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기고는 <뉴스앤조이>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부활은 참 생명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는 패배해도 하나님은 패배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의 실패를 통해서도 하나님은 일하신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꿈꾸시는 세상을 현재화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그렇기에 명사가 아니라 동사입니다. 예언자가 꿈꾸었던 해함도 상함도 없는 세상의 꿈, 예수님이 꿈꾸셨던 하나님나라의 꿈을 버리지 않는 것이 곧 믿음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려 할 때 주님은 생생하게 우리 가운데 현존하십니다. (중략)

 

부활은 우리에게 우울에 빠지지 말고 생을 경축하며 살라고, 주변에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라고 말합니다. 따뜻함과 친절함과 명랑함으로 사람들이 마음 편히 머물 공간을 마련하십시오. 지금 벼랑 끝에 내몰린 이들의 설 땅이 되어 주기 위해 애쓰고, 절망의 어둠에 갇힌 이들을 가로막고 있는 돌문을 굴려 주십시오. 그때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비애감은 기쁨과 감사로 바뀔 것입니다. 황폐한 땅이 숲으로 복원되듯이, 부활하신 주님과 동행하는 우리 주변에 하나님나라의 생태계가 형성되기를 빕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빛을 받아 환히 열린 미래를 향해 나아가십시오. 아멘."

4월 4일 청파교회 부활절 예배에 참석해 아내와 함께 들은 김기석 목사님의 설교입니다. 코로나19 이후 3번 강단에서 설교한 적은 있지만 회중석에서 예배드리기는 처음이었는데, 첫 대면 예배에서 부활하신 주님의 빛을 받는 환희를 누렸습니다.

2017년 11월 문호교회에서 예배드리고 '그림으로 만나는 한국교회' 연재를 시작해 3년 반 동안 진행해 왔는데, 마지막 교회는 청파교회로 정했습니다. 청파교회가 한국교회가 나아갈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나침판인 까닭입니다. 2008년 펴낸 <평화의 길 생명의 길 - 청파교회 100년사> 발간사에서 김기석 목사님은 "교회가 교회 되기 위해서는 모범이 되는 교회(text-church)가 필요합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 교회에 주시는 소명이라 여겨집니다"(6쪽)라고 했는데, 이런 바람이 이뤄지는 것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청파교회가 '본보기 교회'로 나아가는 밑거름은 김 목사님의 목회 철학과 성경관 그리고 감동적인 설교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교우들과 다른 교역자들 동행이 든든한 힘이 됐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찾는 인간의 이야기와 인간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이야기가 씨줄과 날줄로 엮어진 텍스트입니다. 눈 밝은 사람들은 인간들이 빚어내는 삶의 이야기 속에서 하나님의 숨결을 느끼고, 성경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마음으로 알아차려 마땅히 가야 할 길로 삼습니다. 성경은 읽는 이들을 익숙한 세계가 아니라 낯선 곳으로 인도합니다. 성경을 읽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 낯섦을 받아들이고 그 낯섦을 통해 더 큰 세계로 발돋움하려는 열망입니다. (중략) 교회는 역사 속에서 많은 과오를 저질러 왔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교회를 통해서도 일하십니다. 그렇기에 목회적 상황과 성경 메시지를 잘 버무리는 일은 목회자들에게 중요한 과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설교는 텍스트와 콘텍스트를 대면시키면서 그 속에서 빚어지는 광휘를 드러내는 과정입니다." [데이비드 L. 바틀렛·바바 브라운 테일러, <교회력에 따른 복음서 설교 2021년>(동연)에 실린 김기석 목사 '추천의 글', 7쪽]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하나의 정답을 발견하는 과정이 아니라, 그 갈피 속에 깃들어 있는 인간 삶의 복잡한 계기들을 발견하고, 그 속에 담긴 메시지를 오늘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재맥락하는 일이 아닐까? 텍스트의 삶의 자리를 이해하고, 그 형성사를 일람하고, 문헌학적 고찰을 하는 일이 기본이지만, 오늘의 관점에서 성경을 향해 질문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우리가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김기석 '질문하는 신앙', '한국교회 아카데미' 사전 자료집, 73쪽)

