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개혁은 하나님도 못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한국교회 상황은 점점 나빠지고 이 흐름을 바꿀 만한 뾰족한 수도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교회 개혁'이라는 거대 담론으로 접근하기보다 교회가 바꿔 나가야 할 것 하나하나에 집중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교계에는 젊은이들의 목소리, 특히 여성들의 목소리가 별로 들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들이 외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아서겠지요. <뉴스앤조이>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여성 신학생·사역자들의 인터뷰를 연재합니다. - 기자 주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가정이나 일터 등에서 여성들이 차별받고 있다는 취지의 글에는 자주 이런 댓글이 달린다. "남자들도 힘들다." 교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여성 사역자들이 교회에서 여러 가지 차별을 경험하고 있다는 기사에는 종종 "여성 사역자만 힘든가? 남성 사역자도 힘들다"는 댓글이 달린다. "새벽예배 운전, 형광등 교체, 쓰레기 버리기 등 몸으로 하는 온갖 힘든 일은 당연한 듯 남자 사역자들이 해야 한다" 같은.

이는 페미니즘에서 오래전부터 다뤄 왔던 주제다. 여성과 남성을 동등하게 대해야 한다는 말은, 누가 더 힘든지 겨뤄 보자는 뜻이 아니다. '남성들은 몸으로 힘쓰는 일을 해야 한다'고 성 역할을 고정해 놓은 것은 여성들이 아니다. 그것은 가부장제의 폐해이며 가부장제를 만들고 지탱해 온 건 남성이다. 고정된 성 역할이 싫다면 가부장제를 타파하기 위해 힘을 모아야지, 여성들에게 '우리도 힘드니 너희만 힘들다고 하지 마라'고 이야기하는 건 가부장제를 오히려 공고하게 하는 일이다.

"평등은 차별이 사라져야 오는 것이지, 남성도 억울하다고 해서 여성이 겪는 차별이 상쇄되지는 않습니다. 기울어진 사회를 평평하게 만드는 방법은 기울기를 바꾸는 것뿐입니다. 가부장제의 폐해로 인해 남성이 지게 되는 부담은 이 기울기가 커질 때 함께 커집니다. 그것을 아무리 토로해야 평등의 증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런 토로는 그만큼 가부장제가 공고함을 입증하거나, 여성을 더 억압하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속뜻을 내비치는 꼴입니다. 남성 개인도 가부장제의 피해를 보기는 하므로, 기득권의 눈치 없는 징징거림을 이해해 주고 싶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그의 억울함이 역차별이 아닌 가부장제의 폐단이자 모순적인 속성임을 확실히 해야 합니다." [이민경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봄알람), 132~133쪽]

여성 사역자와 남성 사역자는 신학생 시절부터 듣는 질문이 달랐다. 예라 씨는 '장벽'을 확인하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여성 사역자와 남성 사역자는 신학생 시절부터 듣는 질문이 달랐다. 예라 씨는 '장벽'을 확인하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강도사 인허를 받은 조예라 씨(32)는 교회에서 3년 사역하면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여러 일을 겪어야 했다. 유치하게는 교역자들 식사할 때 남성 사역자들 있는 곳에만 반찬을 몰아주는 일부터, 옷차림 지적, 후배 남성 전도사에게 들어야 했던 훈계(?) 등. 하지만 예라 씨는 이런 것들을 굳이 '차별'이라 부르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무조건 운전해야 하는' 남성 사역자들의 현실도 이해한다고 했다. 페미니즘의 언어가 마냥 편하지만은 않은 그였다.

사역하면서 겪는 불편은 '남성 사역자도 고생하니까' 하는 마음으로 감수해 왔다. 하지만 남성들과 똑같이 신학을 공부했는데도 목회자가 되는 길에서 여러 차별이 발생하는 현실은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신학교에 다닐 때부터 남성들은 "목사 안수까지 얼마나 남았어?"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 반면, 자신을 비롯한 여성들은 "사역은 언제까지 계속할 생각이야?", "목사 안수는 받을 거야?"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좀 더 무례하게는 '여자가 왜 목사가 되려 하느냐'는 뉘앙스가 묻어 있었다.

