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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한국교회가 코로나19에 어설프고 일방적으로 대응한 탓에, 사회적 신뢰도가 더 훼손되어 곤혹스러운 나날입니다. 그나마 한국교회가 '교회 본질의 회복이 급선무'라는 공동 인식을 하게 된 것은 다행입니다. 서구 교회에 비하면 토대가 얇지만, 뿌리를 들여다보고 그루터기에서 싹을 틔워야 한다는 점에서 '한국 선교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원두우(Horace Grant Underwood, 1859~1916) 선교사의 신학과 삶, 첫 기독 대학 연세대학교의 정신은 소중합니다.

"주여!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고 있는 땅에, 저희들은 옮겨 와 앉았습니다. 그 넓고 넓은 태평양을 어떻게 건너왔는지, 그 사실이 기적입니다. (중략) 지금은 예배드릴 예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와 의심과 천대함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제 믿음을 붙잡아 주소서."

원두우 선교사가 실제로 했던 기도는 아닙니다. 정연희 소설가가 원두우 선교사의 신앙과 선교 의지를 잘 담아 쓴 기도 내용입니다. 소설가가 담은 열망대로, 척박한 이 땅에 하나님의 은총이 풍성하게 임하여 많은 교회와 학교·병원이 설립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당시 한국교회는 민족의 개화와 독립운동에 앞장섰습니다.

연세대학교에서 모임이 있을 때면 집에서 안산 자락을 거쳐 연세대학교 교정으로 걸어갑니다. 그때마다 담쟁이로 단장한 석조 본관 앞에 있는 원두우 선교사 동상과 만납니다. 그는 YMCA 회장, 피어슨기념성경학교장, 새문안교회 목사, 한국어 문법 및 한영사전 편찬, 경신학교·연희전문학교 설립자로서 한국 생활 31년을 성실히 수행했습니다.

'복음 전도와 사회 선교의 균형'을 추구하고, 에큐메니컬 운동을 실천하여 교파 연합의 기초를 놓은 걸출한 인물이지만, 동상이 작고 소박해서인지 친근하게 여겨집니다. 거기서 대강당을 지나 학생회관 뒤로 가면 루스채플이 나옵니다. 이 독특한 건축물에 대해 정종훈 교수(세브란스병원 원목실장)는 <연세대학교 루스채플 이야기>(연세대학교대학출판문화원)에서 이렇게 증언합니다.

"독수리가 창공을 웅비하려는 듯한 형상을 지닌 루스채플은 연세의 교훈인 진리와 자유, 기독교 정신을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있는 산실이다." (3쪽)

루스채플 예배당. 이근복 그림
루스채플 예배당. 이근복 그림

루스채플의 특이한 점은 캔틸레버(cantilever, 외팔보)라는 현대건축 기법으로 특별한 지붕을 만들고, 다양한 한국 전통문화 요소를 융합해 건축한 것입니다. 루스채플 설계는 건축가 김석재 장로가 맡았습니다. 그는 '한국전통 건축의 미학'을 현대건축으로 구현하는 것을 고민하던 중, 어느 날 새벽 서울 광화문 사거리를 지나다가 지금의 교보빌딩 앞에서 '고종 즉위 40년 기념비전'을 보고 디자인 모티브를 얻습니다. 비각의 곡선 지붕이 조명을 받아 마치 하늘 위에 둥실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에서 루스채플의 형태를 착안했습니다. 양쪽으로 길게 튀어나온 지붕은 연세대 상징 독수리가 날개를 편 모습을 담았습니다.

루스채플 건축 장소도 특별합니다. 동산처럼 땅이 볼록 솟아오른 지형으로 수경원(사도세자 어머니 영조의 후궁 영빈 이 씨의 묘)의 터였습니다. 김석재 장로는 이 구릉형 땅 모양을 그대로 살려 설계했습니다. 하늘에 떠서 아래쪽으로 굽은 지붕의 곡선과 땅에서 위로 솟아오른 언덕 곡선의 양쪽 끝이 연결되는 구도가 되도록 연출했습니다. 동과 서로 뻗어 나간 지붕은 자유의 확장을 상징하는데, 이 또한 "동양과 서양의 만남이자 고대와 현대의 만남을 융합한 결과"(32쪽)입니다.

루스채플의 구석구석에는 흥미로운 요소가 많습니다. 지붕을 받치는 기둥 위쪽은 전통 건축의 공포栱包 부분을 연상하도록 디자인했습니다. 우리나라 전통 종('평화의 종')도 달려 있고, 전통악기 편종과 한국적인 미를 연출하는 석등과 청사초롱도 있습니다. 채플 안으로 들어가면 투명 유리창을 통해 하늘과 나무를 훤히 볼 수 있고, 유리창 창살은 한옥 창살의 전통 문양을 하고 있습니다. 청·적·백의 스테인드글라스와 모자이크 외벽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상징하는데, '복음 전파'라는 교회의 본질적 사명을 일깨웁니다. <연세대학교 루스채플 이야기>는 루스채플에 있는 예술 작품도 자세히 안내하고 있습니다. 파이프오르간, 김학수 화백이 그린 한국화풍 예수 시리즈 성화들, 예수상 조각, 서예 작품 등입니다.

