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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됐지만, 여전히 코로나19 감염에 대한 염려로 도처에 불안감이 만연해 있습니다. 노동자들의 산업재해 사고, 아동 학대 사건 등으로 우울한 분위기입니다. 그래도 희망을 품고 살아야 하는데…. 평화운동가 박노해 시인은 '거짓 희망'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전략) 더는 희망을 말하지 마라 / 이 땅에 희망은 어디에도 없다 / 이제 희망을 찾지도 마라 / (중략) 희망은 / 헛된 희망을 버리는 것 / 희망은 / 거짓 희망에 맞서는 것 / 정직한 절망이 희망의 시작이다 / 눈물어린 저항이 희망의 시작이다 (하략)"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느린걸음), 477~478쪽]

희망을 추구하는 일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진정한 희망에 대한 갈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일제강점기 압제에서 민족의 참된 희망을 일구기 위해 힘쓴 경북 영주 내매교회 출신들이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9일, 경북 영주문화원 주최 '제11회 영주 역사 인물 학술 대회'에서 연구·발표한 강병주 목사와 강신명 목사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기조 발표에서 임희국 교수(장신대 은퇴)는 우리 시대 상황에 비추어 두 분에 대해 의미 있는 진술을 남겼습니다.

"지금의 상황은 19세기 말 조선의 상황과 유사하면서도 대비된다. 그때처럼 지금도 우리는 문명의 전환을 요구받고 있고, 그때는 서구 문명이 새로운 대안이었는데, 그러나 지금의 시대는 그때와 달리 전혀 새로운 문명의 전환을 요청한다. 코로나19 사태가 문명의 전환을 요청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 상황에서 우리는 강병주·강신명을 다시 새겨볼 필요가 있다. 강병주는 당시의 조선에게 아주 낯선 문명인 서구 문명을 적극 받아들이면서 그 문명을 소개하는 기독내명학교를 운영하고 새 시대를 열어 갔다. 또 그는 새로운 문명을 담는 그릇인 한글을 발전시키는 지대한 역할을 했다. 또 그는 고향 영주 사람이자 성내교회 목사로서 피폐한 농촌의 경제를 일으키는 데 10년 동안 혼신의 힘을 쏟았다. 그의 아들 강신명은 새로운 문화(음악 작곡, 체육)를 창출하고 보급하는 데 기여했다. 이 부자父子는, 마치 황무지를 옥토로 개간하듯, 20세기 초중반 교육·경제·문화 발전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 무에서 유를 창의적으로 창출해 내었다." (<제11회 영주 역사 인물 학술 대회 자료집>, 32쪽)

강신명 목사는 제가 처음 출석해서 신앙생활한 새문안교회 담임목사님이셨고, 저희 부부의 결혼 주례까지 맡아 주셨는데, 이번에 목사님에 대해 많은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목사님은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총회장을 지내셨습니다. 마찬가지로 동생 강신정 목사도 한국기독교장로회에서 총회장을 역임한 것을 알게 됐습니다. 강신정 목사는 1953년 제38회 총회에서 김재준 목사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당시 조선신학교가 직영 신학교로 있는데도 새로운 신학교 설립을 가결하는 모습을 보고 교단에서 탈퇴하기로 합니다. 그렇게 형제가 갈라서는 아픔을 겪습니다.

이날 학술 대회에서 이혜정 교수(영남신대)는 강신명 목사에 대한 기독교계의 다양한 평가를 소개했습니다. 일부를 언급하면 이렇습니다. "목회자, 기독교교육가, 한국교회 연합 사업의 선구자"(김동익 목사), "교회 연합 정신, 교회와 사회의 민주화를 위한 실천적 목회 활동과 한국교회 음악에 대한 공헌"(윤경로 장로), "복음주의적 신앙, 에큐메니컬 신학, 통합 교단 기초를 쌓은 인물"(정병준 교수).

강신명 목사님이 대단한 평가를 얻는 데 영향을 준 뿌리는 아버지 강병주 목사입니다. 이혜정 교수는 강병주 목사가 내매교회 윤재현 목사에 의해 종합적으로 평가됐다고 소개합니다. 그를 "독립운동가, 농촌계몽, 한글 목사, 교육가, 주일학교 부흥 강사"라고 이야기하면서, 강병주 목사의 폭넓은 목회 활동, 구체적·적극적 사회참여가 그대로 강신명 목사에게 이어지고 있다고 진단합니다.

