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처음부터 평신도 운동이었다. 교회 역사에 있었던 교회 갱신이나 부흥은 성직자의 권력 독점에 대항해 평신도의 권리와 의무를 되찾으려 했던 운동이었다." - <존 스토트가 말하는 목회자와 평신도>(아바서원)

'그리스도인'은 교회 안에서 봉사만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뉴스앤조이>는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진격의 교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려고 합니다. 말씀대로 살기 위해 진격하는 크리스천들의 모습을 통해, 지금 한국 사회에 보여 줘야 할 진정한 기독교의 역할과 모습이 무엇인지 살펴보기 위해서입니다.

삶의 기로에서 소명과 진로를 고민하는 청년, 전문 영역에서 기독교인으로서 고군분투하며 사는 집사님·권사님·장로님, 성경에서 가르치는 모습을 좇아 약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는 교인분들을 소개합니다. 제보도 환영합니다. 주변에 '진격의 교인'이 있다면 언제든지 <뉴스앤조이> 홈페이지이메일페이스북카카오톡 등으로 알려 주세요. - 편집자 주

[뉴스앤조이-김은석 사역기획국장]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13조 3항이다. "모든 아동은 본인과 부모, 후견인의 인종, 피부색, 성별, 언어, 종교, 정치적 의견, 출신, 재산, 장애 여부, 태생, 신분 등과 관계없이 동등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의 기본 원칙 중 하나인 '비차별 원칙'이다. 한국은 1991년 이 협약을 비준했다.

천부인권과도 같은 이러한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아이들이 우리 사회에 숨어 있다. 부모가 죄를 짓고 감옥에 갇힌 수용자 자녀들도 그중 하나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7년 실시한 '수용자 자녀 인권 실태 조사'에 따르면 국내 수용자 자녀 수는 약 5만 4000명으로 추산된다. 이 아이들은 부모 중 한 명의 범죄로 어느 날 갑자기 가족이 해체되거나 생활고의 늪에 빠지고 만다. 거기에 더해 '범죄자 자녀'라는 낙인과 사회적 형벌 속에 정서적으로도 위태로운 상태에 놓인다. 지난 3월 21일 KBS '시사기획 창'이 방영한 '낙인, 죄수의 딸' 에서도 이 아이들의 고통과 외로움, 막막한 현실을 엿볼 수 있다.

아동복지실천회 '세움'은 돌봄 사각지대에 내몰려 제2의 피해자로 살아가는 수용자 자녀들에게 손 내미는 단체다. 2015년 "수용자 자녀가 당당하게 사는 세상"을 외치며 설립해 월 평균 120명의 아이들을 경제적‧정서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수용자 가족의 인권을 보호하고 사회적 지지 체계를 구축하는 데도 힘쓴다.

세움은 작지만 강한 단체다. 단체 설립 초기인 2017년, 앞서 언급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수용자 자녀 인권 실태 조사'를 위탁받아 시행했고, 법무부를 재촉해 교도소 내 아동 친화적 가족 접견실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을 인정받아 2018년 제24회 서울지방변호사회 '시민 인권상'을, 올해는 포스코청암상 '봉사상'을 수상했다. 세움을 설립한 이경림 상임이사는 2019년 한국사회복지협의회가 주관하는 '대한민국 사회 혁신 체인지 메이커'에 선정되기도 했다.

5대째 기독교인인 이 상임이사는 1992년부터 23년간 사단법인 부스러기사랑나눔회에서 빈곤 아동과 함께하고 상임이사로 단체를 이끌기도 한 아동복지 분야의 베테랑 활동가다. 얼마 전 <꼭 안아 주세요>(규장)를 펴내 지난 6년간 세움을 설립하고 수용자 자녀와 가족들을 만나며 겪은 기막힌 사연들을 풀어냈다. "더 낮은 자, 없는 자를 위해 이삭을 남겨 두시는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며, 수용자 자녀를 낙인찍고 옭아매는 세상을 향해 진격하는 이경림 상임이사를 4월 27일 서교동 세움 사무실에서 만났다.

