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3일 오전 10시, 경북 안동시 신한은행 앞 작은 공원에서 열린 '명성교회 세습 반대, 총회 헌법 수호를 위한 걷기 대회' 시작 예배에서 격려사를 전했습니다. '경안지역교회바로세우기목회자연대'가 주최한 이틀간의 도보 집회는 예배 후 30여 명이 경찰차 인도를 받으며 걷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목회자들과 평신도들은 '세습 반대', '총회 헌법 수호'라는 몸자보를 한 채 피켓을 들고 안동 시내를 관통해 걸었습니다. 이틀 동안 죽령휴게소까지 총 60여km를 7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진행되었습니다.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 고향(영양군) 근처이고, 이 지역 출신 목사들이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김태영 총회장)에서 교권을 장악해 '안동 사단'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 근거지에서 뜻있는 목사들이 단호하게 일어난 것입니다.

저와 서울에서 내려간 친구 목사들은 일정상 1시간 30분 정도만 걸었습니다. 도보 행진 중에 이 지역을 걸으며 전도 여행을 했던 미국 북장로교 배위량(William M. Baird, 1862~1931) 선교사와 평화 순례를 진행하는 성공회 김현호 신부가 생각났습니다.

2018년 6월 13일, 의성제일교회에서 열린 '배위량순례단 창립 예배 및 총회'에서 배위량 선교사를 알게 되었습니다. 배위량 선교사를 연구하며 순례단을 열심히 이끄는 배재욱 교수(영남신대) 초청으로 참석한 행사였습니다. 이날 학술 대회와 자료집을 통해 도보 순례 전도 여행으로 복음을 전파한 배위량 선교사의 사역을 잘 배울 수 있었습니다.

배위량 선교사는 하노버대학교와 맥코믹신학교를 졸업하고, 결혼 직후 한국 선교에 나서 1891년 부산을 거쳐 인천에 도착했습니다. 1893년 4월, 경상도 지역 선교를 위한 선교 지부를 물색하고자 부산 동래를 출발해 양산·밀양·대구·상주·예천·안동·의성·영천·경주·울산에 이르는 1240리(약 487km)나 되는 길을 한 달간 걸으며 전도 여행을 했습니다.

서경조와 박재용이 전도 여행에 동행했는데, 물선 땅에서 위험을 무릅쓴 덕분으로 대구에 영남 지역 선교 지부를 세워 서울 중심에서 벗어나 지방 시대를 열었습니다. 그가 1897년 평양에 세운 숭실학당은 1906년 우리나라 최초의 대학인 숭실전문학교로 발전했습니다. 숭실대학을 떠나 문서 사역을 하게 된 그는 사경회와 순회 전도를 하는 한편, 성경 번역에도 적극 참여했습니다. 오늘날 개역 성경의 모태 ＜성경젼셔＞(1911)를 내는 데 기여했습니다.

이 복음의 씨앗이 결실해 인구 5만 3000명 정도인 의성에 교회가 150곳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중 100년 역사를 지닌 곳이 30개나 됩니다. 의성 첫 교회는 1900년 설립된 비봉교회인데, 김수영이 청도 장터에서 전도사 이야기에 감동받아 배위량 선교사에게 세례받고 돌아와 마을 주민들과 예배한 일이 출발이었습니다. 비봉교회에 출석하던 여성 신도가 옥산면으로 출가해 시댁에서 예배하다 1903년 설립된 게 실업교회이고, 처가가 있던 비봉마을을 왕래하면서 신앙을 갖게 된 교인이 1908년 읍내에 세운 것이 의성교회입니다.

개신교가 의성 지역사회에 깊이 뿌리내릴 수 있었던 비결은, 그리스도인들이 삶에서 모범을 보였고 교육과 독립운동에 기여한 덕분입니다. 비봉교회는 설립된 직후 계신학교를 열었고, 의성교회는 1920년대에 숭신유치원을 세웠습니다. 경북 지역 3·1 운동은 의성 교회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1930년부터 평양신학교 학생들이 농촌계몽 운동에 나섰다가 일제의 탄압을 받은 농우회 사건도 의성이 중심이었습니다.

일제는 의성교회 유재기 목사 등을 체포하며, 1938년 8월 신사참배에 반대하다 붙잡힌 평양 산정현교회 주기철 목사를 이 단체와 연루됐다며 체포해 거리가 먼 의성으로 압송했습니다. 주기철 목사는 결국 의성경찰서에서 7개월간 옥고를 치렀습니다. 1939년에는 신사참배에 반대한 권중하 전도사가 혹독한 고문을 받아 순교했습니다.

이 흔적을 배위량순례단 창립총회 후 방문한 의성상설전시관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날은 문이 닫혀 안을 볼 수는 없었지만, 큰 한옥 건물이 악명 높았던 옛 의성경찰서였습니다. 의성은 역사적으로 국난이 닥칠 때마다 분연히 일어났기 때문에 의성인들에게는 강직하며 기개를 굽히지 않는다는 평판이 있다고 합니다. 유난히 복음화율이 높았던 의성 기독교인들은 3·1 운동을 할 때 선봉에서 기꺼이 희생을 감수하며 앞장섰고, 의성경찰서는 기독교인과 애국지사들을 극심하게 탄압했던 것입니다.

이번에 그린 의성제일교회는 의성교회에서 1961년에 분립한 젊은 교회입니다. 배위량순례단 창립식 장소였던 교회당은 아담하고 아름다웠습니다.

대한성공회 대북 지원 단체 평화를일구는사람들(TOPIK) 상임이사 김현호 신부는 2014년부터 동두천 나눔의 집을 섬기면서 매년 사순절에 2주간씩 '죽음의 문화를 참회하며 걷는 생명 평화 기도 순례'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김 신부와는 2년 6개월 전부터 매달 한 번씩 열리는 '용서와 화해 기도회'에서 만나고 있습니다. 지금은 대면 기도회 대신에 카카오톡으로 예배하는데, 작년 기도회에서 도보 순례의 가치를 의미 있게 들었습니다.

김현호 신부는 도보 순례를 통해 새롭게 형성되는 삶의 태도를, 단순해지기, 환대, 화를 덜 내게 되고 포용력이 커지는 강해지는 심장, 평화의 감수성, 연대성 인연, 무상무념, 겸손이라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김 신부는 '사순절이 기다려지는 이유'라는 글을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요즘 전광훈의 기이한 행태와 종교 탄압이라며 대면 예배를 강행한 일부 교회들 때문에 개신교의 유통기한은 끝났으며, 교회에서 거리 두기를 해야 한다는 기사들을 접하면서 참담한 심정을 가눌 수 없습니다. 루소는 ＜고백록＞에서 "나는 걸을 때만 사색할 수 있다. 내 걸음을 멈추면 내 생각도 멈춘다. 내 말이 움직여야 내 머리가 움직인다"고 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함께 천천히 걸으며 하나님을 바라보고, 진정으로 예수님을 따라 순례자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할 때입니다. 그렇게 스스로를 정화할 때, 한국교회 생명이 되살아나지 않을까요.

배위량 선교사의 도보 순례 전도 여행으로 탄생한 의성제일교회가 어려운 지역 주민들과 동행하며 힘을 주길 바랍니다. 경안 지역 목회자들의 세습 반대 걷기로 예장통합의 불법적 명성교회 수습안 결의가 철회되어, 한국교회가 사회적 공신력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이근복 / 한국기독교목회지원네트워크 원장, 전 크리스챤아카데미 원장. 성균관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 새민족교회 담임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육훈련원장을 거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