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개혁은 하나님도 못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한국교회 상황은 점점 나빠지고 이 흐름을 바꿀 만한 뾰족한 수도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교회 개혁'이라는 거대 담론으로 접근하기보다 교회가 바꿔 나가야 할 것 하나하나에 집중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교계에는 젊은이들의 목소리, 특히 여성들의 목소리가 별로 들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들이 외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아서겠지요. <뉴스앤조이>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여성 신학생·사역자들의 인터뷰를 연재합니다. - 기자 주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한국교회를 구성하는 절반 이상은 여성이지만, 리더 자리로 갈수록 여성은 적어진다. 신학교에 입학하는 여성 비율은 10~20%에 불과하다. 이 중 목사가 되는 여성은 더 적고, 담임목사가 되는 여성은 더 적다. 진보적인 교단으로 꼽히는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이건희 총회장)를 보더라도, 목사 약 3200명 중 500명 정도만 여성이며 이 중 담임 목회를 하는 사람은 130명 정도밖에 없다. 이는 담임 목회자 중 8.5%에 해당한다. 매년 열리는 총회에 참석하는 여성 총대 비율도 10% 이내다. 다른 교단들 여성 목회자 비율은 기장보다 더 적다.

여성 목회자가 적은 현상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애초에 신학교 입학생부터 여성이 적으니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질문은 '그럼 왜 여성들이 신학교에 진학하지 않을까'로 바뀌어야 한다. 기장 세례 교인 약 16만 명 중 10만 명(62.5%)이 여성이다. 그런데 정작 신학교에 진학하는 비율은 남성이 훨씬 많다. 여성이 신학교에 진학하더라도, 전도사에서 준목이 되는 과정, 준목에서 목사가 되는 과정 중 '포기'를 선택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남성들은 전도사-준목-부목사-담임목사를 꿈꾸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여성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여성 담임 목회자가 현저히 적다는 사실 또한 사역을 꿈꾸는 여성들에게 걸림돌일 것이다. 이는 여성 목회자로서의 비전 혹은 롤모델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실제로 교단을 불문하고 여성 신학생·사역자 중 '담임 목회'를 꿈꾸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것만 보더라도 한국교회 성차별은 구조적이며 구성원 대다수가 그 차별을 내면화했다고 할 수 있다. 여성 목회자가 있는 교단도 이런데 아직도 여성에게 안수를 주지 않는 대형 교단들이 몇 개나 있으니, '성평등한 교회'는 아마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이뤄지지 않을 것 같다.

여성 목회자들의 현실을 이야기하기 위해 임보라 목사를 만났다. 인터뷰는 4월 14일 서울 마포구 섬돌향린교회에서 진행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여성 목회자들의 현실을 이야기하기 위해 임보라 목사를 만났다. 인터뷰는 4월 14일 서울 마포구 섬돌향린교회에서 진행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기장 소속 목회자 임보라 목사(섬돌향린교회)를 만났다. 이번에는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목사가 아니라 '여성 담임 목회자'로 만났다. 임보라 목사만큼 오해를 많이 받는 인물이 교계에 또 있을까. 보수 교단들의 이단 시비와 교계 매체들의 선동으로 그는 마치 머리에 뿔난 마귀인 양 비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는 30년 가까이 목회 길을 걸어온 목사일 뿐이다. 향린교회가 2013년 섬돌향린교회를 분립했을 때부터 담임을 맡아 9년째 담임 목회를 하고 있다. 현재 교단 내 여성 목회자들의 입지를 걱정하며 애쓰고 있기도 하다.

"제가 속한 서울노회 담임 목회자 39명 중 여성은 3명뿐이에요. 물론 각자 사명이 있겠죠. 하지만 이런 수치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봐요. 결국 목사는 교회 청빙을 받아 가는 건데, 교회들이 기본적으로 담임목사는 '남성'과 '기혼자'를 상정해요. 자연스럽게 여성은 '사모' 역할을 요구받고요. 어떤 교회는 사모 이력서, 신앙고백을 제출하라고도 하더라고요. 얼마 전 기장 전국여교역자회에서 이런 관행을 시정해 달라고 총회에 의견서를 냈어요.