수용자 자녀를 낙인찍고 옭아매는 세상을 향해 진격하는 아동복지실천회 '세움' 이경림 상임이사를 4월 27일 서교동 세움 사무실에서 만났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수용자 자녀를 낙인찍고 옭아매는 세상을 향해 진격하는 아동복지실천회 '세움' 이경림 상임이사를 4월 27일 서교동 세움 사무실에서 만났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 30년가량 아이들과 함께하고 계신데, 어떻게 처음 아이들을 만나게 되셨나요.

1990년에 서울 금천구 시흥2동 산동네 꼭대기 교회 옆에서 공부방을 했어요. 집에 수도 시설도 화장실도 없는 곳이었어요. 세 칸짜리 공중화장실을 썼어요. 그런 동네가 서울에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돼 충격을 받았죠. 학교 안 가고 교회 앞마당에 와서 놀던 아이들 데려다 밥 먹이며 공부방을 시작한 거예요. 그러면서 부스러기선교회(현 부스러기사랑나눔회)를 알게 됐고 1992년부터 일하기 시작했죠. 철거 전까지 시흥2동에 7년간 살면서 빈곤이 개인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사회구조적인 문제라는 걸 몸소 알게 됐죠. 그곳 주민들이 정말 정이 많고 열심히 산다는 것을, 그럼에도 그들의 자녀는 빈곤을 깨고 탈피하기 어려운 구조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 부스러기사랑나눔회에서만 23년간 빈곤 아동들과 함께하셨는데, 다시 이렇게 작은 단체(세움)를 만들어서 소외된 아이들을 돕고 계시네요. 이런 삶을 살아오신 데는 대표님의 신앙관이 작용했을 것 같습니다.

구약을 보면 하나님은 이스마엘의 하나님, 하갈의 하나님, 나오미의 하나님, 다말의 하나님이시잖아요. 숨어서 살아야 하는 사람, '아웃사이더'로 불릴 만한 사람들이 구약에도 나오고, 예수님의 족보에도 나와요. 제 하나님은 더 낮은 자, 없는 자를 위해 이삭을 남겨 두시는 하나님이에요. 그 하나님이 아들 예수님을 보내셨고, 우리는 스스로를 그분의 제자라고 고백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삶을 좆아 사는 것이 제 인생이라고 생각해요. 예수님이 즐겨 사신 삶이 뭔가요. 아픈 자의 병만 고치신 게 아니라 마음까지 고쳐 주셨어요.

어릴 때 어머니에게 "하나님은 너를 사랑하신다"라는 말을 항상 들었어요. 저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당연히 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사랑하지 않겠어요? 그게 기본적으로 인권이나 인간에 대한 제 관점을 만든 것 같아요. 그런 토대 위에 시흥2동에서 만난 사람들, 가난하지만 너무나 착하고 열심히 사는 분들을 가까이에서 보면서 이런 가치관이 뿌리내린 것 같아요. 다 은혜이고 은총이에요. 제가 뭘 특별히 찾아서 공부한 게 아닌데, 이런 마음을 주신 것도 하나님 아니실까 싶어요.

- 높은 자리에서 커리어를 마무리하실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왜 다시 맨땅에 헤딩하는 길을 택하셨나요.

제가 부스러기사랑나눔회 상임이사를 연임하면서 '이제 더 올라갈 데가 없구나. 어떻게 잘 내려올까?' 생각했어요. 그때 일기에 세 가지를 썼어요. 좀 더 작은 공동체, 함께 손잡고 울어 줄 수 있는 곳, 함께 예배할 수 있는 곳. 이 세 가지를 놓고 기도했던 것 같아요. 조심스러운 이야기인데요. 부스러기사랑나눔회 1년 예산이 150억 원에서 200억 원 정도 하고 직원이 100명 정도였을 때예요. 지방에 지부도 있었고요. 어느 날 갑자기 깨달았는데 동료들 이름을 제가 다 모르더라고요. '아, 이건 아니구나' 싶었죠. 물론 이건 조직의 문제라기보다는 제 개인의 능력 문제일 거예요.

