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개혁은 하나님도 못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한국교회 상황은 점점 나빠지고 이 흐름을 바꿀 만한 뾰족한 수도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교회 개혁'이라는 거대 담론으로 접근하기보다 교회가 바꿔 나가야 할 것 하나하나에 집중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교계에는 젊은이들의 목소리, 특히 여성들의 목소리가 별로 들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들이 외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아서겠지요. <뉴스앤조이>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여성 신학생·사역자들의 인터뷰 '교회와 여성들'을 연재합니다. - 기자 주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2016년 5월 17일 '강남역 여성 혐오 살인 사건'. 여성들의 분노는 이 사건을 계기로 폭발했다. 당시 피해 여성이 살해당한 곳에서 가장 가까운 출입구였던 강남역 10번 출구는 애도와 연대의 메시지로 뒤덮였다. 이름 모를 이의 죽음에 많은 여성이 공감했던 이유는, 그것이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언제든 맞닥뜨릴 수 있는 위협이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내가 살해당했다', '나는 운 좋게 살아남았다' 는 말은 현실의 언어였다.

교회를 다니는 여성도 다르지 않았다. 당시 20대 중반이었던 김지영 씨(가명·32)에게 강남역 사건은 인생의 전환점이 될 만큼 충격으로 다가왔다. 청소년 시절부터 기독교 대안 학교를 다니며 교회 문화에 젖어 살았던 그의 신앙에도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건 전에도 소셜미디어에서 여성 담론이 일어나고 있었고, 저도 거기 영향을 받아 조금씩 눈을 뜨고 있는 상태였어요. 그러면서도 여성으로서의 경험들을 하나님께 가져가 본 적은 없었죠. 교회에서는 여성 혐오 행위들이 '성경적'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잖아요. 전까지는 그냥 제가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는 건 줄 알았어요. 제가 아는 하나님은 억압받는 자들을 해방하시는 분인데 말이죠. 어느 날 '여성으로서 받는 억압은 억압이 아닌가요?' 하면서 막 토로하는 기도를 했어요.

 

그리고 그다음 주에 강남역 사건이 터진 거예요. 사건 자체가 너무 큰 충격이었고… 저는 신앙인으로서, 예수님의 죽음이 곧 나의 죽음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았는데 그 실체가 무엇인지 잘 느끼지는 못했어요. 그런데 그 사건이 저에게 하나의 체험이 됐어요. 내가 죽었을 수도 있다, 그 여성이 나를 대신해 죽었다는 게 와닿으면서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싶었어요. 그 여성이 나를 대신해 죽었기 때문에, 앞으로의 삶은 온전히 내 삶이 아니라 그 여성이 살지 못한 삶을 함께 사는 것이라는 생각도 하게 됐죠."

2016년 사건 당시 강남역 10번 출구. 뉴스앤조이 구권효
2016년 사건 당시 강남역 10번 출구. 뉴스앤조이 구권효

당시 지영 씨는 날카로웠다고 했다. 그것은 어느 날 한순간에 나도 그런 일을 당하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왜 여성이라는 이유로 당해야 하고 두려워해야 하는가'라는 억울함과 분노가 섞인 감정이었다. 격앙된 감정은 쉽게 통제되지 않았다. 친구들도 그에게 쉽사리 말을 꺼낼 수 없는 수준이었다고 했다. 교회 담임목사와 대판 싸우기도 많이 했다. 목사가 조금만 감수성 떨어지는 말을 하면 말 그대로 난리가 났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신학교를 가게 된 이유는 여기서 비롯됐다. 담임목사가 지역 신학교에 여성신학을 공부한 분이 계시니 거기 가서 찬찬히 공부해 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19살 때부터 찬양 사역 간사처럼 생활해 온 지영 씨였기 때문에 '언젠가는 신학을 하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렇다고 여성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신학교에 가게 될 줄은 몰랐다. 폭풍 같았던 2016년을 보내고 2017년 H신학대학원에 입학했다.

어려서부터 몸에 밴 '성 역할'

"신학교랑 교회랑 한 20년은 차이 나는 것 같아요." 신학교에서 처음 느낀 것은 '지적인 해방'이었다. 그동안 '불경하다'고 스스로 검열했던 고민들이 이미 수십 년 전 논의됐던 담론이라는 걸 알게 됐다. 오히려 자신의 고민은 '안전한 고민'이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기대했던 것만큼 여성신학에 대해서는 많이 배우지 못했지만, 신학 공부는 그 자체로 상당히 재미나는 일이었다.

그러나 학문 외적인 환경은 갈수록 망가졌다. 그해 교단이 총회에서 동성애자와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신학교 입학을 금지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그다음 날 하필 총회 이단대책위원회에서 활동했던 교수 강의가 있었다. 그 교수는 "인권도 중요하지만 종교의자유도 중요하다"는 식의 논리를 폈다. 지영 씨는 자리에서 일어나 강의실을 빠져나왔다. 그길로 1년을 휴학했다.

