각으로 봐도 문제가 많아요."

가시밭길에 우박까지 친다면?
이런 느낌이랄까.
이런 느낌이랄까.

"남편이 사역자라면 가시밭길에 우박도 치는 거죠."(웃음)

안타깝게도(?) 은영 씨가 사랑하고 미래를 함께하고 싶은 사람은 현재 목사다. 이게 왜 안타까운 일이 돼야 하는지 은영 씨는 고민이 많다. 남편이 사역자면 아내는 자연스럽게 '사모' 역할을 강요받는다. 남편 교회 교역자 수련회 때 아내의 참석이 당연시된다. 왜 아내가 남편 직장 워크숍에 따라가야 할까. 아이를 키울 때도 남편이 사역자면 주말에 아이를 봐 줄 수가 없다. 아내도 주말에 사역해야 하는데.

은영 씨는 결혼 생각도 있고 아이를 키우고 싶은 마음도 있다. 남자 친구도 그렇다. 결혼하면 어떻게 살지, 아이는 어떻게 키울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만 현실은 전혀 장밋빛이 아니다. 결혼, 그래 뭐 하면 하는 거고, 사모 역할도 어느 정도 해 줄 수 있다. 하지만 그걸 다 겪으면서 행복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가시밭길에 우박이 친다.

"제 친구 중 여성 문제에 관심이 있는 남자가 있거든요. 걔가 결혼을 했는데 그러는 거예요. '결혼한 거 자체로 아내에게 죄를 짓는 것 같다'고.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결혼하면 겪는 문제가 많잖아요. 남편과 아내의 개인적인 노력에 상관없이 가부장제에 휩쓸려 가는 부분이 있다는 거예요. 제 남자 친구도 결혼하면 의도치 않게 저에게 상처를 줄까 봐 걱정하더라고요.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아는 거죠. 둘 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까 진짜 진퇴양난이에요.

 

사역자들은 결혼을 하지 않으면 뭔가 부족한 것처럼 비쳐요. '왜 결혼 안 하냐'는 질문들에 수없이 답해야 하는 건 기본이고요. 미혼 사역자에게는 교구도 잘 맡기지 않아요. 여성은 더 그렇죠. 그렇다고 이런 고정관념이 없는 교회들을 찾자니, 별로 없기도 하고 대부분 가난한 교회예요. 부교역자에게 안정이라는 게 없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생존은 가능해야 하잖아요. 이렇게 생각하면 정말 답이 안 나와요. 뭘 어떻게 해도 최선의 선택은 없어요. 차악을 선택할 뿐이죠."

결혼을 하고 싶은데 하고 싶지 않다….
결혼을 하고 싶은데 하고 싶지 않다….
여성이 100%가 돼도 아무렇지 않은

은영 씨는 20대 초반 한 독서 모임에서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교양인)을 읽으며 페미니즘을 접하게 됐다. 당시는 한국 사회에 '페미니즘 리부트'라 불리는 물결이 일어나기 몇 년 전이었다. 그때부터 페미니즘과 여성신학은 은영 씨의 관심사였다. 아니, 일상이 페미니즘과 여성신학의 현장이었다고 하는 편이 더 맞다. "책에 이런 말이 나와요. '안다는 것은 상처받는 것이다.' 그때 이후로 정말 상처 많이 받으며 살았어요."(웃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여성 목사의 길을 먼저 간 선배들에게 고마움과 존경심을 느낀다. 자신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그 길을 걸어간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지금 이런 고민도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여성 롤 모델이나 멘토가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한 여성 목사 이야기를 꺼냈다.

"사역할 때 만난 목사님이 기억에 남아요. 사역자 OT할 때 저를 포함한 여성 전도사들을 모아 놓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나는 너희 보면서 간다'고. 후배 여성 사역자들 길 만들어 준다고 생각하면서 사역한다는 말이었어요. 그러면서 저희 이름 하나하나 불러 주시고 손잡아 주시고…. 그분 보면서 강한 신념보다 한 사람을 향한 따뜻함이 중요하다고 느꼈어요. 제 멘토라 할 수 있겠네요.

 

근데 그분이 결국 교회에서 떠나게 된 거예요. 교회 유력한 사람에게 미운털이 박힌 게 문제였죠. 여성 사역자의 어려움을 잘 아시고, 차별을 깨려고 노력했고, 여성 사역자의 위치를 많이 고민하셨던 분이었는데, 이제 사역을 접을 거라는 말도 들리더라고요. 저희 여성 전도사들은 다 충격에 빠졌어요. 원래 고민이 많았지만 이 일을 계기로 더 고민이 많아졌어요. 한편으로는 더 힘내자는 생각도 했지만, 나만 힘내서 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드는 거죠."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좋은 소식을 듣기 힘든 한국교회 현실 속에서 어떤 희망을 말할 수 있을까. 은영 씨는 여성 목회자가 늘어나는 일밖에는 희망이 없어 보인다고 했다. 보조적인 역할에 만족하지 않고 자기 역할을 해내고 싶어 하는 여성 사역자들이 많아져야 교회도 바뀔 것이다. 여성 비율이 어느 정도면 될까.

"미국 연방 대법관이었던 긴즈버그(Ruth Bader Ginsburg, 1933~2020)가 한 유명한 말 있잖아요. '이상적인 여성 대법관 수를 몇 명이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내가 9명 중 9명이라고 대답하면 사람들은 놀란다. 하지만 1981년까지 대법관이 모두 남자였을 때는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교회에서 여성 사역자 한두 명 고용하고, 총회에 여성 총대가 몇 퍼센트 나가고 이런 것에 만족할 수 없다고 봐요. 모든 사역자가 여성이어도 아무렇지 않은, 신학교나 교회, 교단 어디든 여성 리더가 1%가 아니라 100%여도 이상하게 보지 않는 상황이 돼야 희망이 있을 것 같아요. 그런 날이… 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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