결정적인 계기가 된 하루가 있었는데요. 아직도 잊히지가 않아요. 그날 아침 아이들 돕는 메이저 단체 대표들과 조찬 모임을 하고, 점심에는 후원자 한 분과 호텔에서 점심 식사를 했어요. 저녁에는 복지부 담당 국장하고 일식집에서 밥을 먹었고요. 뉘엿뉘엿 지는 해를 보며 집에 가는데 '이건 내가 원한 삶이 아니다' 싶더라고요. 이 삶이 기쁘지가 않았어요. 그때부터 좀 더 작은 곳에서 아이들을 구체적으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 <꼭 안아 주세요>에도 나와 있지만 '세움'이라는 단체명이 마가복음 9장 36~37절 말씀에서 비롯했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어린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막 9:36-37)

단체를 시작하기로 하고 기도하며 단체명을 고민하던 중 이 말씀이 딱 떠올랐어요. 예수님은 당시에 사람 취급도 못 받던 존재인 어린아이를 제자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면서 이 말씀을 하셨어요. 이 말씀을 하시기 전 제자들은 서로 누가 큰 사람인지 다투고 있었고요. 그런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그는 모든 사람의 꼴지가 돼서 모든 사람을 섬겨야 한다"라고 지적하시고는 직접 어린아이를 데려다가 세우시고 안으셨어요. 안으셨다는 건 몸을 움직여 실천하셨다는 거잖아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다면 상처받고 아파하는 수용자 자녀들 역시 사람들 한가운데에 세우시고 두 팔로 안아 주지 않으실까요.

이경림 상임이사는 <꼭 안아주세요>(규장)를 펴내 지난 6년간 세움을 설립하고 수용자 자녀와 가족들을 만나며 겪은 기막힌 사연들을 풀어냈다.
이경림 상임이사는 <꼭 안아 주세요>(규장)를 펴내 지난 6년간 세움을 설립하고 수용자 자녀와 가족들을 만나며 겪은 기막힌 사연들을 풀어냈다.

- 수용자 자녀를 돕는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을 것 같아요. 활동하시면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이었는지요.

두 가지인 것 같아요. 문화라는 게 되게 바꾸기 어렵잖아요. 우리 사회 안에는 가족을 동일시하는 문화가 있어요. 저는 가족주의라는 게 지금 시대와는 맞지 않다고 생각해요. 가족주의 영향으로 가족 한 사람의 잘못을 가족 전체의 잘못으로 보는 문화 때문에 사회적 편견이 크게 생기는 것 같아요.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런 편견과 이어져서, 아이들 스스로 부모의 수감 사실을 알게 된 후 '그래, 나는 범죄자의 자녀지'라고 낙담하며 스스로의 가능성을 제한하고 존재 자체를 규정짓는 것, 그게 가장 힘들고 맘 아픈 것 같아요. 아이들을 만나고 친밀감이 형성되면 속마음을 얘기해요. "혹시 저에게도 그런 피가 흐르는 것 아닐까요"라는 얘기도 들었어요. 아이들이 인터넷 댓글을 다 봐요. 얼마 전에 저희랑 연대하는 한 단체가 수용자 자녀에 대한 영상물을 아주 잘 만들어서 유튜브에 올렸는데 댓글이 어마어마하게 달렸어요. 온갖 혐오와 비난의 말들을 아이들이 보고 자기를 동일시하는 거예요. 한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생각하는 줄 몰랐어요. 죽고 싶어요. 제가 이런 존재였나요?" 우리가 항상 "너의 잘못이 아니야", "너는 존재 자체로 소중해"라고 얘기하지만, 우리 사회의 오래된 편견 때문에 아이들이 스스로를 감옥에 가두게 되는 일이 가장 어려운 지점인 것 같아요.

- 세움이 만들어 낸 가장 큰 변화로 무엇을 꼽으시나요.

아동 친화적 가족 접견실을 만든 거죠. 2017년 여주교도소에 처음 만들었는데 작년 연말 기준 전국 54개 교도소에 모두 설치가 됐어요. 그리고 미성년 자녀가 있는 수용자가 접견을 할 때는 죄수복이 아닌 귀주복(사복)을 입고 면회를 하도록 바뀌었죠.