성차별도 만연했다. 부교역자 청빙 게시판에는 언제나 '중·고등부(남)', '유·초등부(여)'라고 적혀 있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누군가를 채용하면서 이렇게 성별을 명시할 수 있는 곳이 있나요?" 물론 성별을 명시하지 않은 교회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여성에게 청소년부가 열려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실제로 교회들이 청소년부 사역자를 남성만 뽑으니까, 나중에는 모집 공고에 성별 표시가 없어도 아예 도전을 못 하겠더라고요."

"이건 약간 객기이긴 한데….(웃음)" 지영 씨는 학교에서 예배드릴 때 성찬을 거부한 적도 있었다. 성찬 집례자가 모두 중년 남성 교수였기 때문이다. "어느 날 성찬 집례자 중 여성이 한 명도 없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어요. 너무 이상하더라고요. 내가 이 성찬에 초대받지 못한 느낌이랄까? 그때 혼자 보이콧을 선언했어요. '여성 성찬 집례자가 나올 때까지 나는 이 성찬을 거부하겠다'고 했죠."

여성 안수를 주는 교단에서도 성찬 집례자는 남자인 경우가 많다.
여성 안수를 주는 교단에서도 성찬 집례자는 남자인 경우가 많다.

사실 '성별에 따른 역할이 있다'는 고정관념은 신학교에 가기 전 교회에서 숱하게 들어 온 것이다. 어렸을 적 지영 씨는 당찬 아이였다. 어른들은 '남자는 회장, 여자는 부회장'을 하기를 바랐지만, 그는 한 번도 자신이 여성이기 때문에 리더가 되지 못한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교회 일이 재밌었고 그만큼 열정이 있었다. 어떤 일이 있으면 지영 씨가 앞장섰다.

그러나 교회에서 그의 '당참'은 쉽게 죄악시됐다. 교회가 초청한 소위 '가정 사역자'들은 "아내가 남편을 넘어서려고 하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심지어 "여자들이 나대는 곳은 항상 문제가 생기더라"고 대놓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렸던 지영 씨는 자신이 '불순종의 영'에 사로잡힌 것은 아닌지 불안했다. "리더가 되고 싶은 마음이 죄성인 줄 알고 엄청 회개했어요. 이상하게도 담임목사보다 교인들이 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학창 시절 지영 씨와 교회에서 함께 자란 '남사친'은 성차별의 좋은 예가 된다. 그는 지영 씨보다 열심이지 않았지만 항상 지영 씨 옆이나 위에 있었다. 열심히 하는 지영 씨가 당연히 리더가 되는 일이 많았는데, 교회 어른들은 여성이 나서는 게 보기 좋지 않다며 그 남사친을 같이 세웠다.

"제가 청소년부 찬양 리더였는데요. 새로 온 교역자가 '왜 이 교회는 여자가 찬양을 인도하냐'고 하더라고요. 그러더니 그다음 주에 저와는 한마디 상의도 없이 그 친구를 리더로 세웠어요. 그렇게 성실한 애도 아니었거든요. 예전부터 제가 막 열심히 해서 뭔가 만들어 놓으면 그 친구는 별로 도움 준 것도 없는데 늘 꼽사리처럼 끼었죠. 남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요."

'엄청 회개'했던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그때 그 메시지들이 잘못됐으며 여성이기 때문에 당한 부당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째 마음이 시원하지는 않다. 어딘가에 나서고 리더의 역할을 할 때마다 덜컥 걸리는 지점이 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주입된 성차별적 메시지들이 "여전히 발목을 잡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결혼? 남자라면 고민 안 하죠"

지영 씨는 찬양 사역자다. 앞으로도 사역을 계속하고 싶다. 사역을 꿈꾸는 여성들에게 '결혼'은 난제다. 전통적인 기독교에서 결혼-출산-육아는 그 자체로 고결하고 신성한 것으로 예찬돼 왔지만, 여성들의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특히 신학생이나 전도사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면 더욱 그렇다. 삶의 바운더리를 생각할 때 결혼 상대방이 아무래도 같은 신학생이나 사역자일 경우가 많은데, 이들과 결혼할 경우 여성들은 '사모'가 되고 남편 교회(사역지)에 '딸려 가는' 신세가 된다.

굳은 의지로 남편과 다른 교회에서 사역할 수 있다고 쳐도 '임신 가능성'이 있는 여성 사역자에게 고용 안정성을 보장해 주는 교회는 없다. 이는 사역자가 아닌 사람과 결혼해도 발생할 수 있는 문제다. 교회는 결혼과 출산을 신성시하지만 정작 임신한 여성들을 존중하고 보호해 주지는 않는다. 사역을 내려놓고 한두 해 아이를 키우다가 다시 교회로 돌아가겠다? 여성 사역자 입장에서는 쉽게 계획할 수 없는 일이다.

