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차별과 혐오를 반대하는 그리스도인들이 국회의사당 앞에 모여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했다. 현장에서 차별금지법 제정 활동을 해 오며 느낀 점과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운동에 함께하는 이유 등을 나눴다. 임보라 목사(섬돌향린교회), 정경일 원장(새길기독사회문화원), 자캐오 신부(용산 나눔의집), 이동환 목사(영광제일교회), 장예정 활동가(천주교인권위원회) 등은 5월 20일 기자회견을 열고, "연내에 차별금지법을 조속히 제정하라"고 외쳤다.

지난 4월 15일부터 매주 목요일 국회 앞에서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목요행동이 진행되고 있다. 5월 20일 열린 6차 목요행동에는 기독교인들이 나섰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지난 4월 15일부터 매주 목요일 국회 앞에서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목요행동이 진행되고 있다. 5월 20일 열린 6차 목요행동에는 기독교인들이 나섰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무지개예수에서 활동해 온 임보라 목사(섬돌향린교회)는 <퀴어 성서 주석>(무지개신학연구소) 번역·출판을 준비하면서 이단 시비 논란도 일었지만, 혐오와 차별에 반대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힘을 얻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임 목사는 "차별과 혐오를 주장하는 이들이 성서를 근거로 이야기할 때 '성서에서 무엇을 발견할 수 있고, 발견해야 하는가', '성서는 퀴어 커뮤니티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와 같은 고민을 힘겹게 이어 왔다. 결과적으로 올해 4월 텀블벅으로 진행된 출판에 889명이 참여해 4300여 만 원이 모였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정도로 열망을 가지고 있구나', '그동안 성서의 이야기를 다각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통로가 없었구나' 느꼈다"고 말했다.

임 목사는 차별금지법 제정이 너무 긴 세월 미뤄졌다고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차별·혐오 사건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현수막에 적힌 2021이라는 숫자에 계속 눈을 비비게 된다. 정부나 정치인들이 '사회적 합의', '나중에'를 이야기하는 사이에 종교계는 온갖 혐오의 논리를 쏟아 냈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은 생존의 문제이고,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는 참복음을 실천할 수 있는 근간이 되는 우리 모두의 법"이라고 했다.

임보라 목사(섬돌향린교회)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 올해 상반기 <퀴어 성서 주석>(무지개신학연구소)을 출판했다. 그는 책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호응에 놀랐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임보라 목사(섬돌향린교회)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 올해 상반기 <퀴어 성서 주석>(무지개신학연구소)을 출판했다. 그는 책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호응에 놀랐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정경일 원장(새길기독사회문화원)은 "코로나19에 대한 잘못된 대응으로 한국 교회가 신뢰를 잃어가는 가운데에서도 유독 반공·반동성애 운동 만큼은 맹렬하게 일어났다"며 "역사는 지난 2020년과 올해를 한국교회의 가장 어두운 시간으로 기억할 것"이라고 했다.

정 원장은 "사회가 교회 주류 언어는 혐오·차별인 것처럼 여기고 있을 때, 다른 시각·관점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기억에 남도록 해야 한다. 코로나19 이후에도 혐오와 차별이 없는 평등한 세상을 위한 목소리를 만들어 가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중요 과제이자 의무"라고 말했다.

이동환 목사(영광제일교회)는 교단 내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분위기가 존재하지만, 함께 대화할 수 있는 공론장을 계속해서 만들어 가겠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이동환 목사(영광제일교회)는 교단 내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분위기가 존재하지만, 함께 대화할 수 있는 공론장을 계속해서 만들어 가겠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성소수자 축복식에 참여했다가 교단에서 중징계를 받은 이동환 목사는 자신이 직접 겪은 교단의 경직된 분위기를 이야기했다. 이 목사는 "전반적으로 목회자들이 차별금지법이나 성소수자 인권에 대해 보수적인 것은 맞지만, 그중에서도 인신공격을 하거나 본부 게시판을 도배하는 등 극렬하게 반대하는 사람은 소수다. 문제는 그들이 힘·돈·권력을 가진 대표자의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그런 목소리가 마치 교단 전체를 대표하는 것처럼 과잉 대표되고, 권력을 가지지 않은 다수의 사람이 침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목요행동 팀장 장예정 활동가는 천주교가 그동안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입장을 유예하거나 숨겨 왔지만, 이제는 함께 이야기할 때라고 했다. 그는 "개신교가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이유는 그 자체를 두려워한다기보다 세상이 앞장서 나아갔을 때 찾아올 변화가 두려워서다. 이들은 차별금지법이 제정되고 다양성을 인정하면 교회가 무너지리라 생각한다. 보수적인 가족관이나 성 윤리가 과거에는 신자를 끌어모으는 요소였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또 "오늘날 사람들이 교회 공동체를 떠나는 이유는 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교회는 변화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다양한 사람들을 끌어안고 이해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천주교 신자인 장예정 활동가는 개신교든 천주교든 기존의 보수적 관점을 고수하기보다 변화하는 사회에 발맞춰 가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천주교 신자인 장예정 활동가는 개신교든 천주교든 기존의 관점을 고수하기보다 변화하는 사회에 발맞춰 가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참석자들은 순서를 마치며 지난해 7월 22일 국회 앞 성명에 이어 다시 한 번 '차별과 혐오 없는 평등 세상을 바라는 그리스도인들'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해가 바뀌고도 국회 차원의 법 제정 노력은 지지부진하고 차별과 혐오에 시달리는 이들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며 모두를 위한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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