2017년 수용자 자녀 인권 상황 실태 조사도 최초로 실시해서 통계를 만들었어요. 이 조사가 시행된 후부터 법무부에서 수용자에게 자녀가 있는지 직접 파악해요. 그 전에는 시설에 수용자가 들어와도 자녀가 있는지, 자녀를 돌봐 줄 사람이 있는지 물어보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통계 구축이 안 됐죠. 이제는 법무부가 직접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어요. 사실 저희처럼 작은 단체가 아무리 얘기해도 법무부가 움직이지 않으면 그만이거든요. 그런데 기적처럼 움직여 준 거죠.

세움은 2017년 법무부와 협력해 여주교도소에 국내 최초 아동 친화적 가족 접견실을 만들었다. 사진 출처 세움 네이버 블로그
세움은 2017년 법무부와 협력해 여주교도소에 국내 최초 아동 친화적 가족 접견실을 만들었다. 사진 출처 세움 네이버 블로그

- 세움에서 하는 사업을 크게 세 가지로 분류를 해 놓으셨더라고요. 건강한 성장, 인권 옹호, 사회적 지지 체계 확대. 각각 어떤 활동을 말하는 건가요.

저희가 규모는 작아도 하는 일은 많아요. '건강한 성장'은 주로 직접 지원 활동을 말해요. 직접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만나 개별 지원도 하고 성장 지원도 하고 경제적인 지원도 해 주고 있어요. 그리고 부모의 수감 사실을 아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동아리 활동을 해요. 한 달에 한 번 모임하고 캠프도 가고요. 한 달에 평균 120명 정도를 직접 지원하고 있어요. 부모님 출소할 때까지 꾸준히 지원하는 거예요. 또 하나는 마음이 아픈 아이들이 많아서 전문적인 상담을 받도록 지원해요. 그리고 양육자 교육, 출소한 가족들을 함께 교육하는 것까지 진행하고 있어요.

- 양육자 교육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전문가 선생님들이 집으로 찾아가 양육자를 만나서 아이들과 어떻게 커뮤니케이션해야 좋은지 교육해요. 양육자들이 받는 양육 스트레스가 엄청 크거든요. 예를 들면 남편이 죄짓고 감옥에 간 와중에 피해자와 합의도 해야 되고, 빚도 갚아야 되고, 이사도 해야 하고…. 그런 상황 속에서도 아이를 중심에 놓고 생각할 수 있도록 돕는 거예요. 그다음에 부모가 출소한 후 가족들이 새 출발을 잘할 수 있도록 가족 교육과 가족 여행도 지원해요. 출소해서 돌아온다 해도 상황이 드라마틱하게 바뀌지는 않으니까요. 서로의 눈높이를 맞추도록 현실 감각을 살려 주고 이해하는 시간을 갖게 하는 거죠.

'인권 옹호'는 "부모에게는 죄가 있지만 아이들은 죄가 없다", "당신의 아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같은 캐치프레이즈를 토대로 다양한 캠페인을 펼쳐 나가는 일이에요. 수용자 자녀가 제2의 피해자라는 것을 계속해서 사회에 알리고 다양한 활동을 통해 법이나 제도를 바꾸고 있죠. '사회적 지지 체계 확대'는 워낙 이 분야가 사회복지적으로나 아동복지적으로 전문화돼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 일과 관련된 기관이나 공익법인, 아동복지 단체, 인권 단체 등과 연대해서 사회 체계를 바꾸기 위한 다양한 활동들을 모색하는 거죠.

- 법이 바뀐 게 있나요.

네. 아동 친화적 가족 접견실을 만들어 가면서 법도 바뀌었어요. 형의 집행 및 수용자 처우에 관한 법률 안에 미성년 자녀가 있는 수용자들은 차단 시설이 없는 데서 접견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 생겼어요(제41조의 3항). 그리고 수용자가 아동복지법 제15조에 따라 자녀의 보호조치를 의뢰할 수 있도록 알려 주고 지원하게 했어요(제53조의 2항).