"저는 어려서부터 결혼 생각은 없었어요.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만 있었지. 근데 교회에서는 꼭 결혼해야 한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한때는 '내가 또 불순종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했죠. 지금은… 결혼 생각은 없는데 여전히 아이를 키우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근데 한국에서는 결혼하지 않으면 아이를 가질 수가 없으니… 나중에 대안 학교 혹은 선교지에 가서 부모 없는 아이들이나 미혼모 자녀들을 케어하면서 살자는 생각을 막연하게 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결혼은 절대 안 해'라는 건 아니에요.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할 수도 있겠죠. 무조건 결혼해야 한다는 '결혼 중심주의'가 문제라고 생각해요. 결혼이 기본 값이 되는 순간 결혼 안 한 사람도, 한 사람도 다 불행해지는 것 같아요. 결혼 안 한 건 '못한 것'이 돼서 계속 고통받고요. 개신교인 여성의 경우 자기 자신을 돌아보지 못한 상태에서 결혼하면 남편에게 자기 정체성을 의존하게 되는 경향이 있어요. 남편이 목사라면 더 그렇죠."

'결혼 생각이 없다'는 말은 비단 어렸을 때부터 했던 생각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어렸을 적 생각에 더해, 지금 대한민국 2030의 현실 + 여성 사역자로서 사역을 이어 가기 힘든 교회 환경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이는 반대로 그가 남성이라고 가정해 보면 쉽다. "제가 남자였다면요? 그럼 고민할 이유가 없을 것 같은데.(웃음) 내가 사역할 때 누가 옆에서 도와주면 좋잖아요. 남자였다면 이런 고민은 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이야기하다 보니 지영 씨가 찬양 사역자이기 때문에 궁금한 점이 하나 생겼다. 청년들에게 '찬양 리더'란 뭔가 홀리한(?) 느낌으로 다가오고 종종 선망의 대상이 된다. 그렇다면 10년 이상 찬양 사역자로 살아온 지영 씨도 인기가 많지 않을까? "남성 찬양 사역자가 인기 많은 건 맞아요. 그런데 여성 찬양 사역자는 인기가 없어요.(웃음) 남자들이 자기보다 뭔가 잘하는 여성들을 부담스러워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그런 연장선상에 있는 것 아닐까요?"

지영 씨는 찬양 사역자로 살고 싶다. 
지영 씨는 찬양 사역자로 살고 싶다. 
'안전한 교회', '안전한 예배'에 대한 꿈

지영 씨는 페미니즘과 여성신학을 공부하면서 다양성을 인정하게 되고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이 '다양성'이 한국교회에 정말 필요한 것이자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달라지지 않는 교회와 신학교를 보면서 고민이 많아졌다. 무엇보다 교단이 계속해서 소수자를 배제하는 기조를 강화한다는 게 큰 걸림돌이다. 졸업반인 그는 슬슬 목사 안수를 받는 과정도 생각해야 하는데,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제가 양심적으로 말한다면 목사 안수를 못 받을 것 같아요. 지금은 약간 포기한 상태예요. 한 10년 지나면 제 양심을 저버리지 않고도 가능하려나…. 목사가 돼서 하고 싶은 일이 많았는데, 지금은 뭐 굳이 목사 타이틀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생각해요."

청소년 시절부터 찬양 사역을 해 온 사람으로서 한국교회 찬양 사역의 그림자도 잘 알고 있다. 찬양 사역은 감성적인 영역을 많이 사용하다 보니, 때로 신학적 소양이 부족한 사역자들이 교인들을 해로운 신앙으로 끌고 가는 경우도 있다. 이런 모습들을 어려서부터 가까이서 접하며 지영 씨는 괴리감을 느꼈다고 했다.

한편으로는 '그럴수록 나 같은 사람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절실해졌다. 그는 찬양의 힘을 안다. 설거지하면서 성경 말씀을 외우기는 어렵지만 찬양은 쉽게 흥얼거릴 수 있다. 그만큼 음악은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도구다. 반면, 페미니즘이나 여성신학 등의 담론은 일반 교인들과 동떨어져 있었다. "여성주의적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대중과 쉽게 접촉할 수 있는 사역을 한다는 건 그 자체로 의미가 있을 것 같다"는 친구의 격려를 가슴에 새기고 있다.

무엇보다 그가 원하는 것은 여성에게 '안전한 교회', '안전한 예배'다. "2016년 한창 혼란을 겪었을 때 교회가 저를 받아 줬다고 생각해요. 물론 목사님과 많이 다투기도 했지만 어쨌든 제 이야기를 들어 줬으니까요. 그 분노의 시간을 비교적 안전한 공동체에서 소화해 낼 수 있었던 거죠. 그 과정을 다 거치고 나니 뭔가 생산적으로 할 수 있는 힘을 얻었어요. 다른 여성들도 그런 공간이 필요해요. 그런 안전한 공동체를 만들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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