<평화의 길 생명의 길>을 살펴보니, 청파교회의 뿌리는 '연화봉교회'와 '용산교회'였습니다. 1907년 상동교회가 청파 지역에 기도처를 세운 덕분에, 양우로더(1877~1943) 전도부인은 전덕기·이필주 목사의 도움을 받아 이듬해 '연화봉교회'를 설립했습니다. 교회 설립 목적은 외세의 침탈로 나라가 흔들리던 때, 변두리에 살던 조선인들에게 새 희망을 주고자 함이었습니다. '용산교회'는 침체된 분위기를 바꾸고자 일어난 미 남감리회 전도 운동의 결실로 1929년 원익상 목사와 김세라 전도부인이 설립했습니다.

1930년 미감리회와 남감리회가 연합해 '기독교조선감리회'를 창립하자, 같은 지방회에 속하게 된 연화봉교회·용산교회는 합병을 추진합니다. 그렇게 1937년 12월 '청엽정교회'가 탄생합니다. 청정엽교회는 해방 후 새 예배당을 마련하고 '청파교회'로 새롭게 시작했습니다. 1950년 한국전쟁에서 정달웅 전도사가 피랍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1970년 박정오 목사가 담임목사가 돼 민주적 운영과 개혁, 참신한 설교로 '은혜가 풍성한 교회'라는 평을 받으며 발전했습니다. 교회 표어였던 '언제나 어디서나 그리스도인'은 청파교회의 상징이 됐습니다.

청파교회 예배당. 이근복 그림
청파교회 예배당. 이근복 그림

'청파교회' 하면 자연스럽게 김기석 목사님이 떠오릅니다. 김 목사님은 1981년 전도사로 일했고, 1990년 부목사로 사역하다가 1997년 담임목사가 됐습니다. <평화의 길 생명의 길>은 그후 청파교회가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교회가 됐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소박하기 그지없는 교회 홈페이지에는 한국교회가 공유하고 실천할 가치들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내세우기보다 아는 만큼 실천하기 위해 몸을 낮추는 교회, 돈과 지위와 권력이 없어도 이 땅에서 행복을 누릴 수 있음을 보여 주는 교회, 내가 나를 발견하려고 애쓸수록, 내가 가난할 수록, 내가 깊이 이해할수록 더욱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됨을 확인시켜 주는 교회, 부자들과 권력자들의 소리보다는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의 소리를 경청하는 교회, (중략) 인간의 탐욕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창조물인 자연 세계가 파괴되는 것에 반대하여 뭇 생명을 귀하게 여기며 자원을 아끼는 녹색 교회."

참 소중한 신앙적 가치들인데, 그 밑에 있는 구절이 더 울림을 줍니다.

"우리는 아직 이런 목표를 온전히 이루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더 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날마다 새로워질 것입니다. 이 멋진 영적 순례에 동참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2020년 목회 보고서'에는 청파교회의 이런 지향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잘 나타나 있습니다. 김기석 목사님은 '목회 서신'에서 코로나19가 신앙생활에 큰 도전이 됐지만, 교우들이 '언제나 어디서나 그리스도인'이란 표어대로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감사와 신뢰를 보냅니다. 그리고 어려움에 처한 미자립 교회를 위해 상당히 많은 예산을 사용했다고 밝히고, 갈등과 투쟁이 난무하는 사회에서 교회가 혐오와 배제, 분열의 씨가 된 현실에 통탄하며 새로운 교회 운동의 필요성을 제기합니다. 마지막으로 함민복 시인의 시 '산'을 인용하며 청파교회가 산이 돼 교우들과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길 소망하고 있습니다.