- 책에 보면 남편 수감 후 세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가 어려서부터 다니던 교회에서 주변의 수군거리는 소리 때문에 상처받은 이야기도 나오던데요.

교회 안에서도 사회적 편견이 작용해요. 저는 우리가 다 죄인이기 때문에 정죄가 아닌 용서를 받아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오히려 교회 안에서 정죄하는 메시지가 많이 나와요. 제발 정죄 좀 안 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감히 누구를 정죄할 수 있나요. 그러니까 사회보다 교회 안에서 더 숨기게 되는 거죠.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어요. 성경에 죄지은 사람이 얼마나 많이 나오나요? 그럴 때 교회가 더 품어야 하고 용서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해 결국 교회를 떠나게 되는 수용자 가족들이 있어 너무 안타깝더라고요. 교회가 모든 사람이 편하고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열린 문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이 상임이사는 가족주의 문화가 만들어 낸 사회적 편견 때문에 아이들이 스스로를 감옥에 가두는 일이 가장 어려운 지점인 것 같다고 했다. 교회를 향해서도 정죄의 메시지를 멈춰 달라고 호소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이 상임이사는 가족주의 문화가 만들어 낸 사회적 편견 때문에 아이들이 스스로를 감옥에 가두는 일이 가장 어려운 지점인 것 같다고 했다. 교회를 향해서도 정죄의 메시지를 멈춰 달라고 호소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 세움에서 만난 친구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친구가 있다면요.

많죠. 사실 제가 지난주에 생일이었어요. 한 친구가 작년에도 편지를 써 줬는데 올해는 선물까지 사서 왔어요. 지금 대학생인데 아르바이트를 해요. 자기가 번 돈으로 누구에게 선물한 게 처음이라고 하더라고요. 저한테 줬지만 우리 세움에게 주는 마음이겠죠. 마음이 많이 아픈 친구인데 세움을 통해서 행복, 즐거움, 기쁨, 가슴 벅참, 감사, 자신감, 성취감, 책임감, 용기, 배려, 열정, 위로, 공감, 자랑스러움 같은 감정을 처음으로 느끼고 배웠다고 편지에 적었더라고요. 기쁠 때나 힘들 때 세움이 가장 먼저 떠오른대요. 자기도 아픔이 있는 사람들 위해 세상을 조금씩 바꾸며 살고 싶다고 하는데, 그런 고백을 들을 수 있어서 너무 감사했죠.

특히 아이들을 정성스럽게 만나 준 우리 동료들에게 감사해요. 사실 제일 쉬운 게 돈으로 돕는 거예요. 사람 마음을 사는 게 제일 어려운 거죠. 그 아이는 아직도 인생의 긴 터널을 지나고 있어요. 하지만 그 긴 터널 안에서 조그만 빛이라도 보며 걸어갈 수 있는 거죠. 세움은 자기에게 산소 같은 존재라고 해요. 세움이 그 친구에게 그런 존재여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 마음을 잘 열지 않는 친구들도 더러 있지 않은가요.

물론 있죠. 그런데 제가 예전에 지역 아동센터나 쉼터 같은 곳에서 만난 아이들과 세움에서 만난 아이들은 약간 다른 점이 있어요. 세움이 만나는 아이들 대부분 부모의 수감 사실을 알고 있는 상태인데요. 처음에 만나서 "아빠(엄마)가 ○○이 만나 달라고 편지를 써 주셨어" 하면 눈물을 주르륵 흘려요. 처음부터 내 가장 알리고 싶지 않은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가 된 채로 만나는 거예요. 마음을 나누는 밀도 자체가 다른 것 같아요. 동아리 활동하는 아이들끼리도 처음엔 서로 눈치를 좀 보는데 몇 차례 만나고 나면 여기가 안전한 공간이라는 것을 느껴요. 그래서 비밀을 공유하는 자조 집단 같은 게 돼요. 아이들이 이 안에서 어떤 힘을 느끼게 되는 거죠.

- 세움에 멘토로 참여해 함께할 수도 있는 것 같더라고요.