 

한때 여교역자회에서 반은 우스갯소리, 반은 슬픈 이야기로 '청빙 지원서 내기 운동'을 하자는 말도 나왔어요. 교회 청빙 공고가 나오면 여성 사역자들이 무조건 지원서를 내 보자는 거죠. '우리도 있다'는 취지로요. '애초에 여성 사역자들을 많이 못 만나 봐서 그런 것 아니냐'는 말도 있는데요. 그렇다고 하기엔 유치부·유아부는 항상 여성 사역자들이 해야 하는 것처럼 생각해 왔잖아요?

 

한국 사회 전반적으로 성평등 의식과 성 인지 감수성이 떨어지는데, 교회는 그거보다 훨씬 의식도 뒤처지고 제도화도 안 돼 있어요. 다행히도 최근에는 기장에서 목사 안수를 받는 여성이 조금씩 늘어나고는 있지만, 안수를 받아도 '어디서 사역할 것인가'라는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죠."

기장의 신학을 만나다

임보라 목사는 한신대학교 영어영문학과 87학번이다. 민주화의 산실이었던 한신대가 당시 어떤 분위기였을지 그려진다. 임 목사 역시 1학년 때 선배들이 보여 준 흑백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실상을 알게 됐다. "비디오를 보면서 충격과 전율을 느꼈죠. 고등학생 때도 시국 자체를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한신대 들어가서 역사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 것 같아요. '내가 모르는 게 많았구나',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전공은 영어영문학이었지만 신학과 수업을 조금씩 들었다. 임 목사는 중학교 2학년 때 친구 따라 교회에 갔고 고등부 때 소위 '뜨거운 체험'을 하게 됐다. 그 후로는 교회에서 청년부 최초 여성 총무를 할 정도로 신앙생활에 열심이었다. 하지만 교회에서는 엄혹한 현실에 대한 이야기는 들을 수 없었다. 기장의 신학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신앙과 역사, 지금 상황을 계속해서 연결하기를 요구했다. '신앙인은 지금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했다. 3학년 때부터는 영어영문학 전공을 빼고는 죄다 신학과 수업을 들었다.

목사가 돼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신학을 좀 더 제대로 배워 보자는 마음으로 한신대 신학대학원에 진학했다. 멀리는 유학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93년 향린교회가 40주년 기념으로 강남향린교회를 분립했다. 이때 임 목사가 강남향린교회 어린이부 전도사를 맡게 됐다. 그렇게 인생 계획에 없었던 '목회'를 시작하게 됐다. 이후 30년 가까이 목회를 지속하게 될 줄은 몰랐다.

준목이 되고 난 후에는 좀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 끝에 캐나다 유학길에 올랐다. 갈 때는 박사 학위까지 생각했는데 가서는 또 새로운 상황이 펼쳐졌다. 작은 한인 교회 전도사가 되면서 공부보다 사역에 매진하게 된 것이다. 이민 교회에서 7년간 사역한 일은 임 목사에게 특별한 경험이었다. 기장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난 교회였고, 무엇보다 개개인의 진보·보수 성향을 떠나 이주민이라는 소수자성을 가진 사람들의 현실을 접할 수 있었다.

그 교회에 2002년 새로운 담임목사가 청빙되며, 임 목사도 다시 진로를 고민하게 됐다. '캐나다에서 너무 안주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는 한편, 고국에서 들려오는 각종 사건들이 계속 신경 쓰였다. 결국 귀국을 택했다. 이민 교회에서 사역한 기간이 인정돼 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을 수 있었다. 마침 선배 목사가 향린교회를 떠나게 되면서 그 자리에 추천받아 들어갔다. 2003년부터 다시 향린교회에서 부목사로 사역을 시작했다.

"결국 신앙과 역사, 현실을 끊임없이 고민하는 기장의 신학을 만난 게 제가 목회를 하게 된 출발점이었던 것 같아요. 요즘에는 그런 '기장성'이 잘 보이지 않아 안타까워요. 꼭 향린교회 같은 교회가 아니어도, 기장 교인들은 어떤 프라이드가 있었거든요. 기장 교회든 합동 교회든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지금 현실이죠."

