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개혁은 하나님도 못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한국교회 상황은 점점 나빠지고 이 흐름을 바꿀 만한 뾰족한 수도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교회 개혁'이라는 거대 담론으로 접근하기보다 교회가 바꿔 나가야 할 것 하나하나에 집중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교계에는 젊은이들의 목소리, 특히 여성들의 목소리가 별로 들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들이 외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아서겠지요. <뉴스앤조이>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여성 신학생·사역자들의 인터뷰를 연재합니다. - 기자 주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딱히 페미니즘을 공부한 건 아니었다. 그래도 너무 이상했다. 어렸을 적 집이 힘들었을 때 자신을 보살펴 준 교회, 그런 교회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진학한 신학교였다. 하지만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김지은 씨(가명·31) 눈에 펼쳐진 신학교의 풍경은 그런 순수한 열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성차별'과 '정치질'. 지은 씨는 신학교 생활 4년을 이 두 단어로 정리했다.

신학과에서 다수였던 남학생들은 대놓고 여학생들 외모를 품평했다. 여학생들은 생각도 안 하는데, 자기들끼리 '사모감'을 정하고 등급을 분류했다. 역시 다수였던 남성 교수들이 여학생들에게 '사모 되려고 왔느냐'고 묻는 것도 다반사였다. 아버지가 목사나 장로인 '아들 신학생'들은 교수에게 눈도장이라도 한 번 더 찍었다. 대형 교회 전도사로 들어간 이들은 그 교회 명성이 자기 것이라도 되는 양 거들먹댔다. 정치질이야 그러려니 했는데 성차별적 현실은 참기가 어려웠다.

"매일매일이 답답했어요. 문제의 본질은 여자가 남자와 동등하게 대우받지 못하는 것이었는데, 학교에서는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나기가 어려웠죠. 여학생들도 대부분 '내가 모자라서'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저도 '내가 남들과 다르구나. 내 분노 스위치가 좀 빨리 올라가나 보다. 내가 이상한 사람인가 보다'라고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신학대학교를 다니면서 지은 씨는 결국
신학대학교를 다니면서 지은 씨는 결국 '내가 이상한가 보다'라고 생각하게 됐다. 

신학교에서의 경험은 지은 씨를 질리게 했다. 4년간 대학을 다닌 후 그가 내린 결론은 '이 판을 떠야겠다'였다. 신학과는 관계없는 다른 공부를 하기로 했다. 성차별이 만연한 이 '기독교 판'에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내가 이상한 게 아니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했나. 지은 씨는 2년간의 도피(?)를 마치고 2016년 '전도사'가 됐다. 신학교 졸업 후 2년이나 쉬었는데도 교단에서 알아주는 대형 교회 사역자가 됐다. 돈도 없고 빽도 없는 그가 어떻게 그 교회에 갔냐고 수군대는 사람들도 있었다. 정작 그는 별 감흥이 없었다. '돈은 벌고 살아야지'라는 생각, 그리고 뭔가 '해야 할 것을 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그를 다시 교회로 이끌었다.

그때까지도 두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 돈을 안 벌 수는 없기에 교회로 돌아왔지만, 교회 사역이라는 게 돈만 보고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다른 세계에 걸쳐 있던 발을 빼고 제대로 해 보기로 했다. 이왕 다시 기독교 판에 돌아온 이상, 4년간 자신을 힘들게 했던 생각도 정면 돌파하자 마음먹었다. 지은 씨는 여성신학을 배울 수 있는 E대학원에 진학했다. 역시 돈도 없고 빽도 없는 그가 어떻게 그 학교에 갔냐고 수군대는 사람들이 있었다.

"첫 학기는 진짜 '와~' 이랬어요.(웃음) '내가 이래서 기분이 나빴구나', '왜 이런 걸 지금까지 몰랐을까'라고 생각했죠. 내가 이상한 게 아니었던 거예요. 교수님들도 다 화가 나 있었어요.(웃음) 여성 교수님도 많고 남성 교수님들도 기본적으로 여성주의적 시각을 가지고 있는데, 교회 현장은 여전히 성차별적이니까요. 그게 왜 잘못됐는지 이론적으로 조목조목 설명해 주셨어요. 지금 주류 교회가 성경을 보는 시각은 100년 전 백인 미국 남성들의 시각이라는 것도 알게 됐죠."