내매교회 예배당. 이근복 그림
내매교회 예배당. 이근복 그림

내매교회는 영주 지역 최초의 기독교인 강재원 장로가 세웠습니다. 그는 대구 약령시장을 방문했을 때, 배위량(William M. Baird) 선교사에게 전도되어 세례를 받았습니다. 대구 지역 최초 교회인 대구제일교회를 다니다가 1906년(고종 43년) 고향 내매마을로 돌아오자마자, 유병두의 사랑방을 빌려 예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듬해 자기 집에 십자가를 달고 예배 처소를 만들어 주일예배를 연 것이 경북 북부 최초의 기독 신앙 공동체 내매교회의 시작이었습니다. 그의 헌신으로 진주 강 씨 집성촌 마을 전체(20가구)가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영주와 봉화 지역에 19개 교회가 설립되는 데 영향을 끼쳤습니다.

미국 북장로회 소속 오월번(Arthur. G. Welbon) 선교사가 1909년 지역 최초로 남자를 대상으로 한 성경공부반을 내매교회에서 열었고, 강병주 목사가 1910년 기독내명학교를 부설로 운영하면서 신앙·학문 교육이 함께 이뤄졌습니다. 기독내명학교는 경북 북부 최초의 기독 사립학교로서 개화기 신문화 도입과 문맹 퇴치에 크게 기여했으며, 일제의 궁성 요배를 거부하다 박해받는 등 항일운동의 모태이기도 했습니다.

내매교회와 기독내명학교는 많은 인재를 배출했는데, 강병주·강신명 목사, 계명대학교를 설립한 강인구 목사, 강진구 전 삼성반도체 회장 등이 대표적입니다. 기독내명학교는 아쉽게도 1955년 평은초등학교에 흡수돼 폐교됐습니다. 2009년 영주댐 건설로 수몰되는 위기에 처했으나 다행히 지금의 자리에 옛 학교 건물(한옥)이 복원되어, 신축한 내매교회 옆에 의연하게 서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말, 내매교회를 방문하려다가 영주시에서 갑자기 코로나19가 확산되어 가지 못하고 윤재현 목사님에게서 사진을 받았습니다. 지난해 8월 중순, '명성교회 세습 반대 걷기 대회'가 경북 안동에서 열렸을 때 윤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윤 목사님은 역사의식이 분명하고 열정이 크셔서 민족의 희망이 되고자 했던 내매교회의 가치를 잘 전파할 것입니다.

새해가 시작됐는데, 과연 우리 시대에 희망이 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이 희망의 근본 뿌리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한 달 전 강치원 박사는 한국기독교목회지원네트워크의 마지막 12차 '기독교 고전 읽기 모임'에서 위르겐 몰트만의 <희망의 신학>에 대해 강연했습니다. 저는 발제문의 나오는 단어에서 새로운 전망을 얻게 됐습니다. 독일어 중 미래를 뜻하는 말로 'Zukunft'도 사용한다고 합니다. 'Zukunft'는 '~로'·'~에게로'라는 뜻을 가진 접두어 'zu'와 '오다'·'가다'라는 뜻을 가진 'kommen'이 합성된 단어입니다. '가다'라는 말에 방점을 찍을 때는 현재의 이쪽에서 미래의 저쪽으로 가는 것을 의미하지만, '오다'라는 말에 방점을 찍으면 저쪽에서 이쪽으로 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태복음 24장에는 '재림'을 의미하는 헬라어 '파루시아'가 4번이나 나오는데, 루터는 이를 모두 'Zukunft'로 번역합니다. 마찬가지로 라틴어 성경도 모두 'adventus'로 번역했습니다. 교회가 중요하게 지키는 절기 대림절은 'Advent'인데, 루터의 신학에 따르면 대림절은 '미래'라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강치원 박사는 루터의 'Zukunft'에 주목하여, 대림절은 인간에게만이 아니라 하나님께도 미래가 되는 종말이 '하나님의 오심'과 함께 우리에게로 오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미래의 어떤 시점에 나타나는 미지의 공간이 아닙니다. 그 미래는 하나님의 섭리로 역사를 뚫고 들어와 지금 이곳에 세워지는 하나님나라이기에 우리 그리스도인의 궁극적 희망입니다.

부석사와 소수서원이 있어서 불교와 유교가 왕성했던 영주에서 내매교회가 민족의 미래를 열고자 힘쓰며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린 귀한 역사를 주목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한국교회는 하나님과 역사 앞에서 반성적 성찰을 통해 스스로 변혁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섬기면서 절망의 끝자락에 있는 우리 사회에 희망을 만들어 가기를 소망합니다.

이근복 / 한국기독교목회지원네트워크 원장, 전 크리스챤아카데미 원장. 성균관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 새민족교회 담임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육훈련원장을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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