"그저 궁금해서 물어보는 걸 수도 있겠죠. 그런데 여성과 남성이 받는 질문이 다르다는 게 확연하게 보이는 현실에서 이런 질문을 또 받는 건, 여성 사역자들이 넘을 수 없는 '장벽'을 더 선명하게 그려 주는 느낌이에요. 물어보시는 분의 의도는 그렇지 않더라도 말이죠. 질문을 받는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셔야 할 것 같아요.

 

그 뒤로 따라오는 게, '여자가 목사 되면 가정은 누가 돌보냐', '아이 낳고 남편 내조하면서 가정 돌보는 것도 하나님나라를 이루는 일이다' 같은 말들이에요. 뭐, 틀린 말은 아니라 생각해요. 그런데 저는 이런 표현들이 오히려 결혼·출산·육아가 가져다주는 기쁨들을 격하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여성이 지닌 삶의 가능성을 결혼과 육아로 좁히는 느낌도 들고요."

설교 영상은 첨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머니가 작은 교단 목사였다. 작은 교회에서 힘들게 목회하는 어머니를 보며 '이 길만은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학부에서는 영문학을 공부했다. 전환점은 졸업을 앞두고 생겼다. '불확실한 것들에 내 시간과 에너지를 계속 투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의 에너지를 어디에 투자할지 고민하고 몇 개월을 기도했다. 그럴수록 하나님의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커졌다. 그렇게 신학대학원을 택했다.

"이상하게 학부 졸업반일 때 그렇게 성경을 읽고 싶더라고요. 매일 수업 끝나면 집에 와서 3~4시간씩 성경을 소리 내서 통독했어요. 무슨 사활이라도 걸린 것처럼 읽었죠. 세 달 만에 성경을 세 번 완독했어요. 그땐 정말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 몰라요. 다시 하라 그러면 못해요.(웃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하나님이 준비를 시키신 게 아닌가 싶어요. 그때 성경 읽으면서 궁금한 게 많아졌거든요. 신대원에 가서는 정말 다른 게 보이지 않았어요. 칠판과 교수님 입만 보이는 상태였어요.(웃음) 3년간 말씀 잘 공부해야겠다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거든요."

경주마가 눈가리개를 한 것처럼 다른 데 시선을 돌리지 않은 탓인지, 여성 안수를 허용하는 교단 제도 탓인지 신대원에서는 별다른 성차별을 느끼지 못했다. 교수들도 여성 안수가 성경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했고, 목회의 길에 든 여성 신학생들을 격려해 주었다. 학교에서 체계적으로 신학을 배우는 일은 갈급했던 예라 씨에게 큰 도움이 됐다. 강의로, 때로는 삶으로 좋은 가르침을 준 몇몇 교수에게는 지금도 존경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목회자 청빙 공고 사이트에서 여성 목사를 찾는 일은 드물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목회자 청빙 공고 사이트에서 여성 목사를 찾는 일은 드물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하지만 신대원 2학년 때부터 부임한 교회 사역 환경은 달랐다. 사역했던 교회는 여성 안수를 허용하지 않는 교단 소속이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그 일은 아이러니하게도 예라 씨 인생에서 정말 기쁜 일이 겹친 때 일어났다. 2019년 봄, 예라 씨는 임신 사실을 알게 됐고 강도사 인허도 받았다. 둘 다 기다리던 일이라 그에게는 겹경사였다. 부교역자들이 모인 채팅방에 소식을 알렸다.

"반응이 두 개로 갈리더라고요. 둘 다 축하해 주는 사람과 임신만 축하해 주는 사람. 저도 강도사 인허 사실을 알릴지 고민이 많았거든요. 교회가 여성 강도사를 인정하지 않는 교단 소속이니, 이 교단 분들은 좀 곤란해하실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정말 남성 목사님들과 나이 많은 여성 전도사님은 '강도사 인허'라는 말은 아예 못 들은 것처럼 행동하시더라고요. '강도사'라고 불리는 걸 기대한 게 아니에요. 그래도 '우리 교단은 여성 강도사를 인정하지 않아서 아쉽게 됐네'라는 말 정도는 해 줄 수 있는 거 아닌가 싶었던 거죠.