여성 사역자가 교회에서 청소년부를 맡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지은 씨는 유리 천장을 깨고 싶었다. 
여성 사역자가 교회에서 청소년부를 맡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지은 씨는 유리 천장을 깨고 싶었다. 

지은 씨는 교회 사역과 대학원 과정을 병행했다. 차근차근 성경을 제대로 알아 가면서 교회 내 성차별적 현실이 더욱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는 3년간 유아부를 맡았다.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니 여자가 청소년부 사역을 하는 모습은 찾기 힘들었다. 이상하게 육아 경험이 없어도 미취학 부서는 무조건 여성이 맡았다. 힘을 써야 하는 일이 많아 오히려 남성이 잘할 수도 있는데 말이다. 간혹 청소년부 사역을 하는 여성도 있었지만, 사역할 때는 남성 사역자의 가면을 쓰는 것처럼 보이는 현실 또한 안타까웠다.

지은 씨는 원래 청소년 사역에 관심이 많았다. 유아부 사역을 하면서도 청소년들과 만나는 일을 계속해 왔다. 대학원 논문 주제도 청소년부 사역과 관련 있었다. 유아부 3년 사역을 마친 후, 그는 교육부서 담당 목사에게 '청소년부에서 사역하고 싶다'고 말했다. 교사들과 교인들에게 인정받는 사역자였기 때문에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돌아온 건 '계약 해지'였다.

"내년 사역을 앞두고 교육부서 담당 목사와 면담하는 시간이 있었어요. '나는 청소년 사역을 하고 싶다. 지난 3년간 내 역량을 보여 줬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 교회에 여성 사역자는 청소년부 이상은 할 수 없다는 유리 천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유리 천장을 깨고 싶다. 그럴 수 없다면 나는 굳이 여기 있을 필요가 없을 것 같다'고 말했죠. 다른 사역자들은 2~3시간씩 상담하는데 저는 5분 만에 끝났어요. 갑자기 마무리 기도를 하시더라고요.(웃음)"

이 길을 함께 갈 동료가 생겼다

"페미니즘 세례를 받았다고 생각해요." 영화 매트릭스에 나오는 '빨간 약'을 먹은 네오처럼, 페미니즘과 여성신학을 알기 전 세계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가 두 발을 붙이고 살아가야 할 세상은 여성이 청소년부도 맡을 수 없는 곳이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다행히도 지은 씨는 한 기독교 여성 단체를 만났다. 이곳에서 방패막이가 돼 주는 선배 여성 목사들과 같은 길을 걸으려는 동료들을 만났다. 함께할 사람들이 있다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목사'가 되기 위해 올해 신학대학원에 진학했다.

목사가 되려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전도사 얘기는 들어 주지 않으니까'부터 '연대가 필요한 현장에 목사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한다. 그에게는 목사가 그저 '목소리 내기 위한 라이센스'여도 별 상관없다. "오히려 '직업으로서의 목사'가 필요한 건 아닌가 싶어요. 목사를 너무 성직聖職이라고 생각하니까 생기는 문제가 많잖아요. 저는 그저 그때그때 필요한 공부와 경험들을 하는, 필요한 목소리를 내는 목사가 되고 싶어요."

지은 씨는 먼저 길을 간 선배 여성 목사들과 동료들을 만나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지은 씨는 먼저 길을 간 선배 여성 목사들과 동료들을 만나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물론 과정은 쉽지 않다. 지은 씨는 여성신학을 배우면서 다양성에 대해 고민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성소수자 인권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자신이 신학교와 교회에서 '불편'했던 것처럼, 누군가 불편한 사람이 있다면 환경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목사 안수를 주는 교단 지도부는 점점 성소수자를 배제하고 그들의 인권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색출해 징계하려 한다. 힘을 가진 사람들뿐만이 아니다. 지은 씨를 아는 선후배·동기들은 또 수군대기 시작했다.