섬돌향린교회 예배당 입구에는 차별금지법/평등법 지지 메시지가 붙어 있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섬돌향린교회 예배당 입구에는 차별금지법/평등법 지지 메시지가 붙어 있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아이는 어린이집이 키웠다"

캐나다에 있었던 기간을 제외하면 모두 향린공동체에서 사역했다. 여성 사역자의 인권과 처우에 관심이 많은 임보라 목사지만, 본인 이야기를 할 때는 '또 다른 온실에서 자란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 죄송할 때가 많다고 했다. 임 목사는 부교역자로 사역했던 당시, 강남향린교회 담임이었던 김경호 목사와 향린교회 담임이었던 조헌정 목사에게 목회를 잘 배울 수 있었다. 향린공동체는 부교역자 고유의 사역을 존중해 주는 분위기였고, 부교역자에게도 결혼 주례나 장례 예배 설교를 할 수 있게 해 줬다. 이런 경험들이 그가 지금 담임 목회를 해 나가는 데 큰 힘이 됐다.

"강남향린교회 파트타임 전도사에서 전임으로 전환될 때 제 사례비를 책정했던 제직회가 기억에 남아요. 한 교인분이 '임 전도사는 남편도 있는데 이렇게 많이 줘야 하느냐'고 문제를 제기했어요. 그랬더니 김경호 목사님이 '나도 아내가 있는데 내 사례비를 책정할 때도 그걸 고려한 것이냐'고 반문했어요. 그 한마디로 '올 킬'이었죠. 이후로 아무도 제 사례비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어요.

 

캐나다에서 돌아와 향린교회에서 목회할 때도 조헌정 목사님이 부목사들 사역을 존중해 주셨어요. 저는 향린교회에서 10년 사역하면서 사회부 담당을 많이 했어요. 이라크 파병부터 대추리, 강정마을, 차별금지법 등 여러 굵직한 이슈에 연대했죠. 제가 이런 일을 할 때 어떤 공격을 받아도 교회에서는 저에게 싫은 소리 한번 안 했어요. 부교역자들 개개인의 고유 영역으로 존중·보장해 주셨죠. 지금 섬돌의 색깔도 지지해 주시고 있고요.

 

한국교회 구조상 부교역자들은 담임목사의 인품에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주변을 보면 안타까운 일이 많아요. 전도사 시절부터 겪는 크고 작은 폭력의 경험들이 부교역자들을 병들게 한다고 봐요. 그에 비하면 저는 인품 좋고 존중해 주는 목회자들을 만나 온 거죠. 정말 고생하면서 목회 길을 걸어온 여성 사역자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면서, '나는 저런 사람 만났으면 진작 목회 접었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임보라 목사는 보수 교단들의 이단 시비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향린공동체는 임 목사를 계속 지지해 줬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임보라 목사는 보수 교단들의 이단 시비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향린공동체는 임 목사를 계속 지지해 줬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안타깝게도 한국교회 여성 사역자 대부분은 목회자와 결혼하거나, 특히 임신·출산하면 사역을 그만두게 된다. 임보라 목사 인생에서 특이한 점은 한 번도 '경력 단절'을 경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신학을 공부한 사람과 결혼했고 아이도 둘이나 낳았는데, 임 목사는 여성 사역자로서 일을 계속해 왔다. 물론 일 자체는 절대 편하지 않았다. 향린교회에서 부목사로 사역하는 동안에는 거의 매일 아침 일찍 출근해 저녁 늦게 돌아왔다. 당시에는 "영문도 모르고" 그렇게 달렸다. 돌아보면 한국교회 풍토에서 아이 둘 가진 엄마가 감당하기에는 벅찬 일이었다. 남편을 비롯한 가족들의 희생이 필요했다.

"남편은 신학을 전공하기는 했지만 목회에 회의를 느껴서 처음부터 목회를 하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교회를 잘 이해하고 있고, 목회가 중요하다는 것은 알죠. 특히 한국교회에서 향린교회가 갖는 특수성을 잘 아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제가 목회하는 걸 서포트해 줬죠.