 

그해 가을 남성 전도사 한 분이 강도사 인허를 받았어요. 교역자 모두가 축하해 주고 사무실 분위기도 한껏 들떴죠. 교회 주보에도 바로 '강도사'로 호칭이 바뀌었고요. 물론 저도 진심을 담아 축하해 줬지만 그 상황이 달갑게 다가오지만은 않더라고요. 제가 강도사 됐을 때는 아예 모른 척하시던 목사님이 저에게 강도사 되신 분 선물은 준비했냐고 물으셨어요. 그날은 하루종일 머릿속에서 커다란 종이 댕댕 울리는 것 같았어요. 저를 '사람'이기 전에 '여성'으로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죠."

예배 시간에도 '중요한 역할'은 남성 사역자가 맡고 여성 사역자는 배제됐다. 기도회 때 앞자리는 늘 남성 목회자들 자리였다. 교인들이 기도에 집중할 수 있도록 북돋는 자리였다. 기도회가 시작되기 전, 남성 목회자들은 자연스럽게 앞자리로 가고 여성 목회자들은 자연스럽게 뒷자리로 갔다. 왜 이렇게 성별에 따라 역할이 다른지 아무도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

예라 씨가 속한 대한예수교장로회 백석(장종현 총회장)은 여성 안수를 허용한다. 여성 안수를 허용하지 않는 교단 여성 사역자들이 백석으로 넘어가 목사 안수를 받는 일도 자주 있다. 이렇게만 보면 여성에게 많이 열려 있는 교단 같지만, 개교회 현실은 다르다. 예라 씨는 가끔씩 교역자들 청빙 공고가 모여 있는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검색해 본다. '여성 목사'를 원하는 곳이 있는지 찾아보지만 곧 한숨을 쉬며 인터넷 창을 닫는다.

"안수를 주기는 하지만 여성 사역자의 입지가 좁다는 점에 있어서는 다른 교단과 별다른 게 없는 것 같아요. 사이트를 뒤져 봐도, 여성 목사를 찾는 데가 정말 없더라고요. 페이지를 넘기고 넘겨서 겨우 한두 군데 찾아도, 여성 안수를 주지 않는 교단에서 여성 전도사님들이 하시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일이죠. 심방 따라다니는 역할 정도. 제출 서류 부분에 괄호 치고 '설교 동영상은 첨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라고 쓰여 있어요. 애초에 설교 능력은 볼 필요가 없다는 거죠. '담임목사님이 여성 사역자들과는 동역하지 않는 게 목회 철학입니다'라고 쓴 청빙 공고도 봤어요."

육아휴직? 다음 세대에는 되려나…
 한국교회는 육아하는 여성 사역자들을 위한 제도가 없다. 극소수 교회가 육아휴직 등을 실천하고 있지만, 교단 차원의 논의는 전무하다. 
 한국교회는 육아하는 여성 사역자들을 위한 제도가 없다. 극소수 교회가 육아휴직 등을 실천하고 있지만, 교단 차원의 논의는 전무하다. 

예라 씨는 2018년 결혼해 2019년 말 아이를 낳았다. 사역은 자연스럽게(?) 그만두게 됐다. 더 하고 싶었는데 못 하게 된 건 아니었다. 자신도 당분간은 아이를 키우고 싶었고 교회에서 맡고 있던 부서에도 새로운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교회는 임신 기간 그를 배려해 주었고 출산을 앞두고는 "3개월 쉬고 다시 오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그 제안이 고마웠다.

1년 반 육아에 전념했다. 문제는 돌아갈 타이밍이다. 돌봄 노동이 쉽게 여성에게 부여되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출산은 자주 경력 단절로 이어진다. 여성 사역자의 경우 상황은 더 열악하다. 20~30대 젊은 여성 사역자의 경우 대부분 파트타임으로 일한다. 보호자 중 누군가 육아를 위해 일을 그만둬야 할 때, 고용 안정성이 낮은 사람이 그만둘 확률이 크다. 그리고 일을 쉬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자존감은 낮아진다.