저희 멘토가 되는 문턱은 좀 높아요. 기본적으로 자기 고백을 해야 해요. 저는 광야의 아픔이 없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그 아픔을 통해 얼마만큼 신앙 안에서 성숙했는지, 하나님을 만났는지 자기 고백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멘토가 될 수 있게 했어요. 그런 분들이 교육을 받고 아이들을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지속적으로 만나게 되는 거죠. 아픔이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아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것 같아요. 지금 멘토가 10명 정도 되는데, 신청을 많이들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저희 사무실이 서울에만 있어서 지역에 있는 아이들을 자주는 못 만나요. 그래서 지방에도 세움의 미션에 동의하고 함께할 수 있는 파트너가 좀 필요한 시점이에요. 그렇다고 저희가 지부를 만들거나 할 수는 없거든요. 능력도 안 되고요. 함께 갈 좋은 파트너들이 각 지역에 더 많이 생기면 조금 더 많은 아이들을 만나고 품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 현재 세움이 가장 주력하는 사업은 무엇인가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마음이 아픈 아이들이 많이 있어요. 갈수록 상담 요청이 많아져서 수용자 자녀들만 사용할 수 있는 상담 공간을 마련해야 하는 게 시급한 과제예요. 저희 사무실 안에 조그만 상담실이 하나 있는데, 공간이 좁기도 하고 상담을 받으려면 밖에서 오래 기다려야 해요. 좀 더 편안하게 상담받을 수 있게 전문 상담 공간을 마련하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수도권에 사시는 분들은 여기로 오시게 하고 지방에서 상담 요청이 들어올 경우에는 지방 소재 상담실에 의뢰해서 상담비를 지원해요.

KBS '시사기획 창'이 14세 이상 수용자 자녀 11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전체 17%인 36명이 극단적 선택을 자주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는 일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에 비해 매우 높은 수치다. KBS 시사기획 창 유튜브 채널 갈무리.
KBS '시사기획 창'이 14세 이상 수용자 자녀 11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전체 17%인 36명이 극단적 선택을 자주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는 일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에 비해 매우 높은 수치다. KBS 시사기획 창 유튜브 채널 갈무리.

- 단체 설립하고 만 6년이 지났어요. 짧은 기간에 눈에 띄는 활약을 해 오신 것 같은데 어떠신가요.

지난 6년간 기대치 않은 부수적 성과들이 여럿 있었어요. 그런 것을 보며 '하나님이 정말 이 일을 하시고 싶었구나. 세움이 아니더라도 수용자 자녀를 가운데 세우시고 안아 주시는 일을 하셨겠다' 싶었어요. 마침 세움이, 우리 동료들과 제가 그 일을 할 수 있어서 참 감사해요. 포스코청암상 봉사상을 받고 나서는 더 겸손하게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에도 썼지만 하나님께서 하갈의 기도를 들으신 것처럼 수용자 가족의 기도를 들으신 게 아닌가 싶어요. 제가 인생의 막다른 곳에서 이 일을 시작하도록 몰고 가시기도 했지만, 그전에 이미 억울한 사람들의 기도와 눈물이 쌓였구나 싶어요. 

저희가 만나는 수용자 가족들은 저희가 선택하는 게 아니에요. 편지가 날아와요. 도와 달라고 해서 만나게 돼요. 피해자분들은 말할 것도 없겠지만 수용자 가족들에게도 억울함이 있어요. 그 억울함은 자기 남편이, 아내가, 아들딸이, 엄마·아빠가 죄를 저질렀다는 것 자체인 것 같아요. 그리고 가난하기 때문에, 못 배웠기 때문에, 정보가 없기 때문에 더 억울하신 분들이 있더라고요. 할머니·할아버지들을 만나면 마지막에 항상 이렇게 얘기하세요. "우리 같은 인간 찾아와 줘서 너무 고맙습니다"라고요. 그런 분들이 조금이라도 '세상이 그렇게 삭막하지만은 않구나' 하고 느끼셨으면 해요.

사단법인 아동복지실천회 세움 홈페이지: http://www.iseum.or.kr
문의: 02-6929-0936 / seum@iseu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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