"뭐 '페미병 걸렸다', '레즈비언인 것 같더라' 등등 별의별 소문이 다 돌았어요. 상대하기 싫어서 가만있으니 그런 말들이 기정사실처럼 돌아다니더라고요. 나에 대한 헛소문이 도니까 기분이 되게 이상했어요. 배신감도 들고. '나도 이런데 일상적으로 온갖 유언비어에 시달리는 성소수자들은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교단에서 목사가 되기 위해서는 '선택적 침묵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해요. 선배 목회자들 중에서는 정말 걱정하는 마음으로 밥 사 주시면서 자제하라고 조언해 주시는 분도 있어요. 지금 이동환 목사님이 재판을 받고 있잖아요. 목사 안수 과정을 밟고 있는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 보면, 목사님들이 검열을 하고 있대요. 저도 사상 검증식 질문에 답을 해야 하는 순간이 벌써 두렵고 걱정됩니다."

"그냥 공부 안 한 거잖아요?"

지은 씨는 신학교에 '성평등한 시각'이 가장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가 경험한 신학교는 "젊은 꼰대가 제일 많은 집단"이었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없는데 남학생들끼리만 피 터지는 '사모감 찾기 전쟁'이 그 대표적인 예다. "20대 초반 대학생들이 사귀자고 고백할 때부터 자기 사역 계획을 이야기하고 거기 함께해 달라고 해요. 여자는 당연히 자기 사역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렇게 인생을 걸 것처럼 하다가도 헤어지기는 쉬워요.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질려 버렸어요."

결혼은 절대 안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현재 결혼 계획은 없다. 지금 남자 친구를 만나고 있는데 아직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해 보지는 않았다. 그는 남자 친구가 신학생이 아닌 일반 대학 출신이라 오히려 더 말이 잘 통한다고 했다. "결혼이라는 게 사귀다가 계속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이 들 때 하는 거 아녜요? 그게 자연스러운 거잖아요."

페미니즘은 교회 파괴 도구가 아니다. 중요한 점은 지금도 성차별 때문에 고통당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교회 파괴 도구가 아니다. 중요한 점은 지금도 성차별 때문에 고통당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이제 시대적 요구다. 개신교인들은, 특히 교회 지도자들은 더더욱 페미니즘과 개신교가 어떻게 연결되고 양립할 수 있을지 공부해야 한다. 이를 통해 교회 안에 성차별적인 모습을 발견하고 고쳐 나가야 한다. 단순·무식하게 '페미니즘 → 인본주의 → 교회 파괴'라고 생각할 게 아니다. 성차별은 현실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지금도 그 차별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으며, 이는 나와 내 가족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관심을 가지고 책이나 신문을 조금이라도 읽었으면 지금과는 다르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런데 아직도 잘 모른다고 핑계만 대는 거 보면 참…. 페미니즘이 한국 사회에서 이슈가 된 지 벌써 몇 년째인데요. 그냥 공부 안 한 거잖아요? 이제는 정말 페미니즘에 대해서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때가 왔는데, 아직까지 공부하지 않았다는 건 직무 유기라고 생각해요."

'남성을 도와주는 역할'로 자신을 제한하고 만족하는 여성이 많다는 점도 아쉬웠다. 몇 년 전 모교에 총여학생회가 폐지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급속도로 팽창하는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로 각 대학에 총여학생회 폐지 운동이 일었을 때 없어진 것이다. 그때 후배들이 문제를 제기했다든지 어떤 액션이 있었다든지 하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여학생들도 그런 흐름에 동조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이런 심리 아닐까 싶어요. 깨부수고 나가면 새로운 세상이 있다는 건 아는데, 내가 그걸 깨기는 두려운 거죠. 주변에 함께할 동료도 없는 것 같고. 그래서 그냥 아예 모르기로 한 것 아닐까…. 그런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고 싶어요. 제가 '그런 고민 있으면 그 선배한테 가 봐' 정도로 언급되는 사람이 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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