"언제 다시 사역할 수 있을지가 요새 가장 큰 고민이에요. 다시 돌아가도 파트타임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그렇고, 벌써 사역 쉰 지가 1년 반이 넘어가니까 현장성이 떨어진 느낌이랄까…. 혹시 둘째를 가지게 되면 또 금방 나와야 할 수도 있으니까요. 과연 교회에서 반겨 줄까 싶어요. 교회들이 언제든지 육아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는 여성은 원하지 않는 것 같아요."

미진한 부분도 있지만, 일반 직장에는 '남녀 고용 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른 육아휴직 제도가 있다. 육아의 책임을 여성에게만 지우는 현상을 탈피하고자 사회는 점점 남성들의 육아휴직도 적극 권하는 분위기로 가고 있다. 하지만 교계에서는 교역자들의 육아휴직 제도에 대한 논의가 전무하다. "그런 제도가 있으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이런 환경에서 대체 언제 생길까요? 저에게는 지금 당장 일인데…. 우리 다음 세대에서는 되려나요?"

안전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와 공간

"어쨌든 저는 하나님을 전할 때 가장 살아 있다고 느껴요."

목사가 되고 싶다. 목사가 될 준비가 돼 있다는 뜻은 아니다. 그저 하나님이 부르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회의 꿈을 가지게 됐으니 목사가 되고 싶은 것이다. 같은 고민을 하는, 앞으로 하게 될 사람들을 위해서도 목사 역할을 감당하고 싶다. 여성 목회자의 길을 조금이나마 넓히는 일이 될 테니까. 예라 씨는 여성 목회자만 감당할 수 있는, 여성의 시각으로만 발견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믿는다. 그런 일을 잘 감당하고 싶다고 했다.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어린이·청소년 사역이다. 장년층을 바로 세우는 일보다 어렸을 때부터 가치관을 잘 잡아 주는 일이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아이들에게 신앙에 대한 '의심'과 '질문'이 필요하다고 했다. 강압적으로 달달 외우게 하는 교육이 아니라, 의심을 품어도 질타·지적하지 않는 교육, 아이들 스스로 질문하고 고민하면서 하나님을 깊게 생각할 수 있게 해 주는 목회를 하고 싶다고 했다.

"3년간 사역하면서 아이들을 계속 그렇게 대했어요. 처음에는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던 아이들이 점점 예리하고 경이로운 질문을 던지더라고요. 아이들에게는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열어 주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교계의 성차별적 현실을 그대로 두지 않을 거라면, 여성 사역자들을 가르치려 하지 말고 일단 들어야 하는 것 아닐까.
교계의 성차별적 현실을 그대로 두지 않을 거라면, 여성 사역자들을 가르치려 하지 말고 일단 들어야 하는 것 아닐까.

바라는 점이 있다면, 여성 사역자들이 마음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육아에 전념하며 자존감이 닳아 가는 기간, 예라 씨에게 힘이 된 건 같은 처지에 있는 여성들과의 소통이었다. 기자와 만나 이야기하기가 부담스럽고 '내가 말해서 뭐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용기 내어 인터뷰에 응한 이유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여성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 싶었다.

"여성 사역자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혼자 육아의 모든 걸 감내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에서 살아가는 것 같아요. '여자라면 누구나 그렇게 사니까 너무 감정적으로, 힘들게 생각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는데요. 그래도 우리가 아프다고, 위로가 필요하다고 말할 때 들어 줄 수 있는 귀가 많이 필요해요. 근데 늘 가르치는 사람만 많은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파요. 여성 사역자들이 자기 고민을 드러내 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도 많지 않고….

 

지금은 아이를 키우는 게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고 묵묵히 감당하며 살아가는 여성들이, 결코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건 아니거든요. 혹시나 자존감·자신감이 많이 떨어져 있는 여성 사역자분이 있다면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 누구보다 귀하고 가치 있는 일, 생명이 자라게 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너무 스스로를 탓하며 이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신과 같은 고민을 하고 당신을 응원하는 사람이 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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