루츠채플 모습은 건축가 정시춘 선생 말을 그대로 지킨 것처럼 보입니다.

"교회 건축은 하나님 백성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그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그리스도의 복음과 기독교 문화를 표현하는 중요한 상징이다." [정시춘, <세계의 교회 건축 순례>(발언), 40쪽]

루스채플에서 예배하는 연세대학교대학교회는 1931년 4월 5일 부활절 예배로 시작되었습니다. 교정에 독자적인 교회를 세우려 했던 연세대는 '잡지의 왕'이라 불린 미국의 언론 기업인 헨리루스재단에서 20만 불을 기증받아 그 이름을 딴 루스채플을 건축했고, 1974년 9월 봉헌식을 열었습니다. 2006년에는 본래의 건물에 원일한홀(원일한 박사는 원우두 선교사 손자)을 별관으로 증축했습니다. 정종훈 교수는 책 말미에 대학교회가 새로운 비전을 추구하고 있다고 기술합니다. 이는 한국교회가 공유해야 할 가치입니다.

△교파를 초월해 한국교회의 모범적 교회로 자리매김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생활 신앙의 기독교인을 배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누구라도 환영하고 환영받는 교회가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대학 캠퍼스 학원 선교 전초기지로서 역할을 감당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현 연세대 교목실장 이대성 교수가 피력한 선교관도 한국교회가 귀담아들으면 좋겠습니다. 올해 초 <국민일보>에 실린 '아카펠라풍의 선교'라는 제목을 글 중에 일부분을 인용합니다.

"(전략) 유럽이 기독교 문명에 속해 있을 때 교회는 모든 삶의 중심이었다. 세례 증명서가 출생증명서 역할을 하던 시대에는 교회와 분리된 다른 영역은 없었다. 다만 전쟁 등의 비상시에만 교회를 떠나 야전 채플에서 예배를 드렸다. 그러나 계몽주의와 세속화의 흐름 이후 유럽에서 교회는 더 이상 일상생활의 중심 역할을 하지 못한다. 교회는 이전과 같은 권위와 권리를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 더구나 우리나라와 같이 선교를 받은 지역에서는 역사상 어느 한순간도 교회가 생활의 중심인 적은 없었다. 교회 중심의 신학, 선교, 예배는 어떻게 보면 허상이다. 오늘날 전 세계 모든 기독교 예배 공동체는 교회의 성격보다는 채플의 성격을 띠고 있다. 교회 모델에서 채플 모델로의 전환은 유대교가 성전 중심에서 회당 중심으로 전환한 것 이상의 중요한 인식 전환이다. (하략)"

그러면서 교회가 '선교 대상자의 교회 출석'을 넘어서는 안목을 지녀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교회는 선교 대상자가 각 영역에서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자각하고 전문적으로 그 사명을 수행하여 하나님나라 건설에 동참하는 데까지 나아가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급변하는 세계의 흐름 속에서 기독교 선교를 할 때 '아카펠라 방식'(문자적으로 '채플의 방식')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군목·교목·원목 등 이미 여러 영역에서 오랫동안 선교해 온 채플린(chaplain)들이 서로 협력하고 신학적 고민을 나눌 수 있도록 관계를 구축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합니다. 그렇게 교회의 선교를 아카펠라풍으로 바꾸기 위해 인재를 훈련하고, 선교 목적을 교회가 아닌 하나님나라에 두는 방향 전환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저는 연세대학교대학교회 교목실의 초청을 받아 3~4번 설교한 적이 있습니다. 올해 4월 11일, 부활절 하루 전 루스채플에서 녹화한 비대면 부활주일 설교를 다음과 같이 마무리했습니다.

"교우 여러분! 코로나19가 은밀한 강자이지만, 우리는 하나님 사랑의 역사인 부활 신앙으로 능히 승리할 수 있습니다. 부활 신앙으로 공포와 두려움에서 자유인이 된 우리는, 부활의 일상을 통하여, 이웃에게 생명과 평화, 희망과 기쁨의 기운을 불어넣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나라를 추구하기를 다짐하는 여러분에게, 성령 하나님의 충만하신 임재를 기원합니다."

더 심각해진 코로나19 상황에서 2020년을 갈무리해야 하는 참담한 때이지만, 다시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며 새로운 소망과 기쁨으로 충만하시기를 간구합니다.

이근복 / 한국기독교목회지원네트워크 원장, 전 크리스챤아카데미 원장. 성균관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 새민족교회 담임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육훈련원장을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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