 

아이 둘을 모두 캐나다에서 낳았는데요. 거기서는 허가증을 받고 일했기 때문에 세금을 냈어요. 그랬더니 유급 출산 휴가를 사용할 수 있더라고요. 첫째 때는 6개월, 둘째 때는 1년을 쉬고 복귀할 수 있었어요.

 

둘째가 18개월 정도 됐을 때 한국에 들어왔어요. 그때부터는 어린이집에 보낼 수밖에 없었죠. 어린이집에 제일 먼저 가고 제일 늦게 오는 아이. 그렇게 초등학교 들어갈 때까지 다녔어요. 그나마 어린이집이 남편 가족이 하는 곳이라서 안심할 수 있었다는 게 다행이었달까. 아이들은 어린이집이 키웠어요.

 

근데 초등학교에 입학하니까 더 문제인 거예요. 애들이 일찍 끝나잖아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학교 끝나면 어린이집에 가 있으라고 했죠. 아이 입장에서는 얼마나 싫었겠어요. 이제 초등학생인데 어린이집에 가 있으라니. 혼자 집에 있고 그런 시간이 많았어요. 지금도 그게 마음에 걸려요. 아이들이 울적해할 때마다 내 탓인가 싶고…."

"대단히 좋은 멘토가 될 수는 없어도…"
임보라 목사는 교단 내 여성들의 입지를 안타까워하고 있다. 변화는 더디겠지만 좀 더 열심히 해 보겠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임보라 목사는 교단 내 여성들의 입지를 안타까워하고 있다. 변화는 더디겠지만 좀 더 열심히 해 보겠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여성으로서 사역을 계속하기 위해 가족들의 희생이 필요했다.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임보라 목사가 제도로 눈을 돌리는 이유다. 기장 양성평등위원회는 작년 과제 중 하나로, 교역자 임신·출산과 양육 보장을 위한 제도 마련을 꼽았다. 구체적으로는 근로기준법에서 보장하는 출산 휴가 90일과 육아휴직 1년을 보장하는 제도를 안정적으로 실시하기 위한 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전국여교역자회도 계속해서 교단 여성 사역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개선해야 할 점들을 총회에 건의한다.

한국교회가 점점 어려워지는 현실이지만 임 목사는 그럴수록 여성 목회자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간 한국교회는 지나친 성장주의에 매몰돼 카리스마적인 지도자를 중심으로 한 수직적 리더십을 지향해 왔다. 그래야 성공한 목회자·교회라는 인식이 있었다. 반드시 남성만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런 인식이 남성 목회자를 선호하게 만든 건 사실이다. 수직적 구조는 교회를 병들게 한 주범이다. 이제 그런 시대는 갔다. 교회야말로 더디 가더라도 소통하고 공감하고 살피는 곳이니까.

"희망적인 이야기 이전에, 미안해요. 신학을 공부하고도 이런 현실 때문에 중도 포기하는 사람이 여럿인데…. 손잡고 좀 더 이야기하는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그들이 포기하는 걸 방관하듯 해 온 시간이 있기 때문에 죄송한 거죠. 2030 여성들 이야기를 들어 보면, 선배 여성 목회자들이 시기마다 땔감을 넣어 줬으면 한다는 요구가 있더라고요. 근데 전국여교역자회도 조직화가 잘돼 있지 않고 삼삼오오 만나서 이야기하는 정도니까… 좀 더 힘을 내야죠.

 

한편으로는 저도 50대 중반이 되다 보니까 제도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요. 총회 제도를 바꾸는 게 어렵기는 해도 조금씩 변해야 그나마 숨통을 틀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총회는 답답하죠. 시속 50km가 평균이라고 보면 한 5km는 나오려나. 그래도 조금씩 여지를 만들어 가기 위해 노력하는 선배 목회자들이 있다는 걸 기억해 주면 좋겠어요.

 

어쨌든 젊은 여성 신학생·사역자들이 좋은 목회자를 만나는 기회가 많았으면 해요. 좋은 스승을 만나면 힘들어도 공부를 계속 이어 갈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목회도 그런 것 같아요. 제가 대단히 좋은 멘토가 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같이 고민하면서 '이런 목회도 가능하다'고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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