"물은 궁극적으로 '바다'가 됩니다. 바다는 가장 큰 물이 됩니다. 그리고 어떠한 것도 대적할 수 없는 압도적 위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위력은 가장 낮은 곳에서 모든 시내를 다 받아들이기 때문에 생깁니다. 그래서 이름이 '바다'입니다. 좋은 '하방연대下方連帶'의 교훈입니다. (중략) 연대는 물처럼 낮은 곳과 하는 것입니다. 잠들지 않는 강물이 되어 바다에 이르는 것입니다. 바다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신영복, <담론>(돌베개), 134~135쪽]

저는 '목회 보고서'에서 김기석 목사님과 교우들이 물과 같이 '하방연대'를 실천하며, 어려운 교회·단체와 약한 이들에게 든든한 비빌 언덕이 되고 있는 것을 봤습니다. 청파교회는 많은 교회·기관·단체와 27곳의 '비전 교회(미자립 교회)'를 지원하고 있는데, 이번에 새로 후원한 교회도 2곳이나 됐습니다. 큰 금액을 들여 코로나19 상황에서 어려움을 겪는 작은 교회·단체를 지원하는 데도 힘썼습니다. 사회봉사부·장학회 활동도 활발하고 '청파햇빛발전소' 수익금 전액을 미자립 교회 지원에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주로 온라인 예배를 드린 2020년에 새로 등록한 교우가 136명이나 된다는 것은, 이런 진정한 교회를 찾는 이들이 많다는 증거입니다.

김기석 목사님은 제가 목회자·신학생·평신도를 위한 배움터를 운영하며 강사로 초청할 때마다 늘 알찬 내용으로 강연해 줬고, 늘 참가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습니다. 얼마 전 한국기독교목회지원네트워크 인문학 강좌 '그림으로 만나는 기독교'에서도 그림에 대한 심오한 안목으로 기독교의 가치를 설파했습니다. 흔들림이 심한 우리 시대에 김 목사님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중심 추가 되고 있다는 사실은, 그의 설교와 강연(CBS '잘 믿고 잘 사는 방법' 등)들이 소셜미디어에서 엄청난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는 데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최근 한국교회의 추악한 민낯을 보여 주는 두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신정호 총회장이 명성교회 '김하나 목사 직무 정지 가처분 소송'의 판결을 앞두고 명성교회 불법 세습을 지지하는 탄원서를 재판부에 제출했습니다. 총회장이 임원회의를 거치지 않고 개인적으로 개교회를 편을 들며 총회의 법과 질서를 부정하는 저급한 인식 수준을 그대로 보여 줬습니다. 총회 재판국의 판결을 준수하도록 해야 할 교단 대표가 '김하나 목사 청빙 무효'를 판결한 재판국의 재심을 가리켜, 교단에 논란과 분쟁을 야기한 '여론 재판'으로 규정·매도했습니다. 또 105회 총회에서 12개 노회가 헌의한 '104회 총회 명성교회 수습안 철회'가 철저히 무시된 까닭에 사회 법정에 제소한 것을 가리켜, "교단 분열과 교세 약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폄하했습니다.

지난 4월 4일, 한국교회 주요 교단이 주최한 '2021년 부활절 연합 예배'가 사랑의교회(오정현 목사)에서 열렸습니다. 대법원이 이 예배당을 '위법 건축물'이라고 판결했는데도 사랑의교회는 그동안 어떠한 사과·시정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버젓이 공적 행사를 연 것은 한국교회가 공공성에 얼마나 무지한지 보여 준 사건입니다. 또 이날 예배에 참석한 서울시장 후보들을 비롯해 많은 정치인을 일일이 소개하여 예배의 거룩성을 훼손했고, 늘 소외된 이들 편에 섰던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하는 예배에서 성소수자와 차별금지법을 노골적으로 비난했다고 하니 참으로 낯 뜨겁기 그지없습니다.

"나는 소망합니다. / 내가 누구를 대하든 그 사람에게 / 꼭 필요한 존재가 되기를 (중략)
나는 소망합니다. / 모든 사람이 / 언제나 소망을 품고 살기를." (헨리 나우웬, '나는 소망합니다')

참혹한 교회 현실에서 이 시를 읽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한국교회가 청파교회처럼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돼, 절망과 고통 속에 있는 이들이 소망을 품을 수 있기를!

그동안 부족한 제 그림을 사랑해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늘 함께하시길 간구합니다. 이근복 올림.

이근복 / 한국기독교목회지원네트워크 원장, 전 크리스챤아카데미 원장. 성균관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 새민족교회 담임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